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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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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을 벗기까지는 적잖은 시간과 용기가 필요했다. 생각이 많아질수록 실현 가능성은 낮아진다. 가장 좋은 방법은 두 눈을 질끈 감고 움켜진 손아귀를 펴는 거다. 그러면 새로운 걸 잡을 수 있다. 새로 손에 쥔 그 무엇은, 그동안 꽉 쥐고 놓지 않았던 것들이 실은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해보기 전에는 절대 알 수 없는 경험이었고, 놓기 전에는 절대 얻을 수 없는 자유였다. 요단강을 건너는 심정으로 사표를 만지작거렸다. 고민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가슴 속에 고이 간직해 놓았던 버킷리스트 중 최상단을 차지하고 있던 계획을 전격 감행하기로 했다. 평범하게 살던 어느 직장인의 세계 일주는 그렇게 갑작스러우면서 갑작스럽지 않게 시작됐다. 배낭을 멨고, 지구를 한 바퀴 돌겠다며 길을 나섰다. 좌충우돌 세계 일주 여행기를 연재한다. - 기자 말




[이야기 1] 트레킹의 시작

곤다르에는 여행자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에티오피아의 6~9월은 우기에 해당한다. 비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내렸다. 트레킹도 쉽지 않아 보였다. 시미엔산은 에티오피아 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었지만 날씨 탓에 다들 하루짜리 투어를 다녀오는 분위기였다. 시미엔 트레킹은 최장 10일 이상이 걸리지만, 핵심은 3~4일이면 볼 수가 있다. 트레킹은 3~4명이 팀을 꾸리는 게 최상이다.

내가 묵고 있는 밸레게스팬션으로 안면이 있는 여행사 직원이 찾아왔다. 그는 희한하게도 우기인 비수기에 트레킹 비용이 더 비싸다는 말부터 꺼냈다. 보통 비수기에 가격이 낮아야 하는데 정반대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이해가 되질 않았다.

3일짜리 트레킹을 할 경우 1명이면 450달러, 2명이면 300달러, 4명이면 200달러로 가격이 낮아졌다. 이 금액으로 스카우트, 가이드, 요리사, 왕복차량, 포터, 식량 등을 제공받게 된다. 여행사를 통하지 않고 트레킹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 데바르크에서 개인적으로 모든 걸 해결하면 가격이 조금 더 싸진다.

그러나 문제는 첫날 데바르크에서 트레킹 시작점까지, 마지막날 트레킹이 끝나는 장소에서 데바르크까지 지프를 이용해야 하는데 이 가격만 100달러가 넘는다는 점이다. 주민들이 담합하고 있어 협상도 쉽지 않다. 미니버스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지만, 배차 시간이 불규칙하고 외국인은 잘 태우지 않는다고 했다. 결론적으로 혼자 모든 걸 준비하는 것보다 돈을 조금 더 주고 동행을 구해 여행사를 이용하는 것이 여러모로 편했다.

밸레게스팬션에 머물고 있는 여행자 중 트레킹을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운 좋게도 영국 신사 레임을 만났다. 레임과 한편을 먹고 본격적인 가격협상에 들어갔다. 여행사 직원은 300달러를 고수했고, 우린 마지노선 250달러를 내세웠다. 가격 절충이 쉽지 않았다. 1시간 정도 시소게임이 계속됐다.

시간이 흐르자 그는 지금 결정해야 시장에 가서 음식 등을 구해 내일 아침 차질없이 트레킹을 갈 수 있다고 했다. 설득력 있는 이야기였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이 한마디에 우리는 협상 주도권을 완전히 내주고 말았다. 레임과 난 결정을 내려야 했다. 마음이 급했다. 레임은 다음 일정 때문에 하루빨리 트레킹을 가고 싶어 했다. 내가 가면 자기도 가겠다고 했다. 나야 더 기다리고 싶었지만, 우기에 3일 이상의 트레킹을 원하는 여행자가 언제 또 나타날지 미지수였다.

혼자 하는 협상이었다면 분명 트레킹 포기선언과 함께 다른 여행사를 찾아보겠다는 등 갖은 협박으로 벼랑 끝 전술을 펼쳤겠지만 25살 영국신사, 그것도 학교 선생님과 공동전선을 형성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모든 걸 내 뜻대로 할 수 없었다. 지루한 줄다리기 끝에 2박 3일짜리 트레킹을 285달러에 합의했다. 뒷맛이 개운치 않았지만,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다음날 오전 6시, 도요타 랜드크루즈 한 대가 숙소 앞에 도착했다. 어제 만난 여행사 직원을 따라 근처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있으니 요리사가 합류했다. 요리사는 장을 보러 시장에 가야 한다고 했다. 순간 레임과 눈이 마주쳤다.

