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박용하, 박용재는 형제 시인이다. 박용재는 1960년 박용하는 1963년 생이다. 박용재는 1984년 <심상>을 통해 등단했고 박용하는 1989년 <문예중앙>을 통해 등단했다. 30여 년 전 용재는 아우 용하에게 "훗날 형제 시집 한 번 묶자!"고 했다.

그 약속을 지킨 시집이 바로 <길이 우리를 데려다 주지는 않는다>이다. 이 시집 발간은 용하가 앞장섰다. 형 용재가 그동안 낸 시집에서 시를 뽑고 신작시를 보태 기획과 편집을 맡았다. 형은 다짐한다.

"다음 시집은 어떤 형태가 되던 내가 기획한다. 왜냐고 묻지 마라! 난 너의 형이니까."

박용재 박용하 형제 시집
▲ 시집 표지 박용재 박용하 형제 시집
ⓒ 최일화

관련사진보기

나는 형제 시인 혹은 부자 시인에 대해서 부정적이다. 가장 개성적인 작품을 써야할 시인들인데 유사한 여러 속성들이 시를 자칫 몰개성의 형태로 나타나지 않을까 우려해서다. 같은 부모, 같은 성장 배경, 같은 추억을 공유한 형제에게서 차별성 있는 시를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선입견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시집을 읽으며 그런 염려는 접기로 했다. 개성이 다르고 서로 다른 체험에서 우러난 각자 다른 특색을 갖춘 작품이기 때문이다. 작품 전체를 봤을 때 확연히 다른  개성이 각자의 작품에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집엔 아우 용하의 시가 41편 형 용재의 시가 31편이 실렸다. 두 시인의 시편 말미엔 동시가 실려 있는데 아우 용하의 동시 5편, 형 용재의 동시 4편이다. 동시에서도 그 시적 경향이 다르다. 개성을 파악하기 위해선 작품을 읽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다.

여름 하늘

구름이 조는
여름 하늘

7월의 더움을
한 몸에 안고서
어디다 씻으려나한 줄기의
파아란 시냇물에 씻고 싶겠지

하늘 구름
아기 구름

여름 하늘이
너무 덥다고

사알짝 시냇물에 내려와
멱을 감는다

- 박용재 '여름 하늘' 전문

뜨거운 7월의 열기를 안고 어디 가서 몸을 씻고 싶어 하는 하늘. 몸 씻을 곳을 찾다가 시냇물에 내려와 멱을 감는다는 매우 보편적이고 평면적 서술로 되어 있다. 다정다감하며 어릴 적 동심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시어가 낯익고 시상이 비약적이지 않다. 그러나 아우 용하의 동시는 다르다.



사자는
누 잡아먹고 늑대는
순록 잡아먹고

호랑이는
사슴 잡아먹고

잡아먹히는
누와 순록과 사슴은
풀 뜯어먹고

나중에 모두
풀 위에 쓰러진다

- 박용하 '풀' 전문

형 용재의 '여름 하늘'과는 배경도 다르고 표현도 다르다. 용재가 따뜻하고 포근한 추억에서 길어 올린 서정성이 짙다면 아우 용하는 이국적이고 논리적이고 역동적이다. 형제 간에 정서와 제재와 표현 방식이 다르다. 물론 유사한 형식과 내용을 가진 다른 시편들도 있다. 시는 예술이다. 형제라고 해서 선입견을 가져서는 안 된다.

얼마나 시적으로 형상화에 성공했느냐가 관건이다. 형제간 서열에 따라 성격이 다르게 형성된다는 연구도 있다. 이 시인 형제도 서열로 인해 성격이 다르게 형성되었을 수도 있다. 그래도 유사한 점은 있으리라. 또 미묘하게 발견되는 차이점도 있을 것이다. 그 차이점을 발견하는 과정이 또 즐거움이 되기도 할 것이다.

형제지간엔 경쟁하기 마련이다. 형은 따라오는 아우를 의식하며 자신의 길을 개척하며 나갈 것이고 아우는 앞서가는 형을 앞지르기 위해서 분발하여 재촉하기도 할 것이다. 형과는 다른 길을 택해 형을 앞지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상례인데 이 형제는 공교롭게도 둘 다 시인의 길로 들어서서 걷고 있다.

