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전화조차 못 받는다니, 엄마는 도대체 얼마나 아프신 걸까.(사진은 영화 '친정엄마'(2010))
 전화조차 못 받는다니, 엄마는 도대체 얼마나 아프신 걸까.(사진은 영화 '친정엄마'(2010))
ⓒ 영화 '친정엄마'

관련사진보기


건강체험관에 다니던 부모님, 못보던 건강 제품들

엄마를 바꿔준다고 한 아버지가 다시 수화기를 잡으셨다.

"엄마가 지금 허리 아파서 전화 못 받는대. 이따 밤에 다시 전화하라고 할게."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허리가 얼마나 아프면 전화를 다 못 받으실까?

며칠 전부터 아침마다 친정으로 전화했는데 안 받으셨다. 팔순의 부모님이 아침 일찍 어디를 가셨나?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른 곳은 건강체험관 뿐이었다. 그래서 당연히 체험관에 가셨으리라 생각했는데 저녁쯤 다시 친정에 전화해 보니 체험관엔 아버지만 다니고 엄마는 안 다니셨다고 한다. 엄마는 허리가 아파서 한의원만 다니셨다고.

노인들이 많이 다니는 건강체험관에 부모님이 다닌다는 걸 알게 된 것은 십년 전 일이다. 친정에 못 보던 물건들이 자꾸 보였다. 알고 보니 엄마가 체험관에 다니면서 하나둘 사들인 거였다. 원적외선 옥매트, 전기 좌욕기, 전기방석, 옥 벨트 등등. 가격은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에 이르렀다.

어떤 물건은 가격대비 품질이 형편없어 보였다. 솔직히 돈이 아까웠다. 체험관에 그만 다니시라 말려보았지만, 엄마는 꿈쩍하지를 않았다.

"효과가 있으니까 가지."

엄마가 한 말이다.

그리고 삼사 년 전쯤 돈도 아깝고 매일 출근하는 게 힘겹다고 건강체험관에 안 다닌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고 좋아했다. 더는 헛돈 쓰는 일은 없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 뒤, 가끔 친정에 가면 부모님이 병원을 다녀오는 날 빼고는 집에만 계실 때가 많았다. 슬슬 걱정이 되었다. 저러다가 체력과 기억력 모두 떨어지면 어쩌나?

여기저기 알아보아도 부모님에게 권해 드릴 취미생활이 딱히 없었다. 노인복지관도 노인정도 어딜 가나 텃세가 심해 안 다니신다고 하셨다. 그렇게 집에만 내내 계시면 건강이 급속히 악화될 거 같았다. 그런 생각이 들자 이젠 반대로 건강체험관이라도 다니시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한 달 전, 아버지가 허리가 아파 병원과 한의원을 몇 주 동안 다녔는데 차도가 없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결국 아버지가 건강체험관에 다니신다는 말도 들었다. 그 말을 듣고 좋아했다. 규칙적으로 다닐 곳이 있다니 얼마나 다행이냐 싶었다.

아침에 한 이틀 전화해도 안 받으셔서 두 분이 같이 다니나 했었는데 엄마가 허리 아파서 전화를 못 받는다는 아버지 말을 듣고 보니 그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건강체험관엔 아버지만 다니셨고 그동안 엄마는 허리 아파서 침 맞으려 다녔다니. 얼마나 허리가 아프시면 엄마가 내 전화를 못 받으실까 걱정이 되었다.

반찬을 싸서 친정엘 갔다, 내 눈으로 확인해야겠다

언니에게 전화했다. 언니는 지난주 목요일 친정에 다녀왔다. 그러니 본 게 있을 거 같았다.

"그때도 거의 방에 누워 계셨어."

'그런데 그 말을 왜 나한테 안 했어?' 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내려간다. '그동안 그것도 모르고 있던 나는 뭘 했는데? 언니가 나에게 말했으면 뭐가 달라지는데?'

언니와 대책이라 생각되는 이야기를 나눴다. 병원에 가서 영양제라도 맞게 해 드리면 어떨까? 뭘 드시게 해야 하나? 난 닭발이 좋을 거 같다고 했고 언니는 우족이 좋다고 했다. 언니가 생협에 전화해 친정으로 주문한다고 한다.

