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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티행동 모습 (2014년)
 검은티행동 모습 (2014년)
ⓒ 이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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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삶은 900여 일 전의 한 장면 이후로 분명히 달라졌습니다. 2014년 4월 16일, 바다 속으로 침몰하는 세월호, 그 안에서 살려 달라 외치던 304명의 사람들을 TV 생중계로 생생하게 지켜보던 장면.

처음엔 믿고 싶지 않았습니다. 존재하지 않는 컨트롤타워, 구조하지 않는 해경, 거짓말만 반복하는 뉴스, 세월호를 둘러싼 각종 비리. 절대 그럴 일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21세기 민주국가에서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몇 시간을 바라보던 그 화면에서 남아있던 선체마저 바닷 속으로 영영 사라져버리고, 304명은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사고 원인을 밝히려 하지 않았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습니다.

이 충격적인 사건을 마주하고 며칠을 뉴스만 허망하게 바라보았던 저는 거리로 나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을 지려고하는 모습은 커녕 인간이라면 마땅히 느낄 사라져간 생명들에 대한 비통한 감정조차 비치지 않았습니다. 오직 이 사건에 제 일처럼 슬퍼하고 제 잘못처럼 스스로를 채찍질 하는 것은 주변에 있는 친구, 가족, 동료, 시민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꼭 외치고 싶었습니다. "이 세상에 너희는 필요없다. 기사를 받아쓰기하는 언론은 필요없다, 진상규명에 관심도 없고 망발만 퍼붓는 정치인들은 필요없다, 이런 비상시국에 7시간 행적이 묘연한 당신은 필요없다"고요.

그래서 제가 가진 재능으로 웹 홍보물을 만들고, 티셔츠를 만들어 거리로 나갔습니다. 시민들에게 일명 <검은티행동>을 제안하여 함께 소리치고, 퍼포먼스를 하며 더 많은 시민들에게 알리며 행동해갔습니다.

거리로 나선 시민 13만, 우리가 마주한 건 경찰차벽

작년 11월 14일도 1년 반이 흐르도록 해결되지 않는 세월호의 진상규명을 외치며 거리로 나갔습니다. 13만 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나왔습니다. 제발 국민의, 우리의 목소리를 좀 들으라고. 그러나 우리가 마주해야했던 것은 수백 대의 경찰차벽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시무시한 물대포였습니다.

제가, 우리가 서 있던 그 곳에서 한 분이 그 물대포를 맞고 쓰러졌습니다. 쓰러지고도 또 맞았습니다. 그 분, 백남기 농민은 그렇게 국가 폭력에 사경을 헤매다 317일 만에 돌아가셨습니다. 농민이 돌아가시기 전, 급격히 생명이 위중해졌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엄청난 병력으로 서울대병원 안팎을 둘러쌌던 경찰은 돌아가신 것이 확인되자마자 병원 안으로 전력이 몰려들어 일반인의 병원 출입을 막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물대포 직사 살수에 의한 뇌출혈'이라는 사인이 명백함에도 책임 은폐를 위한 부검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또 한번 정확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이 정부는 국민을 살리려하지 않는 구나. 인간에 대한 존중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구나. 백남기 농민의 부검은 법원의 부검영장이 발부된 상태로 여전히 시도되고 있고, 명백한 사인을 은폐하여 책임자들이 국가폭력의 책임에서 벗어나려하고 있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이후 우리는 변해야한다, 바뀌어야한다 수도 없이 외쳤습니다. 그러나 바뀌어야했지만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고 책임자들을 처벌해야한다고 했지만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하루가 멀다 하고 억울한 생명들이 지고 있습니다.

세월호에 있던 아이들도, 거리에 나와 외치던 백남기 어르신도, 모두가 '나'였습니다. 안전한 세상에서 살고자 했던 '나'였습니다. 서로 서로가 함께 잘 먹고 잘 사는 세상에 살고자 했던 '나'였습니다.

그러나 내일의 '나'는 죽을 수 없습니다. 내일의 나는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고 안전한 사회에서 살기 위해, 이제는 반드시 바꾸자는 각오로 다시 한 번 거리로 나서겠습니다!

지난 <검은티행동>을 통해 나 혼자 였더라면 아무리 분노하고, 소리쳐도 할 수 없었을 많은 것들이 많은 사람과 지혜가 모이고 함께라면 할 수 있다는 것을, 훨씬 커다란 힘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TV를 보고 기사를 읽으며 분노하는 '나' 들이 모여 함께 외치고 행동해야 바꿀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진실을 밝히는 힘은 결국 분노한 시민들이 만나고 힘을 이어갈 때 생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일의 '우리'는 죽을 수 없습니다. 안전한 세상에서, 차별 없는 세상에서, 평등한 세상에서 살기위해, 함께 거리로 나섭시다!

또다시 검은티행동을 제안하며...

백남기농민 운구차를 지키는 시민들
 백남기농민 운구차를 지키는 시민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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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참사 900일, 진실이 다 밝혀지지도 않았는데 우리는 경찰이 쏜 물대포에 쓰러진 백남기 어르신의 죽음을 보게되었습니다.

지난 주말(1일) 첫 번째 추모대회, 수많은 국민들이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를 맞아 쓰러진 장소까지 행진을 했습니다. 하지만 추모제 장소를 300m앞에 두고 시민들을 가로막은 경찰의 차벽을 보면서 우리가 그동안 보았던 수많은 죽음, 그리고 분노했던 감정, 무기력했던 감정까지 한꺼번에 떠올랐습니다. 더 이상 참고,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을 만큼 뜨거운 감정들이 치밀어 올랐습니다.

