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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살. 사는 게 힘들었다. 그는 이쪽에도 저쪽에서 속하지 않았다. 그가 대학생으로 살았던 한국 사회는 거리에 나가서 화염병을 던져야 했거나, 도서관에서 세상과 단절한 채 오직 공부만 해야 했다.

그는 분명 한국인임에도 한국에서 늘 소외감을 느꼈다. 이쪽 아니면 저쪽을 선택해야만 하는 사회에서 숨이 막혔다. 그러다 나라를 떠났다. 27년 후, 그는 독일에서 성공한 영화감독이자 한 예술대학의 영화학과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이름은 조성형(50). 그의 첫 다큐멘터리 영화 <풀 메탈 빌리지>는 독일 다큐멘터리 영화 역사상으로도 손에 꼽을 정도로 성공했고, 올해 북한 현지에서 100% 촬영을 한 영화 <북녘의 내 형제 자매들>은 독일 미디어의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연이은 독일 언론 인터뷰로 바쁜 한 해를 보내고 있는 조성형 영화감독을 지난 8월 31일에 만나봤다.

"통일될 때까지 북한 영화만 만들겠다"

<북녘의 내 형제 자매들> 이 상영중인 베를린의 한 극장앞에서  영화 상영 후, 감독과의 대화에서 독일 관객들은 수많은 질문들이 쏟아냈다.
▲ <북녘의 내 형제 자매들> 이 상영중인 베를린의 한 극장앞에서 영화 상영 후, 감독과의 대화에서 독일 관객들은 수많은 질문들이 쏟아냈다.
ⓒ 권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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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단하게 자기소개 해달라.
"한국에서보다 독일에서 더 오래 살고 있는 기록영화감독이고, 독일 예술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영화를 가르치고 있다. 이제 독일 공무원이 되어서 생계 문제는 해결되었다. 예전에는 영화로 먹고 살았는데 이제는 영화로 먹고 살지 않게 되어서 너무 좋다. (웃음) 이제 영화는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것만 골라서 하려고 한다. 그래서 이젠 계속 통일 될 때까지 북한 관련된 영화만 만들기로 결심했다."

- 이번 북한에 관한 신작 <북녘의 내 형제자매들>외에 북한 남자와 동독 여자 연인들 간의 마음 아픈 사랑과 이별을 그린 <사랑과 약혼 그리고 이별>이라는 영화 또한 큰 관심을 받은 걸로 알고 있다. 그 외에 또 어떤 영화를 찍었나?
"제일 첫 번째 찍은 영화이자, 가장 성공한 다큐멘터리 영화로 <풀 메탈 빌리지>가 있다. 독일의 아주 작은 시골 마을에서 독일에서 제일 큰 헤비메탈 락 페스티벌이 열렸다. 그때 세계 곳곳에서 온 낯선 헤비메탈 팬들과 독일의 작은 시골 마을 주민들이 갖고 있는 문화적 차이 때문에 갈등을 겪을 거라 생각했는데,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갈등을 하지 않고 재밌게 지내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 부분에서 내가 매혹된 것은 서로 아주 상이한 두 문화가 만나서 갈등하지 않고 평화롭게 공존하는 모습이었다. 그것이 너무나도 신기했다. 우리 남한에서는 (북한과의 관계를 떠나서) 남한 내에서만 의견만 달라도 서로 못 죽여서 난리 아닌가, 토론도 잘 안 되지 않는가? 그런데 독일의 시골마을에서 갈등 없이 어떻게 공존이 가능한지가 궁금했다."

- 이번 신작 <북녘의 내 형제자매들>이 독일 전역에서 개봉했다. 다큐멘터리 영화로는 드물게 독일 언론들로부터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영화를 바라보는 독일 언론과 독일 관객들의 반응은 어떠한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독일 관객들의 반응은 의외로 좋다. 독일 언론들의 반응도 굉장히 좋다. 독일 '오늘의 저널' (독일 제 2 국영방송 대표 뉴스프로그램)에서 영화 소개를 잘 하지 않는데, 이번 <북녘의 내 형제자매들>은 뉴스에서 소개를 해주었다.

