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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리당략(黨利黨略). 현 정치사를 두고 평가하는 말입니다. 백성들 편에서, 나라의 안위를 위해 결정하기보다 정당의 이권에 따라 뜻을 모으고 행동하는 모습 말이죠. 그런데 그런 일들이 조선시대에 일어났던 붕당정치와 똑같지 않나 싶기도 하죠. 선조 임금 이후 동인과 서인으로, 그 동인은 또 남인과 북인으로 갈라져 논쟁과 반정을 주도하고, 심지어 임금까지도 갈아치웠죠.

그런 모습이 비단 그것뿐이겠습니까?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로 알려진 '최순실 라인'이 개입됐다는 주장이 제기된 '미르와 K스포츠 재단' 의혹도 조선시대 후기에 나타난 세도정치와 비슷하지 않나 싶습니다. 정조의 둘째 아들 순조가 십대 초반에 왕위에 오를 때 정순대비가 그 뒷배의 조정세력인 '경주 김씨 인물들'과 손잡고 조선의 정치사를 뒤흔든 모습 말이죠.

그런데 조선시대의 그런 모습들이 실은 임진왜란 이후를 기점으로 더욱 촉발됐다는 걸 이번에서야 더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당리당략을 주도하려던 당파 싸움이나 권문세가의 세도정치가 활개를 친 때가 바로 그 시점이라고 말이죠. 그래서 조선 전기와 조선 후기를 구분하는 그 분기점을 임진왜란으로 본다고 합니다.

"'태정태세 문단세/ 예성연중 인명선/ 광인효현 숙경영/ 정순현철 고순' 앞글자만 따서 끊어 외워보던, 머리를 쓰지 않아도 저절로 입이 알아서 순서를 뱉어낸다. 여기서 한 가지 더 기억하자. 선조 때 임진왜란(1592)이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임진왜란은 조선의 시대 구분에 기준이 된다. 조선 건국부터 임진왜란이때까지를 전기, 임진왜란 이후부터 철종 때까지를 후기로 구분하고, 고종부터 근대 사회라 하며 이후 일제 강점기로 넘어간다."(15쪽)

책표지 김정남 선생의 〈36시간의 한국사 여행 2〉
▲ 책표지 김정남 선생의 〈36시간의 한국사 여행 2〉
ⓒ 노느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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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 선생의 <36시간의 한국사 여행 2>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제 1권에 이어서 나온 이 책은 조선 전기부터 조선 후기까지 있었던 역사적인 사건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를 위해 역사적 사실과 문맥 속에서 개념을 인식하도록 하고, 또한 나열식 설명보다는 당시의 사료를 통해 시대상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하고, 그리고 논리적으로 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있죠.

사실 '36시간의 한국사 여행'은 선사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총 36시간 동안의 여행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 1권은 12가지 주제에 대해 12시간에 걸쳐 선사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를 담고 있고, 제 2권은 현대와 가장 친근한 조선의 역사에 대해, 그리고 제 3권은 개항기부터 현대까지의 역사 여행을 담고 있는데, 아직 출간되지 않는 상태죠.

그 중에서도 제 2권에 해당하는 이 책은 임진왜란 전의 조선 전기와 임진왜란 후의 조선 후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왕의 이름에 붙는 '조'(祖)와 '종'(宗)의 의미를 시작으로 이방원이 '왕자의 난'을 일으킨 이유, 또 한양이 건설된 과정, 세종의 문화통치 정책, 조선의 군사제도와 군사조직, 사림이 어떻게 정권을 잡았는지 등을 밝혀주고 있죠.

그리고 7년간의 임진왜란 이후, 조선시대는 후기로 넘어서면서부터 조선 전기와는 다른 시대양상이 드러났다고 합니다. 이른바 붕당정치가 수면 위로 확연하게 드러났고,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 등 세도정치의 출현 말이죠. 물론 그런 당파싸움과 권문세가의 주도권 싸움 때문에 곳곳에서 백성들의 민란과 봉기가 일어났다고 하죠. 그만큼 엉뚱한 길로 들어서고 있는 조선의 조정을 바르게 세우고자 백성들이 '몸을 던진'(獻身) 것이었습니다.

