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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열하나. 상트페테르부르크 행 야간열차 '붉은 화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옛 이름인 레닌그라드 역에서 자동차를 반납하고 11시 55분에 출발하는 열차를 탔다. 과거에는 당 간부들만 탔다는 '붉은 화살(Красная стрела)호' 1등석이다. 가격이 만만치 않았지만 하룻밤 호텔비와 교통비를 생각하면 그런 대로 괜찮은 가성비이다.

승무원에게 표를 보여주며 탑승하고 있다.
▲ 상트페테르부르크 행 붉은화살호 열차 승무원에게 표를 보여주며 탑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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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에 늘어선 기차의 길이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두 번이나 물어서 겨우 객실을 찾았다. 2인 1실의 1등석 객실은 아담하고 정갈했다. 테이블을 중간에 두고 양쪽으로 소파가 놓여 있는데, 등받이를 내리니 하얀 침대보와 이불이 셋팅된 침대로 변신한다. 갑자기 긴장이 풀리며 몸이 노근해진다. 빵과 버터, 물, 음료수, 세면도구에다 슬리퍼까지 여느 호텔에 뒤지지 않는 서비스이다.

조금 있으니 제복을 입은 역무원이 아침 메뉴를 주문 받는다. 메뉴라야 세 종류에 불과하지만 물어봐주는 게 감사할 따름이다. 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기에는 늘 씻는 문제를 가장 큰 문제로 들었던 기억이 나서 얼른 화장실로 갔다. 우리 객차에만 두 개의 화장실이 있어서 충분히 여유로웠다. 생각보다 개운한 아침을 맞았다.

양쪽에 소파겸 침대가 놓인 2인용 객실로 공간도 깔끔하고 넉넉하며 서비스 역시 호텔 못지 않았다. 아침 식사를 하는 중이다.
▲ 붉은 화살호 1등실 내부 양쪽에 소파겸 침대가 놓인 2인용 객실로 공간도 깔끔하고 넉넉하며 서비스 역시 호텔 못지 않았다. 아침 식사를 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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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열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네프스키 대로

플랫폼을 빠져 나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모스크바 역 대합실에 도착하니 이 도시를 설계하고 만든 표트르 대제 동상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러시아의 역 이름은 목적지 이름을 붙인다. 따라서 이 역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로 가거나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도착하는 역이다. 뒤에 보이는 동상이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건설한 표트르 대제이다.
▲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모스크바역 대합실 러시아의 역 이름은 목적지 이름을 붙인다. 따라서 이 역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로 가거나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도착하는 역이다. 뒤에 보이는 동상이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건설한 표트르 대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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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편의를 위해 네프스키 대로 중심에 호텔을 잡았다. 호텔로 이동하기 위해 버스를 탔다. 버스비를 계산하려고 두리번거리는데, 멀리서 차장 할머니가 새로 탄 손님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버스비를 받는다.

기계와의 소통에 익숙해진 나의 감각이 잠시 동안 반짝 깨어난다. 거스름돈을 쥐어주며 잠시 스친 미소가 오래 동안 잔잔한 여운으로 남으며, 회수권과 토큰으로 통학하던 내 학창시절의 선한 눈매의 '차장 누나'를 떠올린다. 슬쩍 공짜로 태워주기도 했는데.

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다.
▲ 네프스키 대로 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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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정돈된 거리에 모스크바와는 다른 자유로운 공기가 흐른다. 제정 러시아의 황제, 표트르 대제가 1701년 러시아 서북부의 황량한 습지에 계획도시를 건설할 것을 발표하면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작은 오두막을 짓고 직접 공사 현장을 지휘한 표트르 대제 덕분에 황량하기 그지없었던 습지는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러시아 역사에서 가장 돋보이는 계획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가 탄생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1712년 새로운 수도가 되어 1918년 수도를 다시 모스크바로 옮기기 전까지 러시아 정치와 경제의 중심지였고, 위대한 문학가와 예술가를 탄생시킨 문화의 도시이기도 했다. 흔히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유럽으로 향하는 러시아의 창이라고 한다. 러시아가 정치, 경제, 예술 분야에서 진정한 대국으로 발돋움하는 계기를 마련해준 도시이기 때문이다. 독특한 건축물과 잘 정리된 거리, 그리고 많은 문학가와 예술가의 흔적이 남아 있는 흥미로운 도시가 바로 상트페테르부르크이다.

