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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필자의 연재 '식탁이 낯설어질 때' 2-④편입니다.)

최근 전북 익산에서 '하트'라는 이름의 집 나온 반려견을 마을 주민들이 구워 먹은 사건이 일어났다. 하트가 이미 죽어 있었고 버리기 아까워 구워 먹었다는 것. 경찰은 이들을 '점유 이탈물 횡령' 혐의로 입건했다. 법은 길 잃은 '동물'도 잃어버린 '물건'으로 본다. 한편 하트 견주는 '동물학대' 혐의도 추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트가 살아있었고 몽둥이를 들고 서성이는 사람들을 봤다는 주민들도 있다. 또 다른 주민들은 개를 관리못한 주인 탓이라며 책임을 돌린다.

논란은 식지 않는다. 더 나아가 '누군가의 가족인 개를 먹겠다는 발상 자체가 나쁘다'는 주장, '치킨이나 삼겹살처럼 보신탕도 똑같다'는 반론이 팽팽히 맞서는 모습도 보인다.  '육식' 자체가 옳은지 그른지 따져보는 사람들도 나타나지만 쉽게 승부는 안 난다. 어김없이 '개를 키우든 먹든 자유인데 뭘 고민해~'라며 논점을 흐리는 사람들도 등장한다. 결국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그래서 유감이다. 논란을 종결짓고자 카드뉴스를 준비했다.

'개를 키우든 먹든 자유'라는 주장이 성립하려면 ① 개는 인간이 마음대로 해도 되는 존재라는 가정 ②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들과 개고기를 먹는 사람들이 같은 하늘을 지고 살지 않는다는 가정이 필요하다. 필자는 이 가정들이 틀렸다고 주장한다. 각자가 개에게 어떤 마음을 갖는지와 별개로 개가 도덕적 사회의 구성원이 될 수 있다면 최소한 잡아먹어서는 안 될 것이다.


카드뉴스에 다 담지 못한 보충 사례들은(관련 자료: 가장자리 인간, 의심의 이득 원칙, 식물) 필자의 개인 블로그에서 참조하실 수 있다. 필자는 이미 충분히 해명한 지적에는 반론하지 않는다.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은 소모적이기 때문이다. 이점 정중히 양해를 구한다.


태그:#개고기, #하트, #녹색당,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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