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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 버린 어린 시절엔 풍선을 타고 날아가는 예쁜 꿈도 꾸었지
노란 풍선이 하늘을 날면 내 마음에도 아름다운 기억들이 생각나

내 어릴 적 꿈은 노란 풍선을 타고 하늘 높이 나르는 사람
그 조그만 꿈을 잊어버리고 산 건 내가 너무 커버렸을 때

하지만 괴로울 땐 아이처럼 뛰어놀고 싶어
조그만 나의 꿈들을 풍선에 가득 싣고

- 다섯손가락, '풍선' 노랫말 중에서
카파도키아의 하늘을 알록달록 수 놓은 풍선들. ⓒ 한성은
열기구를 타고 하늘을 나는 꿈을 한 번도 꾸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밤새 꿈속에서 하늘을 둥실둥실 떠다니는 꿈을 꿨는지 말았는지, 잠에서 덜 깬 눈을 비비고 바구니에 실려서 두둥실 하늘로 떠올랐다. 잠깐 사이 풍선은 800m 상공에 나를 데려다주었다. 그곳에는 또 다른 세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열기구 투어는 매일 오전 4시에 출발한다. 가이드북에서는 일몰 비행도 있다고 하는데 여행사 상품에 시간을 선택할 수는 없었다. 열기구는 안정적인 하강기류일 때 가장 안전하게 비행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해가 뜨기 직전에 대지가 차가운 순간을 이용하여 열기구 투어를 하는 것이다. 해가 떠서 난기류가 생기면 예상치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란다.

이렇게 날씨가 중요한 변수다 보니 여행사에서 좋다고 하는 날짜(그래 봐야 바로 다음 날이었다.)에 투어 예약을 했다. 나를 위한 배려라기보다는 투어 인원을 분산하기 위한 제안이었던 것 같다. 관련 정보가 없는 처지니 여행사에서 좋다고 하는 날에 투어를 하기로 했다. 그리고 밤새 잠을 설치다가 오전 4시에 일어났다. 세상 어떤 도미토리룸을 가든 오전 4시까지 안 자는 사람은 있어도, 오전 4시에 일어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씻고 옷을 갈아입고 하면 다른 여행객들이 깰까봐 그냥 일어난 그대로 나선다. 이미 요란한 알람 소리에 잠을 깼겠지만 말이다.

동이 트지 않은 비포장 길을 가로질러 넓은 공터에 도착했다.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투어팀들이 곳곳에 모여 간단한 아침 식사를 하고 있다. 우리 앞에도 간단한 다과상이 차려졌다. 빵과 쿠키, 홍차와 커피가 전부였지만 나에게는 요 며칠 먹은 것 중에 가장 걸진 한 상이었다. 따뜻한 차를 들고 열기구 투어를 같이 할 사람들과 인사를 한다.

열기구 풍선에 바람을 넣기 시작한다. 다들 '와우~' 환호를 지르는데, 나는 '저 풍선에 바람이 가득 차면 이 빵과 쿠키를 더는 먹을 수 없구나' 하는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창밖의 마지막 잎새를 바라보던 존시의 기분이 이렇지 않았을까. 다행히 다른 일행들은 홍차 한 잔 정도만 손에 들고 있을 뿐 빵과 쿠키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누가 집어 갈까봐 설탕을 듬뿍 넣은 뜨거운 커피와 함께 올리브 베이글을 양쪽 볼 가득히 집어넣는다. '먹을 수 있을 때 먹어야 한다.'

