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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깨는 상추처럼  밭에서 뽑아 먹는 식품이 아니다. 식용가능한 하얀 참깨의 속살을 보기까지는 깨 한 알에 그 만큼의 땀을 흘려야 한다. 작은 참깨라고 우습게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 참깨 참깨는 상추처럼 밭에서 뽑아 먹는 식품이 아니다. 식용가능한 하얀 참깨의 속살을 보기까지는 깨 한 알에 그 만큼의 땀을 흘려야 한다. 작은 참깨라고 우습게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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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깨는 원산지가 인도와 페르시아 지방인데 우리나라에 들어온 역사는 정확하지 않다. 주식은 아니지만 귀한 조미료로 예전에는 약으로 썼다는 기록이 보인다. 참깨의 다른 이름 성장 과정 효과 등은 인터넷을 찾으면 금방 알 수 있기에 여기서 다시 소개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내 경험만 옮기고자 한다.

참깨는 5월에 심어 대략 3개월 후에는 수확하는 작물이다. 일설에는 1년에 2모작까지 가능하다는데, 어떤 농사도 그렇지만 참깨도 잔손이 많은 작물이기에 게으른 나로서는 시도해본 바가 없다. 우리 마을의 경우도 노인들만 남은 탓에 시골에서 참깨 농사는 겨우 한 번만 심는 것으로 안다. 

더구나 값싼 중국산이 밀려들어오면서 가격도 떨어지는 바람에 일종의 기피 작물로 취급 당하는 셈이다.

금년에도 참깨를 조금 심었다. 참깨는 잎이 약간 노래지는 시기 그리고 아래쪽 꼬투리가 한두 개 벌어지는 시기에 수확한다. 그러나 참깨를 베어 턴다고 바로 먹을 수 있는 식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베어 잘 말린 후 털어야 하고 '들이는' 작업을 해야 한다.

가급적 잎을 따 내고 말리고 수확하면 '들이는' 작업이 수월하다는데 묶어 말리는 것도 번거롭게 여기는 터라 검은 비닐을 깔고 헤쳐서 말렸다. 그리고 그제(20일) 들이는 작업을 혼자 한 것이다.

'들인다'는 '들다'의 타동사라고 한다. 몇 가지 뜻이 있지만 '받아들인다'처럼 물건이나 사람을 안으로 들이거나 인정해 주는 것을 의미하는데, 우리 고장에서는 곡식에 섞인 검불이나 쭉정이 등을 채로 걸러내고 키질을 하여 알곡만 골라내는 작업을 '들인다'고 한다.

참깨는 낱알이 매우 작고 가벼운 작물이다. 그렇다보니 숙련된 사람이 아니고는 키질하기가 쉽지 않다. 키는 보통 여자들이 잘 다루는데 아내는 키질을 못한다. 전에 중국산 키를 사다가 아직 걸어두고 있지만 가장자리가 헤지고 중간에 얼멍얼멍한 틈도 많이 생겨 사용할 수도 없다.

예전 할머니들은 바람 부는 날 멍석을 깔고 쭉정이나 검불을 바람에 날려 콩이나 팥 등 알곡만 들이는 모습을 생각했지만 햇볕이 뜨겁다. 더구나 폭염이라는데. 마당에 멍석 대신 뜨거운 검은 비닐 천을 깔고 할머니들을 따라 하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또 요즘은 바람도 시원찮은 날이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선풍기를 이용하는 방법이었다. 평상에 비닐을 깔고 혹시 유실될 것을 염려하여 평상 아래쪽에도 비닐 한 장을 더 깐 다음 되로 조금씩 퍼서 '들이기'를 시도했는데 선풍기 바람의 강도와 방향, 그리고 떨어뜨리는 양과 낙차의 높이를 제대로 잡는 것도 요령이었다.

바람이 너무 세거나 낙차가 크면 깨알도 날리고 바람의 방향이 틀어지면 검불은 나에게 날아들었다. 또 한 번으로 모든 검불이 다 날아가고 '들이기'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세 번은 반복해야만 하얀 참깨만 얻을 수 있다.

지금은 농가에서도 잘 쓰지 않는 농구 중의 하나다.  젊은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물건일 수 있다.  선풍기로 날리는 현장 사진을 잡지 못해 키를 소개한다.
▲ 키 지금은 농가에서도 잘 쓰지 않는 농구 중의 하나다. 젊은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물건일 수 있다. 선풍기로 날리는 현장 사진을 잡지 못해 키를 소개한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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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람들도 하는 짓이나 마음 씀씀이가 짜잔하면 "속이 깨알 같은 사람"이라고 하는데 깨알은 아주 작다는 다른 표현이다. 참깨를 '들이는' 일은 깨알 같은 세심함과 깨알을 세는 인내심을 요구한다.

어떻든 참깨 '들이기'는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한다. 수확한 양은 고작 석 되 쯤 되기에 우리 먹기에도 턱 없이 부족하여 기름 짜야할 참깨는 사야 한다지만 음식에 고명으로 뿌릴 정도는 될 것 같다고 한다. 마을에서 구입해보려고 참깨 농사지은 몇 아주머니들에게 알아봤더니 자식들 줄 것도 부족하다는 답변이다.

참깨는 한 되라도 다른 작물에 비해 가볍다. 대개 쌀 한 되는 1.8kg이라고 하는데 참깨는 말린 정도에 따라 약간 차이가 있으니 1.5kg이 못 된다고 한다.

문제는 가격이다. 인터넷에서는 1되에 2만 5천원 판매하겠다는 생산자도 보이지만 21일 남평장에서 시세는 3만원이었다고 한다. 중국산은 1만 2천원이라고 하니 단순 비교하면 세 배 가량 비싼 셈이다.

하지만 중국인들의 1인당 GDP가 8천 달러쯤 된다니 우리와 3배 정도 차이가 나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나라 가격이 비싼 것은 아니다. 한때 중국산 참깨가 우리나라의 10분의 1 가격인 때에는 주요 밀수품 중 하나였음을 상기해보면 격차가 줄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을 아주머니들 말로는 장마당에서 국산이라고 파는 것도 "백프로 믿을 수 없다"고 한다. 정확한 근거가 없으니 동조하기는 어렵지만 중국산 참깨 한 되는 만2천원이라니 상인들 입장에서는 국산과 섞거나, 국산이라고 속여 팔고 싶은 유혹을 쉽게 버리기는 어려우리라는 점은 추정 가능할 것 같다.

그러나 언제까지 지금처럼 중국산 참깨를 싸게 먹을 수 있을 것인지…? 내년에는 완전한 자급자족이 가능하도록 참깨 밭을 늘릴 궁리도 해야겠지만 그보다  우선 잘 만들어진 국산 키 하나 사서 키질도 연습해 둘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 블로그, 한겨레 블로그 등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참깨, #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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