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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경준 검사장이 지난 14일 오전 10시경 피의자 신분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출두하고 있다.
 진경준 검사장이 지난 14일 오전 10시경 피의자 신분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출두하고 있다.
ⓒ 최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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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19일) 페이스북 등에서 공유된 '20년 전 기사'가 많은 사람의 공분을 일으켰다. <한겨레> 기자가 지난 1996년 7월 28일 쓴 기사로 '휴가철 열차 암표 회사원 쇠고랑'이란 제목을 달고 있었다.  

"서울지검 형사3부 진경준 검사는 27일 미리 사둔 열차표 1장을 피서객에게 팔아 4천원의 부당한 이득을 챙긴 혐의로 김○○(40)씨를 이례적으로 구속기소했다."

이 기사에 따르면, 김씨는 2주 전인 7월 13일 서울 청량리역 광장에서 열차표를 구하지 못한 회사원 이아무개씨에게 6000원짜리 통일호 열차표 1장을 1만 원에 팔아 4000원의 이득을 챙겼다. 경찰이 이를 적발해 검찰로 송치했고, 당시 담당검사였던 진경준 검사는 김씨를 구속기소했다. 

김씨를 구속기소한 이유와 관련, 당시 진 검사는 "암표 판매행위는 피서객이나 귀향객들의 심리를 악용해 부당 이득을 올리는 나쁜 범죄"라며 "휴가철을 앞두고 암표상들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해 구속기소했다"라고 설명했다.

1996년 7월 28일자 <한겨레> 기사.
 1996년 7월 28일자 <한겨레> 기사.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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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기사가 공분을 산 두 가지 이유

'20년 전 기사'가 사람들에게 큰 공분을 샀던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첫 번째 이유는 검사가 암표 한 장을 팔아 4000원의 이득을 얻은 김씨를 구속기소했다는 점이다. 수백만 원, 수천만 원도 아닌 고작 4000원의 이득을 얻었다고 구속한 것을 두고 법의 상식을 벗어났다고 비판할 법하다.   

두 번째 이유는 김씨를 구속기소한 검사가 진경준 검사장이라는 점이다. 진 검사장은 검찰 간부로 재직하던 중 넥슨코리아로부터 공짜 주식을 받아 126억 원의 시세차익을 얻은 사실이 드러나 최근 구속됐다. '4000원 구속'과 '126억 주식 대박'이 극명한 대비를 이루면서 공분지수를 극대화한 것이다.

진 검사장의 평검사 시절 '4000원 암표상 구속'이 알려지자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에서는 "4천 원 웃돈을 받은 암표상을 구속기소할 정도로 정의감 넘치는 검사였구만", "저건 대쪽 같은 법집행이 아니라 개XX 권력남용이지", "진경준 일단 4천 원으로 계산하여 징역형과 노역형을!" 등 진 검사장을 비꼬는 글들이 넘쳐났다.

김성식 국민의당 정책위의장은 20일 당 비상대책위 회의에서 "1996년 암표를 팔아 4000원을 챙긴 사람을 구속시킨 진경준 전 검사장, 정작 자신은 남의 돈으로 투자하고, 남의 차를 얻어 타고, 남의 돈으로 부를 쌓아왔다"라고 비판했다. 조능희 MBC 피디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120억 원은 4천 원의 300만 배, 진경준은 몇 년형 받을까요?"라고 꼬집었다.

기자도 이러한 반응들에 깊이 공감해 당시 억울했을 '김씨'를 찾고 싶었다. 김씨를 만나 그 당시 억울했던 심경을 들어보고 싶었고, 자신을 구속시킨 진 검사장의 '주식대박'과 '구속' 등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물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20일 오후 2시 23분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   

"[사람을 찾습니다] 진경준 검사장이 평검사 때 암표 1장을 팔아 4000원을 남긴 사람을 구속기소했다는 기사가 많은 사람들로부터 공분을 샀는데요, 당시 억울했을 그 분을 만나보고 싶습니다."

