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대산 들머리 '천년의 숲길'에서(오른쪽부터 이상길, 임봉재, 이창묵, 신길순, 박도. 2016. 9. 22.)
 오대산 들머리 '천년의 숲길'에서(오른쪽부터 이상길, 임봉재, 이창묵, 신길순, 박도. 2016. 9. 22.)
ⓒ 신길순

관련사진보기


[지난 기사] 슬픔도, 기쁨도, 외로움도 함께한 그리운 친구여

늘그막의 고독

몇 해 전, 전남 여수시 율촌면에 사시는 고교 시절 은사 박철규 선생님을 찾아뵌 적이 있었다. 당시 선생님은 93세였는데 아들 집에서 말년을 보내셨다. 그때도 건강하셨는데 가장 큰 어려움은 오래 살다보니 친구들이 모두 세상을 떠나 말벗이 없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공초 오상순 시인(1894~1963)
 공초 오상순 시인(1894~1963)
ⓒ 자료사진

관련사진보기

내가 고교를 다닐 때였다. 그 무렵 하루에 담배를 100개비나 태우시는 애연가인 공초(空超) 오상순(吳相淳) 시인이 서대문네거리 적십자 병원에서 외로운 병상생활을 한다는 얘기를 듣고 입원실로 자주 찾아 뵈었다.

그때마다 공초 선생의 반가움은 7년 가뭄에 단비를 맞는 표정이었다.

<25시>의 작가 게오르규의 말이다.

"고독은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고통이다. 어떠한 공포도 모두 함께 있다면 견딜 수 있지만 고독은 죽음과 같다."

위 예화에서 보듯이 사람은 늙어갈수록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이가 절실하다. 젊은 날은 일에 묻혀 사느라, 가족 부양하느라 고독을 느끼기는커녕 오히려 고독의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언저리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가는 늘그막에는 심중의 말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더욱 필요한 것이다.

현대인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군중 속의 고독'이다. 언저리에 사람은 많지만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은 없거나 매우 적다는 말이다. 그래서 순수했던 학창시절의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가 좋은 것이다.

우리 다섯 친구들은 숙소에 든 뒤 짐을 풀어 세면을 하고는 응접실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입이 심심할 것 같아 캔 맥주와 안주를 사왔다. 우리들의 화두는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와 현재 사는 이야기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이야기였다.

인생역정

임봉재 친구는 1950년 9월 27일, 서울수복 하루를 앞둔 날 아버지를 잃었다. 그가 전쟁고아로 살아온 이야기는 그야말로 소설 한 편은 족히 될 듯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아무개 제약회사 열혈 영업사원으로 출발하여 중앙농원 대표에 이르기까지의 인생역정은 한 편의 인간승리 드라마였다.

신길순 친구는 대학 졸업 후 교단에 섰다가 스페인에 사는 동서의 초청으로 그곳에 가서 몇 해 살았다. 하지만 자녀교육 문제로 귀국하여 다시 교단에 섰다. 서울 동북고등학교에서 교감, 교장 직무대행으로 봉직하다가 2008년에 정년퇴직했다. 퇴직 후 베트남 국립하노이사범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며 선교활동을 했다. 그는 클래식 마니아인데 팝송에도 조예가 매우 깊었다. 그의 음악 실력은 당대의 명 DJ 최동욱, 피세영, 이종환 등에 버금갈 정도였다.

그래서 임봉재 친구는 일부러 그 시절의 팝송 CD를 골라와 그날 차내는 음악 감상실이었다. 그는 새로운 곡이 나올 때마다 줄곧 해설을 했다. 그는 교회의 원로 장로로, 이즈음도 봉사활동을 한다는데 연초 뇌출혈로 쓰러졌단다. 다행히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아 개두수술을 받고 후유증없이 정상으로 회복했다. 앞으로 깨끗하게 살다가 하나님의 품에 안기는 게 가장 큰 소원이라고 말했다.

이상길 친구는 재학시절 우리 국문학과 과대표로 '모범생'의 대표적 인물이었다. 그는 강의시간마다 꼬박꼬박 열심히 듣고, 필기를 잘 했는지 중간고사나 기밀시험 때 그의 노트는 인기 '짱'이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국문학계의 유명 학자로 남을 줄 알았는데, 일찍이 가업을 물려받았다. 그 가업을 수십 년째 이어오다가 이제는 일선에서 물러났다고 한다. 이즈음에는 부부 외손자 세 식구가 대구 시내 봉덕동에서 비둘기처럼 산다고 했다.

