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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견꾼 전영국 씨
 택견꾼 전영국 씨
ⓒ 남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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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통무술 '택견'에 대해 아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안다 해도 입으로 내뱉는 '이크'라는 구호만 떠올릴 것이다. 택견은 2011년 유네스코에 등재된 인류무형문화유산이고, 2000년이 넘은 전통 무예이다. 세계가 인정한 무예이지만, 정작 한국에선 많은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다.

택견꾼 전영국씨(69)는 택견 전도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본업은 목사이나 몇 년 전부터 시작된 극심한 관절염으로 고생했다. 이 병원, 저 병원 다 찾아다녀 봐도 병이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는데, 택견이 도움이 됐다.

그는 택견을 시작으로 생활에 활력이 생겼다. 새벽예배가 끝나면 체육관에서 택견을 배우고 저녁기도가 끝나면 공원에 나가 택견을 수련한다. 그에게 바람이 있다면 제2의 인생을 살게 해준 택견을 많은 이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지난 2일, 그를 만났다.

- 택견을 언제 처음 시작하게 되었나요?
"목사가 된 후에 나이를 점점 먹다 보니까 무릎이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정형외과, 신경외과를 쫓아다니고 연골주사를 2, 3번 맞았는데도 아무런 효험이 없었어요. 어떤 분의 소개로 종로구 혜화동에 있는 88올림픽 기념체육관에 가게 되면서 택견을 접하게 됐어요.

처음엔 걱정을 많이 했죠. 무릎을 완전히 굽혀서 공격 들어가는 부분도 있고, 앉아서 기술 거는 것도 있어서요. 끝까지 배우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 품밟기를 계속하면서 10개월이 지나 나도 한번 시도해볼까? 무릎이 구부려졌는데 안 아픈 거예요. 무릎을 다 구부리고 거는 발기술을 능수능란하게 했고. 아팠던 무릎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선생님한테 물어보니까 택견은 오금지를 많이 한다고 하더라고요. 무릎 뒤에 있는 것이 오금인데 이 오금을 자꾸 접었다 폈다 하는 게 오금지거든요. 일리가 있더라고요. 지금은 도장에서 40대 친구들이 저더러 '노인네가 아니야, 청년이야'라고 칭찬합니다. 택견을 시작한 지 4년 됐고 모든 과정을 거쳤습니다. 올 11월엔 지도자 과정을 앞두고 있습니다."

- 택견은 어떤 무예인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선조들이 했던 운동이 택견입니다. 아랫동네와 윗동네가 교제하고 삶을 나누고 몸을 풀면서 하던 운동이었어요. 또한, 택견이 유네스코에 등재돼 있다는 건 세계적인 자랑거리죠. 쿵푸도 유네스코에 등재가 안 됐거든요. 택견을 통해 우리나라를 알릴 수 있습니다. 남녀노소 할 수 있는,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한 무예입니다.

택견은 신사적이고 인격적입니다. 비열하지 않습니다. 경기하다 상대방의 얼굴에 위협적으로 발을 차면 거기서 게임이 중단되고 승패가 가려지죠. 그러면서도 정말 사생결단 내야겠다고 하면 '옛법'이라는 방법이 있습니다. 옛법을 잘못 쓰면 상대방이 기절하거나 죽음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덩실덩실 춤추는 것 같아서 택견을 우습게 보면 큰코다칩니다.(웃음)"

- 많은 분이 알고 있는 '이크'는 어떤 구호인가요?
"배꼽 밑에 단전이 있는데 단전에 힘을 주기 위한 구호입니다. 단전에 힘을 주면 모든 기운이 아래위로 흘러 강하게 됩니다. 저는 신호등 기다리면서도 이크, 이크를 계속합니다."

- 운동을 많이 하셨는데 좋은 점이라면 뭐가 있을까요?
"한번은 전철에서 두 명의 청년이 싸우더라고요. 자칫 잘못하면 사람이 죽을 것 같았는데 사람들이 말리지를 않는 거예요. 제가 가서 말렸습니다. 때리는 친구를 꽉 붙잡고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네가 이 친구를 때리면 이 친구가 죽을 것 같아서 내가 말린다. 말로 하고, 법이 있으니까 법으로 하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얻어맞은 친구는 혼비백산해서 도망가고, 때리는 친구는 분해서 어쩔 줄 몰라 하더라고요. 싸움을 말리면 내가 얻어맞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나는 방어할 수 있고, 얼마든지 대처할 수 있는 기본기를 가졌기 때문에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우리 젊은이들이 운동, 특히 택견을 많이 했으면 좋겠습니다."

