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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감받는 고대영 KBS 사장 고대영 한국방송공사(KBS) 사장이 11일 국회에서 열린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국감받는 고대영 KBS 사장 고대영 한국방송공사(KBS) 사장이 11일 국회에서 열린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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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학살자는 현장에서 직접 살인을 벌이는 졸개들이라기보다는, 멀리에서 정장을 입고 조용한 사무실에 얌전히 앉아 있는 고학력자 출신의 지휘자다."

미국의 석학인 노엄 촘스키의 이 명언을 다시금 되새기게 한 것은 '의외의 장소'에서 나온, '생각지도 못한 이'의 '예상치 못한' 발언 때문이었다. 이런저런 설득이나 부연조차 없이, 짧고 명확하면서도 단호했던 그의 한 마디는 가뜩이나 틀어 막혀 갑갑하기 짝이 없던 오늘날의 언로(言路)를 더욱 옥죄었다. 기본적인 책무를 망각하고 본분을 잃어버린, 가히 언론계 '최악의 학살자'라 해도 손색없는 모습이었다.

"답변하지 마."

지난 11일 오전,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 자리에 피감기관장으로 출석한 고대영 KBS(한국방송공사) 사장은 그렇게 말했다. 유승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세월호 참사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이었던 이정현 현 새누리당 대표의 보도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인영 KBS 보도본부장에게 질의하자, 대뜸 '답변하지 마'라고 지시한 것이다.

결국 보도본부장은 답을 하지 못했고, 야당 의원들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국정감사는 잠시 파행을 맞아야만 했다. 국민의 대표기관으로써 국회가 정부를 감시 및 비판하기 위해 벌이는 국정감사 자리에서, 피감기관의 증인이 국회의원의 질문을 가로막는 촌극이 빚어진 것이다.

사장 말 한마디에...

고대영 사장이 정권과의 결탁 의혹에 휘말린 '위기의 공영방송' KBS의 수장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비록 국정감사가 속개되면서 해당 발언에 대해 유감을 표하고 이후의 질의에 답했다지만, 보도본부장의 말을 틀어막은 고대영 사장의 '답변하지 마'는 앞으로도 KBS가 '불통'으로 일관할 것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또 비단 국정감사장뿐만이 아닌 KBS 내에서도 얼마든지 사장의 말 한 마디로 언론과 여론을 좌지우지할 수 있고, 그럴 것임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언론은 사회와 결탁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사회와 불화를 일으켜야 한다. 아무리 시시콜콜하거나 예민한 사안일지라도, 그것이 충분히 문제라고 여겨진다면 가차 없이 지적하고 옳고 그름을 가려야만 하는 것이 언론의 책무다.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이 최대한 올바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필요한 정보를 결코 왜곡하거나 숨기지 않고 충실히 제공해줘야만 하기 때문이다. 언론이 가져야 하는 힘은 '영향력'이지, 결코 '권력'이 아니다.

이 같은 언론의 특수한 역할과 관련해 故 노무현 대통령은 "권력은 늘 남용될 소지가 있기에, 언론은 시민사회의 편에 서 있어야 하고 권력과 맞설 때 여러 가지 특권이 부여되는 것"이라 주장하기도 했다. 특히 KBS처럼 언론 중에서도 국민의 수신료로 운영되는 소수의 공영 언론매체가 가져야만 하는 책임감과 사명감, 직업의식은 더욱 투철해야만 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작금의 KBS는 제 소임을 다하고 있는가? 오히려 서서히 망가져가고 있음을 이미 모두가 목도하고 있다. 공영방송의 신뢰와 직결된 국정감사 질의에 대해 무려 사장이 부하 직원의 입을 막은 장면이 그를 보여준다. 노엄 촘스키의 앞선 지적처럼, 고대영 사장은 '멀리에서 정장을 입고 조용한 사무실에 얌전히 앉아 있는 고학력자 출신의 지휘자'가 되어 정권 비호를 위해 사내를 철저히 통제하려 하는가.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KBS는 그간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가 벌여왔던 청문회를 사실상 깡그리 무시했고, 탐사보도팀이 2013년부터 치밀히 준비해왔던 <친일과 훈장> 시리즈에는 제대로 방영되지 못하도록 압력을 가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지난 겨울 민중총궐기 관련 보도에서는 시위대의 폭력성을 지나치게 강조했으며, 정부의 사드 배치와 관련해서는 아예 사장이 내부에 '보도지침'을 내려 방향을 통제했다고 노조가 폭로했다.

'낙하산' 논란이 끊이지 않는 사장 인사는 말할 것도 없다. 굳이 신뢰도나 영향력 등 갈수록 하락하는 대외지표를 보여줄 자료를 가져오지 않더라도, 단박에 알 수 있는 '공영방송의 몰락'이다.

"저도 왜 그렇게 시끄러운지 사실 이해가 안 된다."

국정감사에서 고대영 사장은 "KBS를 계속 이렇게 시끄럽게 운영할 거냐"는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KBS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최근의 논란을 손톱만큼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왜들 이렇게 나서서 문제를 제기하고, 해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은지는 당장 국정감사를 다룬 당일의 <KBS 뉴스 9>의 보도만 봐도 알 수 있다.

고대영 사장과 '답변하지 마'가 하루종일 인터넷을 점령했지만, 2분가량의 짧은 뉴스 리포트의 제목이나 본문 어디에서도, 그러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애초 국정감사가 잠시 파행을 빚었다는 사실조차 보도되지 않았다. 노엄 촘스키의 말을 자꾸만 곱씹게 된다. 해당 뉴스 리포트를 작성한 기자 한 명만의 책임은 결코 아닐 것이다. 언론이 견지해야 할 기본적인 가치와 원칙마저 무너뜨리는 '지휘자의 학살'이 도통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 그저 참담할 따름이다.

부디, 과거의 KBS로 돌아오길

결국 공영방송이 조금이나마 회복할 수 있는 길은 내·외부를 가리지 않는 지속적인 비판과 견제뿐이다. 다행히도 지난 7월, 적지 않은 수의 KBS 기자들은 '이정현 녹취록'의 보도와 관련한 성명서를 내며 자사 수뇌부를 강력하게 비판한 바 있다. 사내 갈등과 보복 인사 등을 비롯한 각종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기자로서의 본분을 지키려는 이들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KBS에 아직 개선과 변화의 여지가 남아 있는 이유다.

KBS 홈페이지 내 '경영공시' 코너의 자사를 소개하는 페이지에는 지난 2003년 제정했다는 '윤리강령'의 내용이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다. 그 중에는 'KBS인은 공영방송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취재·보도·제작의 전 과정에서 여타 언론인보다 더욱 엄격한 직업윤리와 도덕적 청렴이 요구된다'는 대목도 버젓이 포함되어 있다. 그만큼 '특별한 언론'임을 자인한 셈이다.

오후 9시만 되면, 무의식적으로 TV 채널을 <KBS 뉴스 9>에 맞춰놓고 온 가족이 그 앞에 몰려 앉던 때가 있었다. 고대영 사장과 KBS가 그 시기 누구나 인정했던 '국민의 방송'으로 하루빨리 되돌아올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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