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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의 '민중은 개돼지 발언'은 지난 11일~12일에 열린 11, 12차 전원회의에 참석했던 최저임금위원들에게도 화제였다. 11차 전원회의가 개최되기 전에  노동자 위원들의 대기실에서도 문제의 발언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갔다. "A위원님은 개입니까? 돼지입니까?"라는 자조적인 농담도 들렸다.

민중은 개나 돼지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주권자다. 따라서 이들의 생각은 중요한 정치적 결정을 내리는 기반이 돼야한다. 최저임금의 결정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11차 전원회의에서는 최저임금위원회의 최저임금 결정 방식에 대해서 논의가 이뤄졌다. 이 역시 정치적인 문제인 최저임금 결정을 어떻게 할 것인지와 관련 있다. 노동자 위원들은 공익위원들에게 더 책임 있는 태도를 보일 것을 요구했다. 실질적으로 최저임금이 결정되는 구간을 공익위원들이 제시해왔기 때문이다.

"공익위원이 책임감 가져야"

최저임금위원회 12차 전원회의
 최저임금위원회 12차 전원회의
ⓒ 홍인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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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위원6 : "제가 요청 드리고 싶은 게 이것입니다. 공익위원님들이 나름대로 전문성을 가지고 이 자리에 계신다고 하면 이 부분을 명확히 밝혀서 국민들과 논쟁을 해야 합니다. 최저임금의 중·단기 목표는 이만큼이고 올해는 이만큼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적시하고 국민들에게 설득하면 그건 비난의 문제가 아니라 논쟁의 문제가 됩니다. 공익위원님들은 그 부분을 적시하고 조정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저희가 계속 반대한 것은 기계적 조정입니다. 사용자, 노동자 그 어느 지점에서 몇 퍼센트. 여태까지 그걸 제시하면서 왜 이렇게 결정했느냐를 (국민들에게) 설득했느냐는 것입니다. 회의결과에 몇 줄로는 납득하기 힘듭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책임성 있게 제시할 때 사회적 논쟁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공익위원 측에서는 전공의 영역과 가치관이 다른 공익위원들이 합의된 기준에 따라서 조정안을 내기 힘들다는 점을 지적했다. 오히려 공익위원들이 중재안을 내는 방식을 떠나, 노사 양측의 최종안에 대해서 전원이 투표하는 방식을 제시하는 공익위원도 있었다.

공익위원8 : "최저임금위원회에 와보니 결국에는 (공익위원이) 중재하는 방식으로 (최저임금이) 결정됐습니다. 이 중재는 노사의 자율성을 저하하기 때문에 이 중재방식에 대해서 (노사관계 학자) 대부분이 찬성하지 않습니다. 이런 중재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은 내부의 정치적 문제나 갈등을 전가하는 방식으로 활용되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 비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최종안 결정방식(Final Offer Arbitration)입니다. 이 방식은 노사 당사자가 최종안을 주면 저희가 투표를 하는 것입니다. 이게 중재방식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이 완화되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최종안 결정방식이라는 전문적인 용어가 생경하게 느껴지기도 하였으나, 이에 대한 위원들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이것이 공익위원에 의한 중재방식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11차 회의는 막바지에 접어들었고, 논의는 노동자위원 측이 수정안을 낼 것인지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는 기존의 결정방식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었다. 11차 전원회의가 끝날 때까지 노사 양측은 수정안 제출 없이 원안을 고수했고, 심의촉진구간 요청에 대해서 논의하다가 회의가 마무리됐다.

노동자위원들이 수정안 제출에 고심했던 이유는 지난해 최저임금위에서의 기억 때문이었다. 노사 양측이 세 차례에 걸쳐 수정안을 제시하면서 노동계 최초 요구안 1만원은 8100원까지 내려갔지만 사용자 측의 동결안은 135원 인상한 5715원으로 인상됐을 뿐이었다. 또한 대폭 깎인 수정안을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공익위원 측은 상한선이 10%가 되지 않는 조정안을 제시하였고, 결국 노동자 위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최저임금이 결정됐다. 지난해 최저임금의 결정 과정은 현행의 중재 방식이 가진 문제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튿날(12일) 열린 12차 회의에서 공익위원들은 노동계에 수정안을 낼 것을 더욱 강하게 요구했다.

