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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1970년대 크메르루주 정권시절을 거쳐 2002년 운행이 중단될때 까지 철로 위를 달렸던  옛 기차의 모습  (현. 프놈펜 중앙기차역 외부전시관 보존)
 과거 1970년대 크메르루주 정권시절을 거쳐 2002년 운행이 중단될때 까지 철로 위를 달렸던 옛 기차의 모습 (현. 프놈펜 중앙기차역 외부전시관 보존)
ⓒ 박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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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7월 26일. 캄보디아 해안관광도시 시하누크빌에서 수도 프놈펜으로 향하던 열차가 중간 정착역인 캄폿역 약 10km 지점을 지났을 무렵이었다. 매복 중이던 무장괴한들이 열차 안으로 들이닥쳤다. 악명 높기로 소문난 크메르 루주군 공산게릴라들이었다.

공식적으로는 내전이 끝났지만, 일부 잔존세력들은 정부군의 손이 뻗치지 않는 깊은 정글과 산악지대를 근거지로 여전히 반정부 게릴라전을 펼치던 시절이었다. 열차 안에는 당시 200여 명의 일반승객이 타고 있었고, 이들에게 저항하던 민간인 13명은 즉시 사살됐다. 객실 바닥은 깨진 창문 조각들과 검붉은 피로 흥건했지만, 열차는 기적까지 울리며 그대로 내달렸다.

외국인만 내리지 못했다

이윽고 열차가 깊은 숲 한적한 곳에 다다르자 게릴라들은 인질로 잡힌 승객 대부분을 아무런 조건 없이 풀어줬다. 하지만 푸른 눈을 가진 외국인 승객은 예외였다. 인질로 잡힌 이들은 호주 출신 데이브 윌슨(29)과 동료 배낭객인 영국인 마크 슬래터(28), 프랑스인 쟝 미셀 브라켓(27) 등 모두 세 사람이었다.

이들은 캄보디아 해안지역 관광을 마치고 프놈펜으로 돌아가기 위해 열차에 탄 배낭족이었다. 인질들은 캄보디아 남쪽 캄폿주 깊은 정글 속에 위치한 크메르 루주의 근거지에서 무려 6주간이나 고통 당했다. 현장을 목격한 마을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들은 눈물을 흘리며 납치에 저항하는 의미로 음식도 먹으려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들의 납치소식이 전해지자 호주 정부가 먼저 나서 인질 석방 협상에 응했다. 크메르 루주는 당초 인질을 풀어주는 대가로 미화 15만 불을 요구했다. 그러나 협상은 지지부진했다. 그들이 요구한 액수가 많아서가 아니었다. 인질석방 대가로 단 한 푼의 금품도 절대 지불하지 않는다는 게 호주 정부의 기본원칙이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당시에는 캄보디아 정부로부터 어떠한 도움도 받기 어려웠다. 1994년 당시 유엔과도정부기구(UNTAC) 감독 하에 막 수립된 정부는 매우 불안정한 데다 현지 관료들은 부정부패로 얼룩져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군고위층들마저 전직 크메르 루주 출신이 많아 협상할 내용이 사전에 유출되기 십상이었다.
열차에 함께 탄 크메르 루주 수뇌부들의 모습(1976). 앞줄 맨 왼쪽 인물이 200만명 민간인 학살을 주도한 최고 지도자 폴 폿, 그 뒤로 2인자였던 누온 체아의 모습이 보인다. 누온 체아는 대량 학살 및 인권유린 등의 죄목으로 유엔전범재판(ECCC)을 거쳐 종신형을 선고받고 현재 복역 중이다.
 열차에 함께 탄 크메르 루주 수뇌부들의 모습(1976). 앞줄 맨 왼쪽 인물이 200만명 민간인 학살을 주도한 최고 지도자 폴 폿, 그 뒤로 2인자였던 누온 체아의 모습이 보인다. 누온 체아는 대량 학살 및 인권유린 등의 죄목으로 유엔전범재판(ECCC)을 거쳐 종신형을 선고받고 현재 복역 중이다.
ⓒ Documentation centre of Cambo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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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상황 속에 웃지 못할 해프닝도 여럿 발생했다. 크메르 루주 게릴라들과 직접적인 연이 닿는 캄보디아군 장성이 제복까지 입은 채 프놈펜 주재 호주대사관까지 찾아가 인질들을 대신 풀어주겠다며 미화 100만 달러를 요구하는 일도 있었다.

