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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잔디에 우레탄 트랙, 우레탄 농구장, 탄성고무 놀이터까지 갖춘 완전 화학물질 덩어리로 만들어진 초등학교 운동장.
 인조잔디에 우레탄 트랙, 우레탄 농구장, 탄성고무 놀이터까지 갖춘 완전 화학물질 덩어리로 만들어진 초등학교 운동장.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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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들판이 물결치는 한적한 도심 외곽. 벼가 익어가고 있었다. 학교와 논 사이에 있는 도로 위를 자동차가 이따금 지나갔다. 숨이 확 트이는 시원한 마을이다. 수원 중심가에서 자동차로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A 초등학교 전경이다.

'어째서 이런 아름다운 들판을 곁에 둔 학교가 화학물질 범벅인 인조잔디 운동장을 꾸몄을까!'

매캐한 고무 냄새를 맡으며 든 의문이다. 인조잔디 운동장에 우레탄 육상트랙과 우레탄 농구장, 거기에 탄성 고무 놀이터까지 갖췄으니, 거의 완벽한 화학물질 덩어리인 셈이다.

운동장은 그야말로 폐허였다. 파란색 파일(인조잔디)이 빛을 잃어 운동장 전체가 검을 빛을 띠었다. 폐타이어 조각으로 만든 충진제가 검버섯처럼 운동장 곳곳에 피어 있어 보기만 해도 숨이 막혔다. 냄새는 또 어떻고! 불과 30분가량 서 있는데 잔기침이 나왔다. 목이 간질간질한 게 무엇인가 들어오지 말아야 할 게 내 목을 통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운동장 곳곳에 출입금지 표시가 돼 있었다. 알고 보니 아이들은 올초부터 운동장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유해 물질이 검출돼 이미 오래전에 흙 운동장으로 교체하기로 했지만, 예산 지원이 늦어져 공사를 못했기 때문이다. 

이 학교를 방문한 것은 지난 9일 오후다. 인조잔디 운동장 반대 운동을 하는 윤국재 전국 교직원 노동조합 참교육 연구소 선임 연구원과 이 학교에 근무하는 이윤정 선생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대기 온도 32℃일 때 인조잔디 표면 온도 무려 68℃

인조잔디보다 폐타이어 조각이 더 많아 보이는 초등학교 운동장.
 인조잔디보다 폐타이어 조각이 더 많아 보이는 초등학교 운동장.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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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타이어 조각이 검버섯처럼 피어있는 초등학교 운동장.
 폐타이어 조각이 검버섯처럼 피어있는 초등학교 운동장.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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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 같은 유해 물질 논란을 제쳐 두고라도, 초등학교 환경에는 여러 가지로 맞지 않아요. 1학년 달팽이 놀이 수업을 하려면 달팽이를 운동장에 그려야 하고, 전통 놀이인 사방치기를 할 때도 운동장에 쓱쓱 그려야 하는데, 그런 것을 전혀 할 수 없어요."

윤 선생과 이 선생이 입을 모아 강조한 말이다. 이들은 이어 "무더운 여름철에는 인조잔디 표면 온도가 너무 높아 아예 사용 할 수 없고, 냄새도 지독하다"고 하소연했다.

이 말은 사실이다. 실제로 한 방송사 보도에 따르면, 여름철 오전 10시 무렵 대기 온도가 29℃일 때 인조잔디 표면 온도는 45℃로 무척 뜨거웠다. 오후 2시 대기 온도가 32℃일 때 인조잔디 표면 온도는 무려 68℃에 이르렀다. 이때 운동하다가 미끄러지면 마찰 온도가 71℃ 정도가 되어 피부 피하지방층까지 손상되는 3도 화상을 입을 수 있다고 한다.

이들은, 설치만 해 놓고 보수를 전혀 하지 않은 점도 지적했다. 이 선생은 "2011년에 이 학교에 왔는데, 지금까지 보수하는 것을 한 번도 본 일이 없다"라고 말했고, 윤 선생은 "유지보수가 안 되다 보니, 파일(인조잔디) 속에 유리 조각이 그대로 박혀 있는 경우도 있어, 큰 부상으로 이어지기도 했다"라고 설명했다.

유지보수가 되지 않는 까닭은, 안타깝게도 유지보수를 할 돈이 없기 때문이다. 윤 선생 말에 따르면 정부는 인조잔디를 학교 운동장에 깔기만 했지 유지보수비나 재시공비는 전혀 지원하지 않았다. 윤 선생은 10여 년 전 인조잔디가 학교 운동장에 깔리기 시작할 때부터 반대운동을 한 사람이다.

"인조잔디 수명이 다하는 7년 정도가 지나면 재시공을 해야 하는데, 그 비용이 약 2억 원 정도 듭니다. 그러려면 1년에 3000만 원 정도를 모아야 하는데 학교 여건상 어림도 없는 일이에요. 사정이 이러니, 보수는 어림도 없고요. 보수비용도 연간 얼마나 드는지 알 수가 없어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죠. 보수를 못하다 보니 실제 수명이 5년도 못 되는 경우가 많아요. 대책 없이 깔아놓기만 한 겁니다."

