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전환연구소는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통해 녹색 전환의 다양한 상을 그려보고자 합니다. 현재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들을 녹색의 시각으로 새롭게 보고, 더 나은 방향으로 전환하고자 노력하는 목소리를 들어봅니다. 이번 시간에는 '여성환경연대'의 상임대표이신 장이정수님을 만났습니다. 인터뷰 전문은 <녹색전환연구소(www.igt.or.kr)> 사이트에서 볼 수 있습니다. - 기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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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환경연대' 장이정수 상임대표 '여성환경연대' 장이정수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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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님은 '여성환경연대' 활동가로서 시민사회운동을 시작했다고 들었다. 처음에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는지 궁금하다.
"나는 86학번이었는데 그때는 '운동한다' 그러면 다 노동운동이었다. 그러다 학생운동이 침체될 무렵 일찌감치 결혼을 하고 애도 낳았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시민사회 내에 다양한 장르가 등장했다. 여성운동, 환경운동, 인권운동과 같은 여러 영역의 사회운동들이 시작된 거다. 당시 집에서 살림과 육아를 하느라 바빴지만 활발한 활동과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시민사회를 지켜보며 나도 그런 "합법적인 운동"이 너무 하고 싶었다.(웃음) 그러다 2001년에 소개로 '여성환경연대'를 알게 되었고 면접 봐서 들어오게 됐다."

-'여성환경연대'는 여성주의에 기반을 둔 여성단체이면서 생태문제를 고민하는 환경단체이기도 하다. 그동안 '여성환경연대'는 어떤 활동들을 해왔나.
"1990년대 중반부터 여성운동 연구자들과 환경단체의 여성들이 만나서 왜 여성단체는 환경문제에 관심이 없는지, 왜 환경단체 안에서는 가부장적인 문화가 사라지지 않는지, 각자의 문제점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99년에 '여성환경연대'가 생겼다.

단체의 목적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환경운동 내의 가부장성을 문제제기하고 젠더관점으로 환경운동을 풀어가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여성 리더십을 구축하는 일이었다. 예를 들어 쓰레기종량제 제도는 가정에게 쓰레기분리수거라는 노동을 가중시키는 방식으로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정책이다. 가사노동을 담당하는 여성들에게 책임을 지운 거다. 에너지 절약도 갓등닦기, 한 등끄기 등 여성을 낭비의 주범으로 몰아 대상화했다. 쓰레기를 많이 발생시키는 사회구조를 재정비하고 에너지를 많이 쓰는 기업의 노력이나 건물 초기 설계가 중요함에도 말이다.

이런 불평등한 젠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성평등한 생태주의를 확산해야 했다. 이를 위해 환경 분야의 여성 리더십이 필요했다. 당시만 해도 주요 환경단체의 장을 맡고 있는 리더는 다 남성이었고 남성들이 주축이 되어 환경운동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 리더십 구축을 위한 사업들을 진행했다.

흩어져 있던 여성단체와 환경단체가 서로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전국에 있는 여성 활동가들을 모아서 연수를 하거나 의제별로 토론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런 활동들을 통해 개개인의 역량도 기르고 서로 연대할 수 있는 힘을 키우고자 했다. 그 뒤로도 계속 여성의 눈으로 보는 건강, 환경, 지역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 환경단체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조직에서 단체장이나 높은 직급은 남성이 차지하고 있다. 여성들의 사회진출은 여전히 어려운 지점이 있다. 거기다 출산과 육아를 거치며 경력단절 된 여성의 재취업은 더 어렵다고 한다. 대표님도 평범한 가정주부로 지내다가 활동을 시작한 건데 취업할 때 어려움은 없었는지 듣고 싶다.
"일단 시민사회영역은 진입장벽이 낮다. 급여가 낮으니까.(웃음) 최근엔 1990년대와 달리 시민사회에 여성리더십이 많이 확장되어서 여성들의 진출이 쉬워졌다. 나의 경우는 일을 시작하기까지가 힘들었다. 애가 둘이었는데 애 둘이 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이후에야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결혼하고는 줄곧 시부모님을 비롯해 시댁식구 열 몇 명이 한 건물에서 같이 살았다. 학생운동을 했던 경험 덕에 조직생활이나 공동체에 대해 우호적으로 생각했기에 가능했다. 모두 좋은 분이기도 했다. 한국 가부장제의 문제점은, 사람이 나빠서 생기는 게 아니다. 전업주부라고 하는 나의 위치성에서 오는 문제였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가사노동과 육아에도 지쳤고, 바깥활동을 통해 사회적인 주체로 살아가는 다른 가족들과 달리 집 안에서 식구들을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 내 상황도 힘들었다.

