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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5.18 민주화운동 36돌 기념식을 앞두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보훈처는 '임을 위한 행진곡'에 관한 논란이 계속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원하는 사람만 부르는 현행 합창 방식이 국론 분열을 막는 최선의 방법이다"라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예년과 마찬가지로 공식 식순에서 합창할 것을 밝혔다. 

한편, '임을 위한 행진곡'에 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2014년 광주시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작 배경에 대한 내용을 알기 쉽도록 제작한 UCC 동영상 '임을 위한 행진곡 - 어느 결혼식'이 이목을 끌고 있다.

▲ 임을 위한 행진곡 - 어느 결혼식 광주시에서 2014년 제작한 동영상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이 만들어진 배경에 대하여 설명되어 있다. 링크 : https://youtu.be/ERE2-FWh164
ⓒ livegwang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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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을 위한 행진곡'은 윤상원 열사와 박기순 열사의 영혼 결혼식의 두달 뒤인 1982년 4월에 만들어졌다. 과연 무슨 사연일까?

진실을 알리던 시민군의 대변인 윤상원 열사

윤상원 열사는 대학을 졸업하고 은행에서 근무했다. 하지만 그는 혼자만의 안락한 생활을 마무리하고 광주로 내려와 정규교육에서 소외된 이들을 위해 '들불야학'에 참여했다. 이때 만난 것이 바로 박기순 열사다. '들불야학'의 창립 멤버였던 박기순 열사와 윤상원 열사는 마음이 잘 맞는 사이였다고 한다.

윤상원 열사는 군복무 당시 아버지에게 편지로 "내가 조국을 위해서 무엇을 해낼 수 있을 것인지 침울한 밤을 새운 적도 있습니다. 내년에 복학을 하면 어려운 현실과 싸울 작정입니다"라고 이야기 하기도 했다. 그는 항상 '어떻게 살 것인가' 치열하게 고민하는 사람이었다.

윤상원 열사는 5.18 민주화 운동 당시 외신기자들에게 진실을 알리는 역할을 했다. 그러다 1980년 5월 27일 마지막까지 총을 들고 싸우다 계엄군에 의해 사살되었다. 윤상원 열사는 계엄군의 진입이 얼마 남지 않은 가운데 어린 학생들과 여성들에게 역사의 산 증인이 되어 달라고 했다고 전해진다. 그가 남긴 "오늘 우리는 패배할 것이다. 그러나 내일의 역사는 우리를 승리자로 만들 것이다"라는 말이 유명하다. 그의 말대로, 5.18 민주화운동의 정신은 지금까지 계승되어 오고 있다.

아시아의 민주화를 상징하는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

프랑스의 국가인 '라 마르세예즈'는 프랑스 혁명 직후인 1792년 4월 독일 등의 연합군이 프랑스를 침공하려고 했을 때 '루제 드 릴'이 혁명의 열기를 담아 작곡한 곡이다. 이 노래는 혁명군을 통해 프랑스 전역으로 급속하게 퍼지게 되었다. '라 마르세예즈'는 '더러운 피로 우리 밭고랑에 물을 대자', '피의 깃발을 들었구나' 등의 가사를 담고 있다. 노래에서 당시 혁명군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이 곡은 지금도 프랑스의 국가로 계속해서 불려오고 있다. 이는 프랑스의 국민들의 혁명정신을 소중히 계승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5.18 민주화운동뿐만 아니라 민주화를 상징하는 노래가 됐다. 현재, 국내에서만이 아니라 홍콩에서는 '애적정전'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져 불리고 있으며 대만, 타이, 티베트, 미얀마,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의 많은 국가들에서 불리고 있다.

이 노래는 매우 슬픈 축가이다. 윤상원 열사는 1980년 5월 27일 목숨을 잃었고, '들불야학'으로 당차게 활동하던 박기순 열사는 불의의 사고로 1978년 12월 세상을 떠난다. 민주화를 위해 희생한 두 사람의 마음을 기리며 사람들은 영혼 결혼식을 열었다. 이를 위한 노래가 '임을 위한 행진곡'이다.

현재, 이 노래는 민주주의를 외치는 장소에서는 계속 울리고 있다. 프랑스의 국가 '라 마르세예즈'가 국민들에게 사랑 받는 것처럼 '임을 위한 행진곡'은 5.18 민주화운동을 기억하는 사람들과 진정한 민주주의를 외치는 사람들에게 꾸준히 사랑받는 노래이다. 


태그:#임을위한행진곡, #제창,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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