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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은 사회의 목탁이요, 거울이다
신문은 사회의 목탁이요, 거울이다. 비판이 없는 일방의 충성과 맹종처럼 무서운 게 없다. 과거 나치즘이나 파시즘, 우리나라 유신시대가 그 단적인 예다,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영국인들은 역사를 매우 사랑하며 존중한다. 그들은 개인의 역사까지도 매우 사랑한다. "체험은 최상의 스승이다"(Experience is the best teacher)고 하여 기성세대의 체험담을 대단히 귀중한 자산으로 여기며, 여기에서 교훈을 배운다.

지식인의 사회비판은 자동차의 제동장치(브레이크)와 같다.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는 곧 추락하고 만다. 이번 <어느 해방둥이의 삶과 꿈> 연재는 체험에서 우러난 기록이다. 한 개인의 기록이지만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지난 시대를 이해하고, 앞날을 살아가는데 지혜를 얻기 바란다. 왜냐하면 역사는 끊임없이 반복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나의 글은 늘 비판에 따르는 대안을 제시해 왔다. 이번 연재 기사 '제Ⅰ부 초록색 견장'에서 다루는 병역문제, 군내 구타 및 부패 부조리 문제 등은 그동안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의 하나였다. 그 원인과 대안 및 해결책은 마지막 회에서 깊이 다룰 예정이다. - 기자 말

잠복경계근무

기자가 한강 하류 산남리 부대에 근무할 때 방한복을 지급받고, 북의 산하를 배경으로 기념촬영하다(1969. 12.).
 기자가 한강 하류 산남리 부대에 근무할 때 방한복을 지급받고, 북의 산하를 배경으로 기념촬영하다(1969. 12.).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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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남리부대로 이동한 이후 소대원들은 밤낮이 더욱 철저하게 뒤바뀐 생활을 이어갔다. 대부분 병사들은 올빼미처럼 낮에는 자고 밤샘 근무를 했다.

중대 내 4개 소대장은 윤번제로 하루는 일직, 나머지 사흘은 야간순찰 근무를 맡았다. 한강 하류 이산포에서 산남리까지 6킬로미터 남짓한 강둑 가운데 우리 중대는 그 북쪽 절반을 담당했다.

강둑에는 강을 향해 50미터 간격으로 잠복호가 촘촘히 파져 있었다. 그 초소에서는 2명 1개조로 일몰부터 다음 날 일출 1시간 전까지 경계근무를 섰다.

강둑 중간 중간 분대장 초소에는 전화가 가설돼 있지만, 나머지 초소에는 새끼줄로 견인줄을 만들어 상호 연락케 했다.

초병들은 서치라이트, 경보기, 야간조준경 같은 최신 장비도 갖췄다. 하지만 강둑 철조망에는 너절하게 매단 깡통, 초소 사이에는 새끼줄 같은 원시 장비도 있었다. 최신무기와 원시무기가 공존했다.

잠복호는 모두 무개호(뚜껑이 없는 호)였다. 비가 오면 고스란히 맞을 수밖에 없었다. 초병들의 근무 여건과 인권은 전혀 고려치 않은 무지막지한 초소였다. 다만 수문 위의 주야간 감시초소만은 원두막처럼 짚으로 지붕이 덮여 있었기에 순찰 자들은 중간 거점으로 쓰고 있었다.

소대장들의 순찰은 밤새 둑을 서너 차례 왕복하면서 초병들의 근무 상황을 점검했다. 조는 병사들을 깨우고, 담배를 피우거나 얘기를 하거나 초소를 이탈하는 일이 없도록 감시하는 일이었다.

병사들은 석식을 마친 뒤 야간근무 복장으로 연병장에 집결했다. 신체 노출 부분은 숯으로 야간위장을 하기에 영락없는 검둥이였다. 군장도 요란했다. 모포를 판초우의로 말아 어깨에 걸고 소총, 실탄, 수류탄, 크레모아, 야간조준경, 경보기 등을 지참하였는데 한 짐은 톡톡했다.

'바우' 이야기 

소대장들은 야간위장 상태와 소지품 검사(주로 담배, 라이터, 성냥 등)를 마친 후, 그날의 암구호와 경계 수칙을 복창시켰다. 그런 다음 병사들을 인솔해 각 초소로 떠났다.

야간 근무자들은 저녁노을에 물든 둑길을 일렬종대로 걸었다. 멀리서 바라보면 하루 들일을 마치고 귀가하는 농부의 모습과 흡사했다. 그러나 병사들은 하루 일과를 시작하러 가는 길이었다.

이튿날 병사들은 밤샘 근무를 마치고 전날의 역순으로 귀대했다. 귀대 후 장비 점검 및 일조점호를 마친 다음 구보, 세면, 청소를 한 후 조식을 들었다. 조식이 끝나면 주간 경계 근무자를 제외하고는 전원 오전 취침이었다.