'이런...'

난 어수룩하게 또 당하고 말았다. 진짜 좋아하려야 좋아할 수가 없는 족속들이다. 데바르크까지는 포장도로가 많아 여정이 그리 힘들지 않았다. 중국인들이 도로포장 공사를 하는 게 눈에 띄었다. 운전기사는 얼마 못 가 도로가 파일 거라며 인상을 찌푸렸다.
시미엔 마운틴 트레킹 ⓒ 김동우
지프를 타고 시미엔산의 관문 격인 데바르크에 들어섰다. 이 마을은 나에게 이번 여행 중 가장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쩍쩍 갈라진 땅 위로, 빈곤이 맨살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아이들은 소와 염소를 몰며 내 옆을 지나갔다. 난 그들의 큰 눈망울을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에티오피아에선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아디스아바바와 곤다르 등 도시에 산다는 것 자체가 축복처럼 느껴졌다. 여긴 전혀 다른 일상이 펼쳐졌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내게 에티오피아의 시골 풍경은 마냥 아름답고 이국적이라 할 수 없었다.

데바르크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시는 사이 스카우트와 가이드가 합류했다. 난 편치 않은 풍경을 뒤로하고 시미엔산으로 향하는 차에 올랐다. 산길을 달린 차는 레임과 나를 구름 속 한가운데 내려 주었다. 이번 트레킹에서 음식을 담당한 요리사가 미리 준비해둔 샌드위치와 오렌지를 내밀었다. 건성으로 만든 샌드위치를 건성으로 먹고는 가이드와 스카우트를 대동하고 트레킹을 시작했다. 요리사는 지프를 타고 첫날 캠프가 될 산카바르로 떠났다.
시미엔 마운틴 트레킹 ⓒ 김동우
가이드는 시미엔산이 자신의 오피스라는 말로 일정을 시작했다. 길을 가다 가이드가 풀을 뜯어 우리에게 건넸다. 향긋한 냄새가 기분을 상쾌하게 해주었다. 허브였다. 허브가 많은 길을 걸을 때면 방향제를 듬뿍 뿌려 놓은 것처럼 풀향이 짙었다. 가이드가 이름 모를 나뭇잎을 가리키며 현지인들이 배탈에 쓰는 약초라고 했다.

시미엔산은 에티오피아의 불편한 현실과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짙은 안개에 둘러싸인 산세는 더욱 내 기대를 고조시켰다. 설명을 이어가던 가이드가 갑자기 안개 속을 응시했다.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시미엔 마운틴 트레킹 ⓒ 김동우
"바분!"

뿌연 안개 사이로 시미엔산에만 서식한다는 야생 '겔라다 바분원숭이'가 불쑥 나타났다. 바분원숭이는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수줍음 많은 여인처럼 무척 조심스러웠다. 눈을 마주치면 고개를 숙여버리는 모습이 꼭 맞선 나온 시골 처녀 같았다. 바분원숭이는 한 마리의 수컷이 최대 열 마리의 암컷을 거느린다고 한다. 짝짓기 철이 되면 수컷끼리 싸움을 하고 그중 가장 센 원숭이를 암컷이 선택하게 된다.

가장 덩치 큰 수컷 원숭이에게 조용히 다가가 봤다. 정신없이 풀을 뜯어 먹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가이드의 말대로 고개를 숙이며 큰 몸을 반대편으로 돌려버렸다. 야생원숭이를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건 난생처음이었다. 바분원숭이는 초식동물로 덩치만큼이나 먹는 양도 대단했다. 4000m급 봉우리들이 기이한 모양으로 펼쳐지는 시미엔산에선 바분원숭이 외에도 왈리아아이벡스(Walia ibex, 염소의 한 종류) 등의 희귀종 동식물을 볼 수 있다.

다시 가이드의 이런저런 설명을 들으며 트레킹을 이어 나갔다. 길을 가다 바분원숭이 무리가 우리의 발길을 자꾸만 멈춰 세웠다. 레임과 난 동물원으로 소풍 나온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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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미엔산은 해발 4620m(라스다샨봉)의 높이에 1만 9천 헥타르의 면적을 갖고 있다. 에티오피아 북부 암하라주에 위치해 있으며 아디스아바바로부터는 850km, 곤다르에서 100km 떨어진 거리에 있다.

