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퀴어퍼레이드를 즐기는 사람들
 ▲ 퀴어퍼레이드를 즐기는 사람들
ⓒ 서강대학교 art&technology, 안별이

관련사진보기


6월 11일을 위한 지난 6개월의 준비과정
끊임없는 혐오세력의 방해공작, 고민 그리고 재능기부

지난 5년간 세 번의 퀴어문화축제에서 나는 '기자'였다. 올해 초, 퀴어문화축제 기획단에 합류하며 그간 축제를 바라보는 내 시선이 긍정적이고 호의적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꽤나 폭력적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프레스증을 맨 내게 취재대상인 축제참가자들은 멋있는 '외집단'이었고, 축제에 참가한 나는 '시스젠더 헤테로(가지고 태어난 성별과 젠더가 일치하는 사람)', 즉 성적다수자였다. 이러한 은근한 무의식이 나로 하여금 끊임없이 타자의 시선에서 그들을 바라보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2016 퀴어문화축제 기획단으로 일하며 비로소 기자, 시스젠더 헤테로, 퀴어/비퀴어의 구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축제 기간 내내 신경 쓸 일도 많고, 업무도 많았지만 이번만큼 모든 걸 내려놓고 마음 편하게 '축제 그 자체'를 즐겨본 적이 있었을까.

2016년 6월 11일, 17회를 맞는 퀴어문화축제는 주최 추산 5만명의 참가자를 기록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서울 중심인 서울광장에서 진행된 행사는 'QUEER I AM: 우리 존재 파이팅'이라는 슬로건에 맞게 퀴어로서의 내가 얼마나 당당하게 이 세상에 살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11일의 서울광장은 그야말로 '뜨거움' 그 자체였다.

6월 11일을 위해 6개월, 그 이상을 준비하는 사람들

2016년 1월, 퀴어문화축제 기획단에 합류했다. 초기 참가자만 50여 명 가량이었던 축제는 이제 기획단 76명을 보유할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축제 기획단'이 되어 바라본 행사는 축제 참여자와 기자로서 방문했을 때와는 크게 달랐다.

그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축제 준비과정과 기획단으로서 축제에 참여하며 '새롭게' 보게 된 것들을 이야기해볼까 한다.

6월 11일 축제를 위해 최소 6개월 이상(사무처의 경우 축제가 끝나자마자 바로, 약 1년)을 준비했다. 당장 'QUEER I AM:우리 존재 파이팅'이라는 슬로건 결정을 두고도 4개월간 끊임없는 전체회의&내부회의가 이루어졌다.

축제 준비를 위한 기획단 업무는 모두 재능기부 형태로 이루어진다. 70여 명의 기획단은 무보수로 자신들의 재능을 기부한다.

사무처를 포함해 홍보팀/디자인팀/파티팀/창작지원팀/영화제팀 모두 포스터디자인, 보도자료 배포·번역, 행사&영화제&파티 기획, 장소와 날짜 선정을 두고 아낌없이 자신의 재능과 열정을 쏟아 붓곤 한다. 축제는 결코 당연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모든 이들의 땀방울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재능 기부는 축제 준비 최소 비용인 1억 원도 모금하는 등 재정난을 겪는 퀴어문화축제의 특성 때문에 이루어지지만, 축제를 대하는 기획단의 모습에서 그들이 재능기부를 자처하고 나선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365일 중 유일하게, 사회적으로 '내가 나일 수 있는 세상'을 위해 준비하던 사람들. 그들에게 6월 11일이라는 단 하루, 그리고 이 축제 기간은 무척이나 소중한 것이었다.

이는 성적 지향에 상관없이 나를 옭매던 사회적 관습, 규범 그리고 의복에서 벗어나 입고 싶은 옷, 하고 싶은 행동을 하며 가장 나다움을 보여줄 수 있는 날이라는 것을 그 누구보다 절실하게 체감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기에 기획단은 이토록 열심이지 않았을까.

▲ 혐오세력
 ▲ 혐오세력
ⓒ 서강대학교 art&technology, 안별이

관련사진보기


▲ 혐오세력
 ▲ 혐오세력
ⓒ 서강대학교 art&technology, 안별이

관련사진보기


축제 당일뿐만 아니라, 준비 기간 내내 등장한 '혐오'세력

축제 준비만큼이나 축제 날짜 확정 역시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3월, 퀴어문화축제의 서울 시청광장 신청에 따라 서울시청은 이를 광장시민위원회에 안건으로 올려 무기명투표를 진행했다.