"세월호 참사와 백남기 어르신의 죽음은 다르지 않다. 차이를 굳이 찾자면 세월호 참사는 국가가 반드시 해야 할 의무를 하지 않아서이고, 백남기 어르신은 국가가 반드시 하지 말아야할 것을 해서이다."

유경근 세월호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의 말처럼 세월호 참사의 전과 후가 그랬듯이 백남기 어르신의 죽음의 전과 후 역시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세월호에 304명, 백남기 농민. 국가는 국민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죽음에 대한 책임을 외면했습니다. 강신명 전 경찰청장은 청문회에서 '결과만 놓고 사과할 수 없다'며 유가족이 보는 앞에서 너무나도 당당히 잘못이 없다고 공언했습니다. 국가가 국민을 대하는 이 태도는 지난날의 세월호 특조위의 증인들이 보여주었던 뻔뻔했던 증언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317일 동안 사과 한 마디, 진상규명에 대한 노력하나 없던 경찰과 검찰은 돌아가신 후에야 기다렸다는 듯 사인을 밝혀야겠다면서 부검을 하겠다고 달려들었습니다. 경찰은 돌아가시기 직전, 생명이 위급하다는 소식이 들려오던 9월 24일 토요일부터 사복경찰을 동원해 서울대병원 안까지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백남기 어르신의 선종 소식과 함께 둘째 딸에게 전화를 걸어 부검을 하겠다고 밝히고, 그와 동시에 서울대병원 입구를 수많은 경찰들로 둘러쌌습니다.

망자에 대한 예의조차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유가족들은 고인에 대한 짧은 애도의 시간조차 가지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아버지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저들의 손에 아버지의 주검을 빼앗길 걱정의 마음으로 불안에 떨어야 했습니다. 유가족들은 책임자가 사과하지 않는 한 장례를 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부검을 자행하려던 검찰의 최초 영장청구는 기각되었지만, 이어지는 재청구에 법원은 검찰의 손을 들어 주었습니다. 언제 강제집행 명령을 행사하며 밀고 들어올지 모르는 경찰들을 걱정하며 불안에 떨고 있을 유가족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흐릅니다.

"경찰의 손에 돌아가신 고인의 시신에 다시 경찰의 손이 닿게 하고 싶지 않다"는 유족들의 간곡한 호소에도, 피해자인 유가족과 가해자인 경찰이 협의해 부검을 진행하라는 것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백남기 농민임을 선언하고, 함께 행동하자고 제안합니다. 우리 모두가 백남기 농민입니다. 쌀값을 21만 원으로 올리겠다던 대선공약을 지키라고 외친 농민의 모습에서 바로 우리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반값등록금을 만들겠던 공약을 실현하라고 외친 대학생이었고, 양질의 청년일자리를 만들겠다던 공약을 이행하라는 청년의 외침과 다르지 않습니다. 살겠다고 거리로 나온 백남기 농민의 모습은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입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누구나 다 아는 이 말을 우리가 보여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저들에게 권한을 주었던 것이지, 우리의 권력을 양도한 적은 없습니다.

가슴속 분노를 함께 표현하고, 추모의 마음을 보내고 싶은 분들은 모두 함께해주세요. 함께 '말하는 옷' 검은티를 입고 거리로 나와 오만하고 뻔뻔한 자들에게 외칩시다. 세월호와 서울대병원, 두 번의 죽음을 기억하는 행진부터 시작하려고합니다. 그리고 백남기 어르신이 물대포를 맞아 쓰러진 그 장소에서 기억과 추모의 퍼포먼스를 하려고합니다.

우리의 행동이 추모를 넘어 희망의 행진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누군가를 잃어야만 하는 슬픔을 더 이상 겪고 싶지 않습니다. 그 누군가가 내가 될 수 도 있고, 우리 가족이 될 수 있는 대한민국을 지켜보고 있지 않겠습니다. 한 사람만 걷는다면 만들어지지 않을 길을 우리 모두가 함께 걸어 나갑시다.

검은티행동 홍보포스터
 검은티행동 홍보포스터
ⓒ 이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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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방법

1) 카톡 아이디 @woohoot로 이름, 티셔츠 사이즈(M, L, XL, XXL, XXXL), 자원봉사 참여여부를 알려주세요. 'http://bit.ly/검은티행동신청' 구글독스로 신청해주셔도 됩니다.

2) 티셔츠는 1만원에 판매하고 남은 금액은 피켓 제작, 국화 꽃 구입 등에 사용하겠습니다.
3) 꼭 티셔츠를 구입해 입지 않아도 행동에 함께 하실 수 있습니다.
4) 행동방식
첫 번째 행동은 백남기농민이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종로 르미에르에서 '추모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서울대병원까지 행진을 진행하려고 합니다. 10월 9일 3시, 광화문 광장 이순신동상 앞에 모여, 티셔츠를 나눠 입고 종각 르미에르 건물로 이동합니다.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를 맞으신 장소에서 추모 퍼포먼스를 하고, 다시 서울대병원까지 행진을 진행합니다. 행진 시에는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겠습니다.
(검은티행동은 매주 토요일 3시에 진행하려고 합니다. 행진기획은 모여주시는 시민들과 함께 만들겠습니다.)
5) 서울대병원 추모 촛불 참여
티셔츠 행동을 마치고, 7시 서울대병원에서 진행되는 촛불집회에 함께 참여합니다.




태그:#검은티행동, #세월호, #백남기, #0416,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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