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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기사] 여섯째 출산으로 아내의 상처를 치유한 이야기
희망과 추억 속에 살다

"청춘은 희망에 살고, 백발은 추억에 산다"라는 말이 있다. 이즈음 나는 백발을 박박 밀은 뒤 삭발로 살고 있는데 주책없이 아직도 희망 속에 살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추억 속에 살고 있다. 그런 내게 아내는 "이제 조용히 저 세상 갈 공덕이나 쌓으라"고 잔소리를 자주 하지만 나는 못 들은 척, 영감이 떠오르는 기분 좋은 날이면 밤늦도록 불을 밝힌 채 여전히 자판을 두들긴다. 

간밤 늦도록 자판을 두들기는데 메일이 도착했다는 신호음을 들려 메일함으로 들어갔다. 시카고에 사는 한 제자의 메일이었다.

"선생님, 부끄럽습니다. 부디 건강하시고, 계속 좋은 글 많이 쓰세요. 이렇게 끊임없이 배우시고, 가르치시는 선생님이 자랑스럽습니다." - 이영 올림 

어제 아침 그에게 <오마이뉴스>에 실린 '여섯째 출산으로 아내의 상처를 치유한 이야기'를 이메일로 보냈다. 그새 그가 퇴근해 그 글을 읽어본 뒤 답장을 보낸 것이다.

 이제는 다소 여유를 찾은 성자 이영 부부의 나들이 모습
 이제는 다소 여유를 찾은 성자 이영 부부의 나들이 모습
ⓒ 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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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스승의 날에 즈음해 그는 내게 감사 메일을 보냈다. 그래서 나는 "자네의 다섯 공주와 한 왕자의 얘기를 듣고 싶다"라는 답장을 보냈다. 그러자 그는 답장 메일에서 "애들이 너무 많아서 일일이 사연을 말씀드리기가 힘들다"고 하면서 자기가 현지 <시카고 중앙일보>에 2년 남짓 기고한 글 가운데 자녀 교육이야기 편 일부를 보내왔다. 나는 그 가운데 '아내와 막내'라는 한 토막 이야기만 지난 번 기사에서 소개했다.

오늘 아침 나는 그의 나머지 11편 글을 다시 읽으면서 한 아버지로 느낀 바가 많아 우선 두 편을 골랐다. 그 첫 번째 이야기는 '네 번째 나무'다.

네 번째 나무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딸 넷을 주시고, 다섯 번째로 아들을 주신 다음, 그리고 막내로 딸을 다시 주셨다. 네 번째로 딸을 얻었을 때는 아이가 참 예뻐서 내 한국이름을 그 아이에게 물려주었다.

첫째 딸은 어려서부터 어머니를 닮아 차분하고 음악을 좋아했으며, 둘째는 말과 글에 능했으며, 셋째는 그림을 좋아했다. 넷째는 사람을 좋아하고 생각이 기발한 아이였지만, 세 언니들에 눌려, 집에서는 있는 듯 없는 듯 자랐다.

이것이 이 아이에게 인생 문제가 돼 10대가 돼서는 자기는 우리 집에서 '보이지 않는 사람' 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에 가슴 아파하며 넷째를 위해서 짧은 이야기를 만들어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셋째가 이 글을 찾고는 여기에 자기 그림을 덧붙여 책을 만들어 내게 선물로 주겠다고 했다. 그 넷째가 벌써 대학에 다니고 있다.

다음은 내가 넷째 딸에게 지어주었던 이야기다.

옛날에 예쁜 교회를 지을 꿈을 가진 젊은 목사님이 계셨다. 그 목사님은 정원에 나무 네 그루를 심은 뒤 그것들을 정성껏 기르셨다. 목사님은 나무가 음악을 들으면 잘 자랄 것이라 생각하시고는 첫 번째 나무에게 항상 좋은 음악을 들려주셨다.

과연 첫 번째 나무는 잘 자라서 피아노를 만들기에 손색없는 재목이 되었다. 목사님은 이 나무로 피아노를 만드셨다. 이렇게 만들어진 피아노는 모양도 좋았지만, 소리도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교회에 오는 사람들마다 그 소리에 감동을 받고 하나님을 찬양했다. 피아노가 된 아름다운 첫째 나무는 행복해 했다. 

