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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한다며 해마다 수십조를 산업에 투자한다. 70년, 80년대 노동을 억압하고 재정 지원을 통해 특정 산업을 키워온 산업 전략은 오늘도 유효하다. 기업 친화적, 규제 완화, 외자 유치 등의 단어들은 남발되지만 줄지 않는 산업재해, 장시간 노동, 저임금 노동 등의 통계 자료는 변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산업정책에는 왜 '노동'이 빠져있을까? 김종훈 의원실에서는 산업통상자원위원회에서는 낯선 '노동'을 국정감사의 주제로 잡았다. 마치고 나니 결과적으로는 좋은 주제였다고 자평했다. 이래저래 수집한 자료들과 허둥거리며 첫 국감을 치렀던 초선의원 김종훈 의원실의 이야기가 버리기 아까워 오마이뉴스 지면을 빌려 기록으로 남긴다. - 기자 말

강원랜드 외주업체 직원이 국정감사 참고인으로 출석했다. 우리는 강원랜드의 정규직 휴게시설과 협력업체의 휴게시설을 국감장의 모니터에 띄워놓았다. 김종훈 의원이 질의한다.



"저게 말이 됩니까? 정규직들은 저렇게 발 마사지기까지 갖다놓고 비정규직들은 남녀구분도 없는 휴게실에다가..."
"비정규직 아이들은 어린이집도 안 받아주고, 명절 선물비도 차별하고..."

질문에 한숨을 고르고 차분히 대답하겠다는 강원랜드 사장이 먼저 강조해서 하는 말은 용어를 바로잡는 일이다.

"오해가 없으시길 바랍니다. 비정규직이 아니고 외주업체직원들입니다. 그들은 외주업체 정규직입니다."

그렇게 발뺌을 하면서도 사장은 외주업체 직원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서 노력하겠다고 약속한다.

한사코 비정규직이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그들은 공공기관의 용역발주가 없어지면 일자리를 잃는다. 공공기관의 용역설계에 따라 급여가 결정된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을 공공부문 비정규직노동자라 부른다.

물론 국감장에서 사장과 이런 논쟁을 할 시간은 없다. 당장은 상여금과 명절 선물비 문제를 바로 잡는 게 더 급하기 때문이다.

'진심'을 몰라준다고 화낼 순 없었다

강원랜드 외주업체 노동자들을 국정감사에서 만나는 과정은 길고도 험난했다.

강원랜드는 강원도의 광산이 문을 닫으면서 지역의 고용창출과 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해서 특별히 카지노 사업을 허가받은 공공기관이다. 국정감사를 준비하며 살펴보니, 강원랜드의 외주 하도급 노동자 수가 1702명으로 내가 담당하고 있던 공공기관 중 외주 하도급 비율이 가장 높았다. 작년 영업이익만도 4305억 원인데 강원랜드가 외주 하도급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고용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정의로운 마음으로, 연대의 마음으로 강원랜드 협력업체 노동조합에 전화를 걸었다.

"강원랜드 비정규직 문제를 이번 국정감사에서 제기하기 위해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와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한번 찾아뵙겠습니다."

그런데 웬걸, 노동조합 사무국장은 다소 의아한 듯이 전화를 받는다.

"뭐 그러면 좋기는 하지요."

돌아온 대답이 어쩐지 뜨뜻미지근하다. 그래도 의원실에서 일하게 되면서 현장에 기초한 의정활동을 하겠다고 다짐하지 않았는가? 초심을 지키기 위해 나는 반겨주지도 않는 강원랜드 협력업체를 찾아 나섰다. 간 김에 강원랜드 인근 주민들, 정규직 노조도 만나볼 참이었다.

9월 26일 청량리에서 기차를 타고 사북으로 갔다. 사북에 도착해서 고한-서북사북-남면-신동 지역 살리기 공동추진위원회의 최경식 위원장을 만나서 지역 현황을 들었다.

강원랜드로 올라가는 길은 걸어서 올라가기로 했다. 그래도 강원도 온 기분은 내야 할 것 같았다. 길 입구에 '천억사' '일등가일등사' 등의 전당포가 줄줄이 있다. 좀 더 올라가니 낡은 건물에 '나는 산업전사 광부였다.' 글과 함께 광부의 얼굴 벽화도 보인다. 한참을 바라보고 산길을 걸어 올라갔다. 잠시 잠깐 예전엔 사람들로 넘쳐났을 이곳의 모습이 그려진다.

