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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마을 '위원장' 형님은 성이 김씨다. 우리 마을에서 제일 꼭대기에 살기 때문에 내가 붙여준 별명이다. 왜냐고? 북한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제일 높으니까, 우리 마을에서 제일 높은 데 사시니까. 하하하하.

그런데 이런 형님에게 희한한 고민 하나가 오늘(지난 6일) 아침에 별안간 생겼다.

"이걸 우짜면 좋지. 오늘 아침에 우체통 열어보고 까무러치는 줄 알았단 말이여."

자초지종은 이랬다. 그 형님이 며칠 집을 떠나 어디를 갔다 오셨다. 오랜 만에 집에 온 그 형님은 습관적으로 우편함을 뒤졌다. 우편물 온 게 없나 해서다. 우편물 몇 개를 손에 집어 들었다.

그런데, 그런 그 형님에게 손에 잡히는 또 다른 뭔가가 있었다. 놀란 형님은 얼른 손을 우체통에서 뺐다. 우편물만 있을 줄 알고 손을 넣었다가, 예상치 못한 것이 만져지니 놀랄 수밖에.

마을 형님 우체통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은 어미 새는 집을 나간 후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 혹시 이 알이 무슨 새의 알인지 아는 분은 댓글로라도 알려주시길. 이름이라도 알아야 할 듯.
▲ 우체통 속 새알 마을 형님 우체통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은 어미 새는 집을 나간 후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 혹시 이 알이 무슨 새의 알인지 아는 분은 댓글로라도 알려주시길. 이름이라도 알아야 할 듯.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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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은 놀란 가슴을 쓸어안은 채로 이번엔 손이 아닌 눈을 우체통 안으로 옮겨 갔다. 이럴 수가? 바로 새알이었다. 그것도 한 두 개가 아니라 4개다. 더 기가 막힌 건 새둥지까지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형님이 없을 동안에 도대체 집에,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우체통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형님은 조심스레 알을 만져봤다. 그런데 왜 어미가 없을까. 먹이를 구하러 간 걸까. 아니면 형님이 와서 놀란 어미가 날아가 버린 걸까. 그렇게 열심히 자신의 머릿속을 뒤져서 추리하던 형님의 머리에서 건져 올린 추리는 이랬다.

'아마도, 내가 없는 사이 우체통 안에 둥지를 튼 어미 새. 그 어미가 먹이를 구하러 나간 사이, 집배원 아저씨가 우편물을 넣었고, 그 우편물 때문에 알이 보이지 않아 어미가 그냥 날아가 버린 게 아닐까?'

이런 추리에 이른 형님은 얼른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매직과 종이, 그리고 박스테이프를 들고 나왔다. 이렇게 썼다.

'새가 둥지를 틀었으니 우편물은 그냥 바닥에 놓으세요.'

그렇게 쓴 종이를 우체통에 붙였다. 형님 자신이 없는 사이 또 집배원 아저씨가 우편물을 넣을까봐 싶었던 거다.

이런 일을 당한 형님은 신통방통하기도 하고, 애틋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 했다. 물론 나도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 중 한사람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앞에처럼 조치를 취한 형님 생각엔 어미가 곧 돌아올 줄 알았다. 아무리 '새대가리'라도 자신의 알이 놓인 곳을 몰라서 못 오지는 않을 거라 믿었는데, 그 어미가 돌아오지 않는단다.

형님은 일을 하다가도 혹시나 어미가 돌아왔나 싶어 둥지 아니지 우체통에 가보곤 했다. 어미가 왔다간 흔적이 없다. 몇 번을 그랬는데도, 어미는 여전히 'No come back home'이다.

형님이 그러다보니 흡사 집나간 아내를 기다리는 남편 심정이 되었다고나 할까. 아내가 갓난아기들 줄줄이 놓아두고, 가출한 상황처럼 되어버렸다. 아기들은 빽빽 울어대고, 아내는 돌아오지 않는 상황처럼 말이다.

밤이 다 돼서 나도 궁금해 그 형님에게 연락해보았다. 아직 집나간 어미가 돌아오지 않았단다. 이글을 쓰는 지금도(오늘 밤) 여전히 그랬단다.

형님은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란다. '어미가 가출한지 얼마나 되었는지, 그 어미 새는 어떤 종류의 새인지, 지금 그 어미는 어디를 돌아다니는 건지, 그 어미는 돌아올 맘은 있는 건지, 혹시나 주변에서 서성대고 있는데, 사람 무서워 못 돌아오는 건지, 저 알들은 지금 살아있는 건지, 저 알이 어미 없이 얼마나 살아있을는지' 등등.

무엇보다 문제는 끝끝내 어미 새가 돌아오지 않았을 경우 저 알들을 어찌 처리하느냐는 거다. 그냥 버려야 하는 건지, 양지 바른 곳에 묻어 줘야 하는 건지, 아니면 눈 딱 감고 프라이를 해먹어야 하는 건지.

마을 형님은 혹시나 우편물에 덮힌 바람에 알이 있는 줄 모르고 어미 새가 못돌아온 줄 알고, 이렇게 친절하게 집배원 아저씨에게 안내문을 써붙였다. 형님의 마음이 참 아름답다.
▲ 안내문 마을 형님은 혹시나 우편물에 덮힌 바람에 알이 있는 줄 모르고 어미 새가 못돌아온 줄 알고, 이렇게 친절하게 집배원 아저씨에게 안내문을 써붙였다. 형님의 마음이 참 아름답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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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이 만약 우리 마을 회관에 방을 써 붙인다면 이렇게 했으리라.

"집나간 어미 새는 아기(알)들이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으니 속히 돌아오시오. 돌아오기만 하면 아기(알)들을 내버려두고 가출한 죄는 묻지 않을 테니, 돌아오기만 하시오."

내가 아는 형님이라면 그랬을 거라는 거다. 아무튼 이렇게까지 마음 쓰는 형님이 참 멋져 보인다. 이글을 보는 당신도 그렇지 않은가.

그나저나 집나간 어미가 속히 돌아와야 할 텐데. 내일 일어나 형님에게 다시 한 번 더 확인해봐야겠다. 사실 나도 어미 새에게 이렇게 한마디 하고 싶다.

"집나간 아주머니! 아무리 급해도 남의 우체통에 그러시면 안 되쥬. 상도덕에 어긋나자뉴. 마지못해 그랬다면, 끝까지 책임 지셔야쥬. 하하하하"

뒷얘기...

하루가 지난 조금 전(7일 오후 5시 45분경)에 형님으로부터 새로운 소식을 들었다.

집나간 어미 새가 돌아와서 알을 품고 있다고. 형님은 그 알이 잘 부화되도록, 어미 새가 또 다른 데 가서 오지 않는 일이 없도록 조심조심 한다고 했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형님은 숨 쉬는 소리라도 들려 다시 도망갈까봐 숨도 죽인단다. 그 어미 새를 위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형님이 뒷감당하기가 어려워서라는 말을 덧붙이시면서 말이다. 울 마을 형님 귀여워도 너무 귀여우시다. 하하하하.

"에헤라 디여. 경사났네 경사 났어. 집나간 엄마가 돌아왔네. 얼씨구나 절씨구나."


태그:#둥지, #새, #알, #우체통,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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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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