목사님은 설교를 할 강대상이 필요했다. 그분은 두 번째 나무가 잘 자라 멋진 강대상이 되기를 바라셨다. 목사님은 기회가 날 때마다 두 번째 나무 앞에 와서 설교를 연습하셨다. 두 번째 나무는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 것이 기뻐서, 그때마다 가지와 나뭇잎을 흔들며 손뼉을 치곤했다. 이 나무는 어려서부터 하나님 말씀을 잘 이해했고, 목사님의 소원대로 자라서는 좋은 강대상이 되길 바랐다. 목사님은 잘 자란 이 둘째 나무로 아주 멋진 강대상을 만드셨는데, 둘째 나무는 이런 자신을 보면서 행복해 했다.

세 번째 나무는 예술 감각이 남달리 뛰어났다. 이 나무는 다른 두 나무들처럼 크게 자라진 않았지만, 그 줄기마다 아름다움이 넘쳐났다. 목사님은 이 나무가 잘 자라 그분이 앉을 수 있는 예쁘고 안락한 의자가 되길 바랐다. 과연 이 나무는 유연하고 아름답게 자라 의자를 만들기에 한 점 흠이 없었다. 사람들은 강단 위에 놓인 이 아름다운 의자를 볼 때마다 감탄하여 일부러 와서 만져보고 갈 정도였다. 목사님은 날마다 이 의자에 앉아 설교도 준비하고, 쉬기도 하셨다. 세 번째 나무는 이런 자신을 보며 행복해 했다. 

그런데 네 번째 나무는 너무 작았기 때문에, 잘 자라는 다른 세 나무들 틈새에 가려져 있기 일쑤였다. 이 나무는 볼품이 없어 어디에 써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 나무는 늘 자기가 쓸모없고 볼품없다고 생각했다. 다른 세 나무가 자기들의 꿈을 이야기할 때, 이 네 번 째 나무는 잠자코 있어야만 했다. 그가 때로 말을 하고자 해도 듣고자 하는 이가 없었다. 넷째 나무를 지나치는 사람들은 도대체 이 나무가 무슨 쓸모가 있을까 생각했다. 그 나무는 마치 자기 자리만 차지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목사님은 세 나무의 재목으로 아주 잘 갖추어진 교회를 둘러보면서 만족해 하셨다. 그런데 어딘지 한 가지가 빠진 듯했다. 목사님은 그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고 또 찾아보았다.

"이상하다. 피아노도 있고, 멋진 강대상도 있고, 아름다운 의자도 있는데, 무엇이 빠졌을까? 왜 교회가 비어있는 듯이 보일까?"

그러던 가운데 곧 목사님은 교회에 십자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흠, 무엇으로 십자가를 만든다?' 목사님은 첫 번째 나무, 두 번째 나무, 세 번째 나무를 생각해 보았다. 모두 아름답고 비교될 수 없는 재목들이었다. 반면에 네 번째 나무는 거칠고, 볼품이 없었다. 좋은 재목이 아니었다.

그런 가운데 목사님은 네 번째 나무가 십자가로 쓰기에 가장 적당한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나무는 '사람들에게 버린바 되시고, 무시당하시고, 낮아지신 예수님'을 가장 많이 닮았기 때문이었다. 목사님은 그 네 번째 나무로 십자가를 만드셨다. 그리고 교회 중앙 가장 높은 곳에다 걸어 놓으셨다. 사람들은 첫 번째 나무, 두 번째 나무, 세 번째 나무로 감동을 받았지만, 네 번째 나무를 통해서 더 큰 많은 감동과 위로를 받았다. 

나는 이 글에서 착한 아버지, 곧 이 시대의 한 '성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는 나의 제자가 아니라 오히려 그가 '청출어람'으로 내 인생의 스승이라는 생각과 함께, 좀 더 일찍 그의 말을 듣지 못한 내가 후회스러웠다. 왜냐하면 나는 그와 같은 훌륭한 아버지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음은 그의 두 번째 이야기로 '네 번째 방법' 편이다.

 시카고의 한 교회
 시카고의 한 교회
ⓒ 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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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방법

우리 부부는 아이들에게 어려서부터 악기를 하나씩 가르쳤다. 그랬던 것이 이제 제법 연주를 할 수준이 되었다. 큰애는 피아노, 둘째는 플루트, 셋째는 바이올린, 넷째는 첼로, 다섯째는 프렌치호른, 여섯째는 첼로를 배웠다.

모두 다 자기에게 맞는 악기를 찾기까지 몇 가지 악기를 거치곤 했다. 아이들은 그동안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이즈음에는 자기들이 다루는 악기에 각자 만족하는 것 같다. 우리 집에 특별한 손님이라도 오는 날이면, 아이들이 함께 음악을 연주하는데, 며칠 전에 한국에서 손님이 와서 음악을 듣게 되었다. 이런 때는 나까지 덤으로 음악을 즐길 수 있다.