아이들은 너무 예뻤지만 그것과 별개로 나 자신에 대한 불안감은 계속 됐다. 나중엔 이런 것 때문에 피해의식도 생기고 우울증도 왔었다. 아니, 왜 아무도 결혼 전엔 이런 걸 알려주지 않은 거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막 따지고 싶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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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환경연대' 활동가들과 함께 '여성환경연대' 활동가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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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행히 단체 활동은 대표님과 잘 맞았던 것 같다. 2011년에는 아름다운재단이 마련한 <아름다운 사람들 공익시상>에서 '초록상상 사무국장'으로 활동가 부분 상도 받았다. 시작한 지 10년 만에 지역 활동가로서 공로를 인정받은 셈이다. 그동안 주로 어떤 활동을 하셨는지 궁금하다.
"처음 '여성환경연대'에 들어왔을 때는 회계 담당 반상근 활동자였다. 주로 조직을 서포트하는 역할이었다. 그러다 2002년부터 '여성생태안내자 양성과정'을 직접 기획하게 됐다. 이게 인기가 많았다. 그리고 이 사업을 통해 지역에서 풀뿌리운동을 하는 여성들과 만나게 된 것이 큰 전환점이 되었다.

이 경험 덕분에 단체에서 지역의 풀뿌리 여성들을 조직하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게 되자 내가 그 사업을 담당하게 되었다. 사업의 목표는 지역 여성들을 모아서 계속 활동을 이어가게 하는 것이었다. 처음 2~3년은 시범 사업으로 진행하다가 나중에는 아예 내가 사는 동네에서 해야겠다 싶어 중랑구에서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게 '초록상상'의 시작이었다.

'초록상상'을 만든 뒤에는 중랑구에서 계속 풀뿌리운동을 했다. 지역 활동이란 게 주로 현장에서 주민들과 만나며 이뤄지다 보니 본부 사무실로 출근을 해야 하는 '여성환경연대' 상근직과 같이 겸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결국 본부 상근직은 그만두고 '초록상상' 사무국장을 맡았다. 대신 본부의 풀뿌리 위원회 운영위원을 하면서 계속 단체와 연결되어 있긴 했다. 그러다 2012년에 단체에서 공동대표 제안이 와서 그 이후로는 공동대표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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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상상' 운영위원들과 함께 '초록상상' 운영위원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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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상상'이 지금까지 성장하는 데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을 것 같다. 사무실을 넓히는 것만 해도 돈이 많이 들지 않나.
"처음엔 10명이 소모임으로 시작했던 것이 2007년에 '초록상상'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중랑구 최초의 여성주의 환경단체였다. 지금은 회원이 300여명 정도로 늘어나 중랑구에서 활동가 3인 이상이 활동하는 제일 큰 단체로 성장했다. 공간 역시 사무실과 세미나실, 강좌가 가능한 카페가 함께 있을 정도로 제법 크다.