두 시인의 서문을 읽어보면 안다. 참 다정하고 우애 있는 형제다. 형제 시집을 낸 걸 보면 그리고 서로 격려하고 추켜세우는 모습을 보면 금세 안다. 아우는 형의 덕을 칭송하고 형은 아우의 재주를 자랑삼고 있다. 두 시인을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얼마나 개성 있는 작품이냐, 작품성이 중요하다. 유사한 체험 유사한 배경을 가지고 있더라도 각자의 시상과 표현은 다르다. 각자 자신의 시 세계를 충실하게 구축하는데 성공하면 된다. 비교의 대상은 아니다.

사월 오후

시인 두보는
꽃잎 한 조각 떨어져도 봄빛이 줄어든다 했네

왕벚꽃 잎 흩어져 허공을 밟고
자주 바람 몰려와 나뭇가지 핥네

사람 싫어하는 내게도
좋아죽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 이 세상에서 나가면
세상 빛이 줄겠지

오늘 살구꽃 무참하게 진다야
당신 가슴속은 뭐하는지 이 마음은 묻는다

너 보고 싶어
네 눈빛 건지고 싶어

못 견디게 견디는
사월 오후

세상일 하나같이 내 뜻과 멀고
네 몸 역시 내 맘 같지 않네

- 박용하 시 전문

아우 박용하 시인의 시는 비교적 역동적이고 비약적이다. 이 작품만이 아니라 다른 작품에서도 보편적 현상을 노래하기 보다는 상황이 이질적이고 상상의 진폭이 크다. 이 시에서 먼 과거의 인물 두보를 차용한 것이나 마지막 연에서 보듯 평온한 결말보다는 갈등 구조가 표면화 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시어의 선택과 시의 길이에서도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박용하의 시는 울림의 폭이 크고 비교적 시의 길이가 길다. 고요와 평화보다는 역동적인 이미지를 통해 매우 진취적인 행보를 보인다.   

겨울 북한강에서 1

때묻은 마음 헹구러
겨울, 북한강에 갔었네
등이 허연 강물에 마음 담근채
갈대들의 허리를 어루만지는
남루한 바람 한 잎 만났네
저만큼 밤하늘에 핀 별 하나가
강물 속에 집을 짓는 것을 보았네
따뜻한 등불이 흐를 것 같은
그리운 사랑의 집 한 채
양구를 지나온 춘천행 막차 속에는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 몇 개 흔들리고
리어카를 끌고 별집으로 들어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았네
코 흘리며 아버지를 따라가는
새끼 별의 시린 눈물도 훔쳤네
겨울, 북한강에 가서
강물 속에 집을 짓고 노는
비늘 푸른 잉어 한 마리 보았네

- 박용재 시 전문

박용재 시인은 아우보다 온건하다. 시어가 그렇고 시의 배경이 그렇다. 상상력의 진폭이 비약적이지 않다. 그것은 개성의 차이일 것이고 그 개성은 곧 작품 속에 나타나 있다. 이 시는 아득한 과거나 미래로 달려 나가지 않고 우리가 늘 접할 수 있는 북한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강은 비교적 평면적 공간이다.

이 시엔 '따뜻한', '그리운', '리어카', '눈물' 같은 우리 주변의 익숙하고 따뜻한 이미지들을 도입하고 있다. 두 형제의 시를 비교하여 우열을 가리려는 게 아니다. 한 시집에 형제 시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으니 자연히 그 차이점이 보였다고나 할까. 시집 발간을 축하하며 모처럼 낸 형제 시집이 독자의 호응을 얻기를 바란다. 그리고 더욱 원숙한 모습으로 2탄이 속간되기를 기대한다.


길이 우리를 데려다 주지는 않는다 - 박용하 박용재 형제 시집

박용하.박용재 지음, 문학세계사(2016)


태그:#박용재, #박용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본인의 시, 수필, 칼럼, 교육계 이슈 등에 대해 글을 쓰려고 합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쉽고 재미있는 시 함께 읽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