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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월리
 오월리
ⓒ 이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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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오월리를 지나고 있었다. 깨달을 오(悟)자가 담긴 길 위에서 우리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이토록 도로길만 죽자고 걷는 건 결코, 우리가 원하는 여행이 아니라는 깨달음.

"버스야!"

더스틴의 외침. 버스? 갓길 끝으로 몸을 붙였다. 걱정스러운 눈으로 돌아본 더스틴이 뒤쪽을 가리켰다. 옆 차선에서도 차가 오고 있었다. 눈앞으로 다가오는 덩치 큰 버스, 그에 맞서 뒤쪽에서 가까워져 오는 회색 승용차. 그 가운데 선 더스틴과 나. 어쩌지. 어쩌나. 도로 벽으로 몸을 바짝 붙였다. 이대로 걷다가는 버스에 부딪힐 것이다. 파리채에 찌그러진 파리처럼 몸 전체를 벽에 철썩 붙여봤다. 뚱뚱한 배낭이 버스에 걸려 내 몸이 질질 끌려가는 장면이 그려졌다. 아 안돼. 이대로는 안돼. 안돼….

덜컹. 눈앞으로 다가온 버스는 큰 차체를 덜컹대더니 갓길 쪽으로 제 몸을 비틀었다. 커다란 버스 바퀴에 딛을 곳을 빼앗긴 내 두 발은 갓길 위에서 아슬아슬 춤을 췄다. 눈을 질끈 감았다. 커다란 엔진 소리가 귓속에서 윙윙대다 멀어졌다.

 무서운 존재, 버스.
 무서운 존재, 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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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강. 풍경은 참으로 좋건만.
 북한강. 풍경은 참으로 좋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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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만 수십번째다. 몸 옆으로 바짝 다가와 재빠르게 지나가는 차에 발 한 짝이 바스러질 위협을 느낀 건. 반나절 내내 도로길만 걸었다. 이제 그만 벗어나고 싶지만 춘천 시내로 가까워질수록 차는 더 많아지고, 빨라질 뿐이다.

우리 쪽에서는 나름, 도로길 위에서 차와 공존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도로길을 걷는 나름의 규칙도 만들었다. 첫째, 달려오는 차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도록 차가 달리는 반대 방향으로 걷는다. 둘째, 차가 보이면 바로 행동을 개시할 수 있도록 앞에서 걷는 더스틴이 나에게 신호를 보낸다. 셋째, 운전자가 우리를 볼 수 있도록, 차가 다가오는 동안 더스틴이 몸을 도로 중앙 쪽으로 뺀다. 그동안 나는 몸을 갓길 안쪽으로 바짝 붙인다.

"저 운전자 지금 우리 보지 않았어? 나랑 눈도 마주친 것 같은데…. 더 빨리 달리네?"


소용없다. 하 쓸모없다. 차 쪽에서 소통할 마음이 없는 것을. 상대방은 알아주지 않는 사랑의 세레모니를 불러대는 기분을 아는가? 달리는 차에게 있어 도보 여행자는 그저 작은 점, 시야를 가로막는 비닐봉지, 괜히 도로를 뛰어다녀 성가시게 하는 동네 개. 뭐 그 비슷한 거다. 속도를 조금 늦춰주는 친절한 운전자도 백 명 중의 한 명꼴로 있긴 하다만, 코너라도 나오면 속도를 늦춰 천천히 돌아가는 대신 갓길에 바짝 붙어 달리는 운전자가 대부분이다.

 과속은 위험
 과속은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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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길따라 도보여행, 삶이 참 피곤하다

"수지! 여기 봐!"

더스틴이 소리쳤다. 설마, 또 뱀? 더스틴은 허벅지 위에 두 손을 받히고 길바닥을 들여다봤다.

"뭐야! 던킨도너츠?"

더스틴이 입을 삐죽였다. 하얀 바탕의 던킨 도너츠 컵 위에는 명랑한 핑크색 빨대가 꽂혀있었다. 우리는 쭈그리고 앉아 스티로폼 컵을 들여다보며 그 안에 담겨 있었을 음료를 상상했다. 차가운 음료였을 거야. 빨간 딸기 스무디? 달달한 모카 프라페? 톡 쏘는 레몬 맛의 파란색 청량음료?

