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저는 34년 동안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다가 지난 2월 29일자로 '명예퇴직(저는 '자발적 졸업'이라고 함)'을 해서 행정자치부 '2016 정부포상 지침'에 따라 2016년 8월 정부포상 대상자입니다.

행정자치부 '2016 정부포상 업무지침'에 따르면 저는 근정훈장 중 5등급인 옥조훈장 포상대상자입니다. 서울시교육청(교육감 조희연)은 지난 5월 16일자로 '2016년 8월말 퇴직교원 정부 포상 계획 알림' 공문을 각 학교에 내보내면서 정부포상대상자를 추천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훈장 포상대상자인 저는 이 훈장을 받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교감선생님께 제 신청서를 작성하지 말도록 부탁했습니다. 교감선생님은 제 부탁에 따라 신청서를 작성하지 않았고 당연히 교육청에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뒤 교육청에서 연락이 왔다 합니다. 포상대상자 신청을 하지 않으면 '포기각서'를 내라고 했다 합니다. 신청을 하지 않으면 그것으로 끝이지 무슨 '포기각서'를 내라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정부포상대상자이지만, 훈장을 받지 않겠다고 신청서를 제출하지 않았더니, 신청서 안낸 사람은 '포기각서'를 내라고 합니다. 이것은 '사람'은 없고 오로지 교육청의 행정편의적 발상입니다.
▲ 교육청에서 제출하라는 '퇴직교원 정부포상 포기 각서' 양식 정부포상대상자이지만, 훈장을 받지 않겠다고 신청서를 제출하지 않았더니, 신청서 안낸 사람은 '포기각서'를 내라고 합니다. 이것은 '사람'은 없고 오로지 교육청의 행정편의적 발상입니다.
ⓒ 이부영

관련사진보기


'포기각서' 양식을 열어보니 내용이 참 무시무시했습니다. 교육청이 요구하는 '포기각서'란 '귀찮게시리 이번에 신청하지 않는다해 놓고 나중에 딴소리하기 없기!'를 못 박아 두려는 뜻인 것이 그대로 보였습니다.

교육청은 34년 장기간을 재직한 뒤에 누구나 신청하면 받는 훈장을 신청 안하겠다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볼 생각은 눈꼽만치도 없습니다. 오로지 교육청의 행정편의만 생각합니다.

제가 34년 동안 경험한 교육청은 언제나 늘 한결같이 그러했습니다. 교사들 마음을 헤아려보기는커녕 무시하고 군림했습니다. 

'포기각서'가 제 마음을 마구 후벼놓았습니다. 훈장 신청도 안하고, 앞으로 절대로 마음 변하지 않을 테니 걱정마라, '포기각서'도 쓰지 않겠다 했습니다. 그냥 모른 척하고 있으려다가 거듭된 교육청의 요구에 교감선생님만 중간에 힘들어질까봐 '포기각서'를 써 주기로 했습니다.

다음은 제가 써서 교육청에 보낸 '퇴직교원 정부포상 포기각서' 뒤에 붙인 '포기 사유서'입니다.

<퇴직교원 정부포상 포기 사유서>

본인은 1982년 3월 10일부터 2016년 2월 29일까지 경기도와 서울에 있는 10개 초등학교에서 34년 동안 교육공무원으로 재직했습니다. 서울시교육청의 '2016년 8월말 퇴직교원 정부 포상 계획'에 따르면 저는 근정훈장 중 5등급인 옥조훈장 포상대상자입니다.

그러나 본인은 이 훈장을 받지 않겠습니다. 사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저는 교육공무원으로 '장기간' 근무했다는 이유로 모든 교육공무원에게 훈장을 주는 것에 반대합니다.

서울시교육청의 위 계획에 제시되어있는 정부포상 목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서울시교육청, '2016년 8월말 퇴직교원 정부포상 계획(안)'
◇ 장기간의 재직 중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여 국가발전에 기여하고 공사생활에 흠결없이 퇴직하는 교육공무원 및 사립학교 교원에 대하여 정부포상

모든 교육공무원들은 '장기간 재직'한 뒤 '흠결 없이 퇴직'하면, 모두 다 정부포상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교육공무원은 수많은 직업 중에서 제가 선택한 직업이었고, 그래서 지금까지 교육공무원으로서 제가 한 일들은 무료가 아닌 월급을 받고 해 온 일입니다.

