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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 교수가 좌장을 맡아 농업회의소의 필요성과 전망에 대한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김호 교수가 좌장을 맡아 농업회의소의 필요성과 전망에 대한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 <무한정보신문> 이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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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헌 윤봉길 의사가 중요성을 강조한 '생명창고로서의 농업'을 지키기 위해서는 '농업회의소 설립'이 가장 현실적 대안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사)매헌윤봉길월진회(회장 이우재)는 지난 21일 충남 예산군 공주대 산업과학대 대강당에서 매헌탄신 108주년 기념 농업포럼을 열었다. '인류의 생명창고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라는 주제로 기조강연과 사례발표 그리고 지정토론이 이어졌다.

기조강연을 한 정명채(한국농어촌복지포럼 공동대표, 전 한국농업대학 학장) 교수는 "자본이 정치를 지배하는 현실에서 농업이 살아남는 방법은 헌법에 보장된 농민대의기구인 농업회의소를 설립하는 것이다"라고 농업회의소 설립의 시급성에 대해 설명했다.

농업회의소란 상공회의소와 같은 역할을 하는 농업인의 대의기구다. 헌법 제123조 5항에 '국가는 농어민과 중소기업의 자조조직을 육성해야 하며 자율적 활동과 발전을 보장해야 한다'는 근거를 두고 있으나, 그동안 묻혀 있었고 비로소 20대 국회에서 법제화를 추진 중이다.

전국적으로 농업회의소 설립의 뿌리를 내리는데 열정을 쏟고 있는 정 교수는 "기업인들은 기업의 이익을 대의하기 위해 상공회의소를 만들었다. 그런데 농민들은 67년 동안 헌법에 그런 게 있는지조차 몰랐다. 늦었지만 농업을 지키고 농민들이 살기 위해서 지금 농업회의소를 만들어야 한다. 예산군은 과거 농업기술의 본산이었고, 지금도 그런 만큼 농업회의소 설립에 있어 선두에 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유럽의 사례를 본보기로 제시했다.

헌법에 보장된 기구

유럽국들의 농업회의소는 농업의 근간인 농지와 농민을 지키는 두 가지 기능에 중점을 두고 있다. 우선 농지의 감소를 막고 난개발을 규제하고 농지관리를 책임진다. 또한 유럽의 농업회의소는 농민의 소득보장(철저한 품목별 생산상한제(쿼터제) 실시)을 통해 적정 농민 수를 유지케 한다.

정 교수는 최근 한국농정이 펴고 있는 6차산업의 한계와 유럽의 6차산업도 소개했다.

"우리는 일찌감치 가공은 공업, 유통은 상업으로 구분지어 놓았다. 예를 들어 농민이 열심히 농산물 가공을 해서 성공하면 소관부처가 중소기업청으로 넘어간다. 농민이 상품을 개발해 놓으면 기업에게 빼앗긴다는 얘기다. 순창고추장이 그러하듯...

그러나 유럽은 농산업체지정육성법이 있어 농업회의소가 끝까지 농업의 6차산업을 관리하며 지켜낸다. 그래서 화장품원료공장, 제약회사 등등의 대표가 농민조합장이다. 생산, 가공, 판매까지 온전히 농민과 농업의 틀 속에서 이뤄지고 유지된다. 이것이 바로 6차산업이다."

이어 그는 최근 지자체들까지 열을 올리며 흉내만 내는 6차산업 시범사업에 대해 큰 우려를 나타냈다.

기조연설을 한 정명채 교수.
 기조연설을 한 정명채 교수.
ⓒ <무한정보신문> 이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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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글로벌농기업들의 먹거리 지배와 우리 농업의 고난한 현실문제도 끄집어냈다.

농산물 자급률 20%대, 쌀을 제외하면 10% 미만인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수입 곡물류 중 소비량이 가장 많은 밀, 콩, 옥수수는 다국적 농기업인 '카길'이, 바나나 등 수입 과일은 '델몬트'가 독점하고 있다.

정 교수는 "6·25 전쟁 이후 무상원조라는 이름표를 달고 들어온 밀, 콩, 옥수수, 목화로 인해 우리나라 농업생산기반이 뿌리째 망가졌다. 이제는 각국과의 FTA로 인해 과일, 곡물류가 저관세로 밀려오고 있다. 이것은 무상으로 식량 원조를 했을 때부터 이미 예정된 수순이었다. 그러니 우리 농민들이 수입이 안 되는 채소작물과 경쟁력 있다는 몇 가지 과수에 몰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이게 바로 식량자급률도 떨어지고 농토도 작은 나라(농민 1인당 농지면적 1.7㏊, 미국 170㏊)에서 해마다 과잉생산된 농산물을 갈아엎는 이유다. 앞으로 뭘 심어야 하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통탄했다.

그럼 이 난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하나. 다국적 농기업들은 농산물의 유통 독점, 가공 독점, 생산기반 독점(생산적지 점령) 체계를 더욱 공고히 하며 무기보다 무서운 생명산업을 지배하고 있다. 실례로 델몬트와 돌(Dole)을 통하지 않고 수입 바나나를 먹는 것은 힘들다.

