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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참 시인
 김참 시인
ⓒ 김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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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문예지 <문학사상>으로 등단 후, 첫 시집 <시간이 멈추자 나는 날았다>(1999)를 시작으로 <미로 여행>(2002), <그림자들>(2006)을 발표한 시인 김참이 지난 2016년 5월, 네 번째 시집 <빵집을 비추는 볼록거울>을 출간했다.

"세 번째 시집을 낸 뒤 박사과정을 마쳤고 몇 년 뒤엔 학위를 받았어요. 그리고 대학에서 시와 글쓰기에 대한 교양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10년 사이에 변한 게 많네요. 열대어와 다육식물을 키웠고 뒤늦게 결혼을 했고 아이 아빠가 되었어요."

'현대시동인'이 젊은 시인을 격려하고자 제정했던 현대시동인상을 1999년에 수상한 스물여섯 살의 문학청년은 이제 20여 년간 시를 쓴 중견 시인이 되었다.

"등단 후 몇 년 동안은 부지런히 시를 썼어요. 지금도 한 해에 발표하는 시가 적지는 않지만 예전과 달리 적극적으로 쓰지는 않습니다. 시 쓰기를 좋아했던 청년이 원고청탁이 와야 시를 쓰는 게으른 시인이 되었다고나 할까요. 마감이 다가와야 시를 쓰기 시작하는 이런 사정은 이번 시집에 수록된 시 <동어반복과 중언부언의 날들>에도 나옵니다. 그렇긴 해도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시를 쓰는 일은 여전히 즐겁습니다."

젊은 날에 환상과 몽상으로 시집을 엮어온 시인의 시 짓기는 2016년, 지금도 여전히 생생하다.

그 시가 그 시 같고 그 시가 그 시 같은 내 시들. 그렇다. 내 시들은 동어반복과 중언부언의 시들. 했던 말 또 하고 그 말을 다시 하는 쓸데없는 시들. 이를테면, 내가 시 쓸 때마다 들리는 기타 소리. 가을바람 같은 기타 소리. 기타 소리 울릴 때 복도를 따라 황급히 뛰어가는 발자국 소리. 내가 그렇고 그런 시를 쓸 때마다 계단 밟고 내려오는 발자국 소리. 이상한 내 발자국 소리. 내가 잠들 때마다 나선형 계단을 밟고 내 꿈속으로 들어오는 발자국 소리. - 시 <동어반복과 중언부언의 날들> 中


지난 7월 10일, 김참 시인과 서면인터뷰를 진행했다.

- 시집에 대한 만족도는 어떠한가요?
"이번 시집은 지난 세 권의 시집에 비해 훨씬 잘 읽힙니다. 그 점이 앞의 세 시집보다 마음에 듭니다. 그동안 낸 시집들은 앉은 자리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본 기억이 없거든요."

- 시집 초에 '시 본문은 저자의 뜻에 따라 들여쓰기를 하지 않았다'고 적혀 있습니다. 의도가 있을까요?
"제 시의 대부분이 산문시인데 들여쓰기는 하지 않습니다. 첫 시집이 그렇게 출판되었어요. 두 번째와 세 번째 시집은 들여쓰기가 되어 있는데, 제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시집을 낼 때 출판사 측에 들여쓰기를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전했어요. 들여쓰기를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은 시각적으로 차이가 있죠. 들여쓰기를 하지 않는 편이 보기가 더 좋아요."

네 번째 시집 <빵집을 비추는 볼록거울>
 네 번째 시집 <빵집을 비추는 볼록거울>
ⓒ 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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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시집을 묶으면서 시인이 주요하게 여긴 지점들이 있을까요?
"그동안 실험적인 시를 주로 썼어요. 초현실적이거나 아방가르드 성향의 시가 적지 않아서 꼼꼼하게 읽어야 의도나 맥락을 짚어낼 수 있는 시가 주를 이룹니다. 이번 시집에도 그런 것들이 없진 않지만 되도록 독자가 쉽게 읽을 수 있는 시를 쓰자고 생각했고 그 결과가 이번 시집에 담겨 있습니다. 그간 제 시를 읽어온 독자들은 제 생각에 동의를 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여전히 꼼꼼한 읽기를 요할 수 있을 것 같네요."

- <백일몽, 섬>, <백일몽, 이중주>, <백일몽, 미로> 등 백일몽에 대한 시들이 즐비합니다. 시인에게 백일몽은 무엇인가요?
"백일몽은 삶의 한 축입니다. 현실이 삶의 다른 한 축을 이루고 있죠. 우리의 삶은 현실과 백일몽의 두 축이 지탱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백일몽은 단순히 허황한 꿈이 아니라 현실에서 충족시킬 수 없는 것들을 충족시켜 주는 순기능이 있죠."