기자가 이 글을 올린 지 31분 만에 '놀라운 단서'가 담긴 멘션이 날아왔다. 이날 오후 2시 54분 '또또맘'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트위터 이용자가 기자에게 이런 멘션을 보내 온 것이다.

"그 양반 첫 번째 걸렸을 때 구류, 두 번째 걸렸을 때 벌금, 세 번째 걸려서 구속이었던 거예요. 억울하긴 뭐가 억울합니까. 철도법 세 번 연속 위반인데."

즉 암표를 팔아 4000원의 이득을 챙겼다는 이유만으로 김씨를 구속한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또또맘이 보낸 멘션 내용이 사실이라면 최소한 '절반의 공분'은 거두어야 할 판이다.

1996년 7월 28일자 <중앙일보> 기사.
 1996년 7월 28일자 <중앙일보> 기사.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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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 김씨 세 차례나 철도법 위반... 하지만 절반의 공분 거둘 수 없다

기자가 보기에 또또맘은 당시 사건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기자는 또또맘에게 "좋은 정보 감사하다, 정확한 사실 파악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팩트체킹을 통한 진실 전달 차원에서라도 증언해줄 수는 없나?"라고 요청했다. 이에 또또맘은 멘션 내용을 뒷받침해 줄 근거로 '1996년 7월 28일자 <중앙일보> 기사'를 보내왔다.

또또맘이 보내준 <중앙일보> 기사에는 같은 날 발행된 <한겨레> 기사에는 없는 '중요한 사실'이 들어 있었다. "金씨가 94년과 95년에도 암표를 팔다가 적발돼 구류 10일과 벌금 3백만원을 선고받는 등 철도법 위반 전과가 있고"라고 기술한 대목이다. 

<중앙일보> 기사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 1994년과 1995년에 암표를 팔다가 적발돼 각각 '구류 10일'과 '벌금 3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승차권에 표시된 운임보다 비싸게 파는 '승차권 전매행위' 즉 암표 행위는 당시 철도법을 위반한 범죄다. 

실제로 당시 철도법(현 철도사업법과 철도안전법으로 분리) 제87조의 3(승차권 전매자에 대한 벌칙)에 따르면 승차권에 표시된 운임을 초과해 승차권을 파는 사람은 20만 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에 처하고, 특히 상습적으로 암표를 파는 사람은 1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그러니까 김씨는 지난 1994년 처음 암표 행위로 적발됐을 때에는 '구류 10일'을 살았고, 다음해인 1995년 또다시 적발돼 '상습적으로 암표를 파는 사람'으로 간주돼 '벌금 300만 원'을 물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지난 1996년 또다시 암표를 팔다가 적발돼 '구속'까지 되기에 이르렀다. 이것도 '상습적으로 암표를 파는 사람은 1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는 철도법 규정에 따른 처리였다.   

온라인 암표 거래가 없었던 1990년대에는 기차역 근처 등에서 암표를 팔다가 구속되는 경우가 적지 않게 있었다. 물론 이렇게 구속된 이들은 모두 상습적인 암표상들이었다. 다만 그런 가운데에서도 일부 상습적인 암표상들의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되는 일도 있었다. 

당시 법 잣대로 보자면 진 검사장은 법에 충실한 검사였다. 세 차례에 걸쳐 철도법을 위반한 김씨를 구속한 것은 "휴가철을 앞두고 암표상들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해" 불가피한 조치였는지 모른다. 

그렇다고 나머지 절반의 공분을 거둘 수는 없어 보인다.  당시 법을 근거로 정의를 실현했다고 자부했을 평검사가 법과 규정을 어겨가며 공짜주식을 받아 100억 원이 넘는 이득을 챙긴 검찰 고위간부가 되었다는 사실 앞에서 누구나 분노를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번 취재에 응해주신 '또또맘'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넵니다.



태그:#진경준, #4000원 암표상, #한겨레, #중앙일보, #또또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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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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