또한 이들은 농업을 독점하기 위해 농업개방전략(UR협상)을 만들었고 WTO 설립을 통한 농업개방을 강화하는 한편 각국의 자국농업보호정책을 무력화시켰다. 식량의 80%를 사다 먹어야 하는 우리나라는 꼼짝없이 그들이 쳐놓은 그물에 걸렸다.

정 교수는 해법으로 "유럽연합의 경우 두 가지를 통일했는데 하나는 화폐고 하나는 농업정책이다. 경제재가 아닌 공공재로서의 농업을 지키기 위해서다. 농업이 건강한 농산물을 생산하고 국토를 살리고 깨끗한 물, 깨끗한 환경을 만드는 공익적 역할에 대해 국민공감대를 만들고 그걸 토대로 농가소득의 50%를 보조해 준다. 그런데 진짜 중요한 것은 이것을 정부가 하지 않고 농업회의소가 한다는 데 있다. 거버넌스, 즉 정부와 협치를 함으로써 WTO의 감시(자국농업 보호정책 및 지원에 대한 규제)를 멋지게 피해가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농업회의소 설립이 시급함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특히 "현재 농민의 이익을 대변하는 농민 단체, 연합체, 협의체 등은 임의기구로써 정책참여가 법적으로 보장될 수 없다. 앞으로는 운동적 대항과 저항방식으로는 문제 해결이 어려워지는 사회다. 그동안 농업회의소를 만들려는 수차례 시도가 있었지만 정부와 기업, 농협중앙회 등의 방해로 이뤄지지 못했다. 이번만큼은 농민의 권익을 찾고 점차 줄고 있는 농업예산과 농업기관과 농지를 지키기 위해서 농업회의소를 반드시 설립하자. 모두 함께하자"고 목청을 높였다.

그는 마지막으로 기대하는 농업회의소의 역할에 대해 ▲농민대의기구로서 농업의 비전을 추구하는 주체이며 정부농업정책의 법적지위로서의 파트너 ▲농민단체간, 폼목조직간, 지역 간 이해조정과 협동기구(농민의 소득안정을 위한 품목별 쿼터제, 농산업체지정 육성제도 등 사업에 중점) ▲농업회의소의 협치(농업의 국제개방 전략에 대응) 및 자치농정전략임을 강조했다.

매헌의 뜻 받들어

한편 유럽의 농업회의소는 산업혁명 이후 농업위축에 반발한 농민운동 민주화운동의 결과물로 생겨난 법적, 제도적 농정참여기구다. 농민의 목소리를 정책에 전달하는 공식 루트이며 농업 기술, 가공, 저장, 유통, 경영기술을 컨설팅하고 농업문제를 조사 연구한다. UR과 WTO출범 이후에는 대외농정에 대응하는 자치 기능을 강화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2010년부터 농림수산식품부가 농업회의소 시범사업을 하기 시작했으며, 예산군도 2015년 10월 시범사업지구로 선정돼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6월 14일 추진단을 발족했고, 오는 10월 창립예정이다.

기조강연이 끝나고 선진지역 사례발표로 출범 4년 차인 거창군농업회의소가 소개됐다. 거창군농업회의소는 780여 농업인 개인회원과 단체회원, 9개 농협이 참여해 군 조례를 근거로 한 명실상부한 거창농업대표기구다.

300여 차례 농민 교육, 회의, 토론회를 열었고 다양한 정책과 지역농정의제를 발굴했다. 지방선거와 총선시 후보를 초청해 토론회를 열고 농업공약서약을 받았으며 후보별 공약을 분석해 제안했다.

임원과 회원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사업도 활발히 벌였으며 유관기관과의 연대사업도 펼쳤다.

김훈규 사무국장은 "월 2000원밖에 안되는 회비, 부족한 지원금 등 재원부족으로 어려움이 많다. 하지만 자꾸 작아지는 농업농촌의 현실에서 농업회의소가 빛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 순서인 지정토론은 좌장 김호(단국대 교수)와 박형(예산군 농민회장), 윤동권(전 농업인단체협의회 의장), 정락채(공주대 교수)가 참석해 농업회의소의 필요성과 전망에 대해 토론했다.

이우재 월진회장은 마무리 발언을 통해 "윤봉길 의사는 농민운동의 태두였다. 그동안 문화축제에만 치중한 면이 있어 안타까웠는데, 이젠 농업문제도 관심을 기울이려 한다. 오늘 농업회의소 건립을 위한 포럼이 그중 하나다. 국가권력은 분산되고 있고 그것이 지배했던 사회가 약화되고 있다. 국가권력에 대항하는 운동권적 투쟁도 약화되고 있다. 이것이 시민국가시대로 가는 거버넌스다. 농정의 협치구현을 위한 농업회의소 설립에 월진회도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충남 예산에서 발행되는 지역신문 <무한정보신문>과 인터넷신문 <예스무한>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농업회의소, #농민대의기구, #정명채, #윤봉길, #예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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