안 해본 사람은 모르겠지만 반나절 뙤약볕 아래서 차들의 공격을 받으며 걷다가, 누군가 차창으로 던져버린 다 마신 던킨도너츠 컵을 발견하는 일, 그리고 그 안에 담겼을 음료를 상상해보는 일은 꽤나 슬프고 처량한 일이다. 그러니까 우리 같은 사람들을 위해 쓰레기 처치가 곤란하다고 달리는 차 밖으로 컵을 던져버리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관두자.

던킨도너츠는 고사하고 찬물이라도 한 잔 얻어 마시려면 네 시간은 더 걸어야 한다. 더스틴이 신호를 보냈다. 차 한 대가 바람인지 매연인지 모를 기분 나쁜 기운을 뿜으며 지나갔다. 북한강 다리 위 피암터널을 걸었다. 차들은 당장에 다리를 부숴버리기라도 할 기세로 터널 전체를 흔들며 지나갔다. 차를 피하려 북한강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배낭 무게에 끌려 북한강에 퐁당 빠져버릴 것 같아 다시 도로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배기관 소리 우렁찬 스포츠카와 오토바이 세 대가 쌩하니 지나갔다. 삶이 참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로가에 버려진 던킨도너츠
 도로가에 버려진 던킨도너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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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월리 버스 정류장 앞에서 일단 정지.
 오월리 버스 정류장 앞에서 일단 정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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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려치워! 무슨 길이 이따위야!"

배낭을 내팽개쳤다. 아니, 내팽개치는 것도 마음대로 하지 못했다. 확 던져버리려던 건데. 내 등에 딱 달라붙은 배낭은 앞 가방을 내려놓은 후에야, 앞으로 이어진 배낭 똑딱이 끈 두 개를 푼 후에야 겨우 나를 놔주었다. 걸음을 멈춘 건 오월리 버스 정류장에서였다. 정류장 왼쪽으로 오월리로 이어지는 작은 오솔길이 나 있었다. 강 따라 이어지는 예쁜 숲길이다. 강 따라 이어지는 예쁜 숲길…. 그래. 이딴 도로가 아니라 이런 길을 걷고 싶었던 건데.

아니 그보다, 내 인생을 내 의지대로 이끌어가고 있다는 기분을 조금이라도 느껴보고 싶었던 건데.

 북한강 위 피암터널
 북한강 위 피암터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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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날 때까지는 그랬다. 여행을 떠나는 건, 떠나겠다는 의지만으로 충분했으니까. 하지만 여행 자체는 달랐다. 이 여행은, 우리의 의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계획 대부분이 틀어졌다. 잠은 민박에서 잘 계획이었다. 중간에 이틀을 쉬었던 사내면, 그리고 문 닫은 민박이 하나 있었던 지촌리 외에는 민박 같은 건 구경도 못 했다. 끼니 대부분은 값싸고 든든한 김밥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어처구니없는 생각이었다. 사람 구경도 힘든 시골길에서 누가 미쳤다고 김밥을 예쁘게 말아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단 말인가?

오월리로 이어지는 강 따라 이어지는 숲길 같은 한적한 오솔길을 걷고 싶었다. 한적한 오솔길이라…. 오솔길을 못 본 건 아니지만 그런 길들은 대부분 마을로 조금 들어가다가 금방 끝나버렸다. 먹고 자고 걷는 기본적인 것들이 틀어졌으니 이외의 것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우리의 원대했던 포부. 논에서 일해보기. 고기잡이배 타보기. 감자 캐기. 닭 잡아보기. 모르는 사람 집에서 하룻밤 얻어 자기. 글쎄. 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원망도 미련도 없다. 사실 몸이 너무 힘들고 배가 고파서 다 잊어버렸다.

 예쁘고 한적한 지촌리 오솔길. 우리가 걷고 싶은 길이다.
 예쁘고 한적한 지촌리 오솔길. 우리가 걷고 싶은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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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촌리 오솔길
 지촌리 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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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다 괜찮다. 식당이 없어도 (아직) 굶어 죽진 않았으니까. 사람 대신 뱀을 만나질 않나, 모르는 사람 집에서 하룻밤을 얻어 자기는 커녕 텐트 칠 장소를 구하는 것도 여의치 않지만 괜찮다. 괜찮지 않은 건 딱 한 가지다. 도로길 위에서 차와 함께 걸어야 한다는 것.

