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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춘숙 더불어민주당 당선인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당선인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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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춘숙 더불어민주당 당선자 인터뷰 (상)에서 이어집니다.>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당선자(비례대표)는 대표적인 성폭력 전문상담기관인 한국여성의전화에서 24년 동안 일했다. 정 당선자는 그 동안의 소회를 밝히며 "다양한 법이 만들어졌고, 여성가족부도 생기는 등 시스템은 많이 마련됐다. 20년이 넘었으니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라면서도 "이에 비해 여성들의 삶이 그렇게 변한 것 같진 않아 안타깝다"라고 강조했다.

때문에 정 당선자는 이번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을 "여성들이 용기를 얻어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중요하다. 이번 사건으로 여성들이 말하기 시작했다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라고 평가했다.

최근 심재철 새누리당 의원은 이번 사건의 재발방지 대책으로 "공중화장실의 남녀 분리를 강화하는 법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많은 이들이 근시안적 대책이라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된 질문에, 정 당선자는 "(법안이 통과된다면) 땡큐(Thank you)다"라며 뜻밖의 대답을 내놨다. 물론 한국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하지만.

"전혀 쓸모없는 법안은 아니다. 현실적으로 (심 의원의 법안이) 필요하긴 하다. 실제로 어떤 도움을 줄 것인지 모르겠지만 여성들이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측면은 있다. 그러나 이 문제의 본질적인 대답은 아니다. 너무 자명하다. 그래서 사람들이 비웃는 것이다."

20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있는 정 당선자에게 4년 동안 '이것만큼은 꼭 해야겠다'라고 생각하는 게 있는지 물었다. 그는 "꼭 이걸 해야겠다고 아직 결정한 건 없다. 본질적으로 바꿔야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여성 관련 법안을 만드는 데) 어려움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라고 덧붙였다.

그래서 정 당선자는 "두 딸의 아빠(인 동료 의원)들과 친해지려는 중"이다. 그는 "두 딸의 아빠는 저절로 페미니스트가 된다고 하지 않나"라면서 "하루 아침에 (동료 의원들을) 완전히 설득하긴 어렵다. 하지만 설득은 못하더라도 주변적 환경에 의한 동의를 구할 수는 있다"라며 웃었다.

아래는 2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정 당선자와 나눈 인터뷰 일문일답이다.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당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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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 사회비용은 조사하면서, 여성폭력은..."

- 한국 사회에서 여성 관련 문제제기가 어려운 이유는 뭘까.
"일단 사람들이 '우리나라 여성들이 정말 차별 당하고 사나? 여성 문제가 정말 문제야?'라는 의문을 품고 있다. 여성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정말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이 문제를 정말 사소하고 부분적, 지엽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또 사람들은 '여자들 살기 좋아졌잖아, 교육 수준도 높은데, 여성들이 정말 차별 받고 있는 거야?'라고 생각한다. 남성 뿐 아니라 여성들도 그렇다. 구체적인 여성들의 현실을 잘 몰라서 이런 질문을 한다.

때문에 이른바 '명예남성'이 탄생한다. 불 때서 밥 해먹을 때보다 지금이 낫다는 식의 생각을 여성 스스로 하고 있다. (2030년) 세계무역 7위(가 될 것이라는) 경제대국이지만 여성과 관련된 지표의 순위는 어떤가. 여성들의 노동시장 참여율을 봐라(OECD 29개국 중 고등교육, 임금, 고위직 비율, 육아휴직 등 10개 지표를 종합한 '유리천장 지수' 최하위, 지난 3월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집계 발표). 그 수치가 다 말해주고 있다. 그런데도 여성문제를 인정하지 않는 거다. 그런 현실을 보고 싶지 않은 거다."

- 명예남성의 문제를 알기 쉽게 설명해달라.
"김밥 할머니가 '돈 없어서 공부 못했다'라고 하지만 그건 돈 때문이 아니라 여성차별 때문이다. 당시 돈 없는 집 장남과 돈 없는 집 장녀의 교육 정도를 생각해보면, 그게 왜 차별 때문인지 알 수 있다. 명예 남성들은 이 어려운 세상에서 여자로 살기 어려우니, 남자처럼 살 수 있었던 것이고 자기도 모르게 가부작정인 철학을 몸에 갖고 있는 것이다. 내 안의 가부장성에 도전해야 하는데, 명예남성은 그걸 당연한 줄 알고 산다."

- 여성혐오 범죄에 대한 정치적 과제를 생각해 본다면.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의 공식 통계가 없다. 예전 한국여성의전화에 있을 때도 언론보도를 수집하는 수준이었다. 법무부에 요청해 봐도 여성이 누구한테 죽었는지 알 수가 없다. 여성폭력의 현실을 알 수 있는 구체적 통계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자료가 있어야 한다. 술 때문에 드는 사회적 비용은 매년 나오는데 말이다.

