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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욕죄와 국정원법 위반 재판에 임한 디시인사이드 필명 '좌익효수' 즉 국정원 직원 유아무개씨는 자신을 인터넷 중독자로 만들었다. 정부를 비판한 일반인과 그 자녀, 대선 후보와 전직 대통령 등 많은 야권 정치인들을 향해 입에 담지 못할 악랄한 인터넷 댓글을 단 행위가 한 개인의 병적인 일탈이었을 뿐, 국가정보원 업무와는 아무 상관 없다고 주장하기 위해서였다.

1심과 항소심의 국정원법 위반 혐의 무죄 판결에는 좌익효수의 댓글이 한 개인의 자격으로 쓴 것이고, 국정원 직원으로서 정치에 개입한 행위는 아니라는 판단이 깔려있다. 하지만 이는 검찰의 공소장에 포함된 10개의 댓글 작성 행위만 본 것일 뿐, 댓글을 단 시기에 좌익효수가 수행한 국정원 업무와 당시 국정원 내부 상황을 연관지어 본다면 결코 개인의 일탈로 보기 힘들다.

검찰이 작성한 '범죄일람표'에 수록된 ID '좌익효수'의 게시물. 범죄일람표 3-1에는 <디시인사이드> 게시물이 총 61개가 등장하는데, 이중 8개(63번, 96~99번, 101~103번)가 좌익효수가 올린 것이다. 이를 근거로 네티즌들은 작성자를 추적했고, 그가 올린 다른 게시물을 찾아냈다.
 검찰이 작성한 '범죄일람표'에 수록된 ID '좌익효수'의 게시물. 범죄일람표 3-1에는 <디시인사이드> 게시물이 총 61개가 등장하는데, 이중 8개(63번, 96~99번, 101~103번)가 좌익효수가 올린 것이다. 이를 근거로 네티즌들은 작성자를 추적했고, 그가 올린 다른 게시물을 찾아냈다.
ⓒ 이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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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중독 때문에 악플러가 됐다? 또 개인 일탈?

모욕죄와 국정원법 위반 혐의 재판에 임한 좌익효수의 전략 기조는 '막말을 일삼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드나들다 보니 여기에 동화됐고 나도 모르게 막말 댓글을 달게 되더라'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좌익효수는 '인터넷 중독자'를 자처했다. 

좌익효수의 변호인은 1·2심 재판부에 인터넷중독대응센터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인터넷 중독자기 진단 결과와 온라인 상담 내용을 제출하면서 인터넷 중독을 치료 중이라고 밝혔다. 인터넷 중독 자기 진단은 객관식 15개 항목에 답변하면 되는데, '고위험 사용자군' 진단을 받겠다고 마음먹으면 받을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한 진단이다.

좌익효수는 또 인터넷 댓글 순화 운동 단체인 선플운동본부에 가입, 선플자원봉사와 기부를 한 내역도 제출하며 선처를 호소했다. 좌익효수가 단 댓글이 인터넷 악플 문화로 인한 개인의 일탈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좌익효수가 진단받았다는 '인터넷 중독 고위험 사용군'의 특징은 '인터넷 사용으로 인하여 학업이나 임무, 대인관계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담당 업무가 달라짐에 따라 인터넷 커뮤니티 활동을 하기도 하고 하지 않기도 한 좌익효수를 인터넷 중독으로 볼 수 있을까.

좌익효수가 디시인사이드에 정치 관련 댓글을 달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0년 11월 말부터다. 이때 좌익효수의 막말 대상이 된 정치인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강기갑·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 최종원 민주당 의원, 송영길 인천시장,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천정배 민주당 의원, 한명숙 전 총리,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손학규 민주당 대표 등이다.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의 인터넷 방송을 한 '망치부인' 이경선씨 및 김용석 서울시의원 부부와 그 자녀에 대한 막말 댓글은 2011년 1월부터 7월까지 계속됐다. 이때 좌익효수는 국정원 본부 수사국에서 내근하고 있었다. 지난 2013년 7월 9일 검찰조사에서 좌익효수는 "(글 작성) 시간대를 보니까 14:57, 14:58 이런 때가 많은 것을 보니까 점심 식사 후 바쁜 일 마치고 시간 여유가 있을 때 글을 올렸던 기억이 납니다"라고 진술했다.

2011년 8월부터 12월까지 좌익효수의 디시인사이드 활동량이 크게 줄었다. 이때 좌익효수는 5급 사무관으로 승진, 수사국장 보좌관을 거쳐 수사국 수사3팀 일선 수사관으로 근무했다. 한 달 뒤인 9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좌익효수는 단기 어학연수 명목으로 중국 베이징에 파견됐다.

이때 디시인사이드뿐 아니라 전반적인 인터넷 댓글 활동이 준 것에 대해 좌익효수는 "내근직 근무를 마치고 일선 수사팀원으로 배치가 되어 현업에 적응하고 국가보안법 사범 수사, 공소유지 지원 활동으로 바빠서 한동안 글쓰기 활동을 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여유가 있을 때만 인터넷을 하고 업무 때문에 커뮤니티 활동을 장기간 접기도 하는 상태를 인터넷 중독이라 하진 않는다.

2015년 10월 20일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가정보원에서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의 국정원 국정감사에 앞서 국정원 관계자들이 정보위 소속 의원들을 기다리고 있다.
 2015년 10월 20일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가정보원에서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의 국정원 국정감사에 앞서 국정원 관계자들이 정보위 소속 의원들을 기다리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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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공격으로 댓글 재개, 유우성 수사 시점과 일치

그가 정치 관련 내용을 담고 있는 댓글 달기를 재개한 시점을 보면 악플이 인터넷 중독 때문이 아니란 게 분명해진다.   

