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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축으로 남느냐, 그만두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조직전체가 사축적 가치관에 지배되면 안타깝게도 개인이 저항하기는 무리다. 조직을 지배하는 분위기를 한 사람의 힘으로 없애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회사를 도망쳐 나와 동조 압박이 없는 곳으로 가거나 동조 압박에 굴복해 그 가치관을 받아들이거나, 둘 중 하나다. - <보람따윈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 중 발췌


얼마전 일본에서 '사축'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했다. 회사에서 키우는, 혹은, 회사에 길들여진 '가축'이라는 뜻인데, 나도 그런가? 하는 의문으로 기분이 좋지 않았고 무섭기도 했다. 그런데, 이 나라의 고위 공무원이 대놓고 국민을 '가축(개돼지)' 취급하다니.

우리는 그런 권력을 허락한 적이 없는데, 어쩌다가 이런 '대접'을 받게 된 걸까. 혹시 권력자들에게 받는 이런 대우를 우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것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혹시라도 힌트를 얻을 수 있을까 하여 책꽂이를 뒤졌다.

사람들은 집안에 머물기를 좋아하게 되었다. 집안에서는 빗장과 벽이 어느 정도까지는 엿보는 눈길을 막아주고, 의심받지 않도록 보호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연히 종교국 사람이 거리를 내려오는 모습을 보면 창백해져서 창문에서 물러서곤 했다. 이웃사람이 자기들을 고발하거나, 아니면 자기들에 대해서 나쁜 말을 했을지도 모르잖아? -p.90


책장 구석에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한 권을 집어들었다. 표지엔 완고해 보이는 두 명의 인물이 적과 흑의 대비를 가진 채 정반대에 위치하고 있다. 책을 넘기며 이 구절에 놀라 혹시, 지금 우리 이웃의 이야기인가, 하는 착각을 했다. 왜냐하면 요즘 내가 가장 자주 결심하는 것이 '튀지 말자. 의견을 말하지 말자, 조용히 살자'였기 때문이다. 일상의 감시에 굴복하여 '시민의 자유'를 반납한 저들은, 어딘가 지금의 나와 닮아 있다.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
ⓒ 바오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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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얘기하고 싶은 책은 21세기 최고의 전기 작가로 불리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이다. 이 책의 원제는 '칼뱅에 저항한 카스텔리오, 또는, 폭력에 대한 어떤 저항'(Castellio gegen Calvin oder Ein Gewissen gegen die Gewalt)이다. 카스텔리오는 누군지 모르겠으나, 칼뱅은 유명한 종교 지도자 아닌가? 궁금하다.

70여 년 전 히틀러의 나치 독일 치하를 피해 영국으로 도망쳐야 했던, 부유한 유태계 지식인 츠바이크는 '숨 한톨' 허용되지 않았던 압제와 위협, 굴복의 시간을 설명하기 위해 470여 년 전의 제네바를 소환한다.

칼뱅이 종교개혁을 통해 '신교'의 교리를 앞세워 지배하고, 종교의 이름으로 인간 삶의 모든 것을 통제하던 그 암흑의 시대를 통해 히틀러와 나치의 시대를 설명하려 한 것이다. 이들 시대를 통해 그들이 자유 시민의 권리를 어떻게 스스로 '포기'하였는지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1540년대의 제네바. 그들은 도시 전체를 과격한 신교의 교리로 강력하게 지배하기로 결정한다. 이러한 결정이 구교에 대한 반발심이었는지, 현실적인 이익때문이었는지, 츠바이크의 언급처럼 과격한 선동가의 성공적인 선동때문이었는지는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으나, (아마 모든 것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신교에 의한 독재를 승인했다.

도시 국가의 '자유로운 시민들'은 칼뱅을 불러들였고, 그가 자신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을 '신의 뜻'으로 받아들였다. 칼뱅의 신념은 확고했고, 그는 스스로에 대한 확신으로 '자신만이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있다'고 믿었다. 이것이 그의 권력집단에 의한 '일상의 폭력'이 정당화된 이유이다.