"이젠 버스 정류장까지 침범하네. 도로도 널찍한데 왜 굳이 갓길 쪽으로 바짝 붙어서 달리는 거야? 우리에겐 안전이 달린 문제지만 운전자들은 그냥 핸들만 조금 비틀어 주면 되는 거 아닌가?"
"상관없으니까 그렇겠지. 누가 도로길 걸으라고 했나? 차 다니라고 만든 도로 위를 걷기로 한 건 우리잖아. 운전자들이 우리 생각을 왜 해, 뭐하러 해?"
"상관이 왜 없어? 고속도로 아닌 국도를 걷는 게 불법도 아니고. 혼자 사는 세상이야? 운전자가 있으면 도보 여행자도 있고, 멋모르고 길 건너는 노루도 있고, 기름 떨어져서 갑자기 멈춰버린 차도 있고 그런 거 아냐? 같이 사는 세상이니까, 나 혼자 존재하는 게 아니니까, 신경 쓰고, 배려하고, 존중해 줘야 하는 거 아냐? …. 이건 아니야. 이건 내가 원하는 여행이 아니야. 앞으로도 계속 이런 위험한 도로 길을 걸어야 한다면, 경로를 다시 짜야 할지도 몰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도 몰라."


선두에 서서 몸소 빠르게 닥쳐오는 차들에 맞선 더스틴이다. 내가 느끼는 스트레스의 두세 배는 더 감당할 터이다. 더스틴의 동그란 이마를 따라 맑은 땀이 흘러내렸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라니 참 보람도 없는 땀이다.

길 위로 뻗은 내 두 발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춘천에 가면 정말, 모든 게 나아질 수 있을까.

 지촌리 북한강.
 지촌리 북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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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말이야. 버스 타고 갈래? 20km밖에 안 남았지만, 앞으로도 계속 도로길 일 거 아니야. 네 말대로 정말 경로를 바꿔서 다시 시작할 거라면, 스트레스 받으면서 도로 길을 걸어가는 대신 빨리 가서 머리 식히고 생각해보는 게 낫잖아."

오월리 버스정류장에 주저앉아 있으면 언젠가 버스는 온다. 버스를 타면 춘천 시내까지 30분이면 갈 수 있다. 도로 위에서 끔찍한 차들을 받아내며 서로를 볶고 있을 시간에, 춘천 시내로 가서 즐겁게 닭갈비를 볶고 있을 수 있다.

"…. 아마 그러는 게 좋겠지."


우리의 몸을 덮은 회색 나무 그늘이 바람에 살랑댔다. 버스. 춘천. 나. 우리의 여행. 여행의 시작. 철원에서 시작된 걸음. 목적지는 부산. 까마득했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 그래도 시작했고. 춘천까지 왔어. 이제 조금 말이 되는 것도 같아.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해. 버스…. 지금 버스를 타면, 이제 좀 말이 되기 시작한 우리의 여행이 무너져버리지는 않을까. 다시 일어설 때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돌멩이 하나를 주워 흙바닥을 긁었다.

 지촌리
 지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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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짜로 타? 버스?"
"…. 아니."
"…. 그렇지? 그래도 이왕 가는 거, 걸어가야겠지?"
"일단 춘천까지는 걸어가자. 대신 춘천에 가서 좀 오래 쉬는 거야. 찬찬히 살펴보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 생각해보자."


자식. 미련하고 고집스러운 내 남편. 너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우리라면, 아무리 칭얼대고 화를 내도 그만둔다는 말은 안 할 거라는 걸 알아. 다시 시작하는 한이 있어도 우리는 이 여행을 끝내고 말 테지. 우리는 미련하고 쓸모없지만, 의외로 멋지니까.