내무반장 안 하사와 소대에서 길렀던 수캐 '바우' (1969. 12.)
 내무반장 안 하사와 소대에서 길렀던 수캐 '바우' (1969. 12.)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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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시 30분에 기상해 중식을 든 후 다시 오후 취침이었다. 오후 4시 무렵, 다시 기상하여 석식과 야간 근무 준비를 했다. 하루하루가 다람쥐 쳇바퀴와 같은 일과의 연속이었다.  

밤샘 잠복근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우리 소대에서 길렀던 수캐 '바우'가 마중을 나와 꼬리를 바람개비처럼 흔들며 반겨 맞았다.

그 반가움이란. 나는 그제야 사람들이 개를 좋아하는 이유를 절실히 깨우쳤다.

군 부대에서 개를 기르니까 민간 집에서 기를 때와 사뭇 달랐다.

동네 민간집 개는 군복입은 군인만 보면 사납게 짖었다. 그런데 군 부대에서 기른 개는 이와는 달리 민간인만 보면 사납게 짖었다.

개는 누가 밥을 주느냐에 따라 그 경계하는 대상이 달랐다. 그리고 그 놈도 계급을 아는지 소대원들과 무리지어 귀대하는 데도 먼저 나에게 달겨들어 꼬리를 친 뒤 다음 소대원에게 달겨들었다.

뗏장으로 지은 BOQ

부대 이동 후 나는 어쩔 수 없이 소대 막사에서 소대원들과 함께 지내자 피차 불편했다. 그러자 전직 목수였던 최 상병, 그리고 강원도 홍천 출신의 유 병장이 내 BOQ(장교독신숙소)를 지어주겠다고 나섰다.

그들은 못 한 동강도 없이 야전삽과 톱만으로 뗏장을 떠다 사방 벽을 쌓고, 산에서 나무를 베다가 대들보와 서까레로 쓴 뒤 그 위에다가 마을에서 얻어온 짚으로 이영을 엮어 지붕을 덮었다. 아침에 시작한 작업이 그날 해질 무렵에 완성되었다. 나는 전령에게 막걸리를 사오게 하여 조촐한 입주식을 했다.

비록 마소의 우리와 흡사하지만 그래도 낮이면 단잠을 이룰 수 있는 내 BOQ였다. 소대원들의 수고가 눈물겹도록 고마웠다.

유 상병은 자기 고장에서 숯을 많이 구웠던 탓으로, 부대 옆 도토리나무를 베다가 숯도 구웠다. 그 숯으로 전령 오 일병은 내가 귀대할 때면 주전자에 물을 펄펄 끓여놓았다. 야간근무에서 돌아와 그 끓는 물에 타먹는 커피 맛이란…. 

전방 소총소대장 근무여건은 매우 열악하지만 소대원들로부터 극진한 사랑을 받았다. 결코 후방 근무에서는 도저히 맛볼 수 없는 뜨거운 전우애가 있었다.

나는 지금도 군에서 전방 소총소대장으로 복무한 것과 교단에서 평생 평교사로 근무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나는 군에서는 소대원을, 학교에서는 제자들을 아우나 자식처럼 정말로 사랑했다. 그걸 가장 보람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밤중의 비상

부대 이동 일주일이 지난 무렵 폭우를 동반한 태풍이 이틀 동안 중부지방을 휩쓸고 지나갔다. 한강 유역은 때 아닌 물난리를 치렀다. 상급부대에서는 악천후일수록 간첩이나 무장공비의 침투가 심하다고, 연일 '경계근무철저' 전통(전언통신문)을 뒤틀린 레코드판처럼 내려 보냈다.

우기라고, 녹음기라고, 안개가 짙다고, 그믐께라고 연일 경계철저 전통이다. 하기는 경계근무에는 방심이 있을 수 없다. '작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받을 수 있어도 경계근무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경계근무의 금과옥조와 같은 말을 귀에 익도록 교육받았다.

내 당직근무일이었다. 그날은 큰물이 진 다음 날 그믐께로 인천만의 간만 차가 가장 심할 때다. 만조 때는 바닷물이 역류하기에 북(北)의 진지에서 고무보트를 띄우면 30여 분 만에 우리 지역 강안에 닿을 수 있을 정도로 물살이 몹시 세찼다.

초저녁부터 '경계근무 철저' 전통을 받았다. 자정까지 잔뜩 긴장했으나 별 다른 상황이 없었다. 상황실 야전침대에서 트랜지스터라디오를 켜 놓은 채 비스듬히 누워 가수(假睡) 상태에 있는데 상황실 당번병이 잠을 깨웠다. 새벽 2시 30분이었다.

화기소대 경계 지역인 4초소에서 신호음과 아울러 어댑터에 불빛이 번쩍거렸다. 괴물체를 발견했다는 신호였다. 일단 상황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초소와 상황실 간은 음성으로 교신할 수 없었다. 경계근무에는 무엇보다 정숙이 생명이기 때문이다.