이창묵 친구는 대학 1학년 때부터 <고대신문> 기자로 필봉을 휘둘렀다. 대학 졸업 후 한때 <세대> 지에 관련했다가 전직하여 줄곧 대기업 홍보팀에서 활약했다. 그는 원만한 성품으로 대인관계가 매우 좋아 졸업 후 개성이 강한 국문과 과대표를 장기 집권했다. 최근에는 대장암 수술을 받은 뒤 오뚝이처럼 일어났다. 이즈음의 삶은 덤으로 하루하루 매사에 감사하면서, 어진 부인의 뜨거운 사랑속에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나, 박도는 그 유명한 구미 금오산 기슭에서 태어났지만 금오산의 정기는커녕 논두렁 정기도 비켜 간 탓인지 대학 졸업 후 33년간 평교사로 교단을 지켰다. 하지만 정말 가슴 아프게도 평교사로도 정년퇴직을 하지 못한 채, 눈물을 글썽이며 교단을 떠났다.

2004년 퇴직 후 곧장 강원도 횡성군 안흥찐빵마을로 내려와 얼치기 농사꾼으로 6년 남짓 살았다. 최근에는 치악산 밑 자그만한 아파트에서 간 큰 삼식이로 주야 자판을 두들기며, 마지막 정열을 불태우고 있다.

마음의 고향

우리들의 영원한 스승 지훈 조동탁 선생
 우리들의 영원한 스승 지훈 조동탁 선생
ⓒ 박도

관련사진보기

늦은 밤까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다섯 친구들의 공통점은 엽전대학교 촌놈대학교 국문학과 출신답게 모두들 우국지정이 매우 강하다는 점이었다.

아마도 대학 재학시절 지훈 조동탁 선생의 '지조론' 강의 탓이 아닌가 생각된다.

"지조(志操)란 순일(純一)한 정신을 지키기 위한 불타는 신념이요 눈물겨운 정성이며, 냉철한 확신이요 고귀한 투쟁이기까지 하다.

지조가 교양인의 위의(威儀)를 위하여 얼마나 값지고 그것이 국민의 교화에 미치는 힘이 얼마나 크며 따라서 지조를 지키기 위한 괴로움이 얼마나 가혹한가를 헤아리는 사람들은 한 나라의 지도자를 평가하는 기준으로서 먼저 그 지조의 강도를 살피려 한다. …

지조가 없는 지도자는 믿을 수가 없고, 믿을 수 없는 지도자는 따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지조론〉

우리 동기들은 지훈 선생의 마지막 제자로 그분의 가르침은 하느님의 말씀이었다. 그래서 선생이 떠나신지 50년이 된 지금도 우리들은 그분의 가르침을 온몸으로 느끼며 살고 있다.

온천탕

이튿날 아침, 잠에서 깨자 5시 30분이었다. 옆의 이상길 후보생도 깼고, 옆방의 임봉재 후보생도 깼다(나는 아직도 이들을 대학재학 시절처럼 후보생으로 부르고 있다). 간밤에 늦게 잠들었지만 분위기도, 남설악의 공기도 좋았던 탓인지 몸도, 마음도 가뿐했다. 애초 예정보다 한 시간 앞당겨 지하 온천탕으로 갔다.

우리 다섯 친구들은 알몸으로 온천탕 온탕에서 얼굴만 내밀며 탕내 정담을 나누는데 곁에서 목욕하던 한 고객이 우리들의 관계를 물었다. 그러자 말표 임봉재 후보생이 자랑스럽게 대변했다.

"대학 동창들 끼리 졸업 후 50년만에 온 수학여행입니다."
"부럽습니다. 그런데 한 분은 댁들의 제자 같은 데요."

이상길 후보생을 두고 한 말이었다. 그는 아직도 흑발이었는데 염색은 전혀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분은 무슨 보약을 먹어 그러느냐고 묻자 "밥이 보약이었다"는 이상길 후보생의 대답이었다.

아마도 그가 인생 풍상을 가장 적게 겪은 결과로 추측이 갔다. 그는 학창시절에도, 후보생 시절에도 어머니가 매주마다 면회를 오는 등, 극진한 부모님 사랑 속에 자랐다. 결혼 후에는 부인의 따사한 사랑으로 건강관리를 무척 잘한 결과로 여겨진다.

다래(왼쪽)와 어름
 다래(왼쪽)와 어름
ⓒ 신길순

관련사진보기


멀위랑 다래랑 먹고

나는 앞장서서 친구들을 주전골 계곡으로 인도했다. 그 어귀에서 1킬로미터 정도 오른 뒤 거기서 심호흡을 하며 주전골 정기를 온몸에 받고는 발길을 돌렸다. 다시 어귀로 돌아와 오색 약수를 한 쪽자 마신 뒤 나의 오랜 단골 토박이 집으로 갔다. 주인 내외가 "어르신 오십니까?"라는 90도 인사로 반겨 맞았다.

