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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육아 부모들은 참 바쁘다. 아이가 다닌 곳을 우리는 '터전'이라 부른다. 터전청소도 해야 하고, 선생님들이 교육이나 워크숍 등을 떠나시면 '아마'(아빠, 엄마의 줄임말)도 해야 한다. 여기서 '아마'를 한다는 것은 선생님을 대신해서 아이들이랑 하루 함께 생활(교육활동)하는 것을 말한다.

그 와중에 들살이도 가고, 조합원 교육도 받고, 어린이날 같은 때는 동네 행사도 준비한다. 일 년에 한두 차례 부모교육이 있는데, 이럴 때 다양한 주제에 대해 공부하고 토론을 한다. 이번 교육은 부모들이 자체적으로 마련한 행사였는데 '인권'에 대한 주제에 대해 공부하고 토론하기로 하였다.

사실 '인권'에 대해 조금은 '자각'하고 산다고 나름 자부하고 있기에 교육에 대한 기대감이 크진 않았다. 처음 듣는 얘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새삼스러운 얘기도 아니었다. 그런데 문득 그러한 내 자신의 태도를 접하면서 살짝 당황스런 감정이 생겼다. '아! 이렇게 꼰대가 되어가는 건가, 기성세대가 되어가는 건가'하고 말이다.

"나이에 비해 참 OO하다."
"그 애는 OO하니까 니가 참아라."

어쩌면 우리 일상에서 아주 흔하게 사용하는 언어일 것이다. "나이에 비해 참 기특하네", "나이에 비해 참 아는 것도 많다", "나이에 비해 참 싸가지가 없네(있네)" 이 모든 것이 '나이주의'를 내세운 대표적인 연령차별을 나타내는 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 자각하지 못하고 살았던 것 같다.

"그 애는 OO하니까 니가 참아라"

"그 애는 OO하니까 니가 참아라" 이 문구에 대한 토론이 있었을 때는 약간의 논쟁도 있었다.  사실 누구에 대해 이해를 시키거나, 배려를 해야 하거나, 혹은 갈등을 해결해야 할 때 이런 언어를 자주 사용했었던 것 같다.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인데, 학교에서 속상한 일이 있거나 화나는 일이 있으면 속풀이로 이런 저런 얘기를 쏟아낸다. "엄마 저애가 말이야 ~~~~~~" 그럴 때 난 어떤 반응을 했던가. 그 아이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혹은 조금 안다고 하더라도 미루어 짐작하고선 섣부른 조언을 하기가 일쑤였다.

"그 애는 말이야 OOOO하니까, 니가 이해해."

사실 그 말이 어떤 효과가 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효과는 확인할 길 없지만 화난 아이를 진정시키거나, 이해심이 넓은 아이가 되라는 희망을 품으며 참 많이 남발했던 것 같다. 'OOO하니까'로 재단되는 아이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OOO하니까 우리가 이해하자', '니가 이해해라'는 말 속에 나의 관용만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정작 어떠, 어떠하다고 타인으로부터 규정지어 지는 당사자의 입장에 대해서는 '참으로 무지했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3시간 가까운 인권교육 시간 내내 몇 줄 안 되는 주제어를 던져주고, 긴 모둠 토론의 의미를 하루 이틀 지나고 곱씹으면서 정리가 되어 갔다.

인권에 나름 자각하며 살고 있다고 착각했던 나에게 하나의 물음을 던져 준 것이다. 다 아는 얘기를 또 들어야 하나로 시작했던 교육이었지만, 일상의 언어에 숨어있는 인권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한국사회의 정서에는 '남의 일도 내일처럼'이 지나쳐 간섭이나 관심의 도가 지나친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각 세대가 살아왔던 배경과 정서가 다르기 때문에 나름의 차이는 존재하는 것 같다. 그러한 몰이해가 세대갈등의 근간이 되고 있지는 않는지. 다 아는 얘기를 뭘 또 새삼스럽게 하는 거야라고 교만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세상에 '다 아는 얘기는 없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공정옥 시민기자는 대구시민공익활동지원센터에서 일하고 있으며, 인권위 대구인권사무소의 인권필진 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별별인권이야기'는 일상생활 속 인권이야기로 소통하고 연대하기 위한 공간입니다.



태그:#인권, #일상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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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와 함께 차별없는 인권공동체 실현을 위하여 '별별 인권이야기'를 전하는 시민기자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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