"하나님께서 내게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판단할 은총을 내리셨다. Dieu m'a fait la grace de declarer ce qu'est bon et mauvais." - 칼뱅


무서운 확신이다. 그는 교리에 입각하여 시민들의 자유를 억압하였고, 통제하였으며, 징벌하였다. 수많은 종교국의 감시자들은 도시를 지배하며 교리에 어긋난 사람들을 잡아들였다. 그들의 감시가 심해질수록 사람들은 더욱 더 도시 깊은 곳으로 숨어들었다. 그들은 그들의 자유 의지로 칼뱅에게 '힘'을 주었으나, 힘은 '권력'이 되어 '자유'를 빼앗았다(확신이 독재를 정당화하였고, 독재가 자유를 빼앗는 과정은 우리에게도 매우 익숙하지 않은가?).

권력이 자유를 빼앗는 과정은 어둠이 밀려드는 것처럼 자연스러웠고, 저항은 이미 위협이었다. 권력은 자유 시민이었던 제네바인들을 지배했다. 470년 전의 제네바, 70여 년 전의 나치 독일, 이 모든 '절대 권력'은 모두 합리적인 시민의 선택으로 이뤄진 일이었다. 이것이 더 무섭다. 게다가, 츠바이크가 묘사한 제네바는 끔찍하다.

그는 '평범한 것을 위해 평범하지 않은 것을 희생시키고, 모순 없는 노예근성을 위해 창조적인 자유를 희생 시킨' 도시였다고 말한다. 자유를 잃은 시민은 자신들을 '노예'로 만드는 권력을 숭배함으로써 권력이 '전횡'을 휘두르는 것을 인정하였다. 자유 시민이 아닌 노예의 삶, 과연 지금 우리와 다르다 할 수 있는가? '모순 없는 노예근성'으로 우리는 이 모든 것을 그저 받아들여야 하는가? 권력의 노예로, 국가의 가축으로 살아야 하는가? 그들의 시대에도 저항은 있었다. 한 번 살펴보자.

해는 떴으나 모든 시민들이 어둠으로 숨어든 잿빛 도시를 상상하게 된다. 압제는 분명하나 저항하기엔 무력한 도시의 개인들이다. 그들은 자유를 포기한 것에서 그치지 않고, 타인의 저항에 대한 권력의 폭압마저 용인한다. 하지만, 억압은 저항을 낳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인간의 삶. 폭압을 뚫고 나왔던 돈키호테, 미겔 세르베투스가 등장한다. 저자 츠바이크가 이 인물을 바라보는 시점은 너무도 명확하다. '세상이 철저하게 숨기려 했던 이단자이며, 오직 비참한 죽음만으로 역사에 남은' 인물.

세르베투스는 칼뱅의 교리에 의문을 제기했고 (특히, 삼위일체와 유아세례), 칼뱅의 증오는 그가 제네바의 모든 권력을 지배하던 모습처럼 일사불란하게 그를 옥죄었다. 칼뱅의 원한은 깊었고 ("그가 누군가에 대해서 원한을 품게 되면 그 일은 절대로 잊히지 않는다." - 드 라 마르 목사), 절대 죄인(세르베투스)을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오랜 시간을 숨어 지냈으나, 결국 그는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시민들은 '이단행위'에 의한 적법한 처형이라 믿었고, 그는 대낮의 태양아래 '불에 태워'졌다. 하지만, 그의 잔인한 죽음은 억압에 작은 균열로 남았다.

진리를 구하고,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그것을 말하는 것은 절대로 범죄가 아니다. 아무도 어떤 신념을 갖도록 강요당해서는 안 된다. 신념은 자유다. - 세바스티안 카스텔리오


츠바이크가 기록하는 카스텔리오는 '오래 망설이고 천천히 결심하여 투쟁에 참여한 가장 훌륭한 투사'의 모습이다. 세르베투스에 대한 '처형'을 바라보며, 카스텔리오는 <이단자를 억압해도 되는가, 그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신구교 권위자들의 소견을 제시함>이라는 소책자를 통해 압제의 근원이 무엇인지 용감하게 묻는다. 그는 세르베투스를 죽음으로 몰고간 권력에 대해 직접적으로 질문을 제기하고, 해답을 요구한다. 그것도 바로 절대 권력자 '칼뱅'의 언어로!

"교회에서 쫓겨난 사람들을 무기를 들고 박해하고, 그들에게 인간성의 권리를 거절하는 것은 비기독교적인 일이다." - 칼뱅


이미 칼뱅은 그의 발언을 통해 비정상적인 박해의 폭력을 이야기한 바 있다. 그럼에도 그를 아집에 빠트린 '절대 권력'에 너무도 쉽게 빠져버렸다. 그는 결국 '자신의 뜻을 거스른다'는 이유로 인간을 죽게 하면서 '신의 뜻'을 이용한다. 모순이다.