시간이 지나면서 중랑구 내에 다른 단체들도 점차 늘어나 지금은 중랑구 마을지도가 풍성해졌다. '초록상상'도 어느덧 왕언니 자리에 올라 이곳 출신들이 마을공동체 활동가를 하는 등 지역사회의 다양한 인력풀이 되고 있다. 사실 풀뿌리운동을 초기에 조직할 때 돈이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다. 가장 어려운 점은 처음 같이 할 사람을 조직하는 거다. 사람들이 서로 협력하고 마음을 맞춘 다음, 돈이나 자원을 준비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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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랑구 마을지도 중랑구 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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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각 지역에 다양한 풀뿌리단체들이 있다. 단체마다 특성이 조금씩 다른데 그럼 '초록상상'만의 특색은 무엇이라고 할 수 있나.
"여성주의 감수성이다. 우리처럼 지역 풀뿌리단체면서 여성주의 감수성을 갖고 있는 곳은 잘 없다. 이것이 우리만의 큰 장점이다. 예를 들어 본부에서도 하지 않은 우리만의 독자적인 사업으로 성교육이 있다. 나는 성평등한 지역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여성주의 성교육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특히 풀뿌리단체는 잘못하면 옛날 '새마을운동'처럼 직능단체가 되기 쉽다. '새마을부녀회'나 '녹색어머니회'같은 여성단체들이 하는 활동을 보면 대부분 불우이웃돕기, 경로잔치, 김장담그기 등 가정에서 하던 돌봄 역할을 지역사회로 확장하는 방식이었고 이는 성별역할의 강화로 이어졌다. 불평등한 정책의 결과 발생하는 지역사회의 약자에게 여성들이 다양한 돌봄을 수행하는 역할에만 머문다면 가부장제 사회를 더욱 강화하는 꼴이 될 것이다.

'초록상상'도 복지사업을 하긴 하지만 이보다는 여성들이 스스로 지역사회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주체가 되도록 교육하는 사업에 더 힘을 쏟고 있다. 성교육팀을 육성해 거리의 10대들에게 상담을 열거나, 젠더스쿨을 열어서 지역에 여성주의를 확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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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랑구 '면목동친구네' 개소식 중랑구 지역활동가들이 모인 청소년카페 '면목동친구네' 개소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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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미소지니(여성혐오)와 관련하여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여성주의에 대한 욕구가 일고 있다. 여성주의를 기반으로 한 단체에서 활동하는 입장에서 이런 흐름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우리도 최근에 강남역 살인사건을 주제로 외부 강사를 초빙해 강좌를 열기로 했다. 마을 안에서 여성주의를 확산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이번에 강남역2번 출구에 붙여졌던 수많은 포스트잍을 비롯한 추모열기를 일컬어,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촛불집회 때 앞장섰던 소녀들이 커서 지금 강남역 앞에 나간 거라는 분석도 있었다. 촛불소녀들은 굉장히 큰 사회적 변화였다. 개인의 등장과 소셜 미디어 시대의 진입을 의미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불길이 조직화되어 이어지진 못했다. 그러다 지금 이들이 다시 수면 위로 등장하는 듯한 분위기가 있다.

이런 흐름들을 지켜봤을 때, 지금은 여성운동 2세대가 시작되었다고 본다. 완전한 세대교체가 일어날 것이다. 메갈리아처럼 새로운 문법의 문제의식도 등장했다. 메갈리아의 미러링이 남성혐오라서 문제가 된다고 하지만 원래 새로운 주체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어느 것 하나 완벽하게 흠짐 없이 만들어지기란 어렵다. 오히려 무엇이든 하는 게 중요하다. 자신의 삶 속에서 조금씩 사회운동을 시작해야 한다."

- 지금 흐름이 여성운동 2세대라면 여성운동 1세대는 누구인가.
"1990년대에 가정폭력방지법, 성매매방지법, 성폭력법 등을 만들고 2005년에 여성계가 염원했던 호주제 철폐에 이르기까지, 이걸 위해 매달렸던 많은 여성단체와 여성운동가들이 있었다. 나는 이들을 여성운동 1세대라고 본다. 호주제 철폐 이후에는 여성운동이 많이 침체되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지만 그럼에도 우리사회가 폭력에 대한 인식을 확장하고 처벌을 끌어낼 수 있었던 것은 제도화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를 주도한 여성세대 1세대의 공로는 사실 엄청나다.