800m 상공에서 바라본 세상, 가슴이 뭉클해졌다
이른 새벽 출발하는 열기구 투어 승객을 위해 차려진 간소한 아침상. ⓒ 한성은
거대한 풍선에 바람을 넣고 있다. ⓒ 한성은
그제야 동이 터오고, 내 위는 가득 찼고, 주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수십 개의 열기구가 풍선에 바람을 넣고 있었다. 아직 날아오르지도 않았는데, 벌써 장관이 펼쳐졌다. 거대한 선풍기가 풍선에 바람을 채워 넣고 나면 대형 가스버너가 뜨거운 공기를 풍선 속으로 넣는다. 뜨거운 공기가 풍선으로 들어가기 시작하면 비로소 힘없이 누워 있던 풍선이 하늘로 떠올라 제자리에 우뚝 선다. 다른 팀의 풍선들이 자리를 잡고 서기 시작한다.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심장이 두근거린다. 다시 눈을 감고 떠올려도 그 순간의 설렘은 손에 잡힐 듯 느껴진다.

우리는 언제 뜨거운 공기를 넣을까? 'SULTAN'이라는 글자가 쭈글쭈글하다. 얼른 예쁜 풍선 모양으로 짠하고 나타났으면 좋겠다. 술탄은 내가 여행사를 통해 예약한 열기구 투어 회사의 이름이다. 이 회사 말고도 수많은 열기구 투어 회사들이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금보다 더 많은 회사가 있었고, 하늘에는 서너 배 더 많은 열기구가 빼곡하게 하늘을 날았다고 하는데 몇 년 전 열기구들끼리 부딪히는 사고가 있고 난 후 1/3 정도로 그 숫자가 줄었다고 한다. 큰 사고는 아니어서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열기구끼리 너무 가까이 붙거나 부딪히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정부에서 열기구 투어에 대해 엄격하게 안전 점검을 하고 비행 제한을 하고 있어서 안전 문제는 조금 덜 걱정해도 될 것 같다.

룰루랄라 기다리고 있는데 분위기가 이상하다. 뭔가 전화를 주고받고 무전을 계속 한다. 그러더니 열기구 회사 팀장이 와서 현재 기상 상황이 좋이 않아서 정부로부터 비행 허가가 나지 않고 있다고 했다. 만약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면 오늘 투어는 취소될 수도 있단다.

어제도 카파도키아에는 계속 비가 오락가락했었다. 아쉬움보다는 제대로 안전 관리가 되고 있다는 안도감이 더 컸다. 한국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하는 안전사고 때문에 안전에 대해서 민감해진 것 같다. 그렇게 앉아서 커피 몇 잔을 더 마시고, 쿠키를 바지 주머니에 집어넣고 있으니, 비행 허가가 떨어졌다는 소식이 들렸다. 우리 팀뿐만 아니라 주위의 모든 열기구가 일제히 날아오를 준비를 한다. 우리 풍선도 제 모습을 갖추고 곧 날아갈 듯이 서 있다. 기념사진을 찍고, 바구니에 오른다.
바람을 넣어 부푼 풍선. 가스버너를 이용해 공기를 데운다. ⓒ 한성은
열기구 바구니에는 12명의 승객과 파일럿 1명이 탈 수 있다. ⓒ 한성은
머리 위에서는 대형 가스버너가 연신 불을 뿜어대고 있다. 하늘 위에 올라가면 엄청 추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머리 위에 가스 불을 이고 날아가니 하나도 춥지 않았다. 사실 비행 내내 너무 긴장해서 추운지도 몰랐다. 다만 정수리가 뜨거운 것은 느꼈다. 그건 진짜 뜨거웠다. 모자를 써야 했다. 할아버지들이 쓴 중절모가 탐났다. 소년 같은 미소로 예쁜 할머니와 함께 승선한 밥 할아버지에게 모자가 부럽다고 했다. 그랬더니 할아버지는 내 머리가 부럽단다. 아. 돈오점수(頓悟漸修)다.