또 자세히 들여다보진 못했지만 남미 쪽은 여성살해와 관련된 법률이 있다. 캐나다의 경우 (가정폭력과 같이) 치밀한 관계, 위계적 관계에서 폭력이 발생하면 가중처벌한다.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한 폭력은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의존하는 관계라 폭력이 지속적으로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반대로 가정폭력은 (사적 영역으로 간주해) 봐주는 경향이 있다. 물론,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에 법으로 정한 형량이라도 잘 선고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 여성혐오 범죄에 대한 제도적 접근은 어떻게 가능할까.
"과거 아동 성폭행 사건이 터지면 경쟁적으로 관련 법안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잘 시행되지 않았다.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조금이라도 실제적인 법안이 마련돼야 한다. 너무 원론적일 수 있지만 교육시스템도 바뀌어야 한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여성과 인권과 관련된 체계적 교육이 진행돼야 한다. 또 지속가능한 사회를 원한다면 성평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예전엔 여자가 아이를 낳지 않으면 이기적이라고 했지만 이젠 합리적 선택이 됐다. 스웨덴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성평등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강남역여성살인사건이 발생한지 이틀이 지난 19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에서 피해자를 추모하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 강남역 밝힌 초의 '붉은 눈물' 강남역여성살인사건이 발생한지 이틀이 지난 19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에서 피해자를 추모하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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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는 사람에게 직접 다가가 왜 우냐고 물어야"

- 정치권 목소리가 다소 부족하다는 느낌이 드는데.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것 같다. 저도 당에 '이렇게 공감력이 떨어지냐'라고 따지긴 했는데(웃음). 프란치스코 교황이 말했듯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 우는 사람에게 직접 왜 우냐고 물어보면 된다. 사회복지 석·박사, 통계 모두 중요하지만, 당사자들의 말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론과 통계가 뒷받침하지 못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법전 글씨에 담긴 절규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의 살아있는 이야기를 들으면 문제가 뭔지 공감할 수 있다." 

- 일상적 피해나 여성혐오를 좀 막아달라는 요청이 많은데.
"이미 법과 제도는 있다. 문제는 법과 제도가 잘 집행되느냐다. (예를 들어 직장 내 성추행 문제가 발생해 당사자가) 제소하면 그걸 정리하는 데만 3년이 걸리고, 그 사이 피해자는 직장 내 왕따를 당하다 사표를 낼 수밖에 없다. 심지어 꽃뱀 아니냐며 조사를 받는다. 성폭력 무고죄에 관심이 많은 이유다(한국여성의전화는 "성폭력 사건은 기본적으로 증거수집이 어렵고, 수사과정에서 왜곡된 인식도 개입된다"라며 "올바른 이해 없이 이뤄지는 성폭력 고소에 대한 무고죄 판단은 본질적으로 위험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법과 제도가 현장에서도 작동될 수 있도록 조항별 세밀한 복안이 나와야 한다."

- 24년 동안 여성운동을 해왔다. 그때와 지금을 비교한다면.
"1992년 6월, 처음 한국여성의전화에 들어갔다. 다양한 법이 만들어지고, 개정됐다. 여성가족부도 생기는 등 시스템은 많이 마련됐다. 20년이 넘었으니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에 비해 여성들의 삶이 그렇게 변한 것 같진 않다. 안타깝다. 그래서 여성들이 용기를 얻어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중요하다. 여성 폭력은 발견하는 게, 말하는 게 많이 힘들다. 이번 사건으로 여성들이 말하기 시작했다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 20대 국회 4년 동안, '이것만큼은 꼭 해결해야겠다'라고 생각하는 게 있다면.
"꼭 이걸 해야겠다고 아직 결정한 건 없다. 본질적으로 바꿔야할 게 한, 두가지가 아니다. 여성의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30년 동안 외쳤지만 아직 해결되지 못한 문제다. 여성폭력, 데이트폭력 관련 법안을 만들고 싶은데 어렵다는 소문을 들었다. (꼭 필요한 일인데 가치없는 일로 여겨지는) '보이지 않는 노동'의 문제도 숙제다."

- 여성주의에 공감하지 못하는 다른 국회의원들을 설득해야하는 과제도 있을텐데.
"하루 아침에 완전히 설득하긴 어려울 수 있다. 모두를 설득할 순 없다. 하지만 다양한 방법이 있다. 설득은 안 되더라도 대의나 주변적 환경에 의한 동의를 구할 수 있다. 두 딸의 아빠들과 친해지려고 한다(웃음). 두 딸의 아빠는 저절로 페미니스트가 된다고 하지 않나. 그건 페미니즘이 몸에 배어서가 아니라, 우리 딸이 앞으로 그렇게 살아선 안 된다는 생각이 작동하는 거다."

- 심재철 새누리당 의원은 공중화장실의 남녀 분리를 강화하는 법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근시안적 대책이란 비판이 나오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전혀 쓸모없는 법안은 아니다. 현실적으로 필요하긴 하다. 하면 땡큐(Thank you)다. 실제로 어떤 도움을 줄지 모르겠지만 여성들이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측면은 있다. 그러나 이 문제의 본질적인 대답은 아니다. 너무 자명하다. 그래서 사람들이 비웃는 것이다."


태그:#정춘숙, #더불어민주당, #강남역, #여성, #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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