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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29일 알바연대 대변인 권문석을 추모하는 추모제가 개최된다. 그의 기일은 6월2일.
▲ 5.29일 권문석 추모제 5월29일 알바연대 대변인 권문석을 추모하는 추모제가 개최된다. 그의 기일은 6월2일.
ⓒ 알바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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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평생 한으로 남은 6월 1일 강연

2015년 감옥에서 낯익은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나온 잡지를 받았다. <한겨레21> 표지를 장식한 인물은 알바연대 전 대변인 권문석. 나의 동료이자 나와 같은 길을 먼저 간 선배였다. 표지 제목은 '권문석의 이름으로 최저임금1만원' 가슴이 먹먹해지는 느낌이었다. 기쁘기도 했고, 자신의 얼굴이 유력 진보잡지 표지로 나오는 날을 보지 못하고 죽어버려 안타깝기도 했다.

나는 그 잡지를 동료 수감자들에게 자랑하듯 보여주고는 내 방 구석에 고이고이 모셔놓았다가 출소할 때 가지고 나왔다. 꼬깃꼬깃해지고 색도 좀 바랐지만 혹시나 다시 구하지 못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나중에 알고 보니 알바노조가 따로 모아놓았다).

2013년 6월 1일 권문석은 당시 알바연대로 활동하던 청년회원들을 대상으로 최저임금1만원 교육을 진행했다. 경총 등 사용자단체들의 엄청난 자료들을 던져주고는 정말로 지루하게 설명을 했다고 한다. 그럴 줄 알고 나는 참가하지 않았다. 그의 눌변은 이미 많이 알려져 있던 터였다. 한비자처럼 천재는 아니었지만, 지독한 눌변만큼은 닮았다. 아직도 '어~어~'거리는 그의 말투가 생각나서 피식 웃게 된다. 다음날 새벽 그가 떠나고 6월1일의 강연은 내 평생의 한으로 남았다.

6월 2일 새벽 그의 사망소식을 전화로 듣고,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꿈이라고 믿고 싶어서인지 눈을 뜨지 않았다. 점점 정신이 또렷해지고 몸을 일으켰지만 함께 있던 동료들은 깨우지 않았다. 우선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유족의 도움으로 다른 이들보다 빨리 그를 보게 되었다. 잠을 자듯 편안한 표정으로 누워있는 그의 죽음이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다.

2013년 6월 2일, 한국사회 최초로 최저임금1만원을 주장하기 위한 투쟁이 준비되고 있었다. 최저임금은 최저임금위원회의 27명이 결정한다. 노동자들이 2000만 명이지만, 최저임금위원회의 노동자 대표는 단 9명이다. 그 중 알바노동자들의 대표는 없었다. 알바노동자들이 최초로 자신의 임금에 목소리를 내는 순간이었다. 그를 제대로 추모할 새도 없이 경총처마에 올라가고, 청와대 앞 신무문 위에 올라가서 펼침막을 펴고 전단을 뿌렸다. 최저임금위원들을 만나기 위해 서울세관의 담을 넘기도 했다. 지금 하라고 하면 못하겠지만, 당시에는 힘들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의 뜻을 이어나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감옥에서 나와보니 세상이 바뀌고 있었다

이후 청소년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재밌는 경제학 책을 쓰고 싶다는 그의 말을 떠올랐다. 마침 6월1일 그가 교육 참가자들에게 숙제를 내줬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경총의 자료를 보고 반박 글을 써서 메일로 보내라고. 그에게 메일을 보내봐야 확인을 할 수 없으니 세상에 책으로 내놓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최저임금1만원, 알바노동자라는 권문석의 기획에 살을 붙였다. '알바들의 유쾌한 반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와 최저임금1만원 투쟁으로 수감되기 전 부랴부랴 내놓았다. 그에게 빚을 졌다고 생각했고 나에게 그의 뜻을 이을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2014년과 2015년 감옥에 있는 동안 그를 추모할 수 있는 기회를 잃었고 뭔가를 할 수 없다는 사실에 괴로웠다. 그러나 출소한 이후 최저임금 1만원은 민주노총은 물론이고 모든 시민사회, 거의 모든 야당이 동의하는 정책이 되어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원내 제1당 더불어민주당은 최저임금1만원을 총선 공약으로 내걸었고, 캐스팅보드 역할을 할 국민의 당 역시 최저임금 대폭인상에 동의를 보냈다. 정의당은 2019년까지 최저임금1만원을, 노동당은 지금 당장 국회에서 최저임금1만원을 정하라고 한다. 권문석에게 빚을 진 사람은 내가 아니었다. 우리 사회와 이 시대다. 그와 그의 동지들, 그가 살았던 시대가 최저임금1만원을 꿈이 아니라 현실로 만들려고 한다.

권문석의 뜻을 잇고자 했던 나는 이제 알바노조위원장이 됐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이제야 그를 제대로 추모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5월 29일 그를 기억하고 2016년 최저임금1만원 투쟁의 시작을 알리는 추모제가 열린다. 그가 살아있었다면 내게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싸울 때다. 세상은 기다리는 자에겐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알바노조위원장입니다.



태그:#권문석, #알바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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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냉탕과 온탕을 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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