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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3월 23일 한나라당 대표 경선결과, 새 대표가 된 박근혜 대표가 꽃다발을 들고 대의원들에게 감사인사를 하고 있다.
 2004년 3월 23일 한나라당 대표 경선결과, 새 대표가 된 박근혜 대표가 꽃다발을 들고 대의원들에게 감사인사를 하고 있다.
ⓒ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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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후보 2614표!"

2004년 3월 23일 잠실 실내체육관에서는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새 대표를 뽑는 전당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오후 6시경 사회자의 입에서 박 후보의 이름이 거론되자 장내에서는 '와'하는 함성과 함께 "이제 됐어"라는 지지자들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박 후보는 이날 전체 유효 투표수 5044표 중 과반수(51.8%)를 얻어 1차 투표에서 가볍게 승리를 쟁취했다. (관련기사: 찬반 팽팽한 '박근혜 효과'... "부패 이미지 씻고 탄핵은 정면돌파")

반면, 출입기자들의 반응은 회의론이 지배적이었다. 11일 전 있었던 노무현 대통령 탄핵으로 어려워진 총선 국면을 한나라당이 돌파하기에는 '박근혜 카드'가 아무래도 약하지 않냐는 의견들이 많았다. "아무리 사람이 없다고 말 주변도 없는 사람을 대표로 몰아주냐?"는 얘기까지 나왔다. 1차 투표에서 싱겁게 끝난 전대 결과는 기자들뿐만 아니라 많은 정치권 사람들의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었다.

그때는 아무도 몰랐다. 이것이 20대 총선에서 패배하기 전까지 근 12년 가까이 이어졌던 '박근혜 필승 신화'의 시작이었다는 것을. 그날의 전대 결과가 당내 유력정치인 몇몇의 손에 의해 빚어졌다는 식의 후일담을 들으면 웃음 밖에 안 나온다.

'10년 내다본' 한나라당 당원들, 그들이 옳았다

분명한 것은, 당시 한나라당 당원들은 난파 직전의 당을 이끌 리더십으로 최상의 선택, 어쩌면 향후 10년을 내다본 선택을 했다는 점이다.

한두 사람의 탁견으로 풀 수 없는 어려운 문제를 당원들의 '집단지성'으로 명쾌하게 풀어낸 사례는 지금의 더불어민주당(구 새정치민주연합)에도 있다.

2014년 3월 26일 안철수·김한길 공동대표 체제로 출범한 새정치민주연합의 탄생 근거는 '기초자치단체 무공천'이었다. 안 대표는 새정치의 징표로 "야당이라도 대선 때의 약속대로 무공천을 해야한다"고 주장했지만, 그러한 결정이 접전 지역 기초단체장의 전멸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했다.

2014년 4월 10일 오전 기초선거무공천철회 투표결과가 발표된 직후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가 국회 당대표실에서 빠져 나오고 있다.
 2014년 4월 10일 오전 기초선거무공천철회 투표결과가 발표된 직후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가 국회 당대표실에서 빠져 나오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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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 지도부는 격론 끝에 이 문제를 공론(권리당원 투표 50%, 국민 여론조사 50%)에 부치기로 했다. 그해 4월 10일 발표된 국민 여론조사에서는 0.5%의 차이로 '무공천'이 우세했지만, 당원투표에서는 무공천 철회(공천해야 57.14%, 무공천해야 42.86%) 의견이 훨씬 높았다.

결국 기초단체 무공천 방침은 철회됐고, 두 달 뒤 지방선거에서 이재명 성남시장 등 야당 소속 기초단체장들 대부분이 비교적 수월하게 승리를 거뒀다.

만약 안 대표가 끝까지 고집을 부렸다면 어떻게 됐을까? 안 대표 의견에 반대했던 구 민주통합당 의원들이 당 지도부의 '무공천 방침'에 불복했다면 또 어떻게 됐을까?

가장 어렵고 예민한 정치적 현안에 대한 '마지막 해법'이라는 점에서 당원들의 의사를 물어보는 것은 이처럼 중요하다.

총선 전후로 지금까지도 새누리당을 흔들어놓고 있는 '유승민 복당' 문제의 해법도 마찬가지다. 새누리당 간판으로 내리 3선 의원이 됐고, 한때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측근이었던 유 의원의 거취는 당원들 의견을 물어서 풀어가는 게 순리다. 그가 '당에 필요한 자산'인지, '분란의 씨앗'인지 여부를 당원들은 제쳐놓고 계파(소속 의원들)의 잣대로 풀어가려니 백년하청이다.