호주 내에서는 인질협상이 진전을 보이지 않자, 참다못해 자신이 석방 대가를 대신 내겠다고 나선 기업가들부터 람보식 특공부대를 보내서 인질을 구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까지 생겨났다. 그러는 사이 또 다시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갔고, 인질 석방 협상은 갈수록 꼬여만 갔다.

결국 기다리다 지친 크메르 루주 측은 최후 수단으로 인질들의 인터뷰 동영상과 편지를 기자들을 통해 외부에 알렸다. 인질 석방 대가를 자신들에게 직접 전해 달라는 메시지를 인질들의 목소리를 빌려 전했다. 하지만 호주 정부는 여전히 원칙만을 고수하며 이들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고, 결국 6주가 지날 무렵 크메르 루주 은 협상 자체를 포기했다. 이제 남아 있는 일은 인질들의 비참한 말로뿐이었다.

외국인 인질 3명은 자신들이 직접 판 구덩이 앞에서 손목이 묶인 채로 크메르 루주 게릴라에 의해 둔기로 살해당했다. 1994년 9월 28일이었다. 그리고 수개월 후,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는 그들의 시신만이 추가 협상을 통해 간신히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후 협상을 신속히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책임 공방이 수년간 호주와 관련국에서 제기되었지만, 공식적으로 책임을 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신 캄보디아 정부는 당시 이 지역 관할 크메르 루주군 장군이었던 누온 파엣을 잡아들이고 수도 프놈펜에서 재판을 열었다.

누온 파엣은 이 사건과 자신은 직접적 관련이 없다고 항변하며, 납치와 인질살해 사건을 주도한 인물로 그의 상관이었던 삼 빗 사령관과 추억 린 중령을 지목했다. 살해된 호주인의 아버지마저 재판정까지 찾아와 그를 변호하고 나섰지만, 재판관의 판단은 달랐다. 2002년 9월 캄보디아 법원은 삼 빗 사령관 등과 더불어 누온 파엣에게도 테러 및 납치와 살인죄로 종신형을 최종 선고했다. 하지만 당시 외신들은 재판 결과를 두고 그를 '속죄양'이라고 표현했다.

그 후 중단됐던 열차, 14년 만에 다시 운행

지난 1932년 프랑스 식민당국에 의해 유럽풍으로 지어진 프놈펜 중앙역 전경 모습.
 지난 1932년 프랑스 식민당국에 의해 유럽풍으로 지어진 프놈펜 중앙역 전경 모습.
ⓒ 박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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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물류기업이 지난 2010년 30년간 철도사업운영권을 취득했으나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지난 4월 30일이 되어서야 본격적인 열차운행을 재개했다. 시하누크빌행 출발을 앞두고 승무원이 밖을 내다보고 있다.
 호주 물류기업이 지난 2010년 30년간 철도사업운영권을 취득했으나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지난 4월 30일이 되어서야 본격적인 열차운행을 재개했다. 시하누크빌행 출발을 앞두고 승무원이 밖을 내다보고 있다.
ⓒ 박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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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22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지난 4월 30일(현지 시각) 수도 프놈펜 중앙기차역에서는 이 나라 최고 권력자인 훈센 총리의 기차 시승식이 거행됐다. 이 행사에는 30년간 철도사업운용허가권을 취득한 호주의 유명 물류회사 톨 홀딩스 최고 책임자와 현지 합작회사이자 캄보디아 최대기업인 로얄그룹 끗 멩 회장 그리고, 순 짠톨 교통부장관 등 정부고위관료들도 참석했다.