대부분 긍정적인 반응이지만, 소수의 부정적인 반응도 물론 있다. 놀라운 것은 독일 관객들이 내가 원하는 대로 영화를 봐주고 있는 것 같다. 감독으로 관객들을 만날 때 '이 영화를 이렇게 봐 달라'고 제시하진 않지만, 다양한 시각으로 봐주는 것 같다.

이 영화가 재밌는 것은 보는 이들에 따라 다르게 해석한다는 점이다. 독일 동독 출신의 관객들은 자신들의 동독 시대를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 동독 출신 친구는 이 영화를 보고 영화 속에 나오는 북한 사람들과 똑같은 동독 사람들을 알고 있다고 했다. 또 대기업에서 일한다는 한 독일 관객은, 이 영화가 대기업의 구조를 보여주는 것 같다고 이야기 했다. 이런 다양한 해석이 나는 매우 흥미롭다."

"북한 가서 영화 찍자" 독일 공영방송의 제안

조성형감독 사진제공 조성형감독, 독일영화 스텝들 그리고 <북녘의 내 형제자매들>의 주인공으로 나온 북한 가족들과 함께 국가유공자 묘지에서 찍은 사진
▲ 조성형감독 사진제공 조성형감독, 독일영화 스텝들 그리고 <북녘의 내 형제자매들>의 주인공으로 나온 북한 가족들과 함께 국가유공자 묘지에서 찍은 사진
ⓒ 조성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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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영화 <북녘의 내 형제자매들>을 기획하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이번 영화 바로 전 <사랑, 약혼, 이별>을 찍었을 때, 나는 직접 북한에 가서 찍지는 못했다. 그 때는 내가 직접 북한에 가서 영화 찍을 생각을 전혀 못했었다. 나는 남한 사람인데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겠나.

그때 공동 제작을 하려고 한 독일 제1 공영 방송에서 내가 북한 가서 영화를 찍을 경우, 엄청난 돈을 가지고 합작을 하겠다고 제안이 왔었다. 그런데 반드시 내가 북한에서 영화를 찍을 경우에만 합작을 하고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합작을 안 하겠다고 하더라. 그때 우리(영화 제작사)가 자금난으로 영화를 찍을지 말지 기로에 있었다.

그래서 '그럼 내가 해보겠다'고 했다. 국적을 바꾸고 북측과 연락했다. 처음에는 북측에서 나와 대화하는 것도 꺼려했다. 독일 제작자가 북측과 대화할 때 내 이름을 언급했지만 북측에서는 내 이름만 빼고 없는 사람처럼 대화했다. 그러다가 국적을 바꾸고 처음 평양에 갔을 때, 북측 사람들이 좀 피하더라, 아무래도 남한 출신이다 보니……."

- 그렇다면 현재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독일 국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 영화가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독일 국적을 지녔다고 북에서 영화를 찍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없다. 영화를 진행할 때 어떤 어려움이 존재했나?
"처음에는 헤어졌던 북한, 동독 연인들의 상봉을 그리는 영화를 북측에 제안했다. 북측에서 딱 잘라서 안 된다고 하더라. 실망을 많이 한 채로 독일로 돌아와서 제작투자를 하기로 했던 방송국에 이 이야기를 했더니 빠지겠다고 하더라.

그러다 몇 달 뒤, 방송국에서 '북한 인민들의 수령에 대한 사랑'을 찍어보자고 제안했다. 그 사람들이 왜 그러는지 찍어보라는 것이었다. 나는 생각도 못해본 것이었다. 그런데 '독일 방송국'에서 그런 제안을 한 것이었다. 이 제안을 다시 북측에 하니, 그 쪽에서는 이 주제는 너무 '정치적'이라며 거절했다. 그러다 우리가 정말 궁금했던 것은 '인민들의 일상생활'이었기 때문에 이 주제로 찍어보겠다고 제안을 하니 북측이 받아들였다. 