왈리아아이벡스를 보호하기 위해 1969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데 이어 197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록됐다. 방문하기 가장 좋은 때는 건기인 12월부터 이듬해 3월 사이다. 1일 투어부터 최장 10일 트레킹까지 다양한 코스가 가능하다. 또 말을 타고 돌아보는 프로그램도 있다.

시미엔 마운틴 트레킹 ⓒ 김동우
[이야기 2] 단언컨대 이렇게 배 아픈 트레킹은 없었다

빗속을 뚫고 트레킹을 시작한 지 3시간 만에 산카바르 캠프에 도착했다. 먼저 도착한 요리사는 저녁 준비 중이었다. 다행히 빗속에서 텐트를 치는 일은 없었다. 군데군데 비를 피할 수 있는 콘크리트 건물이 잘 구축돼 있었다. 이곳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될 트레커는 우리가 유일했다.

장마철 집중호우를 연상케 할 정도로 거센 비바람이 계속됐다. 추위가 몰려왔다. 대충 텐트를 치고 젖은 옷을 갈아입었다. 요리사는 따뜻한 차를 끓여주었다. 그리곤 모닥불을 지폈다. 오후 5시쯤 첫날의 만찬이 완성됐다. 메뉴는 스파게티, 감자볶음, 나물볶음, 야채수프, 빵 등이었다. 입에 맞는 음식은 아니었지만, 내일을 위해서 먹어야 했다. 곤다르에서 미리 사둔 로컬 위스키로 반주를 했다. 적당히 취기가 오를 때까지 레임과 함께 위스키 3~4잔을 들이켰다. 달콤한 밤이었다.
시미엔 마운틴 트레킹 ⓒ 김동우
밤새 폭우가 쏟아졌다. 시간이 갈수록 비바람은 더 매서워졌다. 눈을 떴다. 시계는 오전 0시 30분을 가리켰다. 아랫배가 살살 아파왔다. 사태가 예사롭지 않았다.

'된장.'

고어텍스 재킷으로 완전무장을 하고 텐트 문을 열었다. 비오는 새벽에 텐트 문을 열고 화장실에 가는 게 얼마나 성가신 일인지 해본 사람은 안다. 따로 화장실은 없었다. 적당히 몸을 숨길 수 있는 곳에 볼 일을 보면 그만인 곳이었다.

우리나라의 장마철 집중호우를 연상시키는 폭우였다. 비를 피할 길이 전혀 없었다. 할 수 없이 드넓은 초원 한가운데 자리를 잡고 바지를 내렸다. 불빛 하나 없는 적막하기 그지없는 우중(雨中) 화장실이었다. 어둠 속에서 야생동물이 불쑥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장대비 속에 엉덩이가 그대로 노출됐다. 천연비데가 따로 없을 정도로 굵은 빗줄기였다. 음식에 분명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아니면 내 민감한 장이 아프리카식 야전 요리에 적응을 못 하는 걸 수도 있었다. 어찌 됐건 대장에 낀 먹구름은 밤새 우르릉 쾅 천둥을 치고 있었고, 나는 이날 밤 천둥번개가 내리치는 빗속을 뚫고 두 번이나 더 엉덩이를 내밀러 나가야 했다.
시미엔 마운틴 트레킹 ⓒ 김동우
이른 아침 눈을 떠 보니 비는 그쳐 있었다. 동쪽 하늘은 뿌연 안개 속에 붉고 노란 물감을 섞어 놓은 듯 고혹스런 빛깔을 뽐냈다. 사방이 파스텔톤 노을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무척이나 몽환적인 광경이었다. 잠시 넋을 놓고 그 모습을 바라봤다. 카메라를 꺼내와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레임은 일어나지 않은 것 같았다. 깨워서 이 모습을 같이보고 싶었지만, 단잠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이때 레임이 식당 사이트 쪽에서 걸어오는 게 보였다. 일찌감치 일어난 모양이었다. 난 반갑게 그를 불러 어서 이 모습을 보라고 소리쳤다. 레임이 조용히 내 옆으로 다가왔다.

"킴! 나, 무지 아파."
"뭐! 어디가!"
"밤새 오바이트를 다섯 번이나 했어. 넌 괜찮니?"
"진짜! 나도 밤새 화장실 세 번이나 갔다 왔는데."
"나 어지럽고 무척 추워. 지금 상태로는 트레킹 못해. 먼저 하산해야 할 것 같아. 말라리아 검사를 해봐야 할 것 같아."
"레임, 일단 이리 와봐."