'비상 출동할 테니 계속 주시하라'는 신호로 답신을 보낸 후, 중대장 BOQ 그리고 대대 상황실에 보고를 했다. 나는 당직하사를 시켜 각 소대 잔류 병력에게 비상을 걸었다. 그새 중대장이 허겁지겁 달려 왔다.

"4초소에서 괴물체가 나타났다는 보고입니다."
"좋았어. 일망타진하자고."

헬기 타고 고향 앞으로다

중대장의 얼굴에는 활기가 돌았다. 무장간첩을 잡으면 이즈음의 로또복권처럼 횡재였다. 1계급 특진에 포상금, 포상휴가 등 평시에는 좀체로 얻을 수 없는 행운이었다. 날이 밝으면 사단장, 연대장, 대대장이 달려와서 찬사와 포옹과 악수를 아끼지 않을 것이다.

얼마 전 이웃 사단에서 DMZ철책을 뚫고 침투하려던 무장간첩을 사살한 병사가 영웅의 대접을 받으면서 사단장 전속 헬기로 고향에 돌아갔다. 그는 고향에서 성대한 군민(郡民) 환영대회까지 치렀다. 각 소대 잔류병들이 단잠에서 깨어나 신속한 동작으로 연병장에 집결했다.

"비상! 4초소 괴물체 발견! 출동 준비!"   

병기계가 탄약고에서 실탄과 수류탄을 날아왔다.

"어메 좋은 것. 내가 때려잡아 헬기 타고 고향 앞으로다."

순천 출신 유 하사가 떠벌이자 월남에서 갓 돌아온 화기소대 문 중사가 경고했다.

"입 닥쳐! 주둥아리 함부로 놀리다가 고향은커녕 먼저 황천행이다."

그는 상대가 결코 만만치 않음을 실전으로 알고 있었다. 모두들 기본 실탄과 수류탄 2개씩을 지급받았다. 자대 근무자만 남기고 전 중대원이 둑 아랫길 4초소로 출동했다. 먹빛 같은 야음이었다.

4초소에 이르자 초병은 야간조준경으로 계속 괴물체를 쫓고 있었다. 나도 야간조준경으로 전방을 응시하자 강물 위에 괴물체가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이미 각 초소에는 견인줄로 전달돼 초병들이 잔뜩 긴장한 채 중대장의 사격 명령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 괴물체가 강안으로 기어오르고 있었다. 그러자 중대장이 명령을 내렸다.

"사격 개시!"

서치라이트를 비추고 조명탄을 발사했다. 각 초소마다 총구가 불을 뿜었다. 수류탄, 크레모아도 터졌다. 그새 강 건너 김포 쪽 해병여단과도 교신이 돼 그쪽에서도 조명탄을 지원했다. 콩을 볶는 듯 요란한 소리와 함께 시간이 30여 분 지났다. 괴물체는 마침내 강바닥에 나뒹굴었다.

"사격 그만!"

어느 송아지의 횡사

중대장의 사격 중지 명령에 강둑에는 다시 정적이 감돌았다. 역류하는 바닷물 소리만 세찼다. 조명 발사대에서는 계속 조명탄을 쏟아 부었다. 괴물체는 총알을 여러 방 맞았는지 꿈틀도 안 했다. 화기소대 문 중사가 일개 분대를 이끌고 강가 괴물체로 접근했다. 그의 보고에 따르면, 괴물체는 사람이 아니라 송아지라고 했다.

그 당시 한강 하류 산남리부대의 조명탄 발사대 옆에서 문 중사(오른쪽)와 기자(1970. 5.)
 그 당시 한강 하류 산남리부대의 조명탄 발사대 옆에서 문 중사(오른쪽)와 기자(1970. 5.)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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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농가의 송아지가 물길에 휩쓸려 떠내려가던 중 살겠다고 강둑으로 기어오르다 총알 세례를 된통 맞고 쓰러진 것이었다.

"씨팔, 헬기 타고 휴가 가긴 다 틀려뿌렸당게."

4초소 근무자인 벌교 출신 조 상병이 투덜거렸다.

"아, 오늘 저녁에는 송아지 고기 맛 좀 보겠군 그래."
"좋아들 하지 마. 우리 차례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여."

문 중사가 조 상병의 말에 면박을 줬다. 그날 밤 비상은 싱겁게 끝났다. 태산명동(泰山鳴動)에 송아지 한 마리였다.

이튿날 아침 대대장은 식전 댓바람에 달려와서 현장을 확인하고 송아지를 마대에 담아 스리쿼터에 싣고 갔다. 며칠 후 4초소 두 초병은 보름 포상 휴가증을 받고 고향으로 떠났다.

(* 다음 글에 계속)


태그:#어느 해방둥이의 삶과 꿈, #군대, #포상휴가, #송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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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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