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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신문에서 '말일파초회 고간찰 연구 18년'이라는 글을 읽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로 이름난 유홍준님이 쓴 글이다. 거기서 한 대목을 들어본다.

요즘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하는 문제를 놓고 또 찬반이 일어나는 모양이다. 나는 한글전용론자이다. 글쟁이로 살면서 우리말을 아름답게 가꾸려고 항시 고민하며 글을 쓰고 있다. 그러나 한글 전용과 한자 교육은 별개 사항이다. 한글 전용을 할수록 한자 교육은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는 것이 내 경험이고 내 생각이다. 한자를 알면 우리가 쓰고 있는 단어의 의미와 유래를 명확히 알 수 있다.(「한겨레신문」 5월 3일치 29면)

유홍준님의 "한글 전용과 한자 교육은 별개 사항이다. 한글 전용을 할수록 한자 교육은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는 것이 내 경험이고 내 생각이다"라는 말에는 고개 끄덕여진다.

우리는 오래도록 한자를 문자로 삼아왔다. 먼 고구려, 신라, 백제 때부터 조선을 지나 일제강점기까지 써온 문자다. 우리 기록 유산 가운데 상당수는 한자로 쓴 것이며, 우리 말 속에 한자말 비율은 생각보다 많다. 멀리 갈 것도 없이 1999년 국립국어원에서 낸 <표준국어대사전> 올림말만 봐도 50만8771개 낱말 가운데 한자말이 58.6퍼센트나 된다지 않는가.

물론 한자말에는 나 같은 사람은 평생 가야 한번도 쓰지 않을 한자말도 수두룩하다. 사전이란 게 말을 모아놓은 곳간 같은 것인 까닭에 그럴 수밖에 없겠다는 말도 들지만 우리 말을 모으는 데는 소홀했다는 생각도 든다. 사전을 펴보면 일상으로 쓰는 말인데도 오르지 못한 말도 허다하다. 더구나 표준어 정책으로 못 배운 사람, 시골 사람이 쓰는 말은 아예 사전에 오르지 못하고 버려진 건 짐작도 못할 만큼 많을 것이다.

하지만 사전에 올랐다고 해서 일상에서 쓰이는 빈도까지 높다고 말할 수는 없다. 실제로 일상으로 쓰는 한자말의 비율을 따져보면 토박이말 비율이 54퍼센트로 한자말(35퍼센트) 비율보다 높았다.(조남호, 현대국어 사용 빈도 조사, 국립국어연구원, 2002) 다만, 그렇다고 해서 애먼 초등학생을 잡지 말고 이미 한문 교과가 있는 중·고등학교에서 제대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이때도 가령, 한자 글꼴을 쓰고 외우고 읽는 데 초점을 둘 것이 아니라 한자가 지닌 뜻을 익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며, 대학교에서는 한문을 제대로 뒤칠 줄 아는 전문가를 길러내야지 온 나라 아이를 한자 교육으로 나날이 괴롭혀선 안될 말이다. 유홍준님이 그런 뜻으로 말한 것으로 이해하겠다. 

그런데 그 뒤에 "한자를 알면 우리가 쓰고 있는 단어의 의미와 유래를 명확히 알 수 있다"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 이 문장은 '한자를 알면'이라는 조건을 달았다. 조건을 단 말은 앞엣말을 만족할 때라야 비로소 의미가 있다. 한자를 알아야 한다면 과연 얼마나 알아야 할까. '말일파초회 고간찰 연구 18년'라는 글 제목만 보고도, '매월 마지막 일요일에 초서를 격파하기 위해 모인 모임'에서 '옛 편지'를 18년 동안 함께 읽고 공부했다는 뜻을 퍼뜩 떠올릴 사람이 되자면 한자 지식 수준이 어느 정도 되어야 할까. 한자를 다 안다고 쳐도 고전을 술술 읽을 수는 없다. 이는 '번역'과 같기 때문이다. 

우리 말인데 말밑을 캐보면 한자말에서 온 말들이 있다. 일테면 '잡동사니, 호랑이, 철부지, 재미, 술래, 살림' 같은 말이 그런 보기인데, 말밑까지 알아야 그 뜻을 명확히 알 수 있을까. 한자를 모르는 철부지 아이라고 해서 술래잡기 하면서 재미를 모르고 잡동사니를 모아다 소꿉놀이하면서 살림살이 흉내를 못 낼까.

