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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살면 죄다 들장미 소녀 캔디가 된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말라고 하니까. 이 말이 가슴에 팍팍 꽂히는가? 한밤중에 홀로 읊조려 본 경험이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아직 내공이 부족하다. 서럽게 느낄 필요가 없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 4명 중 1명은 '독거중'이다. 비슷한 처지의 사람이 많다는 거다. 기자도 1인가구다.

1인가구가 사는 방식은 다양하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다고 의지만 다지는 게 아니다. 이웃과 함께 협동하고 연대하는 사람. 나만의 방식으로 대안적인 삶을 가꾸는 생활자들. 혼자 살면서도 '같이'의 가치를 지향하고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1인가구. 참 다양한 삶을 살아간다. 혼자선 등도 못 긁는다고 핀잔만할 게 아니란 거다.

지난 21일 서울시 마포구 오마이뉴스 서교동마당집에서 책<독립하고 싶지만 고립되긴 싫어>의 북콘서트가 열려 사방팔방 흩어져 있던 '혼자족'이 한데 모였다. 사진은 저자와 책에 소개된 주인공, 참석자가 기념촬영한 모습
▲ "우리는 1인가구" 지난 21일 서울시 마포구 오마이뉴스 서교동마당집에서 책<독립하고 싶지만 고립되긴 싫어>의 북콘서트가 열려 사방팔방 흩어져 있던 '혼자족'이 한데 모였다. 사진은 저자와 책에 소개된 주인공, 참석자가 기념촬영한 모습
ⓒ 정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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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팔방 흩어졌던 '혼자족'이 한데 모였다. 지난 21일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오마이뉴스> 마당집서 책 <독립하고 싶지만 고립되긴 싫어> 북콘서트가 열렸다. 혼자 사는 데 잔뼈가 굵은 이들이 경험을 털어놓고 공유하는 자리다. 1인가구의 현실적이고 솔직한 이야기가 책  밖으로 나왔다. 북콘서트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활자로 옮긴다. 책에 담긴 이야기도 함께 싣는다.

우야와 휘재의 밥 먹다가 생긴 일

휘재의 소셜다이닝(Social dining) 집밥 모임은 음악이 곁들여지면서 '홈메이드 콘서트'로 진화했다.
▲ 아현동 쓰리룸에 차려진 집밥 휘재의 소셜다이닝(Social dining) 집밥 모임은 음악이 곁들여지면서 '홈메이드 콘서트'로 진화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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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야(30)는 혼자 10년을 살았다. 집밥을 해먹은 지는 3년이 됐다. 밥을 해 먹는 것은 좋아했으나 혼밥(혼자 먹는 밥)은 싫었다. 휘재(32)를 만나 '아현동 쓰리룸'의 집밥 모임을 알게 됐다. 우야 식당을 열어 집밥이 그리운 이들을 위해 요리했다.

밥상은 늦은 밤과 주말만 예약제로 차렸다. 1인식탁에서 8인식탁까지 다양한 집밥을 만들었다. 지금은 서울 망원시장 고객센터 지하 1층으로 우야식당을 옮겼다. 격주로 문을 여는데 주제별로 밥상이 다르다. 지난 27일 우야식당에선 냉장고 속 식재료를 가져오면 음식을 함께 만들어 먹는 '냉장고를 부탁해'가 문을 열어 밥상이 차려졌다.

혼자 살면 밥걱정이 크다. 우야는 고민을 덜고 '같이'의 가치를 공유하고자 집밥을 만든다. 동네 친구 하나 없던 마을에서 밥상을 마주할 벗도 생겼다. 독립하고 싶지만 고립되지 않는 방법. 마을 안에서 답을 찾는 거다. 책에서 우야는 이렇게 말했다.

"계속 해야죠. 아직 마을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 이렇게 서로 만나는 건 좋잖아요."(206p)

우야 식당의 집밥 아이디어는 아현동 쓰리룸 휘재의 '목요일엔 식당'에서 비롯됐다. 밥과 공연이 함께하는 소셜다이닝(Social Dining) 모임이다. 하지만 휘재의 집에선 더 이상 집밥 모임이 열리지 않는다. 집밥 모임은 쓰리룸 바로 옆 건물 1층 '언뜻가게'로, 음악공연은 동네로 진화해 각각 분리됐다. 

