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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에서 '생리'는 공공연하게 말해선 안 될 금기 취급을 받아왔다.(사진은 박보영이 모델인 한 생리대 광고.)
 한국사회에서 '생리'는 공공연하게 말해선 안 될 금기 취급을 받아왔다.(사진은 박보영이 모델인 한 생리대 광고.)
ⓒ 쏘피바디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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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광주 광산구의회 정례회에서 새누리당 박삼용 의원이 한 말이 큰 논란을 빚었다. 그는 본의회장에서 '생리대'라는 단어를 쓰는 것은 부적절하니 '위생대'라는 단어를 쓰자는 제안을 했다. 문제의 소지가 큰 발언이지만 사실 놀라운 말은 아니다.

지금껏 한국 사회에서 '생리'는 공공연하게 말해선 안 될 금기 취급을 받아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필요한 순간에도 자신이 생리 중임을 이야기하거나, 생리로 인해 발생하는 고충을 토로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심지어 생리대를 직접 사기가 민망해서 인터넷으로만 구매한다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박삼용 의원은 위생이라는 단어가 생리보다는 낫다고 주장했지만, 사실 '생리'라는 단어 그 자체도 생리의 경험을 직접 드러내지는 못한다. 사전적으로 생리는 '생물체의 기능과 작용이나 원리', '생활의 습성이나 본능'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사회적으로도 주로 이런 뜻으로 사용된다.

'월경'이라는 또 다른 단어가 있지만, 이 단어 역시 '한 달을 경유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물론 생리 주기가 대부분 한 달에 한 번 돌아온다는 점에서 이 단어는 맞지만, 그렇다고 '생리 경험' 자체가 무엇인지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말하자면 '생리'는 표현하는 명칭에서부터 많은 것이 은폐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단어에서 '생리'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떤 경험이고 어떻게 경험되는지가 보이지 않는다.

전혀 자연스럽지 않은 '생리 금기'

흔히 하나의 현상을 표현할 때, 그 현상이 무엇인지 직관적으로 알 수 없는 단어를 쓰는 경우는 하나다. 그것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으며, 사회적으로 금기시되어 은폐되어 있을 때다. 이는 대부분의 은어(어떤 계층이나 부류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도록 구성원들끼리만 빈번하게 사용하는 말)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같다.

물론 그렇다고 당장에 생리라는 단어를 쓰는 것을 멈추고 대체어를 만들자는 게 아니다. 다만 생리를 말하는 것이 금기가 된 상황이 '생리'라는 단어 자체에서도 유추되며, 이는 사회가 생리를 둘러싼 말들을 얼마나 은폐하고자 했는지를 보여준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리가 부정적인 함의를 가지고 금기와 분리의 대상이 된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일까? 답은 당연히 그렇지 않다이다. 책 <더이상 어머니는 없다>에서 애드리안 리치는 월경이 가부장적인 사고 방식에 의해 불길하고 불리한 것으로 전복되었다는 주장을 펼친다.

물론 먼 옛날에도 생리 기간 중에 지켜야 할 금기(가령 외출하지 말 것, 성관계를 맺지 말 것)가 있었다. 하지만 리치는 이 금기가 전혀 다른 문화적 의미를 지녔으며, 그 금기를 여성이 만들어 냈을 가능성이 있음을 언급한다.

그녀는 원시 신화에 대한 조셉 캠벨의 연구를 인용하며, 월경 중의 금기는 '여성에 대한 두려움(여기서 두려움이란 생명을 탄생시키는 힘에 대한 것으로 현대 사회의 여성 혐오와는 성격이 다르다. 이 두려움은 '경이로움이 일으키는 두려움'에 가깝다)과 어머니로서의 여성의 신비'와 연관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주술적인 성격이 강한 문화권에서, 이런 식의 금기는 여성들에게 의례의 카리스마를 부여함으로써 외연적으로 더 강한 힘을 가지게 했을 것이라고 언급한다. 말하자면 이 당시 생리는 금기의 대상이 아니라 경이의 대상이었으며, 여성들은 생리 중 금기를 통해 부족 내에서 자신이 가진 힘을 강화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이, 특히나 남성이 이해할 수 없는 힘을 가지는 것은 금지된다. 마치 중세시대에 교회를 중심으로 한 힘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지식과 힘을 가지고 있던 여성들이 마녀로 몰렸던 것처럼 말이다. 때문에 가부장제 사회에서 월경기는 오염된 시기, 악령이 찾아든 시기, 육체적으로 혐오스러운 시기로 의미화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틀어진 생리의 문화적 위치는 현대 사회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생리'는 얼마든지 다르게 말할 수 있다