다만 평소와 달리 이날 행사는 요란스런 군악 밴드도 동원하지 않고 조촐하게 진행됐다. 프랑스 식민시절인 지난 1932년 완공된 오래된 기차역 플랫폼을 차지한 건 손님들을 마중 나온 직원들과 카메라를 든 수십여 명의 기자들이었다.

이미 지난 2010년 캄보디아 정부로부터 철도사업운영허가권을 따냈으나 지지부진한 철로 보수공사로 한때 사업 중단 위기까지 맞았던 로얄 철도 측은 이번 승객용 열차운행의 재개로 철도운영사업에 보다 큰 활력을 얻게 될 전망이다. 합작 파트너인 호주기업 톨 홀딩스 CEO 존 구이리씨는 이날 기자들과 한 인터뷰에서 "올해 12월까지 태국 국경 철도를 다시 연결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참고로, 현재 캄보디아는 총 길이 638km, 2개의 기차 노선을 보유하고 있다. 수도 프놈펜을 기점으로 태국 국경과 연결된 길이 385km의 바탐방 노선이 있고, 또 다른 하나는 바다와 연결된 시하누크항으로 향하는 길이 253km의 노선이다. 이 중 북서쪽 노선은 지난 1930년대 프랑스 식민시절 건설되었으며, 이번에 다시 운행을 재개한 시하누크빌 노선은 1960년대 서독, 프랑스, 중국의 도움으로 건설되었다. 다만, 70년대 내전 당시 파괴된 바탐방 철도 노선은 아직도 복구공사중이다.

프놈펜-시하누크빌 구간의 요금은 7불로 장거리 버스보다 다소 저렴하다. 당분간 주말만 운행할 계획이지만, 시하누크빌이 유명 해양관광도시인 만큼 앞으로 여행객 수요가 늘 것으로 전망된다.

유명 해안관광도시 시하누크빌행 열차에 몸을 실은 캄보디아 현지인 가족들의 모습. 이 기차는 당분간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주말만 운행한다.
 유명 해안관광도시 시하누크빌행 열차에 몸을 실은 캄보디아 현지인 가족들의 모습. 이 기차는 당분간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주말만 운행한다.
ⓒ 박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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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느린 속도다. 거액을 투자를 했음에도 철로 등 시설이 너무나 낙후되어 시속 30~40킬로 밖에 속력을 내지 못한다. 시하누크빌까지 253km 를 가는 데 무려 7시간이나 걸린다. 이를 의식한 듯 훈센 총리는 지난 1일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앞으로 기차 속도를 시속 50km로 올리고, 무선 인터넷서비스도 제공하게 할 방침"이란 글을 올렸다. 

이날 선풍기가 달린 일반 열차객실에 탄 승객 스렝 완니(54)씨는 "가족과 함께 기차 여행을 하게 되어 정말 꿈만 같다, 앞으로도 자주 이용할 것 같다"고 말했다. 과거 일어난 사건(외국인 인질살해사건)을 기억하냐는 질문에 대해 처음에는 당황한 눈치를 보이더니 "이미 지나간 역사" 라며 방긋 웃었다.

오전 7시 15분 경 기차가 경적을 울리자, 드디어 시하누크빌로 향해 기차바퀴가 서서히 위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노로돔 시하누크 전 국왕이 탔다는 원목으로 장식된 객실에 몸을 실은 훈센 총리는 창밖으로 기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작별인사를 했다.

외국인 배낭족 인질사건 발생 이후 생긴 불안감과 잦은 연착에 따른 불만 탓에 승객이 급감해 지난 2002년 열차운행이 중지된 지 14년 만이다. 훈센 총리와 승객 400여 명을 실은 열차는 이날 아침 과거의 우울했던 기억의 터널을 벗어나려는 듯 힘찬 경적을 울리며 해안관광도시 시하누크빌을 향해 출발했다.


태그:#캄보디아 기차, #크메르루즈, #훈센 총리, #DAVID WILSON, #ROYAL RAILW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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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캄보디아 뉴스 편집인 겸 재외동포신문 기자

'좋은 사람'이 '좋은 기자'가 된다고 믿습니다. 오마이뉴스 정치부에디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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