- 목회에는 어떤 변화가 생겼나요?
"활력이 붙었어요. 오랫동안 앉아서 성경을 읽거나 기도를 해도 지치지 않습니다. 주로 택견은 새벽기도 끝나고 혜화동 올림픽기념공단 체육관에 가서 합니다. 저녁에는 기도회 끝나고 나서 동네 공원에 나가 혼자 수련을 합니다. 몸에 익히기 위해서 수련을 매일 합니다. 목사가 목회하고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것도 전심으로 하지만, 세상만사가 다 자신과의 싸움이에요. 얼마나 수고하고 땀 흘리느냐에 달려있는 겁니다. 목회에 지장을 받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운동을 합니다."

- 자부심이 대단하신 것 같은데, 택견 자랑 좀 해주세요.
"같이 택견 하는 40대 친구가 한 얘긴데 자기 군대 병영생활 할 때 내무반에서 고참들이 싸움을 붙였대요. 태권도 3단하고 택견 10개월 배웠다는 병사하고 말이에요. 시작! 하고 호루라기를 불었는데, 태권도 3단이 한방에 제압당했다 하더라고요. 제가 택견을 하다 보니까 가능하겠단 생각이 들어요. 택견은 멀리 떨어져서 하는 게 아니고 붙어서 해요. 택견은 손과 발을 다 사용합니다. 발로 차도 다 막을 수 있는 훈련을 하기 때문에 그걸 종합해서 그 사람의 허점을 노립니다.

주짓수, 가라데, 유도, 태권도, 기천무 등 전통무예라고 자처하는 것들도 보법 중에서 삼각형 보법을 하는 건 택견밖에 없습니다. 삼각형 보법이 아주 과학적이에요. 이 택견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게 삼각형 보법 품밟기예요. 고수일수록 품밟기 하는 게 구름 위에 새털 나는 것 같아요. 고수일수록 품밟기가 부드럽고 가볍습니다. 삼각형 보법의 품밟기는 어느 무예에도 없는 보법입니다."

동네 공원에서 전영국 씨가 택견을 수련하고 있다.
 동네 공원에서 전영국 씨가 택견을 수련하고 있다.
ⓒ 남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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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세가 많으신데, 운동하는 데 불편은 없으세요?
"하석주란 축구선수를 참 좋아합니다. 왼발을 굉장히 잘 찼습니다. 원랜 오른발잡이였는데 시합을 하다 왼발로 못 차니까 감독님한테 호되게 혼이 난 거예요. 개인 시간에 잠을 줄여가면서 왼발로 벽에다 대고 수없이 찼대요. 그러면서 오른발보다 더 잘 차는 자신감이 생긴 거죠. 저는 하석주 선수를 많이 떠올려요. 제가 나이를 먹었다고 해서 택견 어설프게 하지 말자. 계속 훈련을 하는 거예요. 고관절이 아주 잘 돌아갑니다. 가만 놔두면 몸은 굳게 돼 있어요. 몸을 때려주기도 하고, 자꾸 움직여주면 아주 유연해집니다."

- 앞으로 택견꾼으로서 어떤 꿈을 이루고 싶나요?
"정말 좋은 운동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너무 모릅니다. 모른다는 건 택견인들의 책임이 크구나... 고군분투하며 명맥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미력하게나마 택견을 많이 홍보하고 싶습니다. 시간, 물질을 투여하는 것을 첫째로 하고요. 개인적으로는 제 사비를 들여 전수관을 짓고 싶습니다. 아버지, 어머니들이 있는 자녀보다도 한부모 가정의 청소년, 불우이웃들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하고 싶습니다. 그들이 바르고 건강하게 클 수 있는 접촉점이 되는 곳을 만들고 싶습니다.  

지금 보면 아파트 주변에 전부 태권도장만 있지 유도장도 없습니다. 택견장도 찾아볼 수가 없어요. 택견을 접할 수 있는 도장을 아파트 단지에 세워놓고 택견에 대해서 알리고 싶습니다. 택견 페스티벌이라고 할까요? 1년에 4번 정도 잠실경기장이나 88올림픽 경기장에서 우리가 체육관을 빌려서 하게 되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습니다. 협회에서 할 일이지만 제가 미력하나마 안건을 제시해서 일반인들이 택견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되는 데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세상사는 아름다운 이야기(http://m.post.naver.com/my.nhn?memberNo=4832522)> 10월호에 실렸습니다.



태그:#택견, #태껸, #한국전통무예, #건강, #관절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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