주인공은 우리가 직접 뽑지 못했다. 장소도 설정할 수 없었다. 그것은 다른 영화 어느 팀이 와도 똑같다. 영화 제작의 기본적인 것도 진행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사전 조사만하기 위해 북을 세번이나 왔다 갔다 했다. 그랬더니 북측 사람들도 내게 신뢰를 갖기 시작했다.

그런데 영화를 촬영하는 동안 안내하는 사람들이 지켜보는 것이 참 힘들었다. 그것이 정말 부담스러웠다. 개인적으로 촬영할 때 사람들이 많은 것을 싫어하는데, 북에서는 안내원을 비롯하여 지켜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인터뷰하는 북측 사람들이 안내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연스러운 이야기를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것 때문에 북측 담당자와 정말 많은 토론을 했다. 때론 협박 같은 것도 하며 좀 더 자연스러운 촬영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결국 설득했다. 아마 우리가 안내원 없이 북에서 인터뷰 장면을 촬영한 첫 번째 영화팀이었을 것이다."

- 북한에 대한 주제는 그것이 무엇이든 한국 사회에서 굉장히 민감한 소재다. 아직도 '빨갱이'라는 주홍글씨뿐만이 아니라, 이제 '종북'이라는 프레임의 사상 검열까지 횡행한다. 북한에 관련한 영화를 찍는다는 이유로 이러한 비판을 받아본 적이 있는가?
"북한 관련 인권단체에 일한다는 한 탈북자는 영화를 보지도 않고 북한 선동영화라며 굉장히 흥분했다. 그분 말로는 북한 사람들과 북한 정권은 구분할 수 없다고 하더라. 이러한 반응들에 나는 아주 놀랐다. 대다수 북한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북한에 사는 사람들과 북한 정권을 분리하지 않는다. 이 영화는 북한 정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북한에서 '사는 사람들'을 보여주고 있다."

- 한국과 외신 미디어가 북한을 바라보는 시선은 대부분 비판적이다. 북한 관련 영화 역시 비판적인 시각이 많다. 이번 영화 <북녘의 내 형제 자매들>은 그러한 영화들과 어떠한 차이가 있나?
"개인적으로 북한을 다룬 많은 영화들이 북한을 '비판적'으로 보는 것 같지 않다. '비판'이라는 것은 생산적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닌가. 현재 북한 관련 많은 영화들은 비판적이라기보다 오히려 북한을 우스꽝스럽게 보거나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다. 그러한 영화들은 우리가 북한에 갖고 있는 선입견들만 재확인할 뿐이었다.

내가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주 '일상적인 것'들이다.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직업은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농부들은 일주일에 며칠 일하는지, 공장의 노동자들은 하루에 몇 시간 일을 하는지, 군대에서의 삶은 어떠한지 말이다. 북한에 대해 지금까지 알지 못한 새로운 것들, 그것이 나에게는 소중했다. 나는 비판적이라기보다, 그저 따뜻한 시선으로 사람 대 사람으로 그들을 보려고 했다. 직접 만나보니, 다 정이 가는 순박한 사람이더라."

포기한 한국 국적, 그리고 새로운 정체성

독일 제2 공영 방송국 ZDF 웹페이지 화면 캡처  독일 제 2 공영방송 '오늘의 저널'에 소개된 조성형감독 영화 <북녘의 내 형제자매들>
▲ 독일 제2 공영 방송국 ZDF 웹페이지 화면 캡처 독일 제 2 공영방송 '오늘의 저널'에 소개된 조성형감독 영화 <북녘의 내 형제자매들>
ⓒ Z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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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에서 북한에 처음 간 것은 언제였나? 이 영화를 찍기 전과 찍은 후 스스로 생각이 달라진 점이 있는가?
"(독일 국적을 취득한 뒤) 2012년 평양영화제 때 처음 가게 되었다. 북한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무서워 죽는 줄 알았다. 워낙 고립되어있는 나라 아닌가, 내가 배운 것은 이승복의 '공산당이 싫어요'나 북한사람들의 얼굴이 빨갛고, 뿔이 나고 그런 이미지 아닌가. 그런데 공항에 딱 내리는 순간 무서운 것이 없어졌다. 북쪽 사람들을 보니 옛날 나의 70년대의 남한고향 사람들을 보는 것 같았다.

