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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한 쇼핑몰 실내에서 사육 중인 북극곰.  체질에 맞지 않는 환경 속에서 관광객의 셀카 배경으로 활용되는 북극곰이 힘없이 누워있다.
 중국의 한 쇼핑몰 실내에서 사육 중인 북극곰. 체질에 맞지 않는 환경 속에서 관광객의 셀카 배경으로 활용되는 북극곰이 힘없이 누워있다.
ⓒ Animals 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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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전국을 용광로처럼 달군 기록적인 폭염은 사람뿐 아니라 동물들에게도 힘겨웠다. 더위에 폐사한 농장동물의 수는 424만 마리에 달한다고 한다.

한국은 뚜렷한 사계절이 있어 아름답다고 하지만, 우리나라의 무더운 여름철이 유독 반갑지 않은 동물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북극곰이다. 여름이면 뉴스에서는 어김없이 '동물원 동물들의 피서법'이라며 목욕탕 같은 수조에 몸을 담그고 얼음을 부수어 먹는 곰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영하 40도의 기온에 적응하도록 태어난 북극곰에게 영상 30도가 넘는 높은 온도와 습도는 얼린 과일 몇 개로 견디기에는 가혹하리만큼 고통스럽다.

22년 동안 더위와 싸우다 죽은 북극곰

지난 7월, '세계에서 가장 슬픈 북극곰'이라고 불렸던 아르헨티나 멘도자 동물원의 '아르투로(Arturo)'가 세상을 떠났다. 아르투로는 1985년 미국 뉴욕 주 버펄로 동물원에서 태어났다. 동물원에서는 '아서(Arthur)'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10개월이 되었을 때, 아서는 캘리포니아 주 프레스노의 동물원으로 팔려가게 되었다.

캘리포니아 남부의 더운 날씨 때문에 아서의 몸은 항상 녹조로 덮여있었다. 북극곰의 몸을 덮고 있는 보호털은 투명한 유리관 같은 구조로 되어 있어, 덥고 습한 기후에서는 털 안에 녹조류가 자라게 된다. 1993년 여덟 살이 되던 해, 아서는 아르헨티나의 멘도자 동물원에 기증되었다. 400킬로그램이 넘도록 자란 아서에게 프레스노 동물원의 사육장은 너무 작았기 때문이다. 멘도자 동물원은 아서의 이름을 스페인식 이름인 '아르투로(Arturo)'로 개명했다.

아르투로는 곧 '페루자'라는 이름의 암컷 북극곰과 새끼를 가졌지만 일 년도 안 되어 죽고 말았다. 동물원에서는 매년 아르투로와 페루자가 새끼를 낳도록 시도했지만, 다섯 마리의 새끼들 중 한 마리도 살아남지 못했다. 2012년, 페루자는 서른 한 살의 나이로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때부터 아르투로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북극곰'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40도가 넘는 아르헨티나의 날씨는 아르투로에게는 고문과도 같았다. 콘크리트로 된 사육장에는 헤엄은 고사하고 몸을 담글 수도 없는 50cm 깊이의 수조가 있었다. 단조롭고, 덥고, 외로운 사육장 안에서, 아르투로는 무기력하게 누워있거나 머리를 흔드는 정형행동을 반복하는 모습을 보였다.

마치 곰 가죽으로 만든 양탄자처럼 바닥에 쓰러져있는 날이 많아졌다. 기력은 점점 쇠약해졌고, 시력을 잃었으며, 식욕감소로 체중도 눈에 띄게 줄었다. 환경보호단체 그린피스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은 기온이 낮은 캐나다 위니픽의 동물원으로 아르투로를 이동시킬 것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세계에서 5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청원했음에도 불구하고, 멘도자 동물원은 아르투로가 거의 1만 킬로미터에 가까운 거리를 이동하기 위한 마취를 견디기에는 너무 늙었다며 이송을 거부했다. 지난달인 7월, 아르투로는 결국 무더운 아르헨티나에서 22년을 더위와 싸우다 눈을 감았다. 동물원이 밝힌 사인은 '혈액순환 불균형'이었다,

2012년 부에노스아이레스 동물원의 북극곰 '위너'가 폭염으로 죽은 지 4년만이었다. 아르투로는 아르헨티나에 살았던 마지막 북극곰이 되었다.

단조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동물원 북극곰

영하 40도의 야생에서 생활하는 북극곰은 동물원의 단조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다.
 영하 40도의 야생에서 생활하는 북극곰은 동물원의 단조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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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은 코끼리, 유인원, 돌고래와 함께 인공적인 시설에서 사육하기에 가장 부적절한 야생동물로 꼽힌다. 광대하고 다양한 서식 환경에서 먼 거리를 이동하며 생존하는 습성이 있는 북극곰은 단조롭고 좁은 환경에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

감금 상태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의미 없이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상동증이나 사육장 안을 반복적으로 왔다 갔다 하는 행동(Pacing, 페이싱), 반복적으로 수영을 계속하는 행동, 머리를 좌우로 흔드는 행동, 혀로 핥거나 이빨을 가는 행동 등 다양한 비정상행동의 원인이 된다.

