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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 한눈에

  • 전두환 정권 시절 86아시안게임, 88올림픽을 앞두고 부랑인들을 대거 수용시설로 보냈다. 이 과정에서 늘어나는 복지 요구를 감당할 수 없게되자 민간 역할을 확대했다.
SBS 시사고발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는 지난 8일 장애인 수용시설인 대구시립희망원의 인권침해 실태를 다뤄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곳에서 지난 2년 8개월 동안 129명의 원생이 목숨을 잃었다. "장애인을 위한 시설임에도 의료적인 개념이 안갖춰져 있다"는 내부 고발자의 폭로는 보는 이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여기에 가톨릭이 이 시설의 운영주체라는 점은 시청자들을 경악시켰다.

대구교구는 방송 직후 비난여론이 들끓자 교구장 주교 명의의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희망원 측이 여전히 잘못을 가리기에 급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정중규 국민의당 대구시립희망원 진상조사위원회 공동위원장을 지난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 회관에서 만나 최근의 사태 추이와 장애인 시설 인권 실태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정중규 국민의당 희망원 인권유린 진상조사위원회 공동위원장
 정중규 국민의당 희망원 인권유린 진상조사위원회 공동위원장
ⓒ 지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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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일 대구시립희망원 인권유린 및 비리척결 대책위원회(아래 대책위)가 성명을 냈다. 대책위는 희망원이 관련 문서를 폐기하고, 국정감사자료도 조작했다고 성토했다. 이에 비추어 보면,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 이후에도 희망원은 잘못 은폐에 급급한 모습이다. 일단, 최근 사태 진전을 말해 달라. 
"12일 대구시립희망원 사태와 관련하여 천주교 대구대교구장 조환길 대주교는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다. 교구장의 고뇌에 찬 사과문을 존중하며, 여기서 밝힌 약속이 온전히 이행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특히 희망원 종사자들이 사과문에서 밝힌 "자립생활을 원하는 시설거주인들은 즉각 대구지역 내 자립지원센터를 통해 자립하도록 돕겠다"며 탈시설화를 언급한 부분에 주목한다. 나 자신 장애인으로서 관심을 갖고 함께 풀어나가고자 한다.

그러나 공식 사과문 발표는 일단 희망원 사태 해결의 물꼬를 튼데 의미가 있을 뿐이다. 이제 겨우 첫 단추를 채운 수준이라는 말이다. 이에 국민의당 대구시립희망원 인권유린 진상조사위원회는 희망원에 살다가 억울하게 죽음 당한 이들을 마지막 한 사람까지 찾아낼 것이며, 인권유린과 공금횡령 등 각종 의혹도 끝까지 밝혀낼 것이다."

- 아마 많은 분들이 가톨릭이 운영하는 시설에서 인권침해가 자행됐다는 점에 놀라워하는 것 같다. 또 <그것이 알고싶다>에 등장하는 신부들의 고압적 태도 역시 그동안 가톨릭에 가져왔던 이미지와 다른 모습이다. 한 마디로 교회적이지 않은 모습이 많이 드러났는데, 왜 그렇다고 보는가?
"<그것이 알고 싶다>를 시청하신 국민들은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수용시설의 문제점을 익히 알고 있기에, 희망원은 규모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내겐 또 하나의 사건일 뿐이었다. 다시 말해 희망원에서 불거진 인권유린 공금횡령 의혹 등 이런저런 문제들은 희망원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형 거주시설이 지닌 구조적 문제라 할 수 있다.

현장조사에서 거주인들과 면담을 했는데 '밥이 너무 적어 배가 고프다'는 가슴 아픈 증언을 들었다. 이 말에 희망원의 실상이 다 담겨 있다고 본다. 그리고 신부들의 고압적인 태도는 이제까지 쌓아온 이미지에 타격을 입을 만큼 충격을 받은 데 따른 반작용이라고 본다."

- 앞 질문과 이어지는 질문이다. 가톨릭뿐만 아니라 개신교 교단, 혹은 목회자가 운영하는 복지시설에서도 인권침해 행위가 횡행한다. 남원 평화의 집이 그랬고, '거지목사'로 알려진 한승주 목사가 운영하던 '실로암의 집'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졌다. 사실 가톨릭, 개신교 소유의 복지시설이 대부분이다. 그리스도교의 문제인가? 아니면 시설 운영의 문제인가? 
"천주교를 비롯한 그리스도교가 지난 1세기 동안 이 나라에서 복지, 특히 장애인 복지 부문에서 큰 공헌을 했다는 점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꽃동네와 희망원 등 대한민국 최대 규모 복지시설의 운영주체가 모두 기독교계다. 한국전쟁 이후 잿더미로 변해 버린 땅에 교회는 우리 사회를 재건하는 데 버팀목이 되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장애인복지의 추세가 사회통합과 자립생활을 지향하고 있는데 한국의 장애인복지는 여전히 대형 수용시설 중심이고, 장애인 복지예산도 시설에 집중된 실정이다.

전두환 정권 시절 86아시안게임, 88올림픽을 앞두고 부랑인들을 대거 수용시설로 보냈다. 이 과정에서 늘어나는 복지 요구를 감당할 수 없게되자 민간 역할을 확대했다. 주로 정부가 예산을 지원하고 민간이 운영하는 혼합식 위탁 방식이 이뤄졌는데 천주교 등 당시 이미지가 좋았던 기독교계에 위탁이 많이 주어졌다.