길 양편으로 고풍스러운 건물이 늘어서 있고 길거리도 잘 정돈되어 있다.
▲ 네프스키 대로 길 양편으로 고풍스러운 건물이 늘어서 있고 길거리도 잘 정돈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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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에 짐을 맡기고 네프스키 대로를 산책한다. 18세기 러시아 민중들이 절대왕정에 저항하던 네프스키 대로. 고골의 유명한 소설 <네프스키 대로>의 그 거리이다. 네프스키 대로는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와 같은 러시아 대문호의 작품에도 몇 차례나 등장했던 거리이다.

푸시킨, 예세닌, 투르게네프 같은 러시아의 대문호들이 생을 고민하던 카페, 거리, 호텔들이 네프스키 대로 옆 작은 골목들에 숨어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모든 길이 통한다고 일컬어지는 네프스키 대로는 길뿐만 아니라 세 개의 운하와도 교차하는 거리이다.

에피소드 열셋.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성당

여름궁전(에르미타주 미술관)의 광활한 광장은 역사를 말없이 품은 채 수많은 관광객들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다리를 건너 멀리 로스트랄 등대도 보인다. 표트르 대제는 해전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네바 강에 등대를 세웠다. 이것이 '뱃머리'라는 의미의 로스트랄 등대다.

그러나 30m 가량의 높이를 지닌 이 등대는 등대라기보다는 승전탑에 가깝다. 그래서 경축일에만 불을 밝히며, 사방에 새겨진 아름다운 부조는 러시아의 4대 강인 네바, 드네프르, 볼가, 볼호프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등대에 붙어 있는 뱃머리 장식은 격파한 적의 뱃머리라고도 한다.

옆으로 네바강이 흐른다.
▲ 로스트랄 등대 옆으로 네바강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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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를 지나서 페트로파블롭스키 요새로 들어간다. 표트르 대제가 스웨덴을 방어하기 위해 토끼섬에 건설한 요새이다. 이 요새는 후에 감옥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현재 남아 있는 요새는 네바 강 근처의 산책로로 사랑 받고 있다고 한다.

요새의 출입문 마다 있는 이 장식은 황제를 상징하는 장식이다.
▲ 페트로파블롭스키 요새의 출입문 위에 있는 검은 독수리 장식 요새의 출입문 마다 있는 이 장식은 황제를 상징하는 장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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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의 출입문마다 새겨진 독수리 장식은 황제를 상징하는 것이며, 금붙이로 만들어진 장식 또한 아름다워 사람들이 많이 찾는 장소이다. 이곳의 피터폴 성당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가장 높은 첨탑을 자랑한다.

네바강의 토끼섬에 건설된 이 요새는 표트르 대제가 스웨덴을 방어하기 세웠다.
▲ 페트로파블롭스키 요새의 피터폴 성당 네바강의 토끼섬에 건설된 이 요새는 표트르 대제가 스웨덴을 방어하기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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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단체 관광객 사이로 소규모의 유럽 단체 관광객들도 많이 눈에 띤다. 내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붉은 장미를 들고 가이드를 하는 유럽 할머니이다. 가이드가 고령의 할머니인 점도 놀랍지만 할머니가 깃발 대신 들고 있는 붉은 장미가 더욱 낭만적으로 다가왔다.

성당을 빠져나오며 이번에는 유럽 아가씨 가이드를 만났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로 이루어진 10여 명의 관광객들을 상대로 조곤조곤 설명을 하고 있는 그 가이드의 손에는 직접 만든 듯한 앙증맞은 인형이 걸려 있다. 이 관광객들은 적어도 깃발만 보고 다녔다는 소릴 듣지는 않겠다. 저절로 미소가 나온다.

화려한 외관이 모스크바의 바실리 성당에 뒤지지 않는다.
▲ 피의 성당 화려한 외관이 모스크바의 바실리 성당에 뒤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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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이면 화물선이 지나가도록 다리를 들어 올린다는 트리니티 브릿지를 지난다. 다리 난간의 부조 하나하나가 꽃 화분과 어울려 낭만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리고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는 순간 현란한 구조물을 만난다. 피의 성당(또는 그리스도 부활 성당)이다.