잡동사니는 조선 정조 때 안정복이 이것저것 잡다하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를 모아 놓은 <잡동산이(雜同散異)>에서 온 말이며, 호랑이는 '범'을 뜻하는 한자 '호'와 '이리'를 뜻하는 한자 '랑'이 붙어 만든 말인데 '이리'의 뜻은 떨어져 나가고 범을 뜻하는 호랑이가 되었다. 철부지는 '철'에 '알지 못한다'는 한자말 '부지'가 붙어 만든 말이며, 재미'는 본래 자양분이 많고 맛이 좋다는 뜻으로 쓰는 '자미(滋味)'에서 온 말이고, 술래는 조선 시대 도둑을 잡거나 불이 일어나는 것을 살피러 밤중에 돌던 '순라'에서 온 말이다. 살림은 불교에서 쓰는 말로 '산림(山林)'에서 왔는데 원래 절 재산을 관리하는 일을 가리키는데, 이 말을 소리내기 좋게 바뀌면서 '살림'이 되었다.

더구나 한자말이지만 이제는 우리말처럼 쓰는 '민주, 사회, 과학, 경제, 정치, 문화, 인문, 우주, 평화' 같은 말은 한자 하나 하나를 안다고 해도 그 뜻을 짐작하기란 쉽지 않다. '인문'은 '사람 인'에 '글월 문'이 더해진 말이고, '우주'라는 말은 한자로 적으면 '집 우, 집 주'이다. 한자를 알면 과연 의미가 더 또렷해지고 이해가 깊어지는가. 나만 그런가 몰라도 한자를 몰랐을 때도 '우주' 하면 '하늘, 별, 우주선, 외계인, 블랙홀' 같은 게 떠오른다. 오히려 '집 우'와 '집 주'가 더해져 '우주'라는 낱말이 되었다고 했을 때 더 어리둥절했다. 우주가 '집집'이라니……. 

여기서 또 하나 짚어 보아야 할 것은 한자 교육 대상을 누구로 삼을 것인가 하는 문제다. 유홍준님은 "나는 중고등학교에서 한문을 가르쳐야 하고 대학에서 한문을 교양필수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외워서 익힐 것은 어려서부터 해야 한다. 26살이 넘으면 하고 싶어도 불가능하다.(……) 이것이 요즘 말하는 인문학의 기초체력을 기르는 길이기도 하다"고 에둘러 말한다. 한자 교육을 부르대는 이들은 초등학생부터 한자 교육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교과서에 나오는 한자말에 한자를 같이 적어주다가 빼는 식으로 한다는 소리인데, 그렇게 되었을 때 교과서는 과연 어떤 꼴이 되겠는가. 모르긴 해도 새로운 말을 많이 공부하는 초등학교 3학년 교과서는 한자가 마구 섞인, 어수선한 교과서가 될 것이다. 이렇게 되었을 때 한자 공부 하느라 교과 공부는 아예 손 놓아야 할 것이다.

며칠이 지났다. 같은 신문에서 '내가 소설에 한자를 쓰는 까닭'이란 글을 읽었다. 책을 소개하는 꼭지인데, <나의 문학수업 시절>이란 책을 소개하면서, 한자를 섞어 소설 쓰기를 좋아했던 장용학이 한 말을 끌어다놓고 평화학 연구자인 정희진님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글 전용은 찬반을 논할 의제가 아니라 불가능한 일이다. 문제는 한글 전용 자체라기보다 그것이 가능하다는 발상이다. 이미 유비쿼터스, 알고리즘, 젠더 같은 용어를 공식 문서에서 사용할 뿐 아니라 men崩, 心쿵, 無pl(y) 등 한자, 영어, 의성어, 감탄사가 혼재된 단어가 신문에 등장한다. 중화와 일제에게 말을 빼앗긴 시대와, 거의 모든 젊은이가 외국어 공부에 인생을 건 지금은 다르다. (……) 혼용은 언어의 성질이다. 영어에는 전 세계 언어가 녹아 있다. 장용학의 표현은 지나침 감이 있지만 한자는 한글 구사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한자를 우리말에 수용(受容)하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무엇보다 나는 '우리말'의 '우리'는 누구인가를 묻고 싶다. 우리는 하나가 아니다. 말도 마찬가지다. 아름다운 국어는 전용정책이 아니라 다양한 서벌턴(subaltern, '民')들의 목소리가 가시화될 때 가능하다. (「한겨레신문」 5월 7일치 2면)