난 수지침을 꺼내 급한대로 레임의 손을 땄다. 레임은 걱정이 되는지 처음 보는 수지침이 뭐냐고 물었다. 안타깝게도 수지침은 전혀 효과가 없었다. 여기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었다. 일단 레임은 가이드와 함께 하산하기로 했다. 난 남기로 했다. 가이드는 내려가면 다시 오지 않는다. 남은 일정을 스카우트와 보내야 했다. 레임은 추가비용을 내고 곤다르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우리 모두에게 좋지 않은 결과였다.

오한에 떨고 있는 레임의 짐을 챙겨주었다. 그는 고맙다는 말을 하고 차를 타고 떠났다. 레임은 신사적이었고, 어설픈 영어를 성의있게 들어주었다. 무엇보다 유머감각이 있고 착했다. 그의 빈자리는 컸다. 적적하고 허전했다. 홀로 여행을 계속해 왔지만, 산에서 동무를 잃은 느낌은 소꿉친구를 이민 보내는 것 같이 슬프고 가슴이 아렸다.

요리사에게 아침상을 받았다. 수프와 빵 그리고 잼이 나왔다. 분위기는 무거웠다. 요리사는 위스키가 문제였다고 했다. 나중을 생각해 우리에게 잘못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였다. 그가 얄미웠지만, 조용히 수프를 먹었다. 나도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약간 체한 것 같기도 하고 식욕이 전혀 없었다.
시미엔 마운틴 트레킹 ⓒ 김동우
시미엔 마운틴 트레킹 ⓒ 김동우
AK-47 소총을 분신처럼 들고 다니는 스카우트를 따라 길을 나섰다. 전날처럼 재미있는 설명은 없었다. 그냥 혼자서 평소와 같이 산을 즐기면 됐다. 얼마 가지 않아 첫 번째 뷰포인트에 도착했다. 천만다행으로 날씨가 그런대로 괜찮았다. 비 때문에 3일간 아무것도 못 보는 거 아닌가 하고 걱정했는데 일단 운이 좋은 듯했다. 시미엔산 주변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이었다.

"이 산은 요 맛이구나!"

푸른 외투를 걸치고 있는 능선의 향연이 펼쳐졌다. 그 속에 장난감처럼 마을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신들이 내려와 체스를 두었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모습이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산세였다. 시미엔산은 화산이다. 그런데 화산이라고 할 수 없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자신만의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잠시 배낭을 내려놓고, 절벽을 타고 오르는 바람을 맞으며 땀을 식혔다. 잠시 뒤 바람이 느닷없이 구름을 몰고 와 내 시야를 가려버렸다. 심술궂은 바람 앞에 다시 길을 나섰다. 어제 만난 바분원숭이가 경계의 눈빛으로 언덕 위에서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장난이라도 하는 것처럼 요술같이 구름이 걷혔다.
시미엔 마운틴 트레킹 ⓒ 김동우
또 한 번 아프리카의 지붕으로 불리는 시미엔산이 숨겨둔 절경을 공개했다. 높이가 500m에 달하는 진바 폭포였다. 이 폭포는 시미엔산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폭포의 웅장함에 입이 쩍 벌어졌다.

기치 마을까지는 완만한 경사를 계속 올라야 했다. 힘이 빠져 요리사가 준비해준 점심 도시락을 꺼내먹었다. 참치 샌드위치였는데 속이 좋지 않아 반도 먹지 못했다.

'된장.'

샌드위치를 먹고는 휴지를 들고 큰 나무를 향해 뛰었다. 트레킹 내내, 들어가면 바로 나오는 상태가 계속됐다. 쉬엄쉬엄 가면 그리 힘들지 않은 길이었지만 먹은 게 부실하니 몸은 무겁기만 했다. 더군다나 가이드 없이 스카우트를 따라가려니 발걸음이 바빴다. 한 시간 정도 경사를 오르니 기치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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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득불 우기에 시미엔 트레킹을 계획했다면 꼭 고어텍스 등산화와 의류를 챙기길 바란다. 에티오피아에 머물 당시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비가 내렸다. 또 개인 보온에 신경을 써야 한다. 해발고도 3000m 이상의 고지대여서 밤에는 수은주가 큰 폭으로 떨어진다. 시미엔산은 주로 오후에서 저녁 사이에 비를 뿌리고 새벽녘과 오전에는 맑은 날씨를 보인다.