피의 성당은 러시아의 황제 알렉산드로 2세가 숨을 거둔 자리에 세워진 성당이다. 공포정치로 유명한 알렉산드르 2세는 농노제를 폐지하고 농민의 입장을 배려하는 등 러시아의 근대화를 주도했던 인물이기도 했다. 그러나 개혁을 단행하려던 황제는 이 과정에서 진보적인 혁명세력과 충돌하여, 결과적으로 러시아의 자유주의를 탄압하게 되었다.

이에 반발한 혁명세력은 황제에 대한 테러를 감행하기에 이른다. 알렉산드로 2세는 같은 자리에서 두 번이나 테러를 당했는데, 첫 번째 위기는 무사히 넘겼으나 혁명군이 던진 두 번째 폭탄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끝내 목숨을 잃고야 말았다.

피의 성당은 알렉산드르 3세가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며 그를 기리기 위해 세운 것으로, 입구에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묘사하는 4개의 모자이크가 있어 '피의 구원 성당', 혹은 '예수부활성당'으로 불린다.

이 성당은 그 화려한 외관 때문에 흔히 모스크바의 상트 바실리 성당과 견준다. 하지만 익숙한 기억 속에서 먼저 떠오른 것은 바르셀로나의 구엘공원이다. 가우디가 버려진 타일 조각으로 꾸몄다는 구엘공원의 입구에도 꼭 이 성당 같은 비현실적인 돔이 있었다. 단일 색상으로 처리된 다른 성당과는 달리 모자이크 타일처럼 마감된 벽면 때문이었으리라. 말을 잊는 것은 아름다움을 마주하는 여러 태도 가운데 가장 높은 단계일진대, 그랬다.

네프스키 대로변에 웅장한 모습으로 서 있는 것이 관공서 건물처럼 보이기도 했다.
▲ 카잔성당 네프스키 대로변에 웅장한 모습으로 서 있는 것이 관공서 건물처럼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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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성당 옆으로 난 운하를 끼고 다시 네프스키 대로에 접어드니 마치 국회의사당 같은 웅장한 성당이 보인다. 카잔 성당(Kazan Cathedral)이다. 이 성당은 타타르와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1801년에 세워졌다. 카잔 성당은 다른 러시아 정교회의 성당과는 달리 서유럽의 색채가 강한 것이 특징이다. 94개나 되는 코린트 양식의 기둥이 일렬로 늘어선 모습이 압도적이다. 성당에서 느껴지는 성스러움은 찾기 힘들며, 위치나 외관이 흡사 위압적인 관공서 건물 같다.

1만 4천 명이 동시에 예배를 볼 수 있는 규모로 단일 예배당으로서는 세계 최대로 알려져 있다.
▲ 상트 이삭 대성당 1만 4천 명이 동시에 예배를 볼 수 있는 규모로 단일 예배당으로서는 세계 최대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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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비해 상트 이삭 대성당은 웅장하면서도 성스럽다. 프랑스의 건축가 몽펠랑의 지휘 아래, 1818년부터 약 40년의 기간에 걸쳐 지어진 성당으로, 높이가 30층 빌딩과 맞먹는 100미터이고, 문의 무게만 해도 10톤이며, 돔을 도금하는 데 든 황금은 자그마치 3만 3000kg이었다고 한다. 1만 4000명이 동시에 미사를 올릴 수 있을 정도로, 단일 예배당으로서는 세계 최대의 규모의 카톨릭 성당이다.

황금빛이 찬란한 돔과 그것을 받치고 있는 아래 위 원주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거대한데, 64개나 되는 이 대리석 기둥은 모두 이탈리아에서 세공을 마친 뒤 이곳까지 옮겨온 것이라고 한다. 성당의 내부에는 '최후의 심판' 등 성서의 내용을 모티프로 그린 모자이크화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백야의 끝 무렵 전망대에 올라서니 어둠이 짙어가면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밤은 점점 화려해져 갔다.
▲ 상트 이삭 대성당 전망대에서 본 상트페테르부르크 야경 백야의 끝 무렵 전망대에 올라서니 어둠이 짙어가면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밤은 점점 화려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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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의 남쪽 입구에 있는 계단을 올라가면 직접 돔 위로 올라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아름다운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필자는 저녁 시간에 돔 전망대를 올랐다. 하나 둘 불이 켜지며 화사하게 단장되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야경을 지켜보면서 잠시 내가 객인 것을 잊는다.


태그:#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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