제가 선택한 직업에 대한 직무를 수행한 대가로 국민의 세금으로 국가가 주는 월급을 받고 하는 일이기에, 당연히 직업에 대한 전문성과 책임감을 가지고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것은 기본사항이기에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떤 직업이든 직업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것으로서 훈장 받을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그러나 주변에는 아무 대가없이 자신의 시간과 노력과 돈까지 들여가며 국가발전과  공익을 위해 열심히 일하시는 분들이 아주 많습니다.

따라서 월급을 받으면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으로 훈장까지 받는 것은 교육공무원에 대한 과잉 혜택으로, 지금 이 시간에도 아무런 대가 바라지 않고 국가와 공익을 위해 애쓰고 있는 많은 분들에 대한 형평성에도 어긋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훈장을 타는 것은 이 분들에게 참 미안한 일입니다. 훈장은 제가 아닌 그 분들이 받아야 합니다.

둘째, 저는 34년 교사로 재직하면서 아이들에게 죄를 많이 지었습니다.

학교를 떠나고 보니 더욱 잘 한 일보다 잘못한 일이 줄줄이 생각나 후회와 반성을 하게 됩니다.

저는 국가의 녹을 받고 하는 제 직업을 성실하게 수행한다면서, 제 책임과 역할을 열심히 한다는 이유로 아이들을 참 많이 다그쳤습니다. 아이들의 마음을 충분히 헤아려주지 못하고, 야단치고 혼내면서, 아이들에게 상처 주는 말도 했고, 철없던 시절에는 잘못인지도 모르고 아이들을 위한다는 이유로 체벌도 했습니다.

학부모가 주는 촌지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학교에서 마련해주는 학습준비물이 변변찮아서 수업을 제대로 할 수 없을 지경이라 제 월급으로 수업을 위한 학습준비물과 학습도구, 학급 비품을 사서 쓰는 일이 많았습니다.

학부모가 촌지를 내밀기에 학부모 도움으로 아이들을 위한 학습도구를 사서 아이들에게 고루 혜택이 돌아가면 괜찮겠다싶어서 받은 적이 있는데, 그 돈도 받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내 몸과 마음이 힘들고 지칠 땐 아이들을 미워하고 싫어하고 귀찮아하기도 했습니다. 급하게 처리해야 할 업무는 늘 쌓여있어서 업무 처리한다고 수업준비를 충분히 못하고 아이들 앞에 설 때가 많았고, 자습을 시킨 적도 있습니다.

잘 못하는 아이를 이해하기 쉽게 친절하게 잘 가르쳐주지는 않고 못한다고 혼내기도 했습니다. 마음의 여유가 부족해서 아이들에게 따뜻한 격려와 칭찬도 충분히 해 주지 못했습니다. 34년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못내 후회스럽고 부끄러운 일 투성이입니다.

그런 제가 훈장을 타는 것은 이런 부끄러운 제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 본 아이들에게 매우 미안하고 민망한 일입니다.       

셋째, 퇴직교원 정부포상 신청과정에 문제가 많습니다.

학교에서는 '2016 8월말 국공립퇴직교원 정부포상 계획 알림(초등교육지원과-6751, 2016. 5. 16)' 공문에 따라 포상업무를 진행하고 있는데, 위 계획 내용을 보니 포상 신청서에 들어가는 공적조서를 신청자 자신이 쓰게 되어있습니다.

훈장 타겠다고 제 손으로 제 공적조서를 쓰는 것은 낯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훈장을 타지 않겠다는 의사표현에 따라 학교에서 포상신청서를 제출하지 않았더니 교육청 담당자가 신청서를 제출하지 않은 사람은 '포기각서'를 제출하라고 했다 합니다.