2003년 옥스퍼드 대학의 연구에서는 생태적으로 서식하는 공간의 크기가 크고 먼 거리를 이동하는 습성을 가진 동물일수록 동물원에서 사육될 경우 건강에 악역향을 미치고 비정상 행동을 보이는 정도가 심하다는 사실을 밝혔다.

평균적으로 동물원 안의 북극곰 사육 공간은 야생에서 북극곰이 생활하는 공간의 백만분의 일 크기다. 연구에 따르면 동물원에서 사육되는 북극곰의 일부는 하루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시간 동안 정형행동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5년 싱가폴 동물원 북극곰 행동을 분석한 연구에서는 깨어있는 시간의 64.5퍼센트를 정형행동을 보였으며, 하루의 3분의 1에 달하는 시간 동안 헉헉거리는 모습이 관찰되었다.

영국 동물원의 북극곰 행동을 조사한 연구에서는 정형행동은 사육장의 구조와 크기와 크게 상관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면적이 넓고 바위와 층 등을 조성한 사육장에서 사육되는 북극곰도 그렇지 않은 동물들과 비슷한 수준의 정형행동을 보였다.

또 다른 '가장 슬픈 북극곰'이 나타나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북극곰'이었던 아르투로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또 다시 '세상에서 가장 슬픈 북극곰'이 나타났다. 이번에는 중국 광저우의 한 쇼핑센터였다. 쇼핑센터 내 아쿠아리움에서 사육되는 북극곰과 불곰 혼종인 '피자'는 놀랍게도 관람객의 '셀카' 배경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피자가 살고 있는 콘크리트 사육장은 놀라울 정도로 좁을 뿐 아니라, 관람객이 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 좋게 사방이 투명한 벽으로 되어있다. 영상 속에서 다리까지 절고 있는 북극곰은 하루 종일 벽을 두들기는 사람들을 향해 '이제는 제발 그만 좀 하라'는 듯 울부짖었다.

아무리 상업적인 시설이라고 해도, 북극곰 같은 야생동물을 실내에서 사육하는 것은 기이하게 보일 수밖에 없는 비정상적인 사육환경이다. 외국 관광객들이 찍은 사진이 SNS를 통해 알려지면서, 주요 외신에서도 앞 다투어 '유리관 안의 북극곰'에 대해 보도했다, 국제 동물보호단체인 애니멀스 아시아(Animals Asia)에서 시작한 서명운동에는 현재 56만7천명이 넘는 서명이 모였다.

현재 애니멀스 아시아는 아쿠아리움 측과 동물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협상 중이다. 그러나 아쿠아리움 측이 동물들의 사육을 포기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전하고 있다.

통키와 남극이, 한국의 마지막 북극곰 되길

에버랜드에서 사육 중인 북극곰.
 에버랜드에서 사육 중인 북극곰.
ⓒ 유튜브 everlandma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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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는 현재 두 마리의 북극곰이 사육되고 있다. 지난 2012년과 2014년, 어린이대공원의 '얼음이'와 '썰매'가 죽은 뒤로 현재는 대전 오월드의 '남극이'와 에버랜드의 '통키'가 남아있다.

지난 2015년 '동물을 위한 행동' 등 동물보호단체는 에버랜드의 통키가 좁고 단조로운 공간에서 냉방장치도 없이 사육되는 문제점을 지적하며 에버랜드 측에 통키의 사육장을 리모델링할 것을 요구했다. 에버랜드는 사육장에 에어컨을 설치하고, 행동풍부화 훈련을 실시하는 등 시설의 일부를 개선하는 노력을 보였다. 그러나 통키는 여생 동안 아직도 여러 번의 무더위를 견뎌내야 한다.

동물원의 북극곰이 지구 온난화로 멸종위기에 놓인 동물들의 위기를 실감하게 하는 '홍보대사' 역할을 한다는 주장도 있다. 빙하 면적의 감소로 사라져가는 북극곰의 종 보전을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고도 말한다.

그러나 동물원에서 태어나 사냥능력이 없는 북극곰은 야생에서 살아갈 수 없다. 북극곰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기후변화로 서식지가 사라지고 생존을 위협받는 것도 억울한데,  인간이 저지른 잘못을 깨우쳐주기 위해 좁은 사육장에서 평생을 더위와 지루함과 싸우다 죽어야하는 삶을 살라고 강요당하는 것은 정말 공평하지 않은 일이다.

2006년 싱가폴 동물원은 현재 사육하고 있는 북극곰 '이누카'가 노사하면 더 이상 북극곰을 사육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남극이는 서른 살, 통키는 스무 살이라고 한다. 더 나이를 먹고 노환이 찾아오면 이들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북극곰'이 될는지도 모를 일이다. 비록 북극곰의 습성에 더 적합한 곳으로 옮기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이들이 '한국에 살았던 마지막 북극곰'이 되기를 소망한다.


태그:#북극곰 , #동물원 , #야생동물 , #에버랜드 , #통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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