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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옥리를 품고 있는 뾰족산아래 공룡알해변 모습. 해변에 공룡알화석이 있는 게 아니라 공룡알처럼 둥근 자갈이 널려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조경업자들이 무단반출해 많이 훼손됐다는 후문이다. 보길도는 뾰족산에서 지명이 유래됐다
 보옥리를 품고 있는 뾰족산아래 공룡알해변 모습. 해변에 공룡알화석이 있는 게 아니라 공룡알처럼 둥근 자갈이 널려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조경업자들이 무단반출해 많이 훼손됐다는 후문이다. 보길도는 뾰족산에서 지명이 유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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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항에서 남서쪽으로 31.5㎞ 가면 보길도가 있다. 아름다운 다도해 경관과 천혜의 난대상록수림이 풍성한 보길도는 고산 윤선도의 혼이 살아 숨 쉬는 유서 깊은 가사문학의 산 교육장이기도 하다.

옛날부터 제주에서 해남의 관두로 통하는 중간기착지인 보길도는 고려시대 현종(1018년)이래 영암군에 속해 있다가 1896년(고종 33년)에 완도군이 설군되면서 보길면으로 독립되었다. 그 후 1914년 행정구역이 개편됨에 따라 노화면으로 통합되었다가 보길면으로 다시 독립했다(1986.4.1.)

곳곳에 윤선도 혼이 서린 보길도

노화도와 보길도를 잇는 보길대교로 두 섬은 언제든지 소통이 가능해졌다.
 노화도와 보길도를 잇는 보길대교로 두 섬은 언제든지 소통이 가능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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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길도 중리 마을 모습으로 아름다운 해수욕장을 품고 있다
 보길도 중리 마을 모습으로 아름다운 해수욕장을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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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길도는 격자봉(425m)을 정점에 두고 거의 산악지대이므로 부황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부락이 해안지대에 자리하고 있다. 보길도에는 윤선도와 관련된 지명이 여럿있다. 청별리, 부용리, 등문, 정자리, 대풍기미 등등.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 이재언씨와 함께 정자교회 임영기 목사가 안내하는 차를 타고 보길도 탐방여행에 나섰다. 32년간 보길도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임영기 목사가 보길도와 윤선도가 얽힌 사연을 설명해줬다.  

돛단배를 타고 다니던 시절, 제주도를 향하던 윤선도가 바람이 불어오기를 기다리던 대풍기미
 돛단배를 타고 다니던 시절, 제주도를 향하던 윤선도가 바람이 불어오기를 기다리던 대풍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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젓갈 공장 모습
 젓갈 공장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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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리는 윤선도 시인이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쉬어가기 좋은 곳이라 하여 붙여준 이름입니다. 윤선도가 제주도에서 은둔생활을 하기 위해 바람을 기다리던 곳이 대풍기미입니다. 태풍을 만나 제주도행을 포기한 윤선도가 높은 곳에 올라가 경치를 내려다보며 신선이 놀고 갈 만한 곳이라 하여 '선경보길도'라 칭하고 '하늘이 나를 위해 예비해 놓은 곳'이라며 정착한 곳입니다"  

망끝 전망대는 보길도의 가장 서쪽인 보옥리 바로 못 미쳐 망월봉 끝자락의 돌출부에 있다. 끝없이 탁트인 시원한 바다와 함께 서해바다로 붉은 몸을 감추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몰을 볼 수 있는 곳이 망끝이다. 눈앞에 펼쳐지는 추자도와 함께 옥매, 가도, 상도 등 다도해의 수많은 섬과 함께하는 일몰은 한 편의 서사시다.

망끝 전망대에서 툭 터진 바다를 가리키며 설명해주던 임영기 목사가 보길도 멸치맛이 일품인 이유를 설명해줬다.

일행을 안내한 보길정자교회 임영기 목사(오른쪽)와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  이재언씨가 망끝전망대에서 포즈를 취했다.
 일행을 안내한 보길정자교회 임영기 목사(오른쪽)와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 이재언씨가 망끝전망대에서 포즈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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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근해에서 월동하던 멸치가 산란하러 올라가다 이 근방에서 잡힐 때가 가장 맛있다고 합니다. 기선저인망으로 멸치떼를 포위할 때 도망다니던 멸치의 애간장이 녹아 비닐이 벗겨져서 더 맛있다고 합니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정치망과 기선저인망으로 잡는 멸치 맛이 다르다고 하네요."

보길도 지명을 낳은 명산 '뾰죽산'

망끝전망대를 지나니 고깔처럼 우뚝 솟은 산 하나가 눈앞을 가로막는다. 뾰쭉하게 솟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 '뾰죽산(197m). 보옥리를 품고 있는 뾰죽산은 보길도 지명을 낳게 한 섬이다. 완도문화원이 발간한 <완도군 향토사>를 보면 보길도 지명에 대한 유래가 잘 설명되어 있다.

뾰족산 아래 보옥리 마을에는 집집마다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고 있었다. 정원을 가꾸는 건 윤선도 영향이 크다고 한다
 뾰족산 아래 보옥리 마을에는 집집마다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고 있었다. 정원을 가꾸는 건 윤선도 영향이 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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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옥리에서 본 풍경으로 말린 고기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정겨웠다
 보옥리에서 본 풍경으로 말린 고기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정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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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뾰죽섬'이 보길도가 되었다. 한자로 '뾰죽'을 기록할 때면 된소리를 ㅆ ㅃ 따위로 기록하지만 한문은 질(叱) 자로 쌍 받침을 대용한다. 그러나 '질'로 음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받침으로 읽을 때와 한자로 읽을 때의 음이 달라진다. 보질(甫叱)을 음으로 읽으면 '보질'이 되고 약속대로 읽으면 '뿄'이 된다. 그럼으로 약속대로 적어놓고 후세사람이 읽으면 '보질'로 읽으나 구개음화 되어 '보길'로 읽게 된다."

공룡알 화석이 있는 줄 알고 공룡알 해변을 방문했다. 공룡알 대신 공룡알처럼 둥글둥글한 자갈이 널려있었다. 청명석이라고 불리는 갯돌이 크고 둥글둥글 하여 공룡알 같이 생겼다 붙여진 이름이다. 옛적에는 돌들이 많았지만 조경업자들이 많이 반출해갔다는 후문이다.

말 한 마디 했다고 83세에 유배길 떠난 송시열 글 쓴 바위

세자 책봉에 대해 말 한마디 한 죄로 귀양가던 송시열이 쓴 글씨가 새겨진 '글쓴바위' 앞에선 이재언 연구원. 주변바다에는 양식장이 널려 있었다
 세자 책봉에 대해 말 한마디 한 죄로 귀양가던 송시열이 쓴 글씨가 새겨진 '글쓴바위' 앞에선 이재언 연구원. 주변바다에는 양식장이 널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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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열 글쓴바위는 보길도의 선백도마을 앞 바닷가의 암벽을 말한다. 이곳은 선조~숙종조의 대유학자인 우암이 왕세자 책봉문제로 관직이 삭탈되고 제주 유배길에 올라 경치가 좋은 이곳에서 잠시 쉬며 임금에 대한 서운함과 그리움을 시로 읊어 바위에 새겨놓은 곳이다.

글쓴바위는 보길도와 소안도 사이 해협의 바닷가 절벽에 있다. 건너편에는 항일소작쟁의로 유명한 소안도가 손에 잡힐 듯이 바다에 떠있으며 주변은 해조류가 풍부하고 해식애가 발달한 천혜의 바다낚시터이다.

덧붙이는 글 | 여수넷통에도 송고합니다



태그:#보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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