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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가 출범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당시 박 대통령은 정부조직 개편 문제로 야당과 정면으로 부딪쳤다. 박 대통령의 불편한 심기는 정부조직법개편안 국회통과를 요구하는 대국민담화에서 그대로 노출됐다.

그는 매우 격앙된 모습으로 입술을 앙다물었다. 주먹쥔 손을 부르르 떨기도 했고 호통을 치듯 야당을 맹렬히 성토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의 화난 모습은 TV를 통해 국민에게 고스란히 생중계됐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소통과 공감이 없는 독단과 독선의 '분노 정치'가 시작된 것은.

불끈 주먹 쥔 박근혜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4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정부조직개편안 처리가 늦어지는 것에 대해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 불끈 주먹 쥔 박근혜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4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정부조직개편안 처리가 늦어지는 것에 대해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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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은 혼란과 혼선, 갈등과 논란으로 파행되어 갔다. 인수위 시절부터 시작된 인사참사는 정부 내내 이어졌고, 크고 작은 사건과 사고가 잇따라 발생했다. 그때마다 사회는 심하게 요동쳤고 혼란에 휩싸였다.

무엇보다 박 대통령의 독단적이고 권위적인 리더십이 문제였다. 그는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확고한 신념(혹은 착각)에 휩싸여 국정을 일방적으로 운영해 나갔다. 대화와 타협, 소통과 상생의 정치를 기대한 국민들은 독단과 독선, 권위와 대결의 정치에 절망해야 했다.

박 대통령이 21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한 자리에서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국민들을 "불순세력"으로 규정하며 이들을 철저하게 가려내야 한다고 엄포를 놓은 것도 지금껏 계속된 '분노 정치'의 연장선상에 있다. 자신이 '선'이고 자신의 생각이 곧 '진리'라는 지독한 독단과 독선은 이번에도 여지없이 분출됐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국민들은 모두 불순세력이 되고 만다. 서울까지 상경 시위를 벌인 성주주민들도 불순세력이고, 사드 배치 반대를 당론으로 채택한 야당도 불순세력이며, 전국 각지에서 사드 배치를 반대하고 있는 국민들도 불순세력이다.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국민을 적으로 돌리는 대통령, 책임은 없고 언제나 남 탓만 하는 대통령, 그는 민주주의 체제의 구현 원리를 근본부터 잘못 이해하고 있다.

다양성을 기반으로 하는 민주주의는 구성원 사이의 갈등과 대립이 필연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정치구조다. 민주주의의 요체는 다수결의 원칙에 있는 것이 아니며 힘을 바탕으로 한 지배 논리에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민주주의는 서로 다른 생각과 관점을 지닌 구성원들이 경쟁하는 가운데 조화하는 정치체제다. 따라서 관건은 타협과 배려, 공감에 있다. 첨예하게 맞서는 현안이라 할지라도 강자가 약자 위에 군림하지 않고 대화하고 설득해 나가는 것. 민주주의 체제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박 대통령에게 결여되어 있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에는 타협·배려·공감이 전혀 엿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생각을 절대가치로 생각하는 오만과 독선, 그리고 자신의 뜻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배척하고 겁박하는 '분노 정치'만 앞세우고 있을 뿐이다. 박근혜 정부 3년 반이 이 같이 일방적인 국정 운영으로 흘러갔다. 박 대통령이 정치가 아닌 통치를 하고 있다는 볼멘 소리가 집권 여당 내에서 터져 나올 정도였다.

김덕룡의 말이 맞았다

 개소식에 참석해 인사말을 전하고 있는 김덕룡 전 한나라당 원내대표
 개소식에 참석해 인사말을 전하고 있는 김덕룡 전 한나라당 원내대표
ⓒ 박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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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생적 한계와 자라온 환경, 따르는 사람의 성향을 볼 때 대통령이 되면 미래보다는 과거로, 권위주의와 분열, 갈등의 시대로 갈 수밖에 없는 숙명을 지니고 있다."

한나라당 시절부터 박 대통령과 깊은 정치적 인연을 맺어왔던 김덕룡 전 의원은 지난 대선 당시 박 대통령을 이렇게 평가했다. 불행하게도 그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후 민주주의와 인권은 나날이 후퇴하는데 반해 권위주의는 갈수록 기승을 부리고 있다. 급기야 박 대통령의 입에서 불순세력을 철저하게 가려내라는 공안통치를 시사하는 발언까지 나왔다.

대통령이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정치적 신념에 따라 행사하는 것은 당연한 정치 행위다. 그러나 대통령이 행사하는 권력은 어디까지나 국민이 위임해 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권력의 행사에 앞서 다양한 의견 수렴의 과정이 꼭 필요하다. 잘못된 신념에 기반한 권력의 남용만큼 위험천만한 일이 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에게는 권력의 행사에 앞서 국민의 이해와 협조를 구하는 절차와 과정이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다. 그 자신이 국가이자 절대자였던 아버지의 통치행위를 고스란히 보고 자란 박 대통령이 독단과 독선의 권위적 국정 운영의 길을 가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뜻에 반대하는 국민을 '불순세력'이라 규정하는 박 대통령의 이면에는 '짐이 곧 국가다'라는 절대권력에 대한 뿌리깊은 향수가 자리매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박근혜 공화국'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온 국민들이 알고 있는 헌법 조항을 대통령은 모르고 있는 모양이다. 대한민국이 갈수록 뒷걸음치고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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