그럼 내가 배송되는 날 친정에 가서 해드리면 된다. 그런데 지금 주문해도 물건은 다음 주 목요일에 배송이 된단다. 언니에게 알았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그때까지 기다리기엔 너무 늦다.

다음날 반찬을 싸서 친정으로 향했다. 엄마가 어떤 상태인지 눈으로 직접 봐야 할 거 같았다. 폭염주의보가 내린 탓에 지하철과 버스도 더웠다. 친정 담벼락 창문 안에 엄마가 굽은 몸으로 식탁에 앉아 점심을 먹는 모습이 보인다. 몸집이 작고 왜소하다.

엄마 몸이 언제 저리 작아진 걸까? 한때는 내 온 세상이었던 엄마였는데. 나오려는 눈물을 밀어 넣고 "엄마!" 하고 불렀다. 그래도 누워 계실 줄 알았는데 식사라도 하고 계시니 다행이다.

친정을 들어서는데 집이 한증막같이 찐다. 왜 이리 덥나 보니 문이란 문은 거실 창문 빼고는 꼭꼭 닫고 있다. 문을 다 열었다. 이제야 숨을 쉬겠다. 안 덥나 물으니 엄마는 "야, 우린 춥다니까" 한다. 노화는 감각기관에도 어김없이 찾아온다. 폭염에도 더위를 느끼지 못하는 감각기관이라니.

아버지가 자꾸 먹을거리를 꺼내주며 먹으라고 하신다. 수박, 자두, 삶은 달걀까지. 지난 일요일 언니가 지나는 길에 들러서 수박과 자두 양파를 주고 갔다고 한다. 언니가 주말에 다녀갔다는 말에 내 마음이 또 놓인다.

무슨 이야기를 하면 부모님이 좋아하실까

식사를 마친 엄마와 작은 방에 누웠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는 잘 보았는지 물었다.

"어쩜 그리 똑같냐? 진짜 재미있게 봤어. 아버지도 재미있다 하시고."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안방에 홀로 누워 텔레비전 보는 아버지가 보인다. 쓸쓸해 보인다. 내가 와서 좋으실텐데 아버지는 홀로다. 간만에 친정에 와서 엄마하고만 이야기하는 건 아니지 싶다.

무슨 이야기를 하면 아버지도 좋아하실까? 내가 하는 일이 요즘 잘 풀린다. 그런 거 말씀드리면 좋아하시겠지만 내겐 잘 풀리는 일 따위는 없다. 다음으로 좋아할 이야기는 손주 이야기. 우리 집 중학생 둘째 녀석이 얼마 전부터 매일 출근 도장 찍던 pc방에 안 간다. 그 이야기 해야겠다.

할 이야기가 있다며 엄마 손을 잡고 안방으로 갔다.

"요즘 둘째가 pc방에 안 가. 철 들었나 봐. pc방에 다닐 때는 맨날 용돈이 부족하다고 돈 더 달라고 했거든. pc방 요금 내야지 친구들이랑 뭐 사 먹어야지. 며칠 전에는 지 동생한테 아이스크림 사 오라고 심부름을 시켰어. 네 개를 사오라고 하더니 하나는 심부름한 동생 먹으라고 주고 하나는 지가 먹더니 나랑 큰 애더러 하나씩 먹으래. 그런 일이 없었거든. 깜짝 놀랐어."

"야, 걔가 진짜 철드나 보다. 너도 잘한다고 칭찬 많이 해 주고 그래. 얼마나 기특하냐? 걔가 중간이라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그럴 텐데."

두 양반이 싱글 벙글 웃으신다.

우리 집 아이들은 삼형제다. 둘째는 집에 있는 먹을거리를 혼자 다 먹을 수 있는 외동이 친구를 많이 부러워한다. 그런 아이가 자기 용돈으로 아이스크림을 사서 식구들에게 돌린다니 생각도 못 한 일이었다. 그만큼 아이가 많이 컸다는 거다.

팔순 넘는 부모님이 이렇게 활짝 웃을 일이 자주 있는 일은 아닐 거다. 틈 날 때마다 찾아뵙고 좋아하실 이야기 들려 드려야겠다. 그래도 다행이다. 엄마 허리 아프신 게 걱정했던 것보다 심각하지 않아서. 엄마 몸도 빨리 회복돼서 아버지랑 같이 체험관 다니시면 좋겠다.


태그:#부모님의 뒷모습, #건강체험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