아슬아슬하게 4대 3으로 시청 사용 여부가 허용되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반동성애·혐오 세력이 시민위원들의 개인연락처를 알아내 항의전화와 협박 문자 천여 통을 보내기도 했다.

6월 11일 날짜 확정 역시 쉽지만은 않았다. 한 달 전 집회 신고를 해야 하는 서울시청의 특성상 5월 11일 서울시청(광장 사용 신청)과 남대문 경찰서(퍼레이드 코스 신청)를 방문한 축제기획단과 사무처에 대항해 반대 단체들 역시 대한문 앞 등 광장 주변에 집회신고를 했다.

혹시나 몰라 6월 11일, 12일 모두 신청했지만, 해당 날짜에 신청한 단체들이 많아 광장 사용을 두고 서로 간에 조정 회의를 반복했다.

만약 다른 단체들에 6월 11일, 12일을 양보해 6월 말, 혹은 7월 초로 날짜를 수정한다면 과연 그때는 혐오세력과 날짜 조정을 두고 충돌하지 않을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이 5월 전체 회의 내내 이어졌다. 축제를 며칠 앞둔 날, 한 서울 시민의 축제 불허 소송이 법원에서 기각되기도 했다.

축제 전날 기획단의 카카오톡 단체방 역시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6월 10일 광장을 사용한 목사 주최 단체에서 6월 11일 퀴어문화축제 당일 새벽 1시까지 부스를 철거하지 않아 시청직원과 경찰이 부스해체를 위해 나서기도 했다.

프레스 부스에서 바라본 퀴어문화축제

6월 11일, 나는 축제 공식 촬영 허가가 가능한 프레스 허가증을 발급하는 프레스부스에서 일했다. 여태껏 축제에서 프레스증을 발급받곤 했었는데, 이제 누군가에게 직접 프레스증을 발급해준다는 것은 꽤나 묘한 경험이었다.

프레스부스는 축제의 축소판이었다. 누가 봐도 혐오세력인 듯한 이들이 프레스증을 발급해달라며 언성을 높였다. 코스프레에 성공해(?) 운 좋게(?) 프레스증을 발급받은 이들이 '성소수자에 대해 차별하지 않을 것' '사진 촬영 시 인권관련 주의사항을 지킬 것'을 명시한 보도확인서에 차마 사인하지 못해 정체가 탄로나는 경우도 있었다.

보도자료, 축제 팸플릿 등을 전혀 읽어보지 않은 채 무작정 '취재'만 하러 온 언론사들이 일말의 부끄러움도 느끼지 못한 채 부스 설명, 퍼레이드 노선도, 퍼레이드 시간 등 가장 기본적인 것을 물어보던 모습에서 언론에 대한 환멸을 느끼기도 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촬영허가를 받으러 온 개인 활동가들이 아닐까 싶다. 한 참가자는 이름을 서명하는 내내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며 어렵게 자기 이름을 적어 내려갔다. 자신이 보도확인서에 서명한(주로 여성에게 많이 사용되던) 이름이 주민등록증에 게시된 (남성적) 이름과 달랐기 때문이었다. 생물학적 성은 남자지만, 사회적 성은 여자인 듯 보이는 또 다른 참가자는 아주 예쁜 원피스를 입고 등장했다. "옷이 잘 어울리시네요. 예뻐요"라며 인사했다.

서명을 망설이던 참가자에게는 웃음을 내보였다. 그들과 웃음을 주고 받는 내내 무척이나 행복했다.

축제가 끝난 후 프레스증을 반납하며 "수고하셨습니다"라고 먼저 인사를 건네는 개인 참가자와 기자들의 모습에서 찡한 감동을 받기도 했다. "오늘 하루, 나 그 자체로 사느라 행복했고 정말 수고 많았다. 우리 내일도 잘 살아보자, 잘 싸워보자"라는 느낌이었달까.

▲퍼레이드 중 행렬
 ▲퍼레이드 중 행렬
ⓒ 서강대학교 art&technology, 안별이

관련사진보기


▲ 퍼레이드 행렬을 이끄는 행동하는 성소수자연대 차량
 ▲ 퍼레이드 행렬을 이끄는 행동하는 성소수자연대 차량
ⓒ 김혜린

관련사진보기


이성애중심중의는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다
고로 성소수자는 인정의 대상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다름은 이성애중심주의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싶다.