포상 신청도 안했는데 무슨 '포기각서'인가 하면서 포기각서도 쓰지 않겠다했더니 학교 관리자가 매우 곤란해 합니다. (저 때문에 학교가 곤란해지면 안 되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고 보지만, 지금 이 '포기각서'를 쓰고 있습니다.)

신청서를 내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훈장을 받을 수 없게 되는데, 교육청은 왜 '포기각서'까지 받아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2016 정부포상 업무지침(행정자치부)'을 보면 되도록 포상대상자를 발굴해서 빠짐없이 포상하는 것이 정부의 포상 방침이기도 합니다.

정부방침에 따르면 이번에 신청하지 않아도 해당자는 나중에 얼마든지 신청할 수 있게 해야 하는 게 맞습니다. 그런데 '퇴직한 뒤 1년 이내'에 신청하라는 규정도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포기각서'는 신청한 뒤에 신청한 것을 포기할 때 쓰는 게 맞습니다. 신청하지 않은 사람에게 '포기각서'를 받는 것은 포상대상자인 '사람'을 생각하지 않는 오로지 관료들의 '행정편의'라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포기각서'는 행정자치부 정부포상 지침 내용에도 없는 것입니다. 또 관련 공문 어디에도 신청서를 제출하지 않는 사람은 '포기각서'를 제출해야한다는 내용이 없습니다. 이것은 교육청 담당자의 업무편의적 과잉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넷째, 저는 그동안 정부가 하는 일에 고분고분 말을 잘 듣지 않았습니다.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습니다.

이름이 '정부 포상'이기 때문에 국가가 주는 것이 아닌 정부가 주는 것입니다. 정부가 주는 포상은 결국 정부 말에 고분고분 잘 따른 사람들이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동안 교사로서 정부가 잘못한다고 생각하는 일이 있으면 가만히 있지 않고 나서서 반대했습니다. 서명하고 집회참여하고 글도 수없이 썼습니다. 그러나 큰 징계를 받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부가 하는 일에 사사건건 반대를 했어도 포상대상자입니다.

그러나 2016년에 개정된 '제외대상자' 내용에 있는 '3. 재직 중 징계 또는 불문경고(징계위원회 의결에 의한 불문경고에 한함) 처분을 받은 자(2016년 개정)'속에는 국가와 사회 공익을 위해 애쓴 분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국가와 사회와 학교의 민주주의와 정의를 위해, 참교육을 위해, 아이들에게 지금보다 더 나은 나라를 물려주겠다고 거리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징계 받고 해직된 동료교사들이 수없이 많은데 그 분들 중 대부분은 '제외대상자'입니다.

그 분들 때문에 나라와 사회가 그리고 학교가 조금 더 좋은 사회를 갈 수 있었습니다. 이 분들을 보면 저는 늘 부끄럽습니다. 훈장은 제가 아닌 그 분들이 받아야 마땅합니다. 

다섯째, 저는 이 정부가 주는 훈장을 받고 싶지 않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수학여행을 떠났다가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가 2년이 지나도록 왜 죽었는지도 모르는, 밝히지도 않고 밝힐 의지조차 없는 이 정부가 주는 훈장을 받고 싶지 않습니다.

가습기 살균제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도록 나 몰라라 한 정부, 경찰이 쏜 물 대포에 쓰러져서 200여 일째 병상에 누워있는 백남기씨를 외면하고 있는 정부, 많은 국민들이 그렇게 반대하는데도 집필원칙과 집필규정도 공개하지 않은 채 밀실에서 기어코 역사 국정교과서를 진행하고 있는 정부, 해고자 아홉 명의 조합원 자격을 문제삼아 6만 규모 노동조합을 '노조아님'이라 규정해서 탄압하고 와해에 열을 올리는 정부, 툭하면 징계하겠다고 협박하는 정부, 반대하고 비판하는 시민들의 말을 듣지 않고 귀를 닫는 정부, 시민들의 생명을 보호해 주지 않는 무능한 이 정부가 주는 훈장은 받고 싶지 않습니다.

여섯째, 저는 이미 크고 값진 훈장을 수없이 받았습니다.