미국에서 온 밥 할아버지는 70이 넘으신 나이에도 할머니와 함께 자유롭게 해외여행을 하고 계셨다. 우리나라에서는 효도관광이라 해서 여행사 패키지를 많이 가는데, 젊은 사람들도 버거워하는 자유여행을 하시니 대단했다. 할아버지께 열기구를 타 본 적이 있냐고 물었더니 캘리포니아에서 한 번 타 본 적이 있다고 하셨다. 와. 대단하시다. 난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 같은데 말이지. 캘리포니아가 좋은지 카파도키아가 좋은지, 캘리포니아에서 열기구 타면 얼마냐고, 미국 가고 싶은데 물가가 무서워서 못 가겠다고 말을 이었는데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그게... 25년 전이라 잘 생각이 안 나. 그리고 이번이 두 번째야." 

25년 만에 열기구를 타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나는 지금 발아래 세상을 바라보느라 나 자신을 돌아볼 시간 같은 건 없다. 내가 눈을 뜨고 있는지 감고 있는지, 세수는 했는지,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 따위는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800m 상공의 조그만 바구니 속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내가 감당하기에는 벅찬 감동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정확하게 "25년 전"이라고 했다. 그때의 자신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때 바라본 세상의 풍경과 그때 옆에 있던 할머니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제야 나도 내가 뒤늦게 생각이 났다. 지금 하늘을 날고 있는 서른여섯 살의 나를 쳐다보았다. 내 옆에 누가 있는지, 지금 여기가 어디인지, 나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생각했다.
다른 팀 열기구들이 하나둘씩 이륙하고 있다. ⓒ 한성은
비행 내내 고도 유지를 위해 머리 위로 뜨거운 불길을 내뿜는다. ⓒ 한성은
자신을 객관화하여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수업 시간과 조례, 종례 시간마다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해서 우리 반에서는 '상위인지'라는 말만 나와도 아이들이 인상을 쓰고 하품을 했었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그 '상위인지'였다. 내가 지금 어디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를 생각해야 했다. 그래야만 나도 밥 할아버지처럼 25년이 지난 후 열기구를 다시 타고서 서른여섯의 무모했던 나를 떠올리고, 웃음 지을 수 있을 것이다. 25년 후의 내가 지금의 나를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봐 주었으면 좋겠다.

'할아버지는 그럼 처음으로 열기구를 탔던 나이가 오십 대였다는 말인가? 나는 이제 겨우 서른여섯인데! ㅋㅋㅋ'

'할아버지 멋지시다~'하다가 계산해보니 내가 더 훌륭한 것 같다. 만약에 열기구를 몇 살에 타보았는지를 가지고 삶의 행복지수를 결정하는 계산법 같은 게 있다면 말이다. 건너편 열기구 바구니에 조그만 꼬마가 손을 흔들고 있다. 마음을 바꾼다.

'이기고 지는 게 어디 있어. 유치하게. ㅋㅋ'

밥 할아버지는 한국을 자주 방문했었다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하는 일 때문에 대전을 자주 갔었다고 했다. 그리고 서울은 아주 멋진 도시라고 옆에 있던 할머니에게 이야기했다. 할머니는 한국을 방문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할머니가 대학교에 다닐 때 룸메이트가 한국 사람이었다며, 한국 사람들 참 좋다는 이야기를 했다.

36년을 살다가 이게 아니다 싶어서 한국과 한국 사람을 떠나왔는데, 터키의 열기구 안에서 미국인 노부부에게 한국과 한국인이 얼마나 좋은지 듣고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듣고 보니 한국은 참 좋은 나라이고, 참 좋은 사람들인 건 분명한 것 같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표정을 보아 예의상 던져주는 빈말이 아니었다. 그리고 언젠간 아내와 함께 한국도 방문하고 싶다고 했다.