우리는 일어나 서로의 바지에 뭍은 흙과 마른 풀을 털어줬다. 묵직한 배낭을 다시 어깨에 걸치고, 샘물을 찾아가는 목마른 짐승처럼 천천히, 어두운 터널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춘천 시내 들어가는 길.
 춘천 시내 들어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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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지촌리에서 춘천 소양강 처녀상까지 걷기

경로 : 지촌리 - 오월리 - 용왕샘터 - 의암호나들길 - 소양강 처녀상
거리 : 약 24.4KM
소요시간 : 약 9.5시간
난이도 : 상 (길고 멀다)
추천 : ★★☆☆☆ (지촌리에서 용왕샘터까지는 차가 많아서 비추천. 자전거길인 의암호나들길은 소양강 풍경을 보며 천천히 걷기 좋다)

경로 소개


지촌리 현지사 - 지촌천  

현지사를 나와 조금 걸으면 읍내가 나온다. 여기서부터 춘천 시내가 나올 때까지 내내 도로길이니 충전을 하고 가길 추천. 마을 끝에 편의점이 있다.

지촌천 - 북한강

걷다보면 지촌천 물줄기가 어느새 거대한 북한강으로 흐르고 있다. 도로길이 북한강을 따라 쭉 이어진다. 산지라 도로가 가뜩이나 좁은데다 화천과 양구로 가는 차들이 몰려 늘 차가 많은 길이다. 차와 함께 걷는 길이라 흡족하진 않다만 널찍하고 잔잔한 북한강 풍경, 눈을 들면 어디에나 보이는 초록색 산들과 맑은 하늘이 그나마 위로가 된다.

오월리 - 용왕샘터

오월리 입구에 버스 정류장이 있다. 굳이 모든 길을 다 걸어가야한다는 의지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여기에서 버스를 타고 춘천 시내로 들어가길 추천한다. 이곳부터 용왕샘터까지는 북한강 위로 난 다리를 따라 걸어야 하는데 그 공포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걸을 수 있는 길은 피암터널 왼쪽, 발 하나 겨우 들어갈 만한 좁은 공간이다. 왼쪽으로는 내 몸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넓고 맑은 북한강이, 오른쪽으로는 터널이 부서져라 내달리는 차들의 행렬이 나를 압박한다.

용왕샘터

충고에도 불구하고 버스를 타지 않고 걸었다면 용왕샘터에서 잠시 쉬고 가자. 감자전, 핫도그 같은 간단한 간식을 판다. 샘터에서 공짜로 물을 떠 갈 수도 있다. 꽤 유명한 샘터인지 춘천 시내에서 대형 물통 여러개를 대동하여 물 뜨러 온 주민들이 많다.

용왕샘터 - 춘천 의암호나들길

춘천 시내에 가까워질 수록 자전거 행렬이 자주 보인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단체로 주문했는지 동일한 검은 가죽 잠바에 두건, 선글라스를 끼고 배기통이 터져라 북한강 도로를 내달리는 오토바이족들도 보인다. 쿨한 오빠들 오토바이 바퀴에 발이나 밟히지 않으려면 정신 똑바로 차리고 갓길 왼쪽으로 바짝 붙어 걷자. 도로길 걷기가 힘들어도 조금만 참자. 곧 자전거길이 나오니까.

춘천 의암호나들길 - 소양강 처녀상


천국에 온 것을 환영한다. 하루종일 도로길을 걸었다면 춘천 의암호나들길은 천국이다. 자전거길로 만들어진 길로 소양강 강가를 따라 춘천 시내까지 이어진다. 잘 정돈된 자전거 도로 오른쪽으로는 평화로운 소양강이 보이고 무엇보다, 차가 단 한 대도 지나다니지 않는다! 둘이 걷는 여행자라면 심지어 나란히 걸을 수도 있다! 이런 길이라면 하루 종일이라도 더 걸을 수 있겠지만 아쉽게도(?) 춘천 시내까지 9km다. 트레일은 공지천까지 이어지는데 거기까지 걸어도 되고, 중간에 빠져나와 시내를 가로질러 소양강 다리를 건너도 된다. 소양강 다리를 건널 때 즈음이면 선물처럼 석양이 붉게 지고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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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한 부부의 히말라야 여행,' '불량한 부부의 불량한 여행 - 인도편'을 썼습니다.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사회를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