시미엔 마운틴 트레킹 ⓒ 김동우
[이야기 3] 어느 산골 소녀와의 만남

기치 마을 어귀에 들어서자 한 소녀가 커피 세리모니를 하지 않겠냐며 호객행위를 해왔다.

'시골 동네에서조차 삐끼라니...'

가격은 100비르라고 했다. 곤다르 시내 커피숍에서 4비르에 마키아또를 한 잔 마실 수 있으니 엄청난 금액을 부른 셈이었다.

"NO"라는 한마디에 가격은 반토막이 났다. 형편없는 협상력이었다. 처음에는 커피를 마실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종일 먹은 게 없어 쉬어갈 필요가 있었다. 소녀의 누더기를 보고 50비르에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소녀는 마을 한쪽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날 안내했다. 나뭇가지로 엮은 대문을 지나니 가축의 똥이 제일 먼저 눈에 띄 었다. 똥을 밟지 않으려고 한쪽 구석으로 발을 옮겼다. 소녀 는 맨발이었다.
시미엔 마운틴 트레킹 ⓒ 김동우
소녀의 손짓을 따라 움막으로 들어섰다. 소녀는 나를 위해 몇십 년은 세탁하지 않은 듯한 낡은 방석을 공손히 내왔다. 평소 같으면 빈대 때문에 절대 앉지 않았을 내가 그 위에 힘 없이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눈앞에 펼쳐진 실내 정경은 잘 짜인 각본이나 연출이 아니었다. 그들의 삶 그대로였다.

순간 여행 중 처음으로 '동정'이란 감정이 가슴 속을 꽉 채웠다. 개인적으로 그다지 느끼고 싶지 않은 감정 중 하나였다. 니체는 '동정은 최고의 모욕'이라고까지 이야기 한 바 있다.

여행 중 돈을 달라는 아이, 펜을 달라는 아이들에게 그들의 욕구를 한 번도 채워준 적이 없었다.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다. 그렇게 살면 안 된다는 나름의 원칙이 있었기 때문이다. 작은 도움이 결국 그들을 빈곤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기치 마을에서 내 원칙은 신기루처럼 온데간데없었다.
시미엔 마운틴 트레킹 ⓒ 김동우
커피를 볶는 이 집 여주인의 손과 얼굴, 그리고 그 옆에서 웃는 낯으로 날 보고 있는 그녀의 딸을 보면서 난 하염없는 슬픔에 잠겼다. 가슴이 갑갑해 더는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이들이 계획적으로 내 동정심을 유발했건 안 했건 더 이상 그곳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속절없이 100비르짜리 지폐 한 장과 비스킷을 건네고 쫓기듯 집을 나섰다. 소녀는 내 등 뒤에서 해맑게 웃고 있었다.

여행을 하면서 마음이 따뜻해졌으면 했다. 좋은 걸 보고, 좋은 걸 듣고, 좋은 사람들과 좋은 추억을 만들면 그걸로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에티오피아는 그러기에는 적당한 장소가 아니었다.
시미엔 마운틴 트레킹 ⓒ 김동우
5시간 만에 기치 캠프에 도착했다. 캠프에서 멀지 않은 곳에 희귀 거인 식물 '자이언트 로벨리아'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다시 비가 오기 시작했다. 시미엔산은 아침이면 잠깐 맑은 하늘을 열어주었다가 오후면 으레 비를 쏟아냈다.

요리사는 야채수프와 볶음밥을 내왔다. 속이 좋지 않아 거의 손을 못 대고 수저를 내려놓았다. 설사는 계속되고 있었다. 폭우 속에서 볼일을 보지 않으려면 먹는 걸 줄이는 수밖에 없었다.

하늘에 구멍이 난 것처럼 쉼 없이 장대비가 계속됐다. 달리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레임의 부재가 아쉬웠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스카우트가 계속 신경이 쓰였다. 난 텐트 안에서 에어 매트리스를 깔고 푹신한 침낭을 덮고 나름 안락하게 잠을 청했지만, 스카우트는 그게 아니었다.