"1619년 3월 강홍립의 1만 조선군은 후금군과 싸워 첫 승리를 거두었다. 그 후 전세가 불리해지자 후금군과 싸우는 척하다가 항복하여 마지못해 전투에 참여했다는 광해군의 뜻을 후금에 알렸다. 후금도 조선과 우호 관계를 원했다. 후금의 입장에서 보면 명나라와 조선을 모두 상대하는 것보다는 조선과 좋은 관계를 맺는 편이 더 이로웠기 때문이다."(183쪽)

임진왜란 이후 선조가 의주로 피란을 가면서 광해군을 세자로 앉혔는데, 그때 광해군이 북쪽의 명나라를 넘보고 있는 또 다른 세력인 '후금' 곧 '청나라'에 맞서 '실리적 중립 외교'를 그렇게 구사했다는 설명입니다. 어쩌면 지금 박근혜 정권이 북한을 두고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취해야 할 진정한 외교정책이지 않을까 싶죠.

물론 그 뒤 명분싸움에 휘말린 조정은 서인과 남인의 주도로 1623년 인조반정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그들은 광해군의 중립외교 정책을 빌미로, 다시 말해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저버렸다는 이유로, 광해군을 강제로 왕위에서 끌어내렸다고 하죠. 문제는 그렇게 조정 대신들이 명분싸움을 벌이고 있는 동안 또다시 전쟁의 도가니에 휩쌓이게 됐다고 하죠. 청나라 군이 압록강을 건너, 한양은 물론 남한산성까지 점령했다는 게 그것입니다.

"1637년 1월 30일, 인조는 삼전나루에서 청나라 태종을 향해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예를 행하면서 항복식을 거행했다. 청나라는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김상헌 등의 척화론자들, 그리고 많은 백성을 인질로 끌고 갔다. 그 중 윤집, 오달제가 심양에 가서도 뜻을 굽히지 않아 죽음을 맞이했고, 홍익한은 이미 죽임을 당했다."(190쪽)

7년간의 임진왜란 이후에 왜 그런 굴욕적인 일들이 다시금 일어났던 걸까요? 조정 대신들이 당파싸움에 몰두하느라 외부 세력에 대해 제대로 방비하지 못한 탓이요, 더 근본적으로는 '실리적 중립 외교'를 구사한 광해군을 조정 대신들이 낭떠러지로 몰아넣은 일로부터 비롯되었죠. 그만큼 미래를 내다보지 못한 근시안적인 안목들이 나라꼴을 전쟁의 불바다로 만든 꼴이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조선 전기와 조선 후기로 나뉜다는 역사적인 사실에 새롭게 눈을 뜨게 해 준 이 책, 그 후기 역사의 중심에 붕당정치와 세도정치의 폐해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알려주는 이 책을 통해, 오늘날의 정치인들이 어떤 처신을 해야 할지 깊이 고민해야 봤으면 합니다.

더하여서, 그런 역사적인 책임을 맡고 있는 이 나라의 대통령도 오늘날의 또 다른 당리당략에 휘둘리거나 세도가의 권모술수에 놀아나지 않았으면 합니다. 정말로 이 나라가 앞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실리적 중립외교'를 펼쳐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만일에 그렇게 하지 않고 이 나라를 계속 '전쟁의 불바다'로 몰아넣는 발언과 정책을 펼친다면, 조선시대에 민란과 봉기를 일으켰던 백성들처럼 이 시대의 백성들이 중앙정치를 바로잡도록 견제구와 돌직구를 날려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부디, 오늘날의 대통령과 정치인들이 백성들의 살 길과 나라의 안위를 진실되게 바라봤으면 하는 바람뿐입니다.


36시간의 한국사 여행 2 - 성리학에 의한 성리학을 위한, 조선. 조선 전기에서 조선 후기까지

김정남 지음, 노느매기(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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