국가 이미지는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한 사람이 만드는 이미지는 곧 한 국가의 이미지와 같다. 대통령 한 사람이 나서서 국가 브랜드, 국가 이미지 또는 요즘 유행하는 말로 국격을 만들 수는 없다. 국민 한 사람이 곧 국가이고, 이들이 모여서 큰 이미지가 그려질 때 국가의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여행하며 특정 국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많은 사람들이 편견 없이 바라보라고들 한다. 하지만 터키를 여행하면서 터키의 모든 국민들을 만나고 대화하고 마음을 나눌 수는 없다. 내 마음속의 터키는 내가 만난 사람들이 주는 이미지로 만들어진다. 모든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는 절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 점에서 자꾸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나는 참 무뚝뚝한 편에 속한다. 살갑게 말을 건네거나, 인사치레로 말을 내뱉는 법을 모른다. 한국 사람 모두가 그런 건 아닌데 말이다. 내가 만났던 외국 사람들은 나를 통해 한국의 이미지를 어떻게 만들어가고 있을까? 애국자 아니라도 외국 나오면 모두가 애국자가 된다더니 내가 딱 그 모양이 되었다. 우습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세상은 정말 예뻤다. 동화 같은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우리는 저 땅 아래에서 동화처럼 살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보이는 저 예쁜 들판과 신비로운 기암괴석들 사이에서 서로 섬기는 신이 다르다는 이유로 죽고 죽이고, 동굴을 파서 숨고, 서로의 신전을 파괴하며 수백 년을 살았단다. 지금도 저 예쁜 집들 사이에서 갓난아이를 안고 엄마는 구걸을 하고, 아이들은 1달러를 외치며 관광객 사이를 뛰어다니고 있다.

세상에 이렇게 훌륭한 신들이 많이 계시는데, 왜 모든 사람들은 똑같이 행복하지 않은 걸까. 나는 수십 달러를 써가며 열기구를 타고 하늘을 날고, 저 길 위의 아이들은 그저 생존하기 위해 1달러를 구걸하고 있다. 그래서 내가 죄의식이라도 가져야 하는 걸까? 도무지 모르겠다.

'아마도 신이 있다면 딱 이 정도 높이에서 세상을 내려다 보고 계신 것이 아닐까?'

모든 것이 세세하게 보이지도 않고, 땅 위의 소리가 잘 들리지도 않는 곳. 달려가는 아이와 매연을 뿜는 자동차가 그림처럼 예뻐 보이는 곳. 어디선가 읽었던 문장이다. 정말로 이 높이에 올라와 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만약 신이 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 슬픈 일이 넘친다면, 그것이 아마도 신께서 딱 열기구를 탄 높이 정도에서 우리를 내려다보시기 때문인 것 같다. 어처구니없는 말에도 고개가 끄덕여질 만큼 세상은 완벽하게 아름다웠다. 내가 사는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었나 싶었다.

내가 사는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었나...
신이 있다면 딱 이정도 높이에서 이 아름다운 세상을 감상하고 있지 않을까. ⓒ 한성은
하늘에서 내려다본 세상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 한성은
하늘 위에서 인간은 참 작았다. 산맥보다 작고, 강물보다 작고, 바위보다 작고, 바람보다 작고, 구름의 그림자보다도 작았다. 그저 땅 위에 찍힌 작은 점일 뿐이었다.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내 발 앞을 줄지어 기어가던 개미가 떠올랐다. 이 땅 위에서 우리 인간이란 그저 딱 초등학교 운동장의 개미만 한 존재였다.

그러나 인간은 위대했다. 인간 존재가 가진 힘은 하늘 위에 올라 세상을 내려다볼 때 비로소 알 수 있었다. 날개도 없는 인간이 하늘을 날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나는 겨우 몇십 달러의 돈을 냈을 뿐이지만, 누군가는 자신의 인생을 오롯하게 바쳐야 했겠지 싶어서 알 수 없는 누군가를 향해 고맙다는 마음을 전했다.