북한에서 직접 사람들을 만나보니 무의식에 잠재된 막연한 공포감이 사라지고 '이들도 사람이다'라는 것을 느꼈다. 우리와 너무 비슷한 사람들. 자본주의에 오염이 덜 돼서 오히려 순진한 사람들이었다.(웃음) 북한사람들을 우리는 모두 '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 사람들이 무슨 죄가 있겠나. 단지 북한에서 태어난 것 밖에. 태어난 곳에서 살아가려고 한 것 밖에 무엇이 있나."

- 우리가 태어날 때 나라를 선택할 수 없는 것처럼, 한국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한국에서 태어난 것처럼 말인가?
"그렇다. 태어날 때 나라를 선택할 수 있나? 없다. 북한 사람들 또한 그들이 선택해서 북한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지 않는가. 그곳에서 내가 겪은 한국의 70년대가 많이 생각났다.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이런 거 외우며 학교 다녔던 때 말이다.

북쪽 사람들이 '수령을 위해' 어쩌고저쩌고 하는 모습이 우리 박통(박정희 대통령) 때 모습과 비슷하더라. 아침에 동사무소에서 종이 울리고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이런 음악이 나오면 동네 주민들이 나와 청소를 하고, 주민들 동원해서 이것저것 많이 하는 모습을 북한에서는 아직도 볼 수 있었다."

- 이번 영화 <북녘의 내 형제자매들>은 독일에서 성공적이라 할 수 있다. 만약 한국에서 상영되었다면 관객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 것 같나?
"이 영화는 사람마다 해석하는 것이 상이하다. 이 영화 때문에 빨갱이냐, 미친 거 아니냐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북한에서조차 상영을 거부 당했다. 반대로 진짜 북한을 찬양하는 사람들은 북한 사회를 이렇게 보여주는 것을 불편해 할 것이다. 음과 양을 모두 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가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 조성형 감독이 만약 남한 사회에서 계속 머물렀다면 이런 영화를 제작할 수 있었을까? 
"에이,(웃음) 한국에 있었다면 영화를 전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삶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수도 있다. 다수와 생각이 다른 사람, 조금 다른 사람은 살기 어려운 사회다. 일방통행이 아니라 샛길로 빠져서는 먹고 살기 어려운 사회 아닌가. 자신들과 다른 것을 견디지 못하는 사회 아닌가. 한국에서 살면서 이해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주변인이 되는 것을 견딜 수 없어서 독일로 떠났다.

독일에서 한국인 뿌리를 가지고 살다보니 독일도 나의 '현재'의 고향이 되었다. 그런 뒤부터 재밌는 것은  남한도 나의 과거 고향이고, 북한도 나의 과거 고향이더라. 북한이 남한과 대치하는 적대적인 국가로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떠나 온 장소, 고향 중의 하나 또는 일부로 느껴진다. 나는 스스로를 독일어로 게잠트 코레아너린 (Gesamt Koreanerin: 종합적 또는 모든 코리아인)이라 생각한다. 나는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남북한이 통일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성형 감독은 '태어난 나라'는 스스로 결정할 수 없었지만, 앞으로 '살 나라'를 스스로 결정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남한과 북한을 바라보는 조성형 감독의 시선이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그가 제 3의 나라를 선택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의 영화 속에는 북한 사람들의 평범한 모습이 나온다. 관객들은 수영장 관리원, 농부, 교사, 화가, 군인, 방직공장 노동자, 축구선수를 꿈꾸는 어린이 등 지극히 평범한 얼굴을 스크린으로 마주볼 수 있다. 우리는 언제쯤 조성형 감독의 영화 제목처럼 <북녘의 내 형제자매들>을 만날 수 있을까? 그런 날이 오긴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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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독일해외통신원. 한국에서 공공미술가로 활동하다 현재 독일 베를린에서 대안적이고 확장된 공공미술의 모습을 모색하며 공부하고 있다. 주요관심분야는 예술의 사회적 역할과 사회 공동체안에서의 커뮤니티적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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