- 시인의 말에서는 '아무리 봐도 이상한 풍경'이라고 적었고, 시 <그림>에서는 '김참씨가 쓰다 만 이상한 시'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숨을 쉬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입니다. 이상하다는 말은 신비롭다는 뜻으로 생각해도 됩니다. 신비로운 것은 낯설고, 낯선 대상은 우리에게 이상한 느낌을 줍니다. 세 번째 시집 서문에 제가 쓴 것처럼 우리는 영문도 모른 채 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들이고 영문도 모르고 한세상을 살아가는 셈이죠. 곰곰이 생각해 보면 세상 모든 일들이 참 이상하고 신비롭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신비로움이 사라진 일상을 살아가기 때문에 이런 느낌에 사로잡히는 경우가 드물죠."

- 파란에 관한 시구가 눈에 띕니다. 시집 첫 구절, '파란 소가 골목을 돌아다니는 여름밤' <열대야>을 시작으로 '들판에 파란 햇살 흘러넘친다' <정오>, '파란 대문들로 끝없이 이어진' <소름>, '파란 물뱀 개울을 가로지르는 한낮' <불시착> 등 파란과 푸른이 곳곳에 표현되어 있는데 파란은 어떤 의미인가요?
"파란 소는 현실에 없으니 비현실적인 느낌을 주겠죠. 색이 없는 햇살에 파란색을 부여한 것도 의도적인 것입니다. 파란색은 하늘빛이니 천상의 세계, 초월적 세계, 현실과 반대쪽에 있는 아름다운 세계를 상징하는 색채로 봐도 됩니다. 파란 대문과 파란 뱀도 대상에 색채를 부여한 경우인데 읽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떤 사람은 이 색채에서 어떤 특이한 느낌을 받을 수 있어요."

- 노란색을 표현한 시구도 자주 보입니다. '강변 풀밭 위엔 노란 달' <백일몽, 문>, '노란 비옷 입은 아이' <빵집을 비추는 볼록거울>, '민들레처럼 노란 꽃들' <우물이 있던 시절> 등이요. 그리고 초록, 주황, 검은, 하얀, 붉은, 은빛, 금빛, 색감들이 곳곳에 나타납니다.
"제 시는 색감이 잘 표현되는 편입니다. 우리가 대하는 사물들은 대부분 색이 있어요. 시인은 화가가 아니기 때문에 색채가 아닌 언어로 자신의 생각과 대상을 표현합니다. 사물보다는 언어나 관념에 더 관심이 많은지 우리 시엔 색채가 별로 없어요. 사물의 색들은 고유의 미적 자질을 지니는데도 그 점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소수인 편이죠. 제 시는 사물의 색을 재현하기도 하고 원래와는 다른 색을 부여하기도 합니다.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장면과 제가 시를 쓰는 장면은 닮은 곳이 있지요. 노란색은 그동안 주로 보여주었던 검은색이 주는 느낌과 달리 밝고 따듯한 느낌이 드는 색인데, 이런 색깔이 이번 시집에 자주 나타나는 것은 아무래도 내면의 변화와 관계가 있는 것 같아요."

- 시 짓기의 흐름이 궁금합니다.
"시를 쓰는 순간 나는 현실에서 사라지고 내가 쓰는 시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시를 쓰는 순간은 김참이 사라지고 시를 쓰는 사람이, 혹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그가 쓴 시 속에 등장하는 순간입니다. 우리가 이 세계에 갑자기 던져진 것과 비슷한 상황이죠. 그렇기 때문에 시가 어떻게 마무리될지 시가 완성되는 순간까지 알 수 없습니다. 저는 퇴고를 많이 하는 편입니다. 잡지에 발표되고 나서도 퇴고는 계속되기 때문에 시집에 수록된 시는 잡지에 발표된 시와 상당히 다른 경우도 많아요. 제 시는 여전히 진행형인 셈이죠."

- 음악 애호가로 알고 있습니다. 시집을 읽는 데 도움이 될 음악이 있을까요?
"그리 많진 않지만 LP가 2천~3천 장 정도 있어요. 예전엔 음악 파일을 모으기에 열을 올린 적도 있고요. 음악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듣는 편이지만, 진보적인 록(Art Rock, Progressive Rock) 음악에 특히 관심이 많았어요. 대부분 1960년대부터 1970년대 사이에 주로 활동했던 몽환적이고 실험적인 밴드들이죠. 80년대 음악도 드물게 듣는 편이지만 90년대 이후의 음악은 잘 듣지 않아요.

밴드들의 국적을 소개해보면 인도네시아·이스라엘·말레이시아·필리핀·터키·베트남·아르헨티나·호주·오스트리아·바하마·바레인·벨라루스·벨기에·볼리비아·크로아티아·마케도니아·몬테네그로·세르비아·슬로베니아·브라질·불가리아·캐나다·칠레·콜롬비아·쿠바·체코·슬로바키아·덴마크·엘살바도르·에스토니아·핀란드·프랑스·독일·그리스·그린란드·헝가리·아이슬란드·영국·이탈리아·일본·케냐·멕시코·네덜란드·뉴질랜드·노르웨이·파라과이·페루·폴란드·포르투갈·루마니아·구소련·남아공·스페인·스웨덴·스위스·우크라이나·우루과이·미국·베네수엘라 등이네요.