새누리당도 문제지만, 더불어민주당의 내부 사정도 심각하다(이 글을 처음 쓰기로 한 목적이기도 하다.)

2012년 12월 대선 패배부터 3년 뒤 비노 세력의 탈당까지 야당이 지리멸렬한 이면에는 계파 갈등이 있었다. 오늘날 국민의당으로 모인 탈당파는 문재인을 정점으로 한 지도부, 더 정확히는 그의 지지자들(종종 '친노'로 통칭되곤 하는)이 만든 지도부를 인정하지 않았다.

호남을 주축으로 한 탈당파의 빈자리를 메운 것은 '온라인 당원들'이었다. 기존 당원의 온라인 재입당이 가능했던 시스템의 맹점, 우리 사회의 극심한 정치 혐오증에도 불구하고 10만 명의 시민이 제도권 정당에 대한 지지를 재확인하고 참여하기로 한 현상을 아무렇지 않은 일로 치부할 수는 없다.

새정치민주연합 정청래 최고위원이 2015년 12월 1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당원 가입 관련 발언을 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정청래 최고위원이 2015년 12월 1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당원 가입 관련 발언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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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열렬한 지지자들의 간절함이 '박근혜 정권 심판'이라는 바닥 정서와 맞물려 빈사 상태의 더민주를 원내 제1당(기자·정치평론가 집단 누구도 예상 못했던)으로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선거 이후다. 8월 27일 새 지도부를 뽑는 전당대회가 있고, 내년에는 대통령 후보 경선이 있다. 더민주는 새 당원들 중 적어도 6만 명이 권리당원으로서 8월 전대부터 당의 주요 의사결정에 참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는데, 이들을 데리고 뭔가를 해보겠다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야박하게 평하면, '큰 일' 해보겠다며 사람들은 잔뜩 모아놓았는데 공당이 이 엄청난 인적 자원들을 '놀리고 있는' 셈이다.

예를 들어 2014년 기초단체 무공천처럼 당내 의견이 팽팽한 사안이 생기면 권리당원 대상의 모바일 투표로 분기별 당론을 정하는 아이디어 같은 것도 생각해볼만 한데, '총선'이라는 대사를 치르자마자 하향식 의사결정 구조를 다시 강화시키려는 모습이 당 지도부에 나타나고 있다.

'정당 민주화'에 대한 고민, 어쩌면 이리도 얄팍한가

특히 단수 추천된 지역위원장 후보에 대한 당원들의 찬반 투표 조항을 당규에서 없애기로 한 전국대의원대회 준비위원회(전준위)의 결정은 극히 우려스럽다. "(이 조항의 개정이) 특정 지도부와 관련된 게 아니다"(이언주 조직강화특위 부위원장)는 설명이 나오지만, 당 지도부가 바뀔 때마다 '내 사람 지역위원장 심기'에 악용될 소지가 많기 때문이다.

지난해 김상곤 혁신위가 당헌당규를 대폭 수술하는 와중에도 이 조항을 건드리지 않은 것도 당원 중심 상향식 의사결정의 주춧돌을 놔야한다는 취지였다. (관련기사: '온라인 10만 당원' 몰려왔는데... 상향식→하향식, 거꾸로 가는 더민주 당규)

혁신위가 어렵게 만들어놓은 '권리당원의 지역대의원 선출권'을 폐지하려는 시도도 마찬가지다. 일부 지역 현장투표의 어려움 등 실행상의 문제들은 시행세칙을 다듬는 등의 대안을 찾아볼 수 있을 텐데, 제도 시행의 어려움을 제도 자체를 없애버리는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우를 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 민주화'의 중요성을 그리 강조하는 더민주 지도부가 '정당 민주화'에 대한 고민은 어쩌면 이렇게도 얄팍할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아닌 얘기로, 국회의원들은 선거 때마다 들고 나더라도 정당을 계속 유지·발전시킬 토대(당원)에 대한 고민을 누군가는 계속 해야하는 게 아닌가?

이런 식으로 당원들의 권리는 이 핑계, 저 핑계를 들어 축소하거나 없애면서도 '당원 동지 여러분'을 찾는 목소리는 다시 터져나온다. 당권이 걸린 전당대회가 두 달 앞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이 국민이나 당원을 '동원 대상' 정도로 보고있다는 인식은 오래된 통념이다.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통념이 맞고 그른지를 가려낼 주체도 국민과 당원들이다.

지난 6개월 동안 꼬박꼬박 당비를 낸 더민주의 새 당원들은 이달 말부터는 전당대회 표심의 30%를 차지할 권리당원으로 승격된다. 그들이 벼르고 있다.


태그:#더불어민주당, #권리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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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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