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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 선생이 암살당한 이후 수많은 시민들이 선생의 죽음을 슬퍼하며 경교장 앞에 모인 모습이다.
▲ 경교장에서 백범 김구 선생이 암살당한 이후 수많은 시민들이 선생의 죽음을 슬퍼하며 경교장 앞에 모인 모습이다.
ⓒ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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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허 여기 발구르며 우는 소리
지금 저기 아우성치며 우는 소리
하늘도 땅도 울고 바다조차 우는 소리
끝없이 우는 소리 임이여 듣습니까 임이여 듣습니까

이은상이 작사하고 김성태가 작곡한 백범추도가(白凡追悼歌)의 첫 구절은 듣는 이의 가슴을 타게 한다. 추도가의 슬픈 가사처럼 선생의 죽음은 대한민국의 슬픔을 넘어 한민족의 슬픔이었다.

26일은 민족의 영원한 스승이자,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으로 추앙받는 백범 김구 선생이 안두희의 흉탄에 서거하신 지 67주년이 되는 날이다. 선생이 거처하던 경교장은 방치된 상태에 있고, 선생의 서거일은 국민에게 잊힌 지 오래다. 그렇게 우리 민족의 위대한 거인이 쓸쓸하게 역사의 뒤안길로 완전히 퇴장하고 만 것이다.

백범 선생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일생을 1919년 수립된 대한민국에 몸담으셨다. 선생께서는 가장 미천한 범부가 되기를 간청했으나, 경무국장이라는 중요한 직책에 등용되셨고, 이후 한인 애국단을 창설하여 중국 장개석 정부가 대한민국의 정식 재건을 지원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치셨다. 이후 대한민국의 주석으로서 항일전쟁을 이끄셨고, 광복 이후에는 조국의 분단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시다 괴한의 공격에 서거하셨으니, 참으로 파란만장한 삶이 아닐 수 없다. 그 파란만장한 선생의 삶에는 조국의 완전 독립을 향한 염원과 선생의 애족심이 깊게 베여 있음에 틀림없다.

백범 선생은 조국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대한민국의 아버지이다.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 남에게도 행복을 주기를 바라신 백범 선생은 문화의 힘을 높게 평가하셨다. 이는 21세기 문화강국을 국가의 비전으로 내세우고 있는 현 대한민국에 그대로 부합한다. 선생은 독재의 나라가 되는 것을 거부하며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에 기반을 둔 자유 있는 나라를 갈망하셨다.

선생의 민주주의 정신은 이후 이승만 대통령의 3.15 부정선거를 규탄한 4.19 혁명과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그리고 6.10 민주 항쟁으로까지 이어져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이룩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선생이 제창하신 정신이 21세기 대한민국에도 계승되고 있으니, 가히 조국의 비전을 제시한 대한민국의 아버지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선생의 서거 이후 대한민국은 민족의 비극이라 불리는 6.25 전쟁을 겪었고, 이승만-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지는 독재를 경험했으며, 민주화가 된 이후에도 다시 권위주의 독재 시절로 시계바늘을 돌리려는 수구 세력이 존재하니, 백범 선생께서 바라시던 대한민국은 실로 혼란 그 자체임에 틀림없다. 온겨레의 정신적 스승으로 자리매김하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선생의 정신을 실로 계승하지 못한 부분이 많으니, 우리민족이 선생께 진 빚은 천금보다 무겁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3년 뒤면 대한민국이 우리 역사 최초로 민주공화제 정부의 수립을 선언한 지 100년이 된다. 입헌 100주년을 맞아 백범 선생께서 남기고 떠나신 한을 이제 우리 민족이 풀어드려야 한다. 선생께서 생전 못다 이룬 평화통일을 위해 남북대결의 장에서 벗어나 평화와 교류의 장으로 나와야 한다. 자유로운 대한민국을 꿈꾸신 선생의 유훈을 계승하여 언론 자유를 보장해야 함은 물론이다. 백범 김구 선생의 서거 67주기를 충심으로 애도하며, 선생의 정신이 온겨레를 넘어 온 세계에 전해질 수 있기를 바란다.


태그:#백범김구, #김구, #서거, #67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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