공익위원3 : "노사 합의 요청이 없으면 심의촉진구간을 공익 스스로 내지 않는 게 불문율입니다.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전통 따르는 게 정당성 있습니다. 수정안이 나와야 합니다. 나와서 실질적으로 의미 있는 구간이 잡혔을 때 공식화하기 위해서 공익이 역할 할 수 있습니다. 최초안에서 수정이 안 되는 상황에서 공익이 심의구간을 제시하는 것은 월권 논란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최저임금 인상은 '시혜'가 아닙니다

공익위원들의 호소문
 공익위원들의 호소문
ⓒ 홍인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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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차 전원회의가 개의하고 2시간이 지났을 무렵, 공익위원들은 수정안 제시를 촉구하는 호소문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호소문은 노사양측이 최초안을 고집하는 것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함과 동시에 이날 오후 8시까지 수정안 제출할 것을 "강력하게 요청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덧붙여서 "노사 모두 명분에만 집착하지 말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이에 노동자 위원들은 강력히 반발했다.

노동자위원6 : "공익위원 호소문과 관련해서는 저는 정말 좋은 멘트로 하면 유감을 표명하지만, 마음속에서는 심한 모멸감을 느낍니다. 노동계에서는 기계적 조정을 다시 안 한다고 한다면, 적정 수준을 논의하기 위해서 노사 간에 극단적인 차이가 있다고 한다면, 올해는 이러이러한 중심기준 놓고 해야 한다고 요구해왔습니다.

노동자위원들은 생계비를 중심으로 해달라고 했고 사용자위원들은 생산성 중심으로 놓자고 하자고 했고. 공익위원들은 무엇을 가지고 이야기할지 논의해달라고 했습니다. 최종 조정안을 그게 3%이든 20%이든 어떤 수치가 되든 간에 설명을 충분히 달아서 이렇게 결정했다고 했을 때 사회적 비난이 아니라 논쟁으로 발전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 호소문을 보면 그런 저희의 문제의식은 하나도 없습니다. 두 달 동안 노동자위원들이 열심히 노력했는데, 최소한 적시는 돼야하는 것입니다. 그냥 A부터 Z까지 '수정안을 내지 않았기에 논의 진척이 안 된다, 그래서 강력히 요청한다'며 지금까지 논의되었던 것을 이렇게 무화시킬 수 없습니다."

12차 전원회의는 자정이 넘어서까지 지속됐고, 논의는 노사 요청으로 공익위원들이 심의촉진구간을 내는 것으로 귀결됐다. 3.7%에서 13.4%의 구간에서 내년도 최저임금이 결정된다. 상한과 하한 사이에는 600원 가량의 차이가 존재한다. 과연 어느 지점에서 최저임금이 결정될까? 섣불리 예상하기 힘들다.

그러나 최저임금위원회의 의사결정 방식과 구조 문제는 비교적 분명하게 드러났다. 노동자 위원들은 공익위원들에게 더 책임 있는 설명과 태도를 요구했으며, 의사결정방식에 대한 논의도 이뤄졌다. 공익위원들도 본인들이 결정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문제에 대해서 자인했다.

지난 4.13 총선에서 여러 정당들이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을 약속한 것은 '개돼지'에 대한 시혜의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최저임금으로 최소한의 생계도 유지하기 어려운 국민들의 요구에 정당들이 반응하였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두 차례 회의에 배석하면서 과연 지금의 최저임금 결정 방식으로 국민들의 요구를 현실화 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다. 이 문제에 대한 논의의 진척이 필요한 시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홍인택 시민기자는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자원활동가입니다.



태그:#최저임금위원회, #최저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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