혁신학교에서 보낸 5년, 교사로서 최대 기쁨이었습니다.
 혁신학교에서 보낸 5년, 교사로서 최대 기쁨이었습니다.
ⓒ 이부영

관련사진보기


교사라는 직업은 제게 경제적 바탕을 든든히 지켜주었고, 새로운 배움에 게으르지 않게 하고, 늘 깨어있게 해 주었고, 삶을 건강하게 지켜 가는 데 도움을 많이 주었습니다. 그렇기에 내 삶에 있어서 34년 동안 교사라는 직업을 가졌던 것에 매우 고맙고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교사이기에 좀 더 나은 교육과 세상을 위해,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위한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갔습니다. 그 결과 공저 포함해서 마흔 권이 넘는 저서를 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교사로서 최대의 행복은 혁신학교에서 보낸 5년에 있었습니다. 동료교사들과 학교의 주인이 되어서 퇴근시간도 잊은 채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고 수업연구하면서, 아이들과 행복하게 지낸 혁신학교의 마지막 5년은 제게 행운이고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혁신학교에서 비로소 진짜 교사가 될 수 있었고, 진짜 교육을 할 수 있었고, 학교와 교육에 대해 깊이 깨달았고, 공교육에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저는 혁신학교에서 동료교사들과 함께 한 5년 동안 정부가 주는 훈장보다 더 크고 값진 훈장을 이미 받았습니다.

34년 동안 학교에서 받은 혜택과 배운 것을 바탕으로 학교를 떠나서도 교육연구자, 농부, 작가, 시민으로 더 행복한 제2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의 행복한 삶이 지난 34년을 잘 지낸 결과 곧 훈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굳이 물건으로 된 훈장을 받는다고 해서 제가 이보다 더 행복해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또 훈장을 받는다 해도 쓸 데도 없고, 보관하기도 곤란하고, 쓰레기로 버리기도 그렇고 처치 곤란한 골치 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또 제가 훈장을 받지 않음으로써 그렇잖아도 바쁘게 정신없이 돌아가는 학교와 교육청에서 신청서류를 작성하고 심사하고 수여하는 사람들에 대한 수고를 조금이나마 줄이고, 훈장 하나라도 덜 만들어서 환경오염을 덜고 만드는 데 들어가는 세금을 절약하는데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지금 이 시간에도 '학교'라는 울타리 속에서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희망없이 불행하게 시간을 때우며 버티고 있는 청소년들이 있습니다. 비민주적인 학교구조 속에서 건강을 잃어가며 고군분투하고 있는 동료교사들도 있습니다. 불의에 저항해서 거리로 나서는 시민들이 있습니다.

잠자는 것, 노는 것, 쉬는 것, 가족들과의 오붓한 시간, 사랑하는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마저 아끼고 참고 미루고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지만, 뜻을 펼칠 수 없고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우리나라, 아이들이 꿈조차 맘대로 꿀 수 없는 이 시대에 일정기간동안 교육공무원으로 재직했다는 이유만으로 훈장을 타는 것은 정말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위와 같은 사유로, 퇴직 교육공무원에게 주는 정부포상을 받지 않겠습니다.

2016. 5. 31

전 서울**초등학교 교사 이 부 영  

덧붙이는 글 | 예전엔 저도 정부 훈장 받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매우 자랑스러운 일이고, 집안의 명예라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정년퇴직하면서 훈장을 거부한 '참교육이야기' 김용택선생님의 말씀을 듣고보니 생각이 달라져서 퇴직하면 훈장을 안받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에 정부포상대상자로서 훈장을 안받는다고 하니 퇴직교원 정부포상에 대한 문제점이 진짜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태그:#퇴직교원정부포상, #교육공무원훈장포상, #서울시교육청, #정부훈장포기각서, #정부훈장거부
댓글36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44,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34년만에 독립한 프리랜서 초등교사. 일놀이공부연구소 대표, 경기마을교육공동체 일놀이공부꿈의학교장, 서울특별시교육청 시민감사관(학사), 교육연구자, 농부, 작가, 강사. 단독저서, '서울형혁신학교 이야기' 외 열세 권, 공저 '혁신학교, 한국 교육의 미래를 열다.'외 이십여 권 있습니다.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