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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다닥 파닥 첨벙!

넙치 탁본 뜨기와 해부 수업이 진지하게 진행되고 있던 무렵 낯선 소리가 울려 퍼졌다. 강의실 앞쪽에 놓여있던 플라스틱 수조에서 물이 튀겼다. 마취 상태에 있던 넙치 한 마리가 깨어난 것이다.

"오오오! 진짜 물고기 있어!"

탁본 순서와 절차를 알려주기 위해 스크린으로 먼저 설명 중이었는데 넙치가 깨어나니 아이들은 흥분했다.

3학년 종규는 고새 수조 앞으로 달려 나가서 생선(?)이 살아있다고 소리쳤다. 이미 차분하게 수업을 진행하기란 물 건너갔고, 속전속결로 진행하기로 했다. 학생 두 명당 하나씩 넙치를 나눠주었다. 머리 왼쪽에 눈이 몰려있는 넙치가 은색 쟁반에 담겨 나오자 횟집 딸 한영이가 외쳤다.

"이거 광어네."
"네 맞아요. 넙치 한자 이름이 광어죠. 넙치는 2월에서 6월 사이가 산란기라 영양분이 부족해요. 회 먹을 때 이 시기는 피하세요."

실험용 장갑을 낀 작은 손들이 넙치를 쿡쿡 찔렀다. 엠에스투투투(MS222, 어류 안락사용 화학약품) 용액에 푹 담겨있던 넙치는 움직임이 없었다. 아이들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핀셋으로 아가미를 들어보고 입을 벌려봤다. 새하얀 고무장갑에 잘 소독된 핀셋과 가위까지 받은 터라 학생들의 얼굴은 진지하고 상기되어 있었다.

특히 의학 계통 진로 희망자인 광수, 연지, 진희, 형록이는 현장체험학습을 오기 전부터 기대가 컸다. 한의사 희망 2명, 의사 희망 2명이다. 23명 중 4명이니 적지 않은 비율이었다. 이들은 모두 우등생이었다.

"선생님 어류 탁본이랑 해부하는 거 맞죠?"
"응, 근데 좀 잔인할 수 있다."
"네, 그래도 재미있을 거 같아요." 




더운 날씨와 물고기 냄새에 시련 시작

넙치 표면엔 투명하고 미끈거리는 점액이 덮여있었다. 탁본을 뜨려면 물감을 칠해야 하기에 점액을 제거하기로 했다. 넙치 몸통 위아래 수건을 대고 톡톡 두드렸다. 점액질이 묻은 수건에선 옅은 비린내가 났다. 두 명의 이탈자가 발생했다. 약간의 바다 냄새만 풍겨도 속이 메슥거리는 부류의 여학생들이었다.

"킁킁, 이거 냄새난다."
"으아 코대고 맡으니까 토할 것 같아."

실험실에 미닫이식 유리창이 4개 설치되어 있었으나 크기가 작았다. 5월 중순의 더운 날씨와 생선 냄새는 쾌적한 조합이 아니었다. 시련은 이제 시작이었다. 조교들이 탁본에 쓸 물감을 나눠주었다. 물감 색이 한정되어 있어 어떤 팀들은 주황색, 빨간색을 써야 했다. 참가자들은 넙치 꼬리에서 시작하여 머리까지 꼼꼼하게 칠했다. 노란색, 초록색을 뒤집어쓴 모습도 해괴스러운 모습이었으나 붉은 계통 물감을 바른 넙치는 섬뜩했다. 형록이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형록아, 의사 선생님 되면 피 흘리는 채로 응급실 뛰어오는 환자들 많을 텐데 괜찮겠냐?"
"음 사람은 살리고 봐야죠. 징그럽긴 하네요."

빨간색 물감으로 작업하던 장난꾸러기들이 넙치 꼬리를 잡고 흔들어댔다. 안 그래도 소심하게 붓끝으로 깔짝깔짝 물감을 묻히던 여자애들이 기겁했다. 기어코 연이의 눈물을 보고 나서야 장난이 멈췄다. 그 사이 실험실의 열기는 더 올라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탁본 작업이 끝나고 해부 실험으로 이어졌다.





첫 해부 순서로 아가미덮개를 잘라냈다. 물컹거릴 거라는 예상과 달리 꽤 단단해서 가위로 힘껏 눌러야 했다. 조교의 시범을 지켜보던 아이들은 숨죽였다. 밝은 선홍빛의 아가미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모여있던 인원의 절반은 눈이 커지며 몸이 앞으로 쏠렸고, 나머지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짧은 감탄사를 내었다. 시범이 끝난 후 아이들이 직접 해부할 차례가 되었다.