카스텔리오는 '신의 뜻으로 사람을 죽이겠다는 결정을 칼뱅 당신이 판단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칼뱅은 카스텔리오의 저항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카스텔리오의 질문은 그의 지배방식의 '근원'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들 자체가 이미 아주 잔인한 짓이다. 그러나 그 행위자들은 자신들의 비행을 그리스도의 옷자락으로 덮고 자신들은 그리스도의 뜻을 행했을 뿐이라고 말함으로써 더욱더 무서운 죄를 범한다." - 카스텔리오


칼뱅의 원한은 카스텔리오를 역사에서 지웠고, 그가 그 이후의 삶을 통해 어떠한 공식적인 활동도 할 수 없게 방해했다. 그를 세르베투스와 같은 방식으로 죽이지는 않았으나, 카스텔리오는 '칼뱅에 저항한 자에게 허락된 최소한의 삶'만을 허락받음으로써 다른 사람에 대한 '가장 강력한 경고'가 된다. 그렇게 그는 이웃의 도시 바젤로 '도망'친 후, 주변의 감시 속에서 쓸쓸히 죽어간다. 1563년 12월 29일 그의 나이 48세였다. 혹시, 내가 누군가를 이렇게 '죽여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섬뜩해졌다.

"나는 이단자라 불리는 모든 사람이 다 이단자라고 생각지 않는다. ...... 이단자라는 호칭은 오늘날 너무나도 치욕적이고 두렵고 경멸할 만한 것이고 무시무시한 것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누군가가 자신의 개인적인 원수를 없애고 싶다면 아주 쉬운 방법이 있다. 즉 그가 이단자로 의심된다고 말하면 된다. 이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이단자라는 이름만 듣고도 너무나 무서워서 귀를 막아버리고 눈을 감은 채 오직 그를 박해할 뿐만 아니라, 그의 편을 드는 사람도 역시 박해하기 때문이다." - 카스텔리오


지금으로부터 거의 450년도 더 된 세상의 이야기이다. 권력의 폭압에 대한 의문을 제시했다는 이유로, 쓸쓸히 죽어갈 수밖에 없던 '저항'의 이야기이다. '자유 시민'으로 살아가고자 한 카스텔리오는 죽어야 했고, 당대에 살아남은 자들은 그를 지키지 않은 선택에 동조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다. '노예'가 되는 것을 받아들인 그들은, 누구나 '이단'이라는 낙인이 찍혔다는 것으로 배척했으며, 낙인을 찍어 서서히 죽여갔다.

갑갑한 세상은 숨 쉴 곳을 찾지 못했고, 서로에 대한 감시와 모함으로 치열해졌다. 누군가가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를 밟아야 한다는 게 끔찍하다. 그리고 그것이 여전히 우리 사회에 남아있는 흔적이라는 게 더 무섭다.

역설적으로, 이 책의 무대인 스위스나 독일은 역사를 통한 가르침을 잊지 않았다. 비상식적인 압제를 허용하며, 그들이 '순순히 포기'했던 시민의 권리를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가는 쪽으로 사회의 방향을 결정해 놓았다.

지금에 와서, 우리가 소위 '선진국'이라고 하는 그들 나라에서 허용되는 '민주주의'가 부러운 것은, 그들이 역사의 가르침을 절대 등한시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아마, 다시는 동일한 실수를 하지 않을 것이나, 우리는 과연 어떤가?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문제이다.

뉴스를 듣자니, 사드 배치 지역을 놓고 온 나라가 들썩거리고 있단다. 그런데 우리가 언제 한 번이라도 '한반도에 사드가 배치되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우리의 의견을 나눈 적이 있었나?

제대로 된 의견 취합도 없이 '권력의 독단'으로 정책을 밀어붙이는 것이 민주주의인지, 국가의 결정과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과연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답을 얻고 싶다. 진정으로 우리 사회에는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가 허락되어 있기는 한가? 아니지, 당신은 과연 대한민국에서 '자유 시민'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덧붙이는 글 |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안인희 옮김 (바오)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바오(2009)


태그:#오늘날의 책읽기, #슈테판 츠바이크, #칼뱅-카스텔리오, #폭력에 대한 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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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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