그나저나 돈이 있어야 열기구도 탄다. 악착같이 벌어야 열기구도 탈 수 있고, 내가 낸 돈으로 열기구 파일럿은 아이에게 빵을 사 줄 테고, 빵집 아저씨는 그 돈을 모아 차를 사고, 자동차 딜러의 자식은 내가 일하는 학교에서 공부를 할 것이다. 애초에 나의 여행이 가능했던 것도 용기네 비움이네 그럴 듯한 이야기를 붙이지만 결국 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한국으로 돌아가면 무얼하며 돈을 벌어야 하나.

내가 돈이 많으면, 이 세상의 모든 아이가 열기구를 타고 하늘을 날 수 있게 해주고 싶다. 누가 그렇게 해줬으면 좋겠다. 인간이 달에 가고, 화성 유인 우주선 프로젝트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으면 뭐하나. 내가 못 가면 그만인 것을. 우주여행이 관광상품으로 나온 세상에 살고 있지만, 우주에 갈 수 있는 인간이 몇 명이나 될까. 그냥 이 세상의 모든 아이가 단 한 번만이라도 내가 받은 이 감동을 느꼈으면 좋겠다. 그러면 분명 우리 사회는 자연 앞에서 조금은 더 겸손해질 것 같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던 1시간의 열기구 투어가 끝이 났다. ⓒ 한성은
이 글을 읽는 누구든 기회가 된다면 열기구 투어를 꼭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비용이 발생하는 일을 선뜻 권하는 것은 그다지 유쾌한 일은 아니다. 돌아오는 만족감이 나와는 전혀 다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신의 여행지에서 열기구 투어를 한다면 고민하지 말고 시도해 보라고 하고 싶다.

예전에 네팔 사랑곶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한 적이 있었다. 스릴이나 짜릿함은 열기구보다 패러글라이딩이 훨씬 나을지 모르지만, 그 강렬한 자극 때문에 15분 정도의 비행시간에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냥 '우와~ 우와~ 꺅~ 꺅~' 하다 보면 착륙이었다. 물론 개인적인 차이는 있겠지만, 하늘에 둥실 떠 있는 바구니 안에서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내가 자라고 있는 것이 실시간으로 느껴진다.

'아! 내가 오늘 한 시간의 경험으로 요만큼 성장했구나.' 

그렇게 오만 가지 생각을 다 하다 보니 비행시간 1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정말로 1시간이 아니라 10분 같았다. 내 시계가 고장난 게 아닐까 의심도 했다. 나는 비행기도 싫고, 놀이공원 바이킹도 싫어하는 고소공포증이 있다. 그런데 800m 상공을 풍선 하나에 매달려 둥둥 떠가는 데도 무서워할 겨를이 없었다. 여행사 팸플릿에 적혀 있던 싸구려 문장이 실은 수많은 경험을 바탕으로 탄생한 참명제였던 것이다.

'당신이 열기구 투어를 한다면, 당신은 이번 생애가 아니라 다음 생애까지 이 경험을 잊지 못할 것이다.'

열기구는 사뿐히 지상에 내려 앉았고, 파일럿은 안전한 비행을 자축하는 샴페인을 터뜨렸다. 승객들 샴페인을 부딪치며 환상적인 비행을 마무리했고, 서로의 남은 여행을 위한 축배를 들었다. 그리고 함께 탔던 12명의 팀원들은 세계일주 중이라는 나를 가장 부러워했다. 쥐뿔도 가진 게 없는 데도 괜히 으쓱했다. 그리고 조용히 기도했다.

'카르페 디엠 (Carpe Diem) : 오늘을 살아라'
무사귀환을 축하하는 조촐한 환영식. ⓒ 한성은
비행을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고 서로의 여행을 위한 안녕을 나누었다. ⓒ 한성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블로그 '타박타박 아홉걸음' http://ninesteps.tistory.com에도 동시에 게재되었습니다.

태그:#타박타박, #아홉걸음, #배낭여행, #세계일주, #카파도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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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란 저에게 아이들이 "선생님"이라고 불러줍니다.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은 성실한 여행자가 되어야겠습니다.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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