네 장의 아가미 중 한 장을 잘라내어 새엽과 새판을 관찰했다. 아가미는 출혈 없이 깔끔하게 떼어졌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내장기관을 관찰하기 위해 넙치의 항문에 가위를 넣고 절개해야 했다. 수백 번 해부 실험을 진행해온 조교는 거침없는 손길로 가위질했다.

충격적이었다. 웃는 얼굴의 조교는 열정적으로 간, 위, 쓸개, 비장 등 장기를 차례로 꺼내어 설명했는데 심장은 잘린 상태에서도 움직였다. 반짝거리는 은색 쟁반 위에서 보라색 젤리처럼 생긴 넙치 심장이 수축과 이완을 반복했다. 꿈틀거림은 1분 뒤에 멈췄다. 광수는 오른손을 왼쪽 가슴 위에 얹은 채로 그 장면을 지켜봤다.

잠시 뒤 아이들이 직접 집도할 시간. 영춘이가 헛구역질을 하며 화장실로 달려갔다. 제일 뒷 줄에 앉은 3학년 두 명은 아예 도구를 놓고 창 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내장 해부 과정에서 거친 가위질 때문인지 넙치 혈액이 흘러나왔다. 또 장기들을 종류별로 추려내다보니 참가자들 장갑에서 역한 냄새가 풍겼다. 함께 지켜보던 3학년 선생님은 견디기 힘든지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꼭 깨물었다.

"의사고 뭐고 못하겠다! 어지럽고 냄새 최악이야."
"내가 도와줄까?"

넙치 가까이 고개를 숙이고 가위질하던 연지, 진희 팀이 장갑을 벗었다. 얼굴이 창백했다. 의사와 한의사를 꿈꾸며 현장체험학습을 손에 꼽아온 친구들이었다. 속이 울렁거리는지 밖에 나가 있겠다고 했다. 반면 해부실습을 예고할 적에 들은 척 만 척하던 주민이와 다영이는 눈빛을 반짝였다. 비위가 약해 가위질 못하는 친구가 있으면 가까이 가서 도와주고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내 마음 같지 않은 인생, 가능성을 열어두자

의사 되고 싶다고 해부실험 쌍수 들어 환영하던 범생이들이, 넙치 피비린내에 굴복할지 누가 알았겠는가? 또 현장체험학습 날 무슨 과학 실험하냐고 툴툴거리던 녀석들이, 생물학자처럼 신나서 집중할 줄 어떻게 예상할 수 있었겠는가? 인생은 계획대로, 의도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초등학생들의 장래희망 조사란은 넓어야 한다. 나중에 커서 무엇이 되고 싶냐고 해놓고 응답할 수 있는 공간이 기껏해야 한 칸, 두 칸뿐인 경우가 허다하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우연히 잘하기까지 해서 쉽게 직업으로 택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런 축복은 드물다. 선호하거나 잘하는 분야를 각각 10개 이상씩은 정리해둘 필요가 있다. 사람을 치료하고 돕는 일이 좋아서 의사가 되고 싶은데, 도저히 수술이나 해부에 자신이 없다면 심리치료사가 돼도 나쁘지 않다는 식이다.

매년 부모님들이 희망하는 자녀의 장래를 조사해보면 대기업, 전문직, 공무원 등 소득과 직업 안정성이 높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군들로 한정되어 있다. 이런 직업들은 너무 인기가 높고, 진입 시에 경쟁이 치열하여 엄청난 스펙과 노력이 요구된다.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한다고 해서 반드시 해당 직업을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 험난한 길을, 수많은 학생들과 청춘들이 희박한 성공확률을 믿고 간다. 소중한 인생을 올인한다.

평균 수명이 길어지고 있다. 과거처럼 하나의 직업으로 평생을 지낼 수 없다. 우리 아이들은 적어도 두세 개 이상의 일자리를 선택할 기회를 가질 것이며 시대 또한 트렌드를 달리하며 변화할 것이다. 현재 최고라고 여겨지는 직업들이 20년 뒤에는 후순위로 밀려날 수 있고, 반대의 사례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지금을 기준으로 최선의 선택을 못했다고 좌절할 필요가 없는 셈이다.

아이들이 유연하게 미래를 대비하면 좋겠다. 다양하게 경험하고, 느끼면서 꽤 흥미롭고 할만한 일들을 많이 찾기를 바란다. 몸으로 부대껴봐야 제대로 알 수 있다. 넙치 아가미를 자르고 내장을 들어내기 전까지는 해부는 그저 사전적 의미로만 와 닿을 뿐이다.

막연한 긍정이 위로가 되지 않는 시대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아하는 일이 잘 하는 일이 되도록 준비한 사람에게는 반드시 기회가 온다고 믿는다. 또 그래야만 한다.
 

태그:#진로, #직업, #해부, #넙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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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구하는 가계부, 산지니 2021>, <선생님의 보글보글, 미래의창 2024> 를 썼습니다.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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