그 가운데 진보적 음악을 밴드가 가장 많은 나라는 영국인데 제 컴퓨터 영국 폴더에 대략 350여 밴드의 음악이 있는 걸 보면 들어본 영국 아트록 밴드의 음반이 대략 천 장쯤 될 것 같네요. 독일·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에도 적지 않은 밴드가 있었으니 이 네 국가의 음반도 천 장쯤 들어봤을 거예요. 그 외 다른 나라 밴드의 음악들을 합치면 아트록 계열의 음반만 4천~5천 장 정도 들어 봤을 겁니다.

아트록은 장르 혼합적 성격이 강해서 자연스럽게 다른 장르 음악에도 관심을 두게 되었는데요. 블루스·재즈·포크·클래식·아방가르드·싸이키델릭·하드록 계열의 음악도 적지 않게 들은 편이에요. 우리나라 대중음악과 국악에도 관심이 많아요. 서두가 길었지만 결론만 말하면 음악을 듣는 건 제 시뿐만 아니라 다른 시인의 시를 읽는 데도 도움이 많이 될 겁니다. 시의 뿌리는 음악에 있고, 좋은 시는 탄탄한 리듬감을 가지고 있죠. 시를 번역하기 힘든 이유는 바로 이 음악적 요소를 옮기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 시인의 목소리를 내세우기보다는 볼록거울처럼 시인의 잠재된 꿈을 변형된 그림처럼 보여주고자 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시집에서 무엇을 보여주고자 하였나요?
"기본적인 것은 감각을 통해 파악할 수 있는 세계의 모습이죠. 그리고 감각을 넘어서야 파악할 수 있는 초감각의 세계를 그려내기도 합니다. 이런 초감각의 세계를 현실적 관점으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제 시가 꿈의 형식을 자주 빌려오는 것은 꿈이 3차원과는 다른 차원의 세계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현실과는 다른 사건이 벌어지고 시간과 공간이 이상한 방식으로 결합하는 세계가 꿈의 세계입니다. 그리고 그런 세계에서 우리는 신비로운 경험을 하곤 하죠. 제가 시를 통해 보여주려고 하는 것은 반사실의 세계, 혹은 환상적인 세계, 혹은 현실의 관점에서는 잘 볼 수 없는 세계라고 할 수 있어요."

- 1집 <기괴한 서커스>, 2집 <살구 칵테일>, 3집 <순짓한 짓>을 출간한 부산 세드나(sedna) 모더니즘 시 동인에도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어떤 시인들이 함께하고 있나요?
"동인과는 약간 다르고 친목적 성향이 강한 모임이에요. 그래서 말씀하신 세 권의 책도 동인지는 아니고 무크지입니다. 그렇지만 동인의 성격이 없는 건 아니에요. 모더니즘 경향의 시를 쓰고 있는 허만하, 김형술, 정익진, 조말선, 유지소 시인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 이러한 활동이 시 창작이나 생활에 주는 영향이 있을까요?
"시 창작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아요. 서로의 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으니까요. 생활에 끼치는 영향은 움직이는 걸 귀찮아하고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제가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는 약간의 부담감 정도라고 할까요. 그런 부담감이 있긴 하지만 다른 시인들을 만나서 이야기하고 술도 마시고 어쩌다 바람을 쐬기도 하는 점은 좋아요."

- 이번 시집에서 애착이 가는 시 한 편을 소개해 줄 수 있을까요?
"이 한 편의 시라고 할 만한 걸 고르긴 어렵지만 첫 번째 시 <열대야>에 좀 더 애착이 갑니다. 한여름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잠을 이루지 못하는 분들이 공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파란 소가 골목을 돌아다니는 여름밤. 잠 못 드는 내가 파란 소와 함께 산책 나서면 잠들지 못한 사람이 틀어 놓은 음악 때문에 잠들지 못한 새들과 잠들지 못한 새들 때문에 잠들지 못한 풀벌레와 잠들지 못한 풀벌레 때문에 잠들지 못한 아기들. 잠들지 못한 아기 울음소리 아파트 창문 타고 흘러내리는 밤. 거리에 도열한 가로수 초록 잎 열풍에 조금씩 말라 가는 밤. 내가 파란 소 따라 건널목 건널 때 주황색 달이 커다랗게 떠올라 오렌지처럼 타오르는 밤. 그 열기 때문에 잠 못 드는 내가 파란 소와 함께 강변 모래밭을 횡단하는 밤. -시 <열대야> 전문


- 8월 여름, 시인은 어떤 삶을 꿈꾸고 있나요?
"아파트 생활을 너무 오래 해서인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시골에서 살아보고 싶어요. 요샌 늘 이 생각만 하고 있어요. 신석정 시인의 시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에서 화자가 꿈꾸는 평화로운 삶을 저 역시 꿈꾸고 있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월간 <세상사는 아름다운 이야기>에 8월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빵집을 비추는 볼록거울

김참 지음, 파란(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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