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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경은 시민의 기본권이다
 월경은 시민의 기본권이다
ⓒ 참여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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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은 전 세계적으로 '월경의 해The Year of Period'로 불렸다. 은밀하고 사적인 것으로 치부되었던 월경이 드디어 공론장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생리용품을 착용하지 않은 채 흐르는 월경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런던 마라톤을 완주한 키란 간디의 웃는 얼굴, 인스타그램에 업로드된 루피 카우르의 월경혈 사진들, 월경을 이유로 여성을 깎아내린 도널드 트럼프를 비판하는 '#PeriodIsNotAnInsult(#월경은모욕이될 수 없다)' 캠페인, 그리고 캐나다의 생리대 세금 폐지 결정 등.

그야말로 월경을 금기시 해 온 가부장제의 고정관념과 싸우는 여성들의 '피의 향연'이 펼쳐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2016년, 한국에서도 월경과 생리대가 검은 비닐봉지를 벗어나 공적인 논의의 장으로 진출했다. 지난 7월 3일, 인사동과 SNS에서 펼쳐진 '#생리대를붙이자' 캠페인이 그 대표적인 예다.

월경은 왜 금기가 되었나

미국의 예술가 루피 카우르의 월경혈 사진. 이 사진은 삭제 조치됐다.
 미국의 예술가 루피 카우르의 월경혈 사진. 이 사진은 삭제 조치됐다.
ⓒ 루피 카우르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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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절반이 생의 8분의 1에 가까운 시간 동안 경험하는 월경. 우리는 어째서 이에 대해 그렇게 오랫동안 말하지 못했을까? 여성학자 박이은실은 <월경의 정치학>에서 인류의 역사가 "아주 평범한 몸의 일(월경)을 금기로 만들어 왔다"고 말한다.

월경이란 여성이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생물학적 신진대사지만, 가부장제 사회는 이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여성을 성스러운 존재로 만들거나 열등한 동물의 위치로 끌어내렸다. 그리고 이를 통해 여성에게 다양한 제약을 가해왔다는 것이다. 월경이야말로 남성과 여성의 차이가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생리적 현상으로서 여성의 타자성이 구성되는 자리였던 셈이다.

월경이 여성혐오로 이어진 역사는 매우 깊다. 월경혈이 악귀를 부르거나 남성의 성기를 상하게 하고 음식을 썩게 만든다는 등의 미신은 오랫동안 여러 문화권에서 통용되었다. 이런 미신이 사라지자 과학이 곧 그 자리를 대신한다. '폐경'이나 '월경전증후군PMS' 같이 근대 의학에 의해 발명된 용어들은 "여성을 감정적, 지적으로 문제적인 존재"로 만들었다. 그렇게 월경은 공적영역의 다양한 활동으로부터 여성을 배제하는 신뢰할 만한 이유가 되어온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남녀 사이의 위계가 분명한 사회일수록 월경에 대한 금기 역시 견고하다는 것이다. 월경은 여성의 일이기 때문에 음지로 쫓겨났다. 그러므로 월경에 대해서 꺼내놓고 말한다는 것, 그로부터 특별한 의미를 걷어내어 평범한 일로 만든다는 것은 유구한 여성혐오의 역사와 싸운다는 의미와도 같다.

월경은 시민의 기본권이다

그러나 월경을 말하는 것은 이를 둘러싼 억압적 상징체계와의 싸움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아주 현실적인 싸움이기도 하다. 주목할 만한 것은 그간 월경이 꺼내어 말하기 '거북한 것'이었기 때문에 정책적이고 제도적인 지원을 논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월경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탓에 여성들은 처음 경험하면 당황하기 마련인 몸의 변화를 준비하지 못하고, 남성들은 월경이 무엇인지 생리대 광고로 배운다. 물론 문제는 다른 곳에서도 터진다. 소비 인구의 거의 절반에 이르는 숫자가 생리대를 소비하고, 여성 한 명이 평생 생리대에 쓰는 돈은 약 680만 원에 달하지만, 생리대는 물가지수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는 생리대 가격이 지난 5년간 소비자물가 대비 최대 3.5배가 인상되어도 규제되지 않는 것과도 연결된다.

지난 7월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한 공사장 벽에 '생리대가 비싸서 신발 깔창을 써야 하는 학생들' 등 생리대 가격 인상에 반대하는 문구와 붉은색 물감이 칠해진 생리대가 나붙어 있다.
 지난 7월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한 공사장 벽에 '생리대가 비싸서 신발 깔창을 써야 하는 학생들' 등 생리대 가격 인상에 반대하는 문구와 붉은색 물감이 칠해진 생리대가 나붙어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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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국민안전처'는 생리대를 응급구호세트에서 제외해버렸다. "생리대는 활용도가 낮은 데다 활용 연령대도 제한적"이며 "개인 취향의 문제"라는 것이 이유였다. 남성용 면도기가 포함되어 있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는 한국 정부가 판단하는 '활용도'의 기준이 남성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야말로 월경이 이 사회에서 다뤄지는 흥미로운 방식이다. 여성은 보편 시민으로 상상이 되지 않기 때문에 월경 역시 시민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문제가 된다. 그리고 여성은 시민이 아닌 소비자이기 때문에 생리대의 사용은 '개인 취향의 문제'로 치부된다.

생리대와 관련해서 가장 민첩하게 움직이는 것은 월경과 관련된 위생용품이 얼마나 큰 규모의 시장을 형성하는지 알고 있는 자본뿐이다. 그 탓에 한국의 생리대 가격은 세계 어느 곳보다 비싸다. 시장은 형성되었고, 정부는 개입하지 않으며, 여성 소비자는 호구가 된다. 그리고 '깔창 생리대'를 사용해야만 했던 여성처럼, 구매력이 없는 여성은 이 회로로부터 완전히 배제되고 만다.

이제 월경을 개인과 시장의 문제로 남겨둘 것이 아니라, 시민의 기본적인 권리의 문제로 접근할 때가 왔다. 시민권은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지움으로써가 아니라 그 차이를 온전히 고려함으로써 보완되어 갈 수 있다. 그리고 정부는 이 기본적인 권리로부터 배제되어 있는 시민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케냐에서는 2011년부터 저소득층 여학생에게 생리대를 무상으로 지급하고 있다. 뉴욕시의회는 2016년 6월, 공립학교와 무주택자 쉼터, 교도소 여성들에게 탐폰과 패드형 생리대를 무료로 보급하기로 결정했다. 전 세계적으로 월경을 시민의 기본권으로 다루는 흐름은 이미 시작되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손희정님은 문화평론가입니다. <여/성이론>, <문화/과학> 편집위원. 땡땡책협동조합 조합원이고, 대중문화를 연구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이 글은 월간<참여사회>8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태그:#여성, #월경, #생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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