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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만덕5지구 주거환경개선사업에 반대하고 주민들과 단체들은 행정대집행을 통한 철거에 반대하는 고공 농성을 북구 만덕1동 사업부지에서 벌이고 있다.
 부산 만덕5지구 주거환경개선사업에 반대하고 주민들과 단체들은 행정대집행을 통한 철거에 반대하는 고공 농성을 북구 만덕1동 사업부지에서 벌이고 있다.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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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버스도 힘에 겨워하며 오르는 산비탈에서는 아래 세상의 아파트 옥상도 저만치 낮아 보였다. 누런색 흙바닥을 드러낸 벌판 사이로는 이따금 덤프트럭이 굉음을 내고 지나면 흙먼지가 자욱했다. 그 사이로 몇 대의 굴삭기가 부지런히도 뭔가를 팠고, 몇 채 남지 않은 집들은 군데군데 생채기를 입고 위태하게 서 있었다.

그리고 그 한쪽에 그나마 온전해 보이는 2층 건물 위로 앙상하게 뼈를 드러낸 9m 높이의 망루가 하늘로 뻗어있었다. 5일 오후 만덕은 꽤 강한 바람이 불었고, 그럴 때면 거세게 나부끼는 깃발의 펄럭거림이 정적을 깼다.

"주거권은 생명이다"

'사람 살기 참 좋았던 동네'의 지금

부산 만덕5지구 주거환경개선사업에 반대하고 주민들과 단체들은 행정대집행을 통한 철거에 반대하는 고공 농성을 북구 만덕1동 사업부지에서 벌이고 있다.
 부산 만덕5지구 주거환경개선사업에 반대하고 주민들과 단체들은 행정대집행을 통한 철거에 반대하는 고공 농성을 북구 만덕1동 사업부지에서 벌이고 있다.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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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이 입 대신 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만덕1동이 처음부터 이렇게 을씨년스러웠던 건 아니다. '만덕 5지역 주거환경개선사업'이란 이름을 붙인 개발이 시작되기 전에는 1900가구가 넘게 살던 마을이었다. 좁은 골목이 있었고, 그 사이로 이웃의 정이 흘렀던 마을이었다고 했다. 마을에서 만난 정애란(52)씨는 좋았던 '그때'를 오래된 추억처럼 이야기했다. 

"43년째 살던 동네지요. 초등학교 3학년 때 이사 와서 딸 둘 낳고 여태껏 살고 있는데 '커피 한잔 할까' 하고 골목에다 소리치면 그 소리가 다 들렸어요. 그럼 너도나도 와서 커피를 마시곤 했지요. 옆집 주인이 없는데 비가 오면 빨래를 걷어서 집 안에 넣어주기까지 했어요. 사람 살기에는 참 좋았는데…."

부산 만덕5지구 주거환경개선사업에 반대하고 주민들과 단체들은 행정대집행을 통한 철거에 반대하는 농성을 북구 만덕1동 사업부지에서 벌이고 있다.
 부산 만덕5지구 주거환경개선사업에 반대하고 주민들과 단체들은 행정대집행을 통한 철거에 반대하는 농성을 북구 만덕1동 사업부지에서 벌이고 있다.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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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씨의 기억 속 좋았던 동네는 이젠 그녀의 머릿속에만 남았다. 지금은 10여 가구만이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개발 이야기가 나돌았던 건 지난 2001년부터였다. 2007년에는 대한주택공사가 주거환경개발의 사업자로 정해졌다. 하지만 이후 대한주택공사와 한국토지공사의 합병과 맞물리며 좀처럼 사업은 속도를 내지 못했다.

2011년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했지만, 이번에는 보상가가 문제였다. 합병 전인 2007년에 맞춰진 보상가로는 근처에 집을 구할 수 없다는 주민들의 반발이 이어졌다. 급기야 주민들이 2012년 주거환경개선사업 지구를 해제해달라고 부산시에 요청했지만 시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까지 가는 소송 끝에 주민들이 졌다.  

주민들에게 희망의 끈이었던 법이 그들의 집을 철거하라고 판결했다. 지난 2일에는 법의 이름으로 행정대집행을 진행하겠다며 용역이 들이닥쳤다. 제2의 용산 참사가 빚어질 수도 있었다던 급박한 상황. 4·13 총선에서 이 지역에서 당선된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당선자가 막판 중재에 나서면서 일주일의 시간은 벌었다.   

"만덕5지구, 제2의 '용산' 될 수도"

만덕주민공동체 등 부산 만덕5지구 주거환경개선사업에 반대하고 주민들과 단체들이 4일 오전 부산시청 광장에서 행정대집행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고있다.
 만덕주민공동체 등 부산 만덕5지구 주거환경개선사업에 반대하고 주민들과 단체들이 4일 오전 부산시청 광장에서 행정대집행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고있다.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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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에 반대하고 있는 만덕주민공동체 주민들은 "안심할 수 없다"라고 입을 모았다. 4일 오전에는 부산시청 앞을 찾아 기자회견도 열었다. 이 자리에서 주민들은 "(LH가) 5월 말 착공을 예정하고 있는 상태에서 행정대집행은 시시각각 앞으로 다가오고 있다"라면서 "이제 만덕5지구는 제2의 용산이 될 수밖에 없는 심각한 현실에 직면해 있다"라고 호소했다.

주민들은 거듭 LH에 대화를 요구했다. 이들은 "행정대집행 강행을 뒤로 하고 만덕주민공동체 주민들과의 협상에 적극적으로 응해야 한다"면서 "주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사람을 살리는 길에 함께 해야 할 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문제 해결의 전망은 어둡기만 하다. LH 측 관계자는 "주민들이 주장하는 게 우리와 너무 차이가 나서 수용하기 어렵다"면서 "부득이 공사를 시작해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LH 측 관계자는 막판 절충 가능성에 대해서도 "먼저 합의를 하고 나간 주민들과의 형평성 문제 때문에 더 이상의 보상은 불가능하다"라면서 "중재가 잘 되면 좋겠지만 안 되면 할 수 없이 행정대집행에 나서게 될 것 같다"라고 말했다.


태그:#만덕5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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