그는 차디찬 콘크리트 바닥에 쌀 포대 한 장을 깔고 싸구려 홑이불을 덮고 이틀 밤을 보냈다. 그는 영어를 잘하지 못해 말수가 많지 않았지만 친절했고, 항상 내 안전에 대해서 걱정을 해주었다. 그런 그에게 난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에티오피아는 어딜 가도 날 번민에 빠뜨렸다.
시미엔 마운틴 트레킹 ⓒ 김동우
아침이 왔다. 날씨가 궁금해 서둘러 텐트 밖으로 나왔다. 바람이 거셌지만, 생각보다 날씨가 좋았다. 독수리 한 마리가 아침상을 준비하는지 바람을 타며 내 머리 위를 유유히 날고 있었다.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다시 트레킹에 나섰다. 날씨가 또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몰라 발걸음을 재촉했다. 드넓은 초원길을 2시간 정도 거슬러 올라가자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이멧 고고(3926m)'에 도착했다. 해발 4000m에 가까워지자 숨이 가빠졌다. 이멧 고고 위에서 바라보는 시미엔산은 압권이었다.

발아래 불규칙한 산봉우리들은 깊은 협곡을 만들어 냈고, 아직 하루를 시작하지 않은 듯 푸른색 이불을 살포시 덮고 있었다. 사천만 년 전 강력한 지진 활동으로 분출된 용암과 억겁의 세월이 만들어 낸 침식·풍화작용은 시미엔산을 완성도 높은 하나의 작품으로 빚어내고 있었다. 장대한 스케일이었다.
시미엔 마운틴 트레킹 ⓒ 김동우
시미엔 마운틴 트레킹 ⓒ 김동우
아디스아바바를 떠나기 전 필리스는 "시미엔산에 가면 그동안 에티오피아에서 고생한 걸 한순간에 잊게 된다"고 말했다. 그 말 그대로였다.

돌아가는 차편이 기다리는 체넥 캠프로 길을 잡아 나섰다. 그러다 수백 미터에 달하는 절벽이 내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스카우트는 조용히 절벽 아래 한 지점을 가리켰다. 운 좋게도 야생염소 왈리아아이벡스 무리가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시미엔이 주는 마지막 선물이었다.

마지막 날은 4시간 30분 만에 모든 일정이 끝났다. 체넥에 도착하니 날 태우고 곤다르로 돌아갈 지프가 대기하고 있었다. 지프 주변에는 시미엔산에 훑어져 사는 주민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자리가 있으면 태워달라는 이야기였다. 우리에겐 그럴 여유가 없었다. 그들은 아쉬운 눈으로 우리가 멀어지는 걸 애처롭게 지켜봤다.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괜한 미안함이 가슴속을 꽉 채웠다.
시미엔 마운틴 트레킹 ⓒ 김동우
밸리게스팬션에 도착하니 레임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는 건강해 보였다.

"레임, 시미엔 트레킹 못해서 어떻게 해?"
"겨울 방학 때 다시 오려고."
"정말?"
"응. 그때는 10일짜리 풀코스로 돌아볼 거야."
"넌 에티오피아가 좋니?"
"응."
"문화가 많이 다르지 않아? 사람들이 거짓말도 많이 하고... 나는 여러 가지로 힘들던데."
"맞아. 그런데 그래서 여행을 하는 거잖아. 킴! 그냥 즐겨. 단지 이들의 삶이고 너의 삶이야. 너의 기준으로 그들을 보지 마. 내년에는 아시아를 여행해 보고 싶어, 한국에 가면 너희 집에 가도 되지?"
"그럼, 꼭 연락해!"
여행 정보

빈곤에 관한 충격적인 연구 결과가 있다. 아프리카의 빈곤한 마을들을 돕자는 취지로 벌이고 있는 자선활동들이 실제로는 사람들을 더욱 빈곤하게 만든다는 연구결과다.

브리스톨(Bristol) 대학의 교수들에 따르면 자선활동 차원에서 시골에 식수 공급 시스템을 향상시키게 되면 이것이 시골 지역의 인구 증가로 이어지고, 이렇게 늘어난 아이들은 일자리를 찾아 도시의 빈민 지역으로 흘러들어 간다. 일거리는 제한돼 있고, 사람만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에티오피아의 도시들은 앞으로 40년간 인구가 40%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에티오피아는 현재도 세계에서 가장 낙후된 국가 중 하나다.

늑대에게 쫓기는 사슴이 불쌍해 늑대를 소탕한 것이, 다시 사슴에게 재해가 된 미국의 사례처럼, 사람들의 빈곤 역시 동정에 의한 자선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복잡한 성격을 띠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프리카의 빈곤을 어떻게 도와야 옳은 걸까?

태그:#세계일주, #에티오피아, #시미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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