오대산 어귀 보배식당도, 오색약수의 토박이 집도 나의 30년 단골이다. 특히 토박이 집은 지금 주인의 선대부터 드나들었다.

[관련 기사] 20여개 반찬 중 오대산 산나물만 16가지 / 구황 곤드레밥, 건강식이 되다

더덕정식과 곤드레밥 두 가지를 시켰는데 그 맛이 일품으로, 친구들은 밑반찬 산나물 하나하나에도 감탄사를 연발했다. 마침 주인장이 진객들에게 비장의 머루주를 대접했다. 우리는 그 술을 반주로 건배하는데 그 맛과 향이 매우 뛰어났다.

우리 일행이 토박이 식당을 나와 숙소로 돌아오는 깊섶 가게에서는 다래와 어름을 팔고 있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어찌 그냥 지날 수야. 더욱이 '청산별곡'을 헤아릴 수 없이 학생들에게 가르친 국문학도가.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멀위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
얄리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

하조대 전망대에서 비취빛 동해바다를 배경으로(왼쪽부터 이창묵, 이상길, 박도. 2016. 9. 23.)
 하조대 전망대에서 비취빛 동해바다를 배경으로(왼쪽부터 이창묵, 이상길, 박도. 2016. 9. 23.)
ⓒ 신길순

관련사진보기


하조대

숙소에서 체크아웃하자 예정시간보다 30분 빨랐다. 그러자 임봉재 후보생은 특별 서비스로 설악산 소공원 쪽으로 차머리를 돌렸다. 전날은 내가 기사 옆자리에 앉다가 뒷자리로 갔는데 커브길을 돌 때마다 양옆의 친구와 부딪쳤다.

내가 '럭키커브'라고 말하자 친구들이 그건 양옆에 여자가 앉을 때라고 정정했다. 나는 지금도 그런 정열이 남았느냐고 이제는 자네들이 젊은 여자보다 더 좋다고 하자 비로소 내 말의 진의를 알아줬다. 우리는 설악산소공원에다 주차한 뒤 그 자리에서 360도 돌면서 산의 정기를 한껏 받은 뒤 증명사진을 남기고는 곧장 동해바다로 갔다.

이상길 후보생은 그 많은 동해 명승지 가운데 '하조대'에 머물기를 특별히 청하자 임 기사는 그곳 바닷가에다 애마를 세웠다. 나도 하조대해수욕장을 둘러본 적은 있었으나 하조대 정자와 전망대에는 오른 적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둘러보니 그 경치가 천하 절경으로 하마터면 죽기 전에 못 볼 뻔했다. 그야말로 언저리 바다가 모두 비취색으로 내가 본 바다 가운데 물빛이 가장 맑고 푸르렀다.

마지막 여정 겸 마음에 점을 찍을 곳은 주문진 아들바위 회센터였다. 거기서 자연산 돌참지와 도다리 회, 그리고 푸짐한 매운탕으로 미각과 후각과 시각을 즐겁게 한 뒤 귀로에 올랐다.

즐겁고 행복한 여행

오후 4시 40분, 작별지 원주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원주터미널에서 이창묵, 이상길 두 친구를 떠나보낸 후, 임 봉재 친구는 그대로 떠나기가 섭섭한 듯, 원주역으로 차머리를 돌렸다. 거기서 세 사람은 작별했다. 그날 밤 친구들이 집에 도착할 무렵 문자를 보냈다. 

"1박 2일간 극락에서 보낸 듯합니다. 부디 다음 만날 때까지 건강! 또 건강하시기를. 박도 올림."

다음은 그들이 나에게 보낸 문자다.

"즐거운 여행을 함께 하게 되어 매우 고맙고 기쁘게 생각합니다.  내년 봄 쯤 다시 만나기를 기대하며 오랜 우정과 후의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창묵 꾸뻑."

"너무 즐겁고 행복한 여행이었습니다. 늘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기를 기원합니다. 입시랜드체이호!! 이상길"

"내가 우리 가족 밴드에 자네가 올린 글 공유시켜 놓았더니 아들, 딸, 며느리가 댓글로 응원해 주었네. 모두 파이팅. 신길순."

오대산 월정사 적광전 팔각구층탑 앞에서(2016. 9. 22.)
 오대산 월정사 적광전 팔각구층탑 앞에서(2016. 9. 22.)
ⓒ 신길순

관련사진보기


'낙화(落花)'

나는 수학여행에서 돌아온 다음날 깊은 밤 홀로 '낙화'의 나머지 시구를 흥얼거리며 이 여행기를 마무리하고 있다.

…………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 이형기 '낙화(落花)'

[7학년 2반 수학여행기 끝]


태그:#수학여행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