물론 대부분의 원시 사회를 다룬 연구가 그렇듯, 리치의 주장도 다소 불분명한 근거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그녀 또한 이 사실을 인정한다. 또한 나는 그녀의 이야기대로 생리 경험이 재생산을 중심으로 의미화 되는 것은 또 다른 부작용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치의 이 같은 주장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리치의 주장은 우리가 생리를 다르게 사고할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을 열어보이며 그것이 불가능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특히나 생리가 숨겨야 할 것, 공공연하게 말해선 안될 것으로 치부되는 사회에서 생리를 다르게 사고하는 일은 꼭 필요하다. 이런 환경이라면 생리를 경험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 되기 때문이다.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긴 하지만, 생리 중 여성들은 신체적 혹은 감정적 변화를 겪곤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변화를 '여자들이 예민해지는 날' 정도로 손쉽게 갈무리하고 넘어가곤 한다. 하지만 우리가 생리를 숨겨야 할 것으로 여기지 않고, 생리 경험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들을 듣고 나면, 우리는 생리 경험에는 다양한 결이 존재하며, 얼마든지 다르게 이야기 할 수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가령 책 <페미니즘, 왼쪽 날개를 펴다>에 수록된 글 '월경 전 증후군, 노동, 규율, 분노'에는 이런 질문이 등장한다. 생리 기간 중 여성들이 말하는 집중력이나 통제 능력 저하가 다른 보완 능력의 향상을 동반하지는 않냐는. 저자는 집중력 저하는 자유연상 능력 향상을 의미할 수도, 근력 조절 능력 저하는 긴장 완화 능력의 향상을 의미할 수도, 효율성 저하는 양이 적은 업무에 대한 관심 증대를 의미할 수도 있지 않냐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실제로 이 글에는 생리 중 신체 변화를 다른 방식으로 경험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한 조각가는 월경 전에 감정적인 변화를 겪고, 이것이 자신의 작업에 투영된다는 언급을 한다. 그녀는 이 같은 변화 때문에 오히려 생리를 기다리기도 한다고 말한다.

또 다른 누군가는 느닷없이 눈물이 흐리기도 하지만 그것은 좋은 울음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슬픈 일과 더불어 기쁜 일에 대한 감정도 증폭되고, 울음을 터트리며 그것에 대한 사랑을 느낀다고 말한다. 오히려 이런 식의 감정적 변화 이후 활력을 얻기도 한다고 그녀는 말한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북아메리카 원주민 유록족의 사례일 것이다. 저자는 글에서 토머스 버클리의 연구를 인용하는데, 유록족은 월경 중인 여성을 따로 떨어트려 놓는 관습을 가지고 있다. 이는 생리에 대한 금기 때문이 아니라, 유록족이 월경기를 여성의 능력이 최고조로 달하는 시기로 파악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 시기의 여성들은 다른 곳에 관심을 기울이거나 집중력을 흐트리는 대신 명상에 들어간다. 이들은 이 같은 행위가 정신적 에너지를 축적시킨다고 파악한다.

더 이상 '생리 경험 말하기'가 금기가 아닌 사회를 위해

물론 모든 사람들이 생리를 이렇게 받아들여야 할 필요는 없다. 생리 경험은 다양하며, 그 속에는 부정적이거나 고통스러운 것도 당연히 포함될 수 있다. 하지만 생리가 그 자체로 금기시 되고, 사람들이 생리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할 수 없게 될 때, 당사자들이 자신의 몸이 겪는 변화를 다른 방식으로 해석해 낼 여지는 없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저 '숨겨야 하고 말해선 안될 몸의 변화'를 겪는 당사자들은, 생리 기간 내내 극도의 긴장과 피로에 시달리는 것 말고는 다른 경험을 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나는 제안하고 싶다. 생리를 다시 생각하기를, 생리를 다르게 말해보기를. 이렇게 만들어진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생리를 겪는 사람들은 분명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경험을 의미화 할 수 있을 것이다. 혹은 생리를 경험하는 방식 자체가 달라질 수도 있다. 어떤 결과를 마주하든, 생리 자체가 드러내선 안될 것 뿐인 지금보다는 더 나을 것이다.


태그:#여성주의, #생리, #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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