작년에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면서, 큰애들 넷은 각각 선물 살 돈 40불씩이 필요하다고 했다.

"40불, 물론이지!"

그러자 애들이 미안한 생각이 들었는지 우리 부부에게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말하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크리스마스와 연관 있는 곡으로 10개 정도를 들려달라고 말했다. 그렇게 해서 우리 부부는 160불을 내고 아름다운 음악을 들었다.

 이번 한국에서 손님이 오셨을 때도 애들이 연주를 했다. 그 음악을 듣는 순간   마음에 큰 감동이 있었다. 나는 갑자기 이런 음악을 겨우 몇 사람만 즐기는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30명 정도는 들었으면….

하지만, 우리 집 거실은 아무리 사람을 많이 초대해도 20명 이상은 어렵다. 나는 이런저런 방법을 연구해 보았다. 그 첫 번째 방법은 40만불 정도를 더 들여서 거실이 넓은 집으로 이사 가는 것이다. 그 두 번째 방법은 1만5천불 정도를 들여서 지금의 거실과 침실의 벽을 허물어 거실을 크게 만드는 것이다. 그 세 번째 방법은 1만불 정도를 들여서 거실과 침실사이에 있는 옷장을 헐어 거실을 1.5미터 정도 넓히는 것이었다.

내가 그 이야기 했을 때, 아내가 물었다.

"침실을 허물면, 우린 어디서 자요?"
"거실에서 자면 안 될까?" 

일단 방향은 잡혔으니, 세 방법 가운데 한 가지만 정해서 실행하면 되었으나 그 가능성이 희박하기로는 세 방법이 다 비슷해 보였다.

 그의 부부가 살고 있는 시카고의 다운타운
 그의 부부가 살고 있는 시카고의 다운타운
ⓒ 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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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갑자기 안과 연구원 가운데 한 사람이 부탁이 있다고 하면서 내 사무실을 찾아왔다. 그는 고등학생인 둘째 아들 봉사활동 때문에 요양원을 자주 방문하는데, 때로는 거기 계신 어르신들과 대화를 나눈다고 했다. 그런 가운데 몇 어르신들이 자기한테 성경공부를 시켜달라고 부탁을 하더란다. 그래서 자기는 불교신자라 성경을 잘 모른다고 말했다. 하지만 친구 가운데 성경을 가르치는 사람이 있는데 그에게 부탁해 보겠노라고 말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그분들에게 성경을 가르쳐 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나는 그 연구원에게 요양원에 있는 그 어르신들에게 성경도 가르쳐 줄 수 있고, 우리 집 애들을 데리고 가서 음악도 들려드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나의 말을 요양원에 알렸다. 곧 요양원에서 나에게 연락이 왔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요양원을 방문케 되었다.

지난주 토요일에 우리 가족은 그 요양원을 찾아갔다. 그 요양원은 마치 가정집 분위기로 넓고 깨끗한 곳이었다. 어르신들은 약속한 오후 2시가 되자 지팡이를 짚거나 워커를 밀거나 휠체어를 타고 오셨는데, 한 30명쯤 되었다.

나는 그 어르신들에게 베드로 전서 1장 3, 4절 말씀을 전해드렸다. 내가 우스개 얘기를 할 때 어르신들은 배꼽을 잡고 웃으시며 좋아하셨다. 연로하신, 기운이 없는 어르신들이었지만 그분들의 표정은 어린이나 다름이 없어 보였다. 나의 말씀에 이어 아이들은 40분 동안 음악을 연주했다. 에델바이스를 연주할 때는 어르신들이 갑자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끝으로 주기도문은 아주 큰 목소리로 암송하시며 몇 어르신은 계속 눈물을 흘리셨다. 

아이들도 행복해 했다. 갑자기 이것이 하나님이 나를 위해 마련하신 네 번째 방법이 아니었나 생각되었다. 이 방법은 굳이 내 집을 수리할 필요 없이 이미 잘 차려진 다른 곳에 30-40명 정도의 애청자를 모아놓고, 우리 가족은 말씀이나 음악만 연주해 주면 되니까 가장 경제적인 방법이기도 했다. 결국 아름다운 것을 남들과 나눠 갖고 싶은 내 소원을 하나님은 이렇게 들어 주신 것이 아닌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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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교사생활 후 원주에서 지내고 있다. 장편소설 <허형식 장군> <약속> <용서>, 역사다큐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사진집<지울수 없는 이미지> <한국전쟁 Ⅱ> <일제강점기> <개화기와 대한제국> <미군정 3년사>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