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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미국에서 한 통의 메일이 도착했다. 내용인즉슨 중국과 제3국을 통해 탈북을 감행한 한 어린 여성이 미국에 정착해 있는데 이 친구에게 의사로서 도움을 줄 수 있느냐는 내용이었다.

조금은 오랜만에 접하는 친구의 메일은, 그렇게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에 대한 반가움과 그가 청하는 부탁이라는 것에 의구심을 동시에 들게 했다. 아울러 메일을 통해 건네 들은 그녀의 이야기는, 단순히 탈북자가 한국의 지인에게 도움을 바라는 그것과는 차이가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의사로서 내가 줄 수 있는 도움 역시도 일반적인 내용은 아니었다. 한 마디로 그녀에게 성형 수술을 해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10대 후반 탈북을 감행해 중국으로 건너가 결국 미국에 정착, 그리고 원하던 삶에 대한 실패. 어쩌면  우리가 흔히 접하는 탈북자의 이야기로 치부될 수도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대로 그녀가 바라는 도움은 자신의 외모를 아름답게 변화시켜 미국에서의 정착을 공고히 하겠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성형이라는 것이 일반적으로 자기 삶에 대한 질적인 향상을 위한 행위, 그러니까 속된 말로 여유가 좀 있는 이들의 전유물 같은 인식을 감안한다면 그녀의 절실함은 조금은 의심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실제로 만나본 그녀의 외모도 일반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크게 손볼 필요가 없는 외모에 가까웠다.

성형수술, 단순한 욕심은 아니었을 것이다

영화 <미녀는 괴로워>
 영화 <미녀는 괴로워>
ⓒ 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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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녀가 가지는 과거 삶에 대한 배고픔이 해결되자 가장 먼저 원했던 부분이 다름 아닌 외모의 변화였다는 것은 의사인 내가 접하기에도 조금은 놀라운 것이었다.

외모만이 어려운 인생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당연히 아니다. 하지만 북한이라는 극단의 세상에서 빠져나와 혈혈단신 새로운 세상에서 맞서기 위해 어린 여성이 의사인 나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네는 것 역시 그러한 측면에서 보자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닌 것이다. 외려 조금 더 세심하게 도움을 건네야 할 부분이다. 그것은 단순히 욕심에 차원은 아니리라.

성형에 대한 세간의 시선은 많은 여성에게 일종의 억압에 가깝다. 드러내지 않아야할, 묶어야 하는 코르셋과 같은 것이지만, 결코 숨기기 힘든 원초적인 것이다. 비단 이러한 한 가지 사례만을 언급하지 않아도 말이다.

여성혐오 이전에 필요한 여성이해

영화 <왓 위민 원트>
 영화 <왓 위민 원트>
ⓒ 튜브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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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억압, 그리고 그들에 대한 복지는 이렇게 일반적인 사회의 시선으로 이해하기는 힘든 것이 많다. 얼마 전 이슈가 됐던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이나, 생리대를 사지 못해 신발 깔창을 이용한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들, 혹은 전동차와 건물 화장실의 여성전용칸 법제화와 같은 논의와 인식은 그래서 중요하다. 그들이 겪는 하루의 일상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다른 성별이나 계층에선 쉽사리 이해하기 힘든 그 무엇임을 전제해야 한다.

최근 인터넷상에서 팽배한, 소위 '성별 간 혐오'에 가까운 논쟁의 해결점에는 이러한 이해가 절실하다. 대부분의 충돌이라는 것이 결국 상대방에 대한 폭넓은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리고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서 여성을 바라보는 암묵적인 편견이라는 것이 과연 말하지 않을 뿐 얼마나 팽배해져 있는가는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 아울러 이러한 망상은 자칫 사회적 문제로 확대될 수도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킬 필요가 있다.

모두가 바라는 조화로운 세상이란 그 시대가 가지고 있는 폭력성에 주목해야한다. 그런 의미에서 서두에 언급한, 말 그대로 죽을 고비를 넘어 새로운 세상에 도달한 그녀가 행복하길 바란다. 그를 집도했던 의사의 입장이 아닌,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단 한명의 사람의 입장에서 말이다.


태그:#페미니즘, #여성혐오, #왓 위민 원트, #미녀는 괴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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