강원랜드 올라가는 길
 강원랜드 올라가는 길
ⓒ 방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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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랜드 정규직 노동조합도 만났다. 이분들은 성과연봉제가 주 관심사였다. 오후 늦게, 드디어 강원랜드 협력업체 노동조합을 찾았다. 위원장, 사무국장, 쟁의부장 세분이 기다리고 계셨다. 사무실로 들어섰다. 한 명은 뚱하게 나를 바라보고, 한 명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담배를 물고 있고, 한 명은 왔으니 이야기나 해 봐라. 이런 표정이다. 순간 당황스러웠다. 분위기가 이상했지만 여기까지 왔으니 나는 할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린 노동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외주 하도급 노동자들의 직고용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직접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왔습니다."

"아니 강원도 국회의원도 아니고 울산 국회의원이 뭐하러 강원도까지 왔습니까? 국정감사 때 반짝 생색내려고 하는 모양인데, 울산 비정규직도 해결 못 하면서···."

도와주려고 온 사람한테 이게 할 소리인지. 당황스럽기도 하고 화도 난다. 순간 나도 버럭 했다.

"아니 필요 없다면 안 하면 되죠. 뭐."

잠시 잠깐의 정적이 흐른다. 머릿속이 복잡하다. 아차 싶다. 그동안 정치가 이분들에게 무슨 도움이 되었을까? 내가 선의로 왔으니 무조건 믿어 달라고 하는 것은 내 생각일 뿐. 다시 이분들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 보는 것이 좋겠다 싶었다.

"그동안 제대로 관심도 못 가지고 이제 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서 죄송합니다. 필요한 말씀과 의견을 충분히 듣고 판단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말하니 세분의 표정도 누그러졌다.

답은 늘 현장에 있다

강원랜드 비정규직 휴게실
 강원랜드 비정규직 휴게실
ⓒ 이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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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고용되면 좋지만, 국회의원이 몇 번 떠든다고 되겠느냐? 결국, 생색내기 아니냐? 하는 이야기를 하신다. 그래도 시급한 것 몇 가지라도 고쳐보자고 설득했다. 이야기 끝에 임금과 복지 수준을 높이는 것 중심으로 현실적인 문제를 국정감사에서 지적해보자고 결론을 내렸다.

한 시간 남짓 이야기하고 나니 커피가 한잔 나온다. 세분의 마음이 풀렸는지 표정도 부드러워졌다. 30분이 더 지나니 "우리 지역구 의원도 관심 없는데 관심을 가져줘서 고맙다"는 말도 나온다.

강원랜드 노동자들 휴게시설을 한번 둘러봤다. 남녀구분도 안 되는 좁은 휴게실, 휴게시설이 부족해 화장실 입구 청소도구 두는 곳에서 의자 하나 두고 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식었던 나의 정의감이 다시금 불타오른다. 이것만이라도 반드시 해결해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10월 4일 국정감사 현장에서 김종훈 의원은 강원랜드 사장에게 외주 하도급 노동자들의 처우개선을 요구하는 질의를 했다. 강원랜드 사장도 '가능한 최대한 노력하여 실현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국정감사가 끝나고 질의 동영상을 노동조합에 보내드렸다.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왔다. 나도 이러저러하게 노동운동, 시민운동을 해왔다. 늘 느끼지만, 현장 사람들을 만나야 초심을 잃지 않는다. 답은 늘 현장에 있었다. 그래서 나도 참 고마운 강원도 나들이였다.

며칠 전부터 강원랜드 외주 하도급 업체 노동자들이 속해 있는 노동조합에서 연락이 자주 온다. 국정감사 기간도 아닌데, 최순실 때문에 의원실이 바삐 돌아가는 이때, 강원랜드의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다시 현장을 찾을 결심을 하기는 정말 힘든 일이다. 하지만 11월 3일, 그래도 나는 다시 강원도 행 기차를 탔다. 나는 고맙게도 발목이 잡혔다.

"여러분은 앞으로 수많은 선택의 길에 서게 될 것입니다. 절박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어려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아픔이 있는 현장의 지원요청과 나중에 세액공제라도 도움받을 수 있는 노동조합 투쟁현장 사이에서 어디를 가야 할지 선택해야 하는 상황과 마주할 수도 있습니다."

김종훈 의원실에서 은수미 전 의원 초청 강연회를 열었을 때 은수미 의원이 했던 말이다. 국회로 많은 노동조합이 찾아온다. 각종 입법현황과 민원이 국회의원에게 전달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지는 정규직 노동자들보다 열악하다. 하지만 국회의원에 대한 로비는 거의 못한다. 작은 노동조합들에게 국회의 문턱은 오히려 높다. 지금은 정치가 그들을 찾아가야 한다. 그런 의원실이 늘어나길 바란다.


태그:#강원랜드, #김종훈의원, #비정규직, #김종훈, #국정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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