내가 잘못 읽었는지 몰라도 정희진님은 '한글 전용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딱 잘라 말한다. 이 말을 뒤집으면 한글로만 적어서는 서로 뜻을 온전히 주고받을 수 없다는 말이 된다. 정말 그런가. 정희진님은 '유비쿼터스, 알고리즘, 젠더, 맨붕, 심쿵, 무플' 따위 말을 보기로 들면서 '한자를 우리 말에 적극 끌어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정희진 말대로라면 앞에 보기로 든 말은 한글로만 써서는 알아먹지 못해야 한다. 유비쿼터스는 'ubiquitous'를 같이 써야 하고, 멘붕은 'men(tal)-崩(壞)'라고 써야 한다.

하지만 이미 우리 말 속에 자리잡은 서비스, 셀프, 커피, 리모컨 따위 말을 한번 보시라. 저 말을 한글로만 적어서 이해할 수 없는 말인가. 물론 말이든 물이든 사람이든 고여선 안 된다. 영어든 중국말이든 일본말이든 베트남말이든 우리 말 곳간을 풍요롭게 채울 수 있다면 적극 받아들이고 끌어안아야 한다. 그런 말들이 선택을 받는다면 오래도록 살아남겠지만 얼마 못 가서 가뭇없이 사라지는 말도 허다할 것이다.

하지만 그게 한자에서 온 말이라고 해서 한자로 적고 아랍어에서 온 말이라고 해서 아랍어로 적어야 한다는 주장하고는 다르다. 이명박 정부 초기 '어륀지' 논란이 떠오른다. 영어로 'orange'로 적고 '어륀지' 하고 소리내는지 몰라도 우리 말로는 '오렌지'로 적고 '오렌지'하고 소리낸다. 그래야 우리는 오렌지가 머릿속에 환히 그려진다.

끝으로 같은 말이면 쉽게 풀어서 말해주면 좋겠다. 배운 사람끼리 주고받는 말이라면 '아름다운 국어는 전용정책이 아니라 다양한 서벌턴(subaltern, '民')들의 목소리가 가시화될 때 가능하다'고 해도 다 알아듣는가 몰라도 신문을 보는 사람이 다 배운 사람은 아니다. 초등학생도 보고 대학교수도 보고 농사꾼도 읽고 할머니도 읽는다. 다양한 독자를 배려해서 '다양한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받아들일 때라야 비로소 우리 말이 아름다워진다'고 써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 말난 김에 한글 전용 정책이 마치 '아름다운 국어'를 가꾸려는 정책으로 오해하는 듯 하여 덧붙인다. 유홍준님은 '글쟁이로 살면서 우리 말을 아름답게 가꾸려고 항시 고민하며 글을 쓰고 있다'고 말한다. 정희진님도 '아름다운 국어는 전용 정책이 아니라는' 말에서 보듯 두 사람 모두 마치 한글 전용이 아름다운 우리 말을 가꾸는 데 뜻이 있는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한글 전용은 우리 말을 아름답게 가꾸는 데 있다기보다 누구나 알기 쉽게 가꾸려는 데 뜻이 있다. 쉬운 말이 '인권'이요 어려운 말은 '이권'이라고 했다. 배운 사람이든 못 배운 사람이든 어른이든 아이든 모두 자기 목소리를 내고 거리낌 없이 서로 소통할 때, 이것이 '다양한 서벌턴(subaltern, '民')들의 목소리'가 살아있는 참된 민주 세상이 아닐까.


태그:#한글 전용, #한자교육, #말일파초회, #유홍준, #쉬운 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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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과 글쓰기 교육, 어린이문학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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