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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번 버스에서 내려 인사동으로 가는 길, 조금 늦어 마음이 초조해진다. 길을 올라가다 그들을 마주했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넘쳐나는 인사동에서도 유독 눈에 들어왔다. 고운 빛깔의 한복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실 한복을 입었다는 건 주목받을 이유가 아니다. 이들은 그저 '자기가 끌리는 옷'을 입었을 뿐이니까.

 인사동 거리를 걷고 있는 참가자들
 인사동 거리를 걷고 있는 참가자들
ⓒ 진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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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인사동 부근에서 '한복 크로스드레싱 퍼레이드'가 진행됐다. 크로스 드레싱(Crossdressing)은 사회적으로 반대 성별이 입는 것이라고 인식되는 옷을 입는 행위다. 서울 한복판, 한낮의 인사동에서 왜 이런 행사가 열린 것일까. 성별 고정 관념을 강화하는 한복 무료입장 규정 때문이다. (관련 기사 : '치마 아니면 입장 불가' 이런 전통은 필요 없다)

경복궁 등을 포함한 서울의 주요 궁은 한복을 착용하면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하지만 여성은 치마를, 남성은 바지와 저고리를 갖춰 입어야만 한다. '자유로운 형태로 한복을 입는 것은 전통을 해치는 일'이라는 몇몇 민원으로 문화재청이 한복 무료 관람 가이드라인을 변경한 것이다. 때문에 한 트렌스젠더는 "조상님이 노하신다"는 소리를 관리인에게 듣고 입장을 거부당하기도 했다.

 한복을 입고 궁에 무료로 입장하려면 남성은 저고리와 바지를, 여성은 치마를 입어야 한다. 사진은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올라와있는 가이드라인. 해당 내용이 빨간색 글씨로 강조되어있다.
 한복을 입고 궁에 무료로 입장하려면 남성은 저고리와 바지를, 여성은 치마를 입어야 한다. 사진은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올라와있는 가이드라인. 해당 내용이 빨간색 글씨로 강조되어있다.
ⓒ 문화재청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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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행사를 기획한 우주(25)씨는 이 소식을 듣고 "차라리 내가 여자 한복을 입고 퍼포먼스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반쯤 장난'으로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예상외의 뜨거운 반응에 친구인 송서진씨와 함께 본격적으로 행사를 기획했다고.

송씨는 "트렌스젠더의 경우 생물학적 성에 맞게 한복을 갖춰 입으면 무료 입장할 수 있겠지만, 본인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일이라 괴리감이 생길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화재청의 이런 정책이 개인의 고유한 성 정체성을 부정하는 차별 행위라는 설명이다.

참가자들과 함께 약 1시간 동안 인사동 인근을 걸었다.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여자 한복'을 입은 남자들에 대한 시선은 어땠을까. 다행히 4~5시간에 걸친 퍼레이드 동안 돌발 상황은 없었다.

일본인 관광객은 "카와이!('귀엽다'의 일본어)"를 외쳤고, 친구가 "저것 좀 봐"라고 말하자 "입을 수도 있지"라고 답한 고등학생도 있었다. 혐오스럽다기보다 '신선하다', '흥미롭다'와 같은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한 참가자는 "퍼레이드 도중 한 시민이 '왜 여자 옷을 입어, 남자가 남자 옷을 입지'라고 했지만 '입을 수도 있죠'라고 답하니 더 이상 말을 붙이지 않고 지나갔다"고 말했다.

보통 남성들은 한복 퍼레이드를 신기하게 바라봤다. 여성들의 경우 "예쁘다"며 같이 사진을 찍자고 요청하는 경우도 많았다. 대부분 참가자들은 이번 행사를 위해 초등학교 이후 처음으로 한복을 입어봤다고 했다. 서진씨는 "한복 고름이 풀릴 때마다 다시 매는 방법을 몰라 아찔했다"고 말했다. 한 중년 여성은 참가자들이 도움을 요청하자 고름을 직접 매만져주기도 했다.

"그냥 저한테 어울리는 걸 입어요"

 지나가던 시민이 참가자의 옷고름을 고쳐매주고 있다
 지나가던 시민이 참가자의 옷고름을 고쳐매주고 있다
ⓒ 진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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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인 박인(21)씨는 성별에 따라 어떤 옷을 입을 것을 강요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오늘 행사에 참여했다고 설명했다. 사실 크로스 드레싱(cross dressing)이란 단어도 '이성의 옷을 입는다'는 점에서 여/남이라는 성별 이분법적 사고가 깔려있다.

"저는 특별히 어떤 것이 여자 옷이다, 남자 옷이다 구분하지 않고 그냥 제게 어울리는 걸 입어요. 이걸 딱히 크로스 드레싱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젠더퀴어(gender queer)는 '남성'과 '여성'이라는 기존의 이분법적인 성별 분류에 포함되지 않는 성 정체성과 그런 성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자신을 젠더 퀴어라고 밝힌 참가자 이드(활동명)씨는 "트렌스젠더 당사자가 경복궁에서 입장을 거부당했단 소식을 듣고 화가 났다"고 했다.

이드씨는 "자기가 입고 싶은 옷을 입는 당연함"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싶어 이번 행사에 참가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트렌스젠더나 젠더퀴어가 일상에서 겪는 어려움에 대해 설명했다. 특히 곤혹스러운 것은 화장실. 가령 신체적인 수술을 하지 않은 트렌스젠더의 경우 자신의 정체성은 여성(남성)이지만 외모는 남성(여성)이기에 여성화장실도 남성화장실도 들어가기 곤란할 때가 많다.

미국의 경우, 이에 대한 대안으로 몇 년 전부터 대학교와 정부기관에 성중립 화장실이 도입되었다. 한국에도 '인권재단 사람'과 '한국다양성연구소'와 같은 일부 시민단체에 성중립 화장실이 설치되었다. 하지만 보편적이진 않다. 옷을 입는 것부터 화장실에 가는 것까지. 소수자들이 자신의 성 정체성에 맞는 일상을 영위하는 일, 아직 쉽지 않다.

 찰칵!
 찰칵!
ⓒ 진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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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보트와 인형, 파란색과 분홍색, 바지와 치마.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성별과 일부 특성이 서로 연결된 것이라 믿어왔다. 그렇기에 크로스드레싱을 마주할 때 어색함과 거부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과 인사동 거리를 함께 걸으며 그 거부감이 사실 별거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생물학적 남성(여성)이 '여성(남성) 한복'을 입는다고 누군가에게 해가 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 그것이 정말 전통을 위협하는 일인지도 명확지 않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두 개의 선택지를 고르는 게 불가능한 사람들, 혹은 자신의 신체와 다른 성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그리 대단한 게 아니다. 자신의 모습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차별받지 않는 것. 그뿐이다.

 참가자들의 뒷모습, 예쁘다
 참가자들의 뒷모습, 예쁘다
ⓒ 진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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