6억 들여 설치, 제대로 쓰지도 못하다가 1억 3천 들여 복구

이 학교는 올 초부터 운동장 사용을 금지했다.
 이 학교는 올 초부터 운동장 사용을 금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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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웃음 소리가 사라진 초등학교 운동장.
 아이들 웃음 소리가 사라진 초등학교 운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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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선생은 유해성 논란과 함께 재시공 비용 문제 등이 발생할 것이라 예상하고 일찌감치 반대 운동을 벌였다고 한다. 그러나 반대하는 세력이 워낙 소수여서 성공하지 못했다. 그에 비해 찬성하는 세력은 무척 힘이 셌다. 정치인이나 교장들이 앞장서 추진했다고 한다.

"정치인들이 앞장섰어요. 여야를 막론하고 모두 인조잔디를 치적으로 내세웠어요. 시·도 의원에서 국회의원까지 선거 홍보물에 '000학교 운동장 인조잔디 조성'이라고 적었고요. 일부 교장 선생님도 마찬가지였는데, 그분들도 '인조잔디 조성'을 자기 경력에 넣기 위해 안간힘을 썼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교육청 가서 대판 싸우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어요.

반면, 어떤 교장은 축구부가 대회에 나가 우수한 성적을 거둬서 충분히 인조잔디 조성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는데도, 환경이나 재시공 문제를 미리 간파하고는 흙 운동장을 고집하기도 했어요."

이렇게 무분별하게 조성한 인조잔디에서 환경유해물질이 나오면서 아이들이 뛰어놀 수 없는 운동장이 늘었다. 기자가 방문한 곳도 그런 학교다.

올 초부터 이 학교 아이들은 운동장에 발을 들이지 못했다. 경기도교육청은, 우레탄 트랙이나 우레탄 농구장 등에서 유해 물질이 기준치 이상 나온 학교는 운동장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경기도 내 초·중·고 581개 학교가 이런 형편이다.

이런 문제로 예산 낭비도 심하다. 부천 신도시에 있는 한 초등학교는 6억 원을 들여서 인조잔디 운동장을 조성했다가, 유해물질이 검출돼 몇 년 뒤에 1억 3000만 원을 들여 흙 운동장으로 복구했다. 초등학교 운동장 하나에 무려 7억 3000만 원이라는 엄청난 돈을 쏟아부은 것이다.

"인조잔디 걷는다고 하자 아파트값 떨어진다고 반대하기도"

출입금지 표시가 돼 있는 운동장.
 출입금지 표시가 돼 있는 운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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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정 선생은 인조잔디와 우레탄에 대한 동료 교사들 의견을 전했다. 기자를 만나기 직전에 조사했다고 한다.

이 선생 조사에 따르면, 많은 교사가 '보기에 좋고, 먼지가 안 날린다는 것'을 장점으로 꼽았다. 단점으로는 '유해물질 때문에 학생들 건강이 염려된다'는 것을 가장 먼저 꼽았다. 그밖에 '여름철에 너무 뜨겁다'는 점, '고무 조각(폐타이어로 만든 충진제)이 교실에서까지 나돈다'는 것 등을 단점으로 꼽았다. 결론은 대부분 '예전에 있던 흙 운동장이 인조잔디보다 좋다'였다.

상황이 이런데도 인조잔디와 우레탄을 고집하는 학교가 많은 게 현실이다. 그 원인을 두 사람(윤 선생과 이 선생) 모두 '아직도 인조잔디에 대한 환상을 버리지 못한 사람이 많기 때문'이라 설명했다.

"인조잔디와 우레탄을 걷고 흙 운동장을 만든다고 하면 반대하는 분이 참 많아요. 이 분들 설득하기가 만만치 않아요. 아파트값 떨어진다고, 인근 주민이 반대해서 애먹은 학교도 있고, 동네 조기 축구회에서 현수막까지 걸고 반대해서 어려웠던 학교도 있어요. 1년 넘게 이 분들 설득하느라 애먹은 학교도 있어요. 학교 구성원이 인조잔디와 우레탄을 고집하는 경우도 있고요."

이런 이유 때문인지, 실제로 아직도 우레탄을 고집하는 학교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 운동장 우레탄 트랙에서 뇌 발달에 나쁜 영향을 주며 아이큐를 낮추는 물질로 알려진 납이 검출됐는데도 말이다.

경기도교육청은 최근 KS(한국산업표준) 기준치인 납 90㎎/㎏을 초과해 사용 중지 명령이 내려진 학교 운동장 우레탄 트랙을 걷어내고, 흙이나 천연잔디로 교체하는 방침을 세웠다. 그러나 최초 조사에서 대상 학교 13% 정도만 흙이나 천연잔디 운동장을 원했고, 무려 86%가 우레탄으로 재시공하기를 원했다.

'우레탄 시설 개보수 사업설명회' 등을 개최해 설득 작업을 벌이고 난 뒤에는 흙 같은 친환경 운동장을 원하는 비율이 65%로 대폭 상승했다. 하지만, 여전히 35%는 우레탄 재시공을 원했다.

경기도뿐만 아니라, 전국 학교가 우레탄 유해성 문제로 몸살이다. 경기도교육청에 따르면 유해물질이 검출돼 운동장 시설을 개·보수해야 하는 학교 중 약 50% 정도가 우레탄 재시공을 원하고 있다.

아이들 웃음소리가 사라진 운동장은 황량했다. '유해성물질이 검출돼 출입을 금지한다'는 안내판과 제멋대로 나뒹구는 쓰레기가 아이들이 떠난 운동장을 지켰다.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 그릇된 정책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를 운동장은 말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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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인조잔디, #우레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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