좌익효수의 인터넷 댓글 활동이 재개된 것은 중국 어학연수 때인 2011년 12월 25일이다. 그는 네이버 뉴스의 박원순 시장 관련 기사에 박 시장을 '원숭이' '원숭이색기'라고 지칭하며 "(박 시장) 목따기에 동참하겠다"는 등 악성 댓글을 9개나 달았다.

이듬해 1월 초부터 디시인사이드 활동도 본격 재개됐는데, 주요한 특징이라면 국정원 본부 내근직일 때 달았던 댓글에선 찾아보기 어려웠던 박원순 시장 관련 내용이 주요하게 등장한다는 것이다. 특히 보수단체 회원들이 박 시장 아들의 병역비리를 주장하고 나섰던 1~2월 좌익효수 댓글 활동의 표적은 박 시장에 집중된 양상을 보였다. 한동안 댓글활동을 하지 않았던 좌익효수가 박원순 공격으로 활동을 재개한 것이다.

이 시기 좌익효수는 중국 어학연수 중이었지만 사건 수사를 맡기도 했다. 국정원의 증거 조작이 밝혀진 '탈북자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즉 유우성 간첩조작사건이다. 좌익효수는 검찰 조사에서 "2012년 1월경 화교 간첩 사건에도 주도적으로 수사관으로 참여했다"고 진술했다. 유씨 사건 관련자료에서도 좌익효수가 수사를 주도한 사실이 확인된다. 

유우성 간첩조작사건은 국정원의 '박원순 죽이기' 조작 사건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다. "탈북자 출신 서울시 공무원이 간첩이고 탈북자 정보 2만여 건을 북한에 보냈다"는 보수 언론의 오보가 난 직후 보수단체들이 박 시장을 규탄하는 시위를 열기도 했다. 사실, 유씨는 오세훈 시장 때 채용됐다.

<디시인사이드>에 ID 좌익효수가 올린 댓글의 일부 목록. 그는 "홍어 종자 절라디언들은 죽여버려야 한다"는 등 저질스런 용어를 사용하며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글을 올렸을 뿐 아니라, 여성을 비하하는 내용도 다수 올렸다. 검찰은 이 ID를 국정원의 범죄일람표에 올렸지만, 국정원은 이 ID가 국정원 직원이 사용한 ID가 아니라고 부인한 상태다.
 <디시인사이드>에 ID 좌익효수가 올린 댓글의 일부 목록. 그는 "홍어 종자 절라디언들은 죽여버려야 한다"는 등 저질스런 용어를 사용하며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글을 올렸을 뿐 아니라, 여성을 비하하는 내용도 다수 올렸다. 검찰은 이 ID를 국정원의 범죄일람표에 올렸지만, 국정원은 이 ID가 국정원 직원이 사용한 ID가 아니라고 부인한 상태다.
ⓒ 이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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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훈 지시·강조, 제압 문건, 간첩조작, 댓글활동은 '박원순'으로 엮여

<시사in>은 464호(8월 6일자)에서 전직 국정원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원 전 원장은 박원순 시장의 정책에 대해 거의 모두 종북 좌파 정책이라고 공격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유우성 사건)도 '박원순이 채용한 간첩'이라는 콘셉트를 만들기 위해 둔 무리수였다"고 보도했다.

좌익효수가 댓글 활동을 재개하고 유우성 사건 수사를 맡기 약 두 달 전엔 원세훈 당시 국정원장이 인터넷과 관련한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박 시장이 당선된 2011년 10월 26일 서울시장 보궐선거 직전인 21일 원 원장은 국정원 전부서장회의에서 "인터넷 대책에 전 직원이 나서라"며 다음과 같이 지시했다.

"인터넷 자체가 종북좌파 세력들이 다 잡았는데 점령하다시피 보이는데 여기에 대한 대책을 우리가 제대로 안 세우고 있었다.…(중략)…전 직원이 어쨌든 간에 인터넷 자체를 청소한다 그런 자세로 해서 그런 세력들을 끌어내야 합니다"

또 이어 11월 18일 원 원장은 "재보선에서 서울의 경우 비정당, 비한나라당 후보가 시장이 됐는데 그쪽에서 내놓은 게 문제예요. 두 번째 공약이 국가보안법 철폐하겠다는 거고 세 번째가 국가정보원 없애겠다. 이런 쪽에 있는 사람이 시장이 됐는데 우리가 위기의식을 가져야 된다"며 "결국은 뭐냐, 나라의 체제를 부정하는 세력들이 협심해 덤벼드는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해요. 시간이 얼마남지도 않았고"라고 말했다.

지난 2013년 진선미 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이른바 '박원순 제압 문건', 즉 '서울시장의 좌편향 시정운영 실태 및 대응방향'이라는 A4 용지 5장짜리 국정원 문건도 2011년 11월 24일자로 작성됐다. 이 문건에 대한 국정원의 입장은 "박원순 문건을 만든 일도 없고 서울시장을 상대로 어떤 공작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직 국정원 직원들이 증언한 당시 국정원 내부사정과 원세훈 원장의 지시·강조, 유우성 간첩조작사건 착수, 이 사건을 맡은 좌익효수의 박원순 관련 댓글 활동은 시기가 매우 근접해 있고 하나의 목표를 지향하고 있다. 바로 '박원순 죽이기'다. 좌익효수는 국정원 심리전단 소속은 아니었지만 '박원순 죽이기' 관련 수사를 하면서 '박원순 죽이기' 댓글활동을 펼쳤다. '박원순 죽이기' 최일선에 좌익효수가 있었던 셈이다.


태그:#좌익효수, #박원순, #국정원, #원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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