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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2015년 3월 2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인사청문회에 나선 이석수 특별감찰관 후보자.
 2015년 3월 2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인사청문회에 나선 이석수 특별감찰관 후보자.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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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수 대통령 직속 특별감찰관은 지난해 3월 지금의 상황을 예견이라도 하듯 "민정수석의 명백한 비위행위가 포착된다면 유야무야 넘어갈 생각은 결코 없다"고 단언했다. 하지만 청와대의 '감찰 유출은 국기문란' 되치기와 우병우 민정수석 비호에 대해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3월 2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연 특별감찰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선 다른 후보자 청문회에선 흔하게 등장한 위장전입, 논문표절, 주택매매 다운계약서 등의 주제가 등장하지 않았다. 여야 법사위원들의 질의 주제는 ▲ 감찰범위가 민정수석실과 겹치는데 사정기관을 총괄하는 민정수석과 충돌 없이 해낼 수 있겠느냐 ▲ 막강한 권한을 지닌 민정수석의 비위가 포착된다면 제대로 감찰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 등 특별감찰관의 독립적인 직무 수행 여부에 맞춰졌다.

'민정수석과의 업무충돌을 방지하겠다는 말은 대통령이나 민정수석비서관이 거부하면 적당히 물러서겠다는 것이냐'는 서기호 당시 정의당 의원의 질의에 이 후보자는 "만약에 민정수석비서관의 비위행위가 포착된다면 그건 법대로 조사해서 진행을 해야 될 문제이지, 그런 차원에서 무슨 타협을 하겠다 이런 취지는 전혀 아니다"라고 답변했다. 이 후보자는 "민정수석이 법에 당연히 감찰 대상으로 돼 있고 거기에 대해서 명백한 비위행위가 포착된다면 그것을 가지고 유야무야 넘어갈 생각은 결코 없다"고 강조했다.

"특별감찰이 수사의뢰 땐 직무수행 불가능" 호언했지만

당시 법사위원들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특별감찰관법 초안에 있던 현장조사, 계좌추적, 통신·거래내역 조회 등 실질적인 조사권한이 제정된 법에서는 빠지고 출석, 답변, 자료제출 요구권 등만 보장돼 있어 실제 비위 조사가 불가능한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내놨다.

이와 관련된 서기호 의원의 질의에 이 후보자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현실적으로 대상이 되는 분들이 수석비서관급 이상 또는 주요 공직자들일 텐데 특별감찰관실에서 계좌추적에 대한 동의를 요구했을 때 거부할 수 있는 고위공직자는 거의 없을 겁니다. 만약에 숨길 게 있어서 거부를 한다면 검찰에 수사의뢰가 갈 수 있는 것이고 그 정도 고위공직자가 특별감찰관실에 의해서 수사의뢰가 됐다고 하면 그 직무를 계속 수행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보입니다."

김재경 새누리당 의원의 비슷한 질의에 이 후보자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수사의뢰나 이렇게 갔을 경우에는 아무리 보안을 특별감찰관실에서 유지를 해 주신다고 해도 그게 세상에 알려지거나 했을 때 그분(감찰대상)이 직책을 온전히 수행한다는 것이 가능해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것은 본인들도 다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제가 볼 때는 정상적인 방법으로 감찰을 진행해도 충분히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청와대 수석비서관이나 되는 사람들이 특별감찰관의 자료요구를 거절할 명분이 없고, 검찰에 수사의뢰 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감찰에 적극 협조할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또 대통령 최측근이 수사의뢰 됐다는 불명예는 직무수행 불가 상황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특별감찰관 임무수행을 방해할 수 없을 거란 얘기였다.  

이같이 상식에 기초한 이석수 특별감찰관의 예상은 크게 빗나가고 말았다. MBC가 '특별감찰관법 위반 의혹'을 제기하면서 보도한 녹취록에서 이 특별감찰관은 우 수석 비위 의혹 관련 자료 확보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고 토로한 것으로 나온다.

"경찰에 자료 좀 달라고 하면 하늘 쳐다보고 딴소리 하고 그래. 하하하. 경찰은 민정 눈치보는 건데. 그거 한번 애들 시켜서 어떻게 돼 가냐 좀 찔러봐봐. 민정에서 목을 비틀어놨는지 꼼짝도 못한다. 지금 꼼짝을 못해. 요새 그래. 아들 자료 있지 않나. 구체적인 자료 좀 달라고 하는 것도. 와~ 굉장히 정말 힘들어해."

우병우 민정수석은 아들의 의무경찰 보직 특혜 의혹, 처가 기업의 횡령 의혹이 특별감찰관에 의해 검찰에 수사의뢰된 상황에서도 자리를 지키고 있고, 청와대는 "국기를 흔드는 일"이라며 검찰에 특별감찰관에 대한 수사를 '독려'했다.

'박근혜 청와대'에 상식을 적용하다니

박근혜 정부 들어 세간을 뒤흔든 주요 사건들이 예상을 벗어난 경로로 흘러간 예는 한 둘이 아니다. 지난 대선 때 터진 국정원 댓글 사건은 '국정원 여직원 감금사건'으로, 대선 때 새누리당이 주장한 남북정상회담 NLL 포기 발언 논란은 '사초 실종 사건'으로,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은 '채동욱 검찰총장 혼외자 의혹'으로, 비선 실세 국정농단 의혹은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으로 본말이 전도됐다.

마찬가지로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자신의 상식에 기초해 장담한 '대통령 최측근에 대한 성역없는 감찰'도 허무하게  마무리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물러서지 않겠다는 특별감찰관의 의지다. 그는 22일 오전 자진 사퇴 여부를 묻는 기자들에게 "의혹만으로는 사퇴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 정부의 방침이 아닙니까"라고 되물었다. 우 수석을 감싸는 청와대의 논리로 자신의 사퇴도 불가하다고 반격한 것이다.

다시 한번 이석수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발언 중 특별감찰관제에 대한 의지가 실린 대목을 상기해본다.

"지금 위원님들 다 걱정하시듯이 특별감찰관이 제 역할을 하겠느냐, 그 다음에 대통령께서 뜻하시는 대로 움직이지 않겠느냐 이런 부분들을 많이 걱정하시는 것으로 오늘 말씀을 많이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자리가 마찬가지이듯 처음 하는 사람이 길을 잘 닦아 놓으면 앞으로도 이 자리가 계속 의미가 있고…."

이석수 특별감찰관은 후보자 때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자신의 사퇴는 한 정무직 공무원이 사표를 내는 일이 아니라 대통령 최측근 비리 근절 대책으로 도입된 특별감찰관 제도가 사실상 폐기되는 일이란 것을.


태그:#이석수, #특별감찰관, #우병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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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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