다른 한편으로는 여성문제와 관련해 법제화가 많이 이루어진 것에 반해서 실질적인 성평등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작년 GDP 규모가 세계 11위였다. 그런데 같은 해 세계경제포럼의 성평등지수는 145개국 중 115위였다. 이처럼 실질적인 지표들을 따져 보면 국내 여성인권은 오히려 후퇴하고 정체되었다. 그렇기에 더욱 새로운 운동이 열려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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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덜 소비하고 더 존재하라] 북콘서트 [덜 소비하고 더 존재하라] 북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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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에 <덜 소비하고 더 존대하라?는 책의 한 챕터를 쓰셨다. 부제가 '에코 페미니스트의 행복혁명'이더라. '여성환경연대' 사이트에 들어가니 단체소개에서 "에코페미니즘 가치 확산"이 목표 중 하나이기도 했다. 에코페미니즘에 대해서 간단한 설명을 부탁드린다.
"에코페미니즘, 어려운 말이다.(웃음) 정말 간단히 설명하자면 에코페미니즘은 에콜로지와 페미니즘의 연결이다. 페미니즘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성찰해서 젠더에 따른 권력구도를 파헤치는 학문이다. 에콜로지는 사람과 자연 사이의 관계를 기본 전제로 삼고 자연파괴와 생태계교란 등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인간행위와 그에 따른 문제들을 논하는 학문이다.

현 사회가 인간과 자연, 남성과 여성처럼 위계적인 이분법으로 유지되고 있음을 통찰한다면 여성에 대한 착취와 자연에 대한 착취가 결코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연에 대한 착취가 멈추지 않는 세상에서는 여성에 대한 착취도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 에코페미니즘의 생각이다. 그리고 이런 착취는 자본주의와 연결되어 있다.

자본주의는 남성과 여성의 차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 강대국과 제3세계의 차이 등 계속해서 차이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렇게 만든 차이를 통해 이익을 남기는 것이 자본주의의 전략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단순히 과거에 비해 여성들의 일자리가 늘어났다고 해서 좋아할 수만은 없다. 그렇게 늘어난 여성 일자리의 대부분이 가정에서 여성들이 전담하던 아이돌봄, 노인돌봄, 음식서빙 같은 일자리이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가정 내 여성들의 노동은 노동시장에서도 저임금 고노동으로 분류된다. 자본주의는 여성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주기는커녕 오히려 여성 일자리의 임금 격차를 늘리기 위해 이제는 제3세계 여성을 끌어오고 있는 실상이다. 에코페미니즘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인간 사회에 필요한 돌봄을 상품으로 대체하지 않고 우리가 평등하게 나눠하는 시스템을 중요한 사회목표로 삼는다.

지금의 현실에서 벗어나려면 결국은 탈자본주의가 핵심 전략이 될 거다. 기본소득이 그 전략 중 하나가 될 수도 있다. 아직 보완할 게 많고 고민할 지점들이 있지만 이처럼 새로운 전략을 계속 개발해야 한다. <덜 소비하고 더 존재하라> 또한 이런 함의를 담고 있는 책이다.

- 대표님의 다음 글도 기다려진다. 끝으로 녹색전환에 대해서 한 말씀 부탁드린다.
"4월의 작은 연두색에서부터 여름의 짙은 녹음을 거쳐 겨울에 잎을 떨구는 녹색까지. 녹색도 다양한 색이 있다. 인간의 삶에도 흐름이 있다. 빛을 발해야 할 때가 있고 누군가를 위해 배경이 되어야 할 때도 있다. 모든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고, 일생을 보살핌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혼자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녹색전환이란 이런 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삶이 용인되는 것이라고 본다. 그럴 때 지속가능한 삶도 가능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