언뜻가게는 거실을 표방한 공간이다. 평상시에는 휘재와 그의 친동생 둘이 맡아 예약제로 식당을 운영한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 집밥 모임을 갖는다. 공간을 빌려줘 오픈키친, 기타교실, 작곡 교실도 열린다. 이젠, 아는 사람만이 아니라 동네 사람이 찾는 공간이 됐다.

휘재가 친구들과 결성한 밴드 '피터아저씨'는 동네 속 작은 공간을 찾아간다. 집밥 모임서 "노래 한 곡 해달라"는 사람들의 요청이 잦아지자 아예 인디 뮤지션을 초청해 집밥과 함께하는 공연을 기획했다.

동네 병원, 게스트하우스, 가정집에서 공연을 하는 '홈메이드 콘서트'가 열리게 된 탄생비화다. 1인가구가 모여 사는 휘재의 아현동 쓰리룸. 이곳에선 밥과 음악으로 만난 청춘들이 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다.

성북동 쓰리룸에 사는 저소비 생활자 기민

기민이 사는 집은 한지붕 세가족이다. 방마다 1인 가구가 산다. 저소비 생활자인 그의 제1목표는 자본과 소비에 휘둘리지 않음으로써 '내가 주인이 되는 삶'이다.
▲ 저소비 생활자를 아시나요? 기민이 사는 집은 한지붕 세가족이다. 방마다 1인 가구가 산다. 저소비 생활자인 그의 제1목표는 자본과 소비에 휘둘리지 않음으로써 '내가 주인이 되는 삶'이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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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민(36)도 쓰리룸에 사는 1인 가구다. 나머지 두 방에는 또 다른 1인 가구가 산다. 전세 보증금은 기민이 냈으나 월세는 각자 자신이 사용하는 방의 면적에 따라 부담한다. 주거공동체를 위한 협동조합도 만들었다. 이름은 '따로 또 같이'다. 언젠가 셰어하우스를 짓기 위해서다. 규칙도 하나 둘 만들어가는 중이다. '공유 생활'이 이상적인 생활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집을 짓기 위해 돈은 모으나 사실 기민은 저소비 생활자다.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저소비 생활자에 대해 이렇게 썼다.

"자본주의가 요구/조장하는 물질 만능, 소비 지상주의로부터 독립하여 자신의 존재 가치와 이유를 돈과 소비가 아닌 자기 자신으로부터 찾음으로써 좀 더 편안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 것을 꿈꾸고 실행하는 사람들이다. 저소비 생활자의 제1목표는 자본과 소비에 휘둘리지 않음으로써 '내가 주인 되는 삶'에 있습니다."(108P)

그가 서울 토박이에 유난히 교육열이 높기로 소문이 자자한 목동에서 자랐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그렇다면, 적게 벌면서 삶의 수준이나 질이 떨어지지 않게 살 수 있을까. 대답은 '그렇다'이다. 그는 지난해 4개월간 세계여행을 다녀왔다. 여행경비 100만~150만 원은 '청년연대은행 토닥'과 '공동체은행 빈고'에서 빌렸다.

'신용'이 아니라 '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대안금융이다. 그는 여행에서 돌아와 여행책을 만들고 발표회도 열었다. 사람을 만나고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일도 다시 시작했다. 서울 성북동에는 '나와 너'보다 '우리'를 생각하는 저소비 생활자 '기민'이 산다.

유라와 설레의 시골서 1인가구로 살아가기

설레는 전북 완주군 삼례로 귀촌한 1인 가구다. 시골서 그는 대안적인 삶을 살아가며 하루하루가 설레는 나날이라고 한다.
▲ 설레의 설레는 시골생활 설레는 전북 완주군 삼례로 귀촌한 1인 가구다. 시골서 그는 대안적인 삶을 살아가며 하루하루가 설레는 나날이라고 한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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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가구는 도시에만 살지 않는다. 시골에서 대안적이 삶을 살아가는 1인가구의 모습은 어떨까? 설레(33)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설레는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에 산다. 서울서 코피 쏟으며 일하다 우연히 완주로 이직하게 돼 귀촌생활을 시작했다. 도시를 떠나 시골로 이사했으나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야근은 변함이 없었다. 이건 아니다 싶었다. 일을 그만두고 삼례를 어슬렁거리다 문화예술협동조합 '씨앗'을 알게 돼 조합원이 됐다. 씨앗 활동을 하면서 설레는 잠자던 재능을 발견했다. 그림이다. 동네 어르신들의 자서전을 디자인하고 책으로 만들었다. 마을에 벽화를 그리고 삼례 산책길 지도도 만들었다.

