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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저는 일본 후쿠오카에 살고 있는 1급 시각장애인입니다. <오마이뉴스>에 종종 시각장애 관련 기사를 쓰고 있기도 합니다. 제 기사 중에는 안내견과 관련된 기사도 많습니다. 대부분 안내견이 출입거부를 당한 이야기를 기사로 쓰곤 했지요. 그런데 제가 실제로 안내견 출입거부를 당해보니 참 황당하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것도 후쿠오카 내 한인교회에서 당한 일이라 더욱 마음이 아팠죠.

제가 살고 있는 후쿠오카는 우리나라와 아주 가까운 곳입니다. 비행기 타면 1시간, 부산에서 배를 타고도 3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곳입니다. 이곳에는 재일 한국인들이 많이 모여 살고 있습니다. 징용·징병으로 또는 일제 식민지 시절 먹고살 길이 없어 배를 타고 현해탄을 건너온 우리네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들이 모여 삶을 개척한 곳입니다.

아마도 "저 바다만 건너면 내 고향인데..."하는 심정으로 이곳에 모여살지 않았을까요?

후쿠오카 하카다항 인근에는 역사가 오래된 한인교회가 있습니다. 왜 이곳에 교회가 생겼는지 알지는 못하지만 추측은 할 수 있습니다. 나라를 빼앗기고 남의 나라에서 힘들게 삶을 이어나가야 하는 사람들이 고국으로 갈 수 있는 부두 근처에 모여 서로 위안을 주고자 만든 공동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법은 모르고, 교회에는 개를 데려오면 안 됩니다"

그런데 저는 지난 토요일(9월 3일) 이 교회에서 황당한 일을 경험했습니다. 저와 늘 함께 다니던 안내견을 보고 교회 목사님이 "우리 교회에는 개를 데리고 오면 안됩니다"라며 출입을 거부한 것이었습니다.

매주 토요일 두 곳의 장소를 빌려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데, 초등학생인 우리 아이들은 한인교회에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이날도 아이들을 교회에 데려다 주고 다시 아이들을 데려오기 위해 6시쯤에 한글학교로 갔습니다.

참고로 교회는 4층 건물로 1층은 교회 사무실 등이, 2층은 회의실 등 다용도 방들이, 3층은 예배실이 있고 4층은 숙박 등을 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한글학교는 2층을 사용하고 있고 교회 정문과 달리 별도의 계단과 출입문이 있습니다. 저는 2층 현관에서 신발도 벗지 않은 상태로 아이들의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어떤 남자분이 오시더니 제 안내견을 보시곤 "교회에 개를 데리고 오면 안됩니다"라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이 개는 안내견이고 안내견은 어디든 들어갈 수 있도록 법으로 보장하고 있습니다"라고 설명을 드렸는데도 "저는 법은 모르고요. 우리 교회에서는 개를 데리고 들어오면 안됩니다"라고 같은 말을 하시더군요. 기독교 신자가 아닌 저는 조금 걱정이 되었습니다. 이슬람교등에서는 개를 터부시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기에 혹시 기독교에서도 그런 내용이 있는가 싶어서였습니다.

하네스를 착용하고 있는 안내견. 하네스에는 '맹도견'이란 표시와 '지금은 근무 중'이라고 씌여 있다.
 하네스를 착용하고 있는 안내견. 하네스에는 '맹도견'이란 표시와 '지금은 근무 중'이라고 씌여 있다.
ⓒ 신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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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성경 말씀에 교회에 개가 들어가면 안된다는 말씀이 있습니까?"라고 물었지만 그분은 교회에 개를 데리고 들어오면 안 된다는 말씀만 하시더니 어디론가 가버리셨습니다. 매주 아이들을 한글학교에 보내야 하는 저로서는 난처한 일이었죠.

그래서 교회 사무실이 있는 1층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랬더니 방금 안내견의 출입을 거부한 분이 그 교회 담임목사라고 하시더군요. 2층에서와는 달리 목사님은 다른 교회 신도분과 한글학교 관계자 분이 계셔서 그런지 안내견인줄 몰라서 그랬다는 말씀만 하시더군요.

제가 분명 두 세번 "이 개는 안내견이고 안내견은 법으로 어디든지 갈 수 있다"고 말씀도 드렸고, 당시 안내견은 하네스라는 물건을 착용하고 있었기에 안내견인줄 몰랐다는 목사님의 말씀은 믿기지 않은 이야기였습니다. 왜냐하면 하네스는 안내견 등 전체를 가릴 정도이고 그 하네스에는 '안내견(일본어로는 '맹도견')'이라고 씌여있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목사님은 한사코 "안내견인줄 몰랐다"는 주장만을 펼치시더군요.

오늘 이 교회가 소속된 재일대한기독교회에 문의를 했습니다. 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김병호 목사는 "아직 한인교회가 인권이나 장애인 문제에 그릇된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향후 재일대한기독교회 소속 교회에서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서신 등을 통해 지도와 교육을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단 한 번도 안내견 출입을 저지당한 적이 없었는데...

ㅎ"장애인 안내견을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식당이 적지 않다"는 SBS의 보도
 ㅎ"장애인 안내견을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식당이 적지 않다"는 SBS의 보도
ⓒ SBS 뉴스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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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10년째 일본에 살고 있습니다. 망막색소변성증이란 질환으로 서서히 시력을 잃어가고 있는 1급 시각장애인입니다. 2년전 전철역에서 다리를 헛디뎌 선로로 추락하는 사고를 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갈비뼈와 다리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전철이 역으로 진입할 때 다른 승객이 비상벨을 울려 막아주어 목숨은 겨우 건졌습니다. 그 후 아내와 저는 상의 끝에 안내견을 신청하기로 했고 2015년 10월 1일 래브라도 리트리버 종의 '화이토'라는 잘 생긴 안내견을 분양받았습니다.

안내견과 1년 생활하는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제 활동 범위가 넓어졌습니다.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아이들을 데리고 외출을 자유롭게 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고속버스를 타고 아이들과 야생 돌고래도 보러 가고 온천으로 유명한 뱃부에서 아이들과 함께 온천 여행도 할 수 있었죠. 안내견과 생활한 지 1년 동안 일본에서 한 번도 안내견으로 인해 출입거부를 당한 적이 없었습니다.

다다미방으로 되어있는 온천에서 잘때는 오히려 제가 미안할 정도였습니다. 래브라도 리트리버 종의 털이 많이 빠지는 특성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년 동안 온천, 호텔도, 식당... 그 어디서도 안내견을 데리고 있다는 이유 때문에 싫은 소리 한 마디 들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처음으로 출입거부를 당한 곳이 교회, 특히 한인교회라는 점에서 충격이 컸습니다.

일제시대 탄압과 설움을 받으면서도 서로 의지하고 힘이 되어준 한인교회. 그런데 그곳에서 장애인이란 이유로 안내견을 데리고 왔다는 이유로 출입을 거부당한 것입니다. 외국에 살면 모두 애국자가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한국인이라는 점이 창피할 정도입니다. 예수님은 가난하고 힘든 사람을 위해 자기의 목숨까지 바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의 공간에서 장애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는다면 그곳에 하느님이 계신지 궁금합니다


태그:#시각장애인, #안내견, #후쿠오카, #한국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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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1급 시각장애인으로 이 땅에서 소외된 삶을 살아가는 장애인의 삶과 그 삶에 맞서 분투하는 장애인, 그리고 장애인을 둘러싼 환경을 기사화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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