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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 평화협정 국민투표 부결을 보도하는 CNN 뉴스 갈무리.
 콜롬비아 평화협정 국민투표 부결을 보도하는 CNN 뉴스 갈무리.
ⓒ C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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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년간의 콜롬비아 내전을 종식할 평화협정이 국민투표에서 부결되자 국제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다.

지난 3일(현지시각) 콜롬비아 정부와 최대 반군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이 체결한 평화협정의 찬반을 묻는 투표에서 콜롬비아 국민은 찬성 49.78%, 반대 50.21%로 부결시켰다. 무난한 가결을 전망했던 정부와 FARC, 협상을 중재한 국제사회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콜롬비아 평화협정은 국민투표를 치르지 않아도 됐다. 하지만 정부와 FARC는 국가적 통합이라는 명분과 개혁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국민투표라는 정치적 승부수를 던졌으나 뼈아픈 실패를 당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국제사회는 평화협정 이행을 조건으로 대규모 경제적 지원을 약속했다. 또한 국정 정상화와 다양한 개혁 추진으로 '장밋빛 미래'가 눈앞에 놓였지만, 콜롬비아 국민은 이를 거부했다. 오히려 국제신용평가사들이 평화협정 부결로 인한 불확실성으로 국가 신용등급 강등을 예고하며 거센 후폭풍이 불고 있다.

전쟁 범죄 처벌 없이는 평화도 없다

반세기 동안 내전에 시달렸음에도 콜롬비아 국민은 왜 평화협정을 거부했을까. 전문가들은 찬성이 우세한 여론조사에 안심한 평화협정 지지자들의 투표율이 낮았고, 카리브 해 연안 지역에 태풍이 몰아쳐 일부 투표소가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가장 큰 부결 원인은 평화 자체를 반대하기보다는, 정부와 FARC가 체결한 평화협정 내용에 강한 불만을 품은 국민들이 결집해 대거 반대표를 던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1964년 농민 반란으로 시작된 남미 역사상 최장기 내전으로 최소 26만 명이 사망하고, 5만 명이 실종됐다. 또한 800만 명에 달하는 국민이 내전을 피해 고향을 떠나 난민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FARC는 전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대규모 마약 밀매를 했고, 민간인을 납치해 몸값을 착취했다. 콜롬비아에는 아직도 FARC에 의해 납치나 살해를 당한 피해자들의 불만이 높다. 특히 이들은 FARC 대원들에 대한 실형 면제와 합법적인 정계 진출을 보장한 평화협정 내용을 문제 삼았다.

평화협정에 따르면 FARC 대원은 무기를 반납하고 6개월간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재활교육을 받는 조건으로 내전 때 저지른 범죄에 대한 실형을 면제받는다. 또한 FARC는 정식 정당이 되어 2026년까지 의회에서 최소 10개 의석을 보장받고, 모든 선거에도 후보로 출마할 수 있다.

<뉴욕타임스>는 "수십 년간 FARC에 의한 납치와 살해로 고통받아야 했던 콜롬비아 국민으로서는 이번 평화협정 내용이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다"라고 부결 배경을 설명했다.

평화협정 '수정' 유력... 국민투표 다시?

주요 외신과 전문가들은 콜롬비아 국민이 평화보다 정의를 선택했다고 평가했다. 일각에서는 국민투표 부결로 평화협정이 무력화되고, 정부와 FARC가 다시 유혈 분쟁을 벌일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지만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이 대체적인 전망이다.

FARC에 납치를 당했던 한 피해자는 CNN 인터뷰에서 "국민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이 평화협정은 정당하지 않다"라며 "정의라는 관점에서 평가할 때 평화협정 내용은 불공정하다"라고 비판했다.

평화협정을 주도한 후안 마누엘 산토스 콜롬비아 대통령은 국민투표가 부결되자 대국민 연설에서 "우리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후세에 평화로운 국가를 물려주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로드리고 론도뇨 FARC 지도자도 "평화협정을 수정할 필요성을 검토할 것"이라며 "대화가 평화로운 미래를 만들기 위한 유일한 무기가 될 것"이라고 일부 평화협정 내용을 수정할 수 있다는 뜻을 나타냈다. 하지만 FARC 내 강경 세력은 지금의 평화협정도 지나치게 양보했다는 입장이어서 내부 갈등이 예상된다.

영국 <가디언>은 "정치인들이 FARC에 대한 콜롬비아 국민의 분노를 과소평가했다"라며 "하지만 평화협정을 수정해 국민투표로 가결한다면 진정한 국민적 합의와 평화 구축을 위한 좋은 기회(great opportunity)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태그:#콜롬비아, #평화협정, #FA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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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냉탕과 온탕을 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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