지난 3월, 기획단 부서별 회의에서 한 팀원이 "L(레즈비언)도 그렇지 않나요?"라며 너무 당연하게 내 성적 지향을 레즈비언이라 판단하며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이에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얼버무리며 이성애자인 내 성적 지향을 조심스럽게, 또 민망하게 밝히곤 했었다.

이성애자임을 밝히는 것이 민망하고, 부끄럽고 또 당황스러웠다. 이는 여태껏 이성애중심주의 사회에서 살며 한 번도 이성애가 당연한 것이 아님을 겪은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성애 중심주의의 또 다른 얼굴은 당당한 퀴어가 사람들에게 공감을 사지 못하는 것에 있다. 왜 퀴어문화축제 그리고 동성애자,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무성애자는 자기 자신을 그대로 주체성 있게 드러낼 때보다 슬프고 안타까운 모습을 부각할 때 더 큰 사회적 지지를 얻게 되는 것일까.

이는 우리 사회의 저급함을 드러내는 부분이 아닐까. 또한, 우리 사회가 여전히 성소수자를 '인정'의 대상으로, 동성애를 포함해 모든 성적 소수자를 찬성/반대의 이분법적 문제로 바라보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그 누구에게도 이성애에 대한 찬성/반대의 물음을 던지지 않는데 말이다.

그렇기에 'QUEER I AM(2016)', '사랑하라, 저항하라, 퀴어레볼루션(2015)', '더 퀴어(THE QUEER), 우리가 있다(2013)' 등 누구에게 인정받기 위한 대상이 아니라, 성소수자의 '주체성'을 강조해 온 퀴어문화축제의 기본 어조는 더욱 의미가 있다.

이는 "구역질 나는 건 내가 아니라, 나 더러 구역질 난다고 말하는 사회다!"라는 1969년, 성소수자의 인권 증진, 시민&사람으로 인정받을 것을 요구한 스톤월 항쟁을 연상시킨다.

▲ 퍼레이드 행렬, 이화여자대학교 성소수자동아리 '이화여대변태소녀하늘을날다'.
 ▲ 퍼레이드 행렬, 이화여자대학교 성소수자동아리 '이화여대변태소녀하늘을날다'.
ⓒ 서강대학교 art&technology, 안별이

관련사진보기


▲ 세월호 추모, 강남역여성혐오살인사건 추모, 그리고 퀴어지지를 밝히는 ‘연대’의 의미를 담은 문구를 든 참가자
 ▲ 세월호 추모, 강남역여성혐오살인사건 추모, 그리고 퀴어지지를 밝히는 ‘연대’의 의미를 담은 문구를 든 참가자
ⓒ 서강대학교 art&technology, 안별이

관련사진보기


'QUEER I AM: 우리 존재 파이팅'이라는 기조에 맞게 축제 내내 자신이 자신 그 자체임을 자랑스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축제무대에 오른 한 참가자는 "여러분 너무 멋지고요. 저는 게이라서 행복합니다!"라고 외쳐 큰 박수를 받기도 했고, 레즈비언임을 커밍아웃 한 김보미 서울대 총학생회장은 "우리는 우리가 우리임을 더욱 밝혀야 한다"며 울먹였다.

축제 엔딩 MC 구야와 홀릭 역시 "퀴어문화축제의 개최를 통해 성소수자 역시 한국 시민사회의 주체임을 한국 사회에 선언하고, 한국이라는 나라, 서울이라는 지역에서 성소수자가 시민으로서 함께 살아왔고, 함께 살아가고 있으며, 또 함께 살아갈 것이라는 사실을 이 사회에 명확히 할 것입니다"라며 축제의 의미를 되새겼다.

2016년 퀴어문화축제의 공식 티셔츠 문구는 "QUEER I AM, NEAR I AM, HERE I AM, DEAR I AM"으로, "나는 성소수자다. 나는 당신 가까이에 있다(즉, 어디에든 있다), 나는 지금 여기 있다. 나는 소중하다"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사회적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계속 여기에, 우리 그대로의 모습으로, 가장 퀴어하게 존재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김선희 시민기자는 인권위 대구인권사무소의 인권필진 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별별인권이야기'는 일상생활 속 인권이야기로 소통하고 연대하기 위한 공간입니다.



태그:#인권, #퀴어, #퀴어문화축제, #성소수자
댓글6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와 함께 차별없는 인권공동체 실현을 위하여 '별별 인권이야기'를 전하는 시민기자단입니다.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