살림살이는 넉넉하지 못했으나 마음만은 풍요로웠다. 한 달 수입이 50만 원 남짓인데 생활비로 쓰면 남는 게 없다. 하지만 월세 30만 원으로 21평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 적게 벌면 적게 쓰면 되는 거다. 그는 대도시에서 다른 소비 패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일단 집값이 싸죠. 그리고 여기엔 소비를 자극하는 광고가 적어서 충동적인 소비가 덜해요. 눈에 보여야 사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데, 여기는 편의점이 전부거든요. 쇼핑을 하려면 일단 멀리 나가야 하니까요(232P)."

농촌에서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는 설레. 그는 자본주의에서 벗어나 대안적인 삶을 살아가는 1인 가구다.

시골로 터전을 옮긴 것은 유라(29)도 마찬가지다. 다른 게 있다면, 그는 설레보다 좀 더 적극적인 경제활동을 한다는 거다. 흉악범만을 수용하기로 이름난 청송교도소가 있는 동네서 유라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유라는 1년 전 청송군 진보면사무소 근처에 집을 얻었다. 두루(32)와 함께 살 집이다. 두 사람은 청송의 고춧가루를 팔다가 만났다. 이제 둘은 청송창조지역사업단에서 같이 일한다. 산나물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거다. 밭에서 청송의 어르신들과 함께 산나물을 기르고 내다 판다. 서울 시민은 성수동에 위치한 한정식집 '소녀방앗간'에 가면 '황태한 어르신 고춧가루', '황관장네 된장', '방위순 할머니 간장' 등과 같은 먹거리를 살 수 있다.

두 사람은 산나물만 내다 파는 게 아니다. 그 속에 담긴 어르신들의 이야기도 함께 전한다. 산나물을 하나의 콘텐츠로 만든 거다. 이야기가 쌓여 지난 2014년 산나물에 얽힌 <오지의 메리트>라는 잡지를 발간하기도 했다. 인디밴드 옥상달빛의 노래 <없는 게 메리트>라는 곡명에서 따온 이름이다. 노래 가사처럼 불편함을 택한 젊은이들의 오지생활, 청송 생활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담았다. 그렇다면 유라는 현재의 삶에 얼마나 만족하고 있을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어려서 잘 버티고 있지만 앞으로 서른다섯, 마흔이 돼서도 계속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늘 스스로에게 반문하곤 해요. 그래도 저는 청송보다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고 싶어요. 편한 것만 찾으면 내 능력치도 한계가 생겨서 그저 손바닥 수준에 머물겠죠. 농촌에서는 스스로 움직여야 하니까 능력치가 높아지는 것 같아요. 이제 무서운 것도 겁나는 것도 없어요."(221P)

책 속에 없는 새소식이 있다. 유라가 곧 결혼을 한다. 청송에서 평생을 함께할 단짝을 만난 거다. 이제로 인생 1막 독립하고 싶지만 고립되기 싫었던 1인 가구의 생활은 끝이 났다. 하지만 그의 인생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1인가구가 결혼이라는 관문으로 가기 전, 잠시 거쳐 가는 일시적인 상태가 아니듯 그는 청송에서 계속 스스로 중심이 되어 타인과 관계망을 만들어갈 것이다. 인생 2막은 아마 <결혼해도 구속되긴 싫어>가 되지 않을까?

책장을 덮으며, '전환마을은평'을 팔로잉했다

현실 속 1인가구의 삶이 더 궁금한가? 책 <독립하고 싶지만 고립되긴 싫어>에는 단순히 결혼을 못한 미혼 남녀만 있지 않다. 자발적으로 비혼을 선택한 이도 있고, 결혼을 했다가 혼자가 된 이도 있다.

독거 노인도 1인가구이고 부모로부터 독립해 셰어하우스에서 여럿이 모여 사는 청년들도 1인가구다. 책장을 덮으며, 기자는 페이스북 페이지 '전환마을은평'을 팔로잉했다. 책에 소개된 소란(38)이 활동하는 곳이다. 1인가구로 마을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다.


독립하고 싶지만 고립되긴 싫어 - 1인가구를 위한 마을사용설명서

홍현진.강민수 지음, 오마이북(2016)


태그:#집밥, #1인가구, #셰어하우스, #독립하고 싶지만 고립되긴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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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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