난 늘 이 점을 안타까워한다. 그 이유는 교회 복지시설들이 국고보조금을 받으면서 첫사랑 같은 초기의 고유 영성을 잃어버리고 규모에 집착하게 되고, 결국 수용자들을 '관리'하는 시설로 변질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가톨릭 복지 역시 국고보조금을 받으면서 기업화·대형화 됐다. 대규모 수용시설들은 블랙홀처럼 예산을 빨아들이지만, 장애인들이 사회에 통합돼 자립하는데 국가가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지 못하게 만드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사람을 수백 명에서 많게는 수천 명 넘게 수용하는 환경에서 어떻게 인간적인 보살핌이 가능하다는 말인가? 희망원 사태를 두고 몇몇 직원의 범죄행위는 처벌 받아야 하지만, 그 이상의 근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보는 이유다.

지난 8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는 희망원을 다뤄 큰 반향을 일으켰다.
 지난 8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는 희망원을 다뤄 큰 반향을 일으켰다.
ⓒ SBS <그것이 알고싶다>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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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교 계열 복지시설에서 인권침해 사태가 자꾸 불거지니 그리스도교가 복지시설을 운영하고 있지만, 정작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은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복음서 어디에도 예수께서 장애인들을 시설에다 모아놓고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며 자선사업을 펼쳤다는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물고기를 잡아 세금을 바칠지언정(마태복음 17:24~27) 자선금을 내신 적은 없으셨다. 오히려 예수는 그 시대에 격리되고 소외당한 장애인들을 찾아가 공동체 안으로 받아들여주는 것을 복음선포와 함께 자신의 핵심 과업으로 삼으셨다. 복음서에 기록된 수많은 치유행위는 그 의도를 분명하게 드러내주고 있다.

예수께서는 소외된 이가 없는 사회공동체를 하느님 나라라고 하셨다. 이렇듯 예수운동은 소외된 이들을 이스라엘공동체 안으로 불러들이려는 공동체 복원 작업이었다. 요즘말로 하면 복지공동체다. 꽃동네처럼 창설자 오웅진 신부 한 사람만 이름이 남고, 수천 명의 장애인들은 이름도 없이 살다 죽어가는 그런 방식이 아니란 말이다."

예수 복지 정신은 공동체 복원 

복음서에는 예수께서 자캐오, 라자로, 바르티매오 같은 숱한 장애인들과 인격적인 만남을 가졌다는 이야기가 넘쳐난다. 장애인 한 사람 한 사람을 바라보는 예수의 눈길엔 "한 사람의 생명은 온 천하보다 더 귀하다"는 생명존중, 인간존중의 온전한 사랑이 담겨져 있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 나오는 '한 사람을 구하는 것이 온 세상을 구하는 것이다'라는 탈무드의 격언은 바로 예수의 복지 정신이었다.

그런데 교회와 성직자들은 장애인복지를 격리수용하는 자선사업으로 왜곡시켰다. 대규모 수용시설에 장애인들을 가둬놓고 그들의 사회통합을 가로막는 꽃동네 방식은 예수의 복지 정신과 그 실천적 모범에도 어긋나는 반(反)예수적 장애인복지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흐름은 한국 가톨릭만의 문제는 아니다. 2천년 교회의 전통적 사회복지 정신이었다.

정중규 위원장은 예수의 공동체 복원 정신을 교회가 자선으로 왜곡했다고 지적했다.
 정중규 위원장은 예수의 공동체 복원 정신을 교회가 자선으로 왜곡했다고 지적했다.
ⓒ 지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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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곡의 뿌리는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바로 장애인복지와 자선사업의 잘못된 만남에 있다. 초대 교회 이후 그리스도교가 로마 제국의 국교로 공인되면서 귀족 상류층들이 대거 신자로 들어왔다. 이들은 자선행위를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신앙행위로 여겼고, 그래서 교회 내에 자선사업이 자리잡게 됐다. 이런 자선사업이 제도화되고, 장애인이 자선 대상이 되면서 자선사업과 장애인복자가 잘못 결합한 것이다. 이미 2~3세기에 이르러 사회통합을 지향했던 예수의 장애인관은 사라지고, 자선기관들이 필수사업인양 각 교구마다 들어서고 주교들은 신자들에게 자선을 구원과 연결시켜 권장했다.

그 후 자선은 2천년 가까이 그리스도교 장애인복지의 기본 틀로 굳어져 버렸다. '교회가 있는 곳에 장애인사업이 함께 한다'는 말이 있듯 교회가 그동안 인류복지에 기여한 바가 지대했다. 물론 역사적으로 불가피한 측면과 원인들이 없지는 않았겠지만, 그럼에도 장애인사업에서 장애인은 주체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그 사업의 피동적 수혜자의 위치를 벗지 못했다. 이런 이유로 지난 2천 년 동안 교회를 통해 숱한 자선운동이 펼쳐졌지만, 장애인 복지 현실은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못하였고, 오히려 초대그리스도교회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게 됐다.

요약하면 자선 위주의 편향된 장애인사업 방식과 장애인관은 치유행위에서 드러난 예수의 장애인관에 대한 교회구성원의 잘못된 해석과 인식에서 비롯됐다는 말이다.

(* 인터뷰 2부로 이어집니다)


태그:#정중규